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4화 (4/407)

귀환(4)

흉부외과 병동.

최기석은 침상에 붙어 있는 식탁을 올리며 식사를 준비했다.

보통 심장이식 수술환자들은 짧게는 1주에서, 길게는 2주까지 무균실에서 지낸다. 하지만 최기석은 경과가 좋아서 나흘 만에 무균실을 나왔다.

무균실을 나왔을 때.

그때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처럼 짜릿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지금은 병동 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퇴원을 바랐다.

"식사 왔습니다."

남자 병동 보호사가 음식이 담긴 식판을 나누어 주었다.

최기석은 식판을 받아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시끄럽던 병실이 어느새 조용해졌다.

병원 밥은 맛이 없다.

그 말은 적어도 이곳 진성대 종합병원에는 통하지 않았다.

최기석은 식판을 치우고 침상에 걸터앉았다.

개인 수납장을 열자 각종 간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바로 어제 가족들이 병문안을 와서 간식 폭탄을 던져 주고 갔다.

"기석아. 또 먹냐?"

옆 침상을 쓰는 윤문재가 견과류 먹는 최기석을 바라봤다.

"입이 심심해서요."

"혼자 먹냐?"

"그럴 리가요. 혹시 독이 들어 있나 해서 먼저 먹어 봤어요."

최기석은 너스레를 떨며 윤문재에게 견과류를 건넸다.

윤문재의 얼굴이 그제야 밝아졌다.

"너 이틀 있다 퇴원이지?"

"네."

"간식 남으면 다 주고 가. 마누라쟁이가 면회도 안 오고 간식비도 안 줘서 죽겠다."

윤문재가 견과류를 우물거렸다.

"나도 빨리 퇴원해야 하는데. 철호 이 새끼가 내 배역 다 따먹고 있을 거라고."

윤문재는 뮤지컬 배우다.

20년 배우 생활을 화면서 주연은 한 번도 못했지만 이름 있는 조연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뭘 그렇게 맛있게들 드시나?"

"병실에 입이 두 개만 있나 보네."

같은 병실 환자 장기영과 권준하가 하이에나처럼 다가왔다.

"아무렴 제가 두 분을 빼놓겠어요?"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두 사람에게 간식을 건넸다.

장기영에게는 견과류가 담긴 봉지를, 권준하에게는 키위를, 잠시 자리를 비운 김진욱의 자리에는 잘 익은 고구마를 놓았다.

"기석이 서랍장은 완전 냉장고네."

장기영이 견과류를 와드득 씹으며 말했다.

반면 곁에 있는 권준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키위를 깠다.

"기석아."

"네."

"근데 우리 세 사람 간식이 왜 전부 다르냐?"

"이 양반아. 그걸 몰라서 물어. 종류가 많으니까 그렇잖아."

권준하의 물음에 장기영이 타박을 놓았다.

"그것도 그렇고요. 기왕이면 간식을 먹더라도 몸에 도움이 되는 걸 먹으면 좋잖아요. 꿩 먹고 알 먹기라고 할까요?"

"꿩 먹고 알 먹기?"

"네."

최기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기영 형님은 혈관에 도움이 되는 견과류를 드린 거고, 준하 형님은 고혈압이 있으니까 키위를 드렸고, 진웅 형님은 변비기가 있어서 고구마를 드렸어요."

최기석의 딱 부러진 말에 세 중년이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간식이야 출출할 때 먹는 것 아닌가.

그런데 최기석은 건강까지 생각해서 간식을 챙겼다.

"역시 의대생은 의대생이야."

"우리나라 의료계가 밝다. 밝아."

세 사람의 칭찬에 최기석은 그저 웃고 말았다.

간식 시간이 끝나고 자유 시간이 찾아왔다.

최기석은 침상에 기댄 채 휴대폰으로 의료 드라마를 보았다.

사람들은 의료 드라마를 보며 판타지네, 감성팔이네 하고 말이 많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드라마보다 현실에서 더 감동적이고 환상적인 일이 벌어진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이니까.

