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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8화 (8/407)

일상으로(3)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뿐.

조태호는 어깨를 으쓱하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뭐해? 안 들어가?"

"저기, 사람이 쓰려져 있잖아. 그냥 가자고?"

"당연한 걸 왜 물어?"

조태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나마나 술 먹고 뻗은 병신이겠지. 저런 인간들 신경 쓰면 못 살아."

"······."

"내 말 안 들려!"

조태호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최기석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골목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오지랖 넓은 새끼. 오랜만에 얘들 다 모였는데 자리를 망칠 생각이냐?"

"······."

"빨리 안 와!"

조태호가 으르렁거리자 최기석이 몸을 돌렸다.

조태호의 얼굴이 그제야 펴졌다.

"야. 아픈 사람을 돕는 게 오지랖이냐?"

최기석은 조태호를 쏘아보았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금이 바로 조태호 패거리와 이별할 때라는 것을.

"의사라는 새끼가······ 아휴. 쪽팔린 줄 알아라."

최기석이 날 서린 독설을 퍼부었다.

"꺼져!"

한마디 덧붙이고 재빠르게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갔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조태호가 사라졌다.

"괜찮아요?"

최기석은 쓰러진 사람을 똑바로 눕히고 어깨를 흔들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전혀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불길한 예감 속에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체력: 3/10

주 증상: 흉통 / 호흡곤란 / 저혈압 / 빈맥

아픈 부위: 심장

현재 상태: 긴급

경과: 매우 불량(near death)

[패시브의 레벨이 낮아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정보를 파악한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최기석은 남자의 활력징후를 자세히 파악해 나갔다.

이마에 손을 올려 대충 체온을 살폈고 이어서 호흡과 맥박과 혈압을 체크했다.

체온은 정상.

호흡은 당장 꺼질 듯했으며 혈압은 바닥을 쳤다. 그에 반해 맥박은 야생마처럼 날뛰었다.

맥박이 이렇게 뛴다는 건 심박출량에 문제가 있다는 건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남자의 상의를 벗겼다.

남자의 왼쪽 가슴에 시퍼런 멍이 있었다.

'아······.'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환자는 심장압전을 앓고 있었다.

심장압전.

심장을 감싸고 있는 막 사이에 혈액이 고여 심장을 누르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심낭에 압력이 증가하고 심박출량은 줄어든다.

가슴에 멍을 보면 외상으로 인한 심장압전이다.

"119죠. 여기 00 호프집이 있는 골목길인데요······."

최기석은 신고를 끝내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심낭천자다.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심낭에 모여 있는 혈액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천자를 할 만큼 날카로운 도구가 주변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근처 약국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119가 올 때까지 손 놓고 있으면 환자는 죽는다.

"포비돈하고 주사기 좀 주세요."

"네?"

약사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포비돈하고 주사기!"

"어······ 어디다 쓰시게요?"

"사람이 죽어요. 거즈하고 플라스터도요. 빨리!"

최기석이 다급하게 말하자 약사가 미심쩍어하면서도 필요한 물건을 챙겨 주었다.

최기석은 값을 계산하고 총알처럼 환자에게 돌아갔다.

[격려 스킬 사용에 실패했습니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외과적 처치와 내과적 처치를 비롯한 모든 능력치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얼어붙은 심장 스킬이 적용됩니다.]

[걱정과 불안 초초,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집니다.]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합니다.]

[처치능력 감소폭이 줄어듭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가슴 한구석에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샘솟았다.

최기석은 우선 환자를 벽에 기대 앉혔다. 그리고 포피돈 용액을 환자의 가슴에 넓게 발랐다.

마지막으로 포장을 벗긴 주사기를 손에 들었다.

지금부터 초음파 없이 심낭천자를 해야 한다.

만약 바늘이 심낭이 아니라 폐를 찌른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오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최기석은 심호흡하며 남자의 곁에 떨어진 지갑을 바라보았다.

지갑 속에는 남자와 가족들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있었다.

저 미소를 지켜줄 수만 있다면······.

'가자!'

최기석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천자 부위는 좌측 가슴뼈와 5, 6번째 갈비뼈 사이.

수우우욱.

주사기 바늘이 과감하게 가슴을 찔렀다.

바늘이 피부를 꿰뚫는 느낌이 손끝에 남았지만 처치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응급처치, 심낭천자에 성공하셨습니다.]