한참 드라마를 보던 도중.

최기석은 안절부절못하는 윤문재를 발견했다.

윤문재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병실을 오가며 다리를 떨었다.

그 이유를 잘 알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형님."

"어. 왜?"

"내일 수술 때문에 걱정되시죠?"

최기석이 환부를 건드리자 윤문재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뭐. 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윤문재가 평소답지 않게 애매한 대답을 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

"여기 진성대학교 흉부외과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저도 수술받아 봐서 형님 기분 잘 알아요."

최기석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수술이 잘못되면 죽을 것 같고 혹시 중간에 마취가 풀리면 어떨까 걱정되시죠?"

"맞아! 맞아!"

최기석의 말에 윤문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할 수술도 아니고 마취 중 각성은 흔치 않은 일이에요. 그러니까 마음 푹 놓으세요."

"정말 그럴까?"

"정 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면 저를 생각하세요. 저는 남의 심장을 떼서 달고도 멀쩡하잖아요."

"듣고 보니까 그것도 그러네."

윤문재의 얼굴이 서서히 풀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다.

띠링!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액티브 스킬

NEW [격려 Lv.1]

- 따뜻한 한 마디로 환자 및 의료인의 감정, 면역력, 저항력, 재생력을 상승시킵니다.

- 레벨이 오를수록 다양한 수치가 증가하며 증가폭도 높아집니다.

-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늘어납니다.

- 최대 5단계까지 성장합니다.

[격려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최기석은 스킬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오른손이 제멋대로 움직여 윤문재의 손을 감쌌다.

"다 괜찮을 거예요."

입까지 마음대로 움직였다.

더불어 최기석에게만 보이는 하얀빛이 윤문재를 휘감았다.

[격려를 받은 대상의 감정이 밝아집니다.]

[면역력, 저항력, 재생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추가 보너스를 얻었습니다. 삶에 대한 의지가 더욱 확고해집니다.]

"칫. 대단한 수술도 아닌데 괜히 쫄았어. 고맙다. 기석아."

윤문재가 환하게 웃으며 최기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침상에서 일어나 옆 침상에 있는 장기영의 옆구리를 장난스럽게 쳤다.

"야. 휴게실로 따라 와. 장기나 한판 때리자."

"지금 TV 보고 있잖아요."

"새끼. 졸았으면서."

윤문재의 말에 장기영이 깨갱했다.

두 사람이 휴게실로 가면서 병실이 조용해졌다.

'이건 의외네.'

최기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료행위를 해야 스킬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방금 전 격려 스킬을 얻었기 때문이다.

스킬이 생기는 방식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포괄적이었다.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본인의 상태를 살폈다.

직업 및 전공: 레지던트/흉부외과

체력: 8/10

진단력: 5/10

외과적 처치: 4/10

내과적 처치: 3/10

평판: 1

액티브 스킬

[격려 Lv.1]: 사용 가능(1/3)

[살려야 한다 Lv.2]: 사용 불가 /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패시브 스킬

[히포크라테스의 눈 Lv.1]: 사용 중

[얼어붙은 심장 Lv.1]

가진 스킬이 생각보다 많아 흐뭇해졌다.

최기석은 병실을 나와 복도에서 물을 마셨다. 도중에 맞은편에서 오는 이미애와 마주쳤다.

액팅 간호사의 비애라고 해야 할까.

이미애의 몸 주변으로 우울한 회색빛 에너지가 흐르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최기석은 인사하며 격려를 사용했다.

이번에도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문제는 멋대로 움직이는 정도가 아까보다 훨씬 심하다는 점이다.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왼쪽 눈으로 상큼하게 윙크를 날리고 오른손으로 깜찍한 V자를 그렸다.

마치 남자 아이돌이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치명적인 격려 발생!]

[면역력, 저항력, 재생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푸후후훗. 기석 씨. 갑자기 그게 뭐에요?"

이미애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최기석은 번개처럼 병실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새빨간 얼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아. 씨······ 이건 너무 치명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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