[처치 보너스를 획득하여 일시적으로 '강철의 몸' 버프가 적용됩니다.]

[강철의 몸: 일시적으로 체력 감소폭이 줄어듭니다. 지속시간 20분]

머릿속 알림에 구원받는 느낌이 들었다.

실수는 없었다.

정확히 바늘이 정확히 심낭으로 들어간 것이다.

최기석은 바늘을 적당히 집어넣고 서서히 몸통을 당겼다. 그러자 빨간 삼출액이 딸려 나왔다.

심낭천자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최기석은 주사기를 빼낸 후 포비돈으로 상처를 다시 소독하고 그 위를 거즈로 덮었다.

체력: 2/10

주 증상: 심정지 / 무호흡

아픈 부위: 심장

현재 상태: 긴급

경과: 매우 불량(near death)

[패시브의 레벨이 낮아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젠장."

환자를 재차 살피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심장압전의 후유증으로 심정지가 찾아온 것이다.

최기석은 남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깍지 낀 손바닥을 남자의 가슴 한가운데에 두었다.

퍽! 퍽! 퍽!

본격적인 흉부압박이 시작되었다.

최기석이 흉부압박을 할 때마다 남자의 몸이 파도처럼 들썩거렸다.

흉부압박은 강하고 빨라야 한다.

갈비뼈 골절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기석은 신속하게 30회 압박을 한 후 인공호흡을 2회 실시했다.

팔이 저릿저릿하고 얼굴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지만 CPR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강철의 몸 덕분에 고된 CPR도 견딜 만했다.

'이대로는······.'

최기석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CPR을 제대로 펼치고 있음에도 호흡과 맥박이 좀처럼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뇌에 데미지가 간다.

"여기요! 환자가 있어요!"

최기석은 흉부압박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물건만······.

그 물건만 준비가 된다면 남자를 살릴 수 있을 텐데.

외침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술집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정설화다.

정설화는 최기석과 환자를 보고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설화야!"

"어. 어?"

"길 아래! 제세동기!"

최기석의 말은 불분명했지만 정설화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벗어났다.

이윽고 다시 현장에 도착한 정설화의 손에 자동제세동기가 들려 있었다.

"······."

"······."

문득 시선이 맞은 두 사람.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최기석은 계속 CPR에 몰두했고 정설화는 제세동기의 포장을 벗기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이어서 남자의 우측 쇄골 아래와 좌측 유두 바깥쪽에 패드를 붙였다.

[심장 리듬 분석 중]

패드에 연결된 선을 꽂자 기계음이 울렸다.

잠시 후 전기 충격이 필요하다는 신호가 떨어졌다.

"기석아. 떨어져."

"알았어."

정설화가 남자와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주황색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잉. 쿵!

전자음이 울리고 남자의 몸이 들썩거렸다.

'아직 멀었나?'

최기석은 남자의 호흡과 맥박을 체크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처음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고개를 저으며 밀쳐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최기석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CPR를 이어 갔다.

이윽고 전기 충격 표시가 재차 떠올랐다.

"한 번 더!"

정설화가 재차 버튼을 눌렀다.

쿵!

남자의 몸이 거칠게 뛰어올랐다.

두 번째 자극이 끝난 후 최기석은 호흡과 맥박을 다시 확인했다.

맥박이 살아나고 있었다.

호흡도 전보다 좋아졌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경과가 매우 불량에서 불량으로 바뀌었다.

최기석은 기쁨의 환호를 간신히 억눌렀다.

들뜨기에는 아직 일렀다.

CPR과 자동제세동기를 이용한 응급처치는 계속되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자동제세동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CPR도 의미가 없었다.

정설화와의 응급처치로 환자를 정상으로 돌린 것이다.

최기석과 정설화는 서로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응급환자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새로운 스탯 라포를 얻었습니다.]

[라포는 동료 또는 환자와의 유대관계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정설화와 최초의 라포를 형성하였습니다.]

[정설화와 의료행위를 할 경우 처치 속도가 빨라지고 추가 보너스를 얻습니다.]

최기석은 의료모드로 라포를 확인했다.

과연 평판 아래로 새롭게 생긴 스탯인 라포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NEW 라포 형성

NEW 정설화(의료인): 1단계 - 친밀

위이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귓가에 흘렀다.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고 119 대원들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곽상철 대원이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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