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화 (2/407)

귀환(2)

"돌아 버리겠네."

정해진은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환영이라 생각했던 이상한 정보들은 헛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생생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을 헛것이라 치부할 수는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정보들이 그의 능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게임 속 캐릭터처럼 말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이라······."

정해진은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게임 속 상태창처럼 정보가 떠오르는 것은 이 패시브 스킬 때문인 듯싶었다.

정해진은 차차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교통사고와 뇌사, 거기다 심장이식을 통한 새로운 삶까지.

의식을 차린 후 극적인 사건을 차례대로 겪고 있었다.

게임 능력을 수용하는데 그리 큰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정해진은 차근차근 능력을 뜯어보았다.

사실 육체의 주인공 최기석은 아직 의사가 아니다.

의사고시에서 합격하면 그제야 일반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상태창에는 레지던트라는 말과 더불어 전공이 흉부외과라고 적혀 있었다.

그 뜻은 무엇일까.

상태창이 최기석이 아니라 정해진의 능력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은 상태창을 뚫어져라 보다가 최하단부를 응시했다.

[의료모드에서 환자모드로 전환하시겠습니까?]

모드를 전환하고 싶다고 생각하자 정보창이 바뀌었다.

체력: 6/10

주 증상: 무기력 / 가슴 통증

아픈 부위: 심장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매우 좋음

[패시브의 레벨이 낮아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쓸 만한데?"

정해진은 씨익 웃었다.

환자 모드를 사용하면 환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만하면 검사를 하지 않아도 대략적인 처치 계획을 세울 수 있을 정도다.

패시브 레벨이 올라간다면 더더욱 용도가 올라가리라.

정해진의 두 손에 어느새 힘이 들어갔다.

확실히 이건 기회다.

느림보였던 그에게 하늘이 한 번 더 가능성을 열어 준 것이다.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의가 되라는 길을.

창을 끄겠다고 마음먹자 창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정해진은 침상으로 돌아가 환자 명패에 시선을 고정했다.

환자번호: 859741

남/최기석/26세

그래.

지금부터 나는 최기석이다.

* * *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채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유명 인사들을 검색해 사진들을 살피는 중이다.

"하긴 이게 되면 사기지."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실험해 봤다.

결과는 실패다.

비록 실험은 실패했지만 최기석은 상태창을 계속 띄워 놓았다.

패시브 스킬 히포크라테스의 눈.

이것은 최대 레벨을 3까지 올릴 수 있다.

패시브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오래 켜 놓아야 숙련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타다다닥.

검색을 하던 도중 창에 장기기증을 쳐 보았다.

최근 기사 중에 최기석의 기사가 나왔다.

기사 제목은 '의사가 의사에게.'

[지난 12월 23일 진성대병원 레지던트 3년 차인 정해진 씨는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져 심장과 피부, 인대 등의 인체조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심부전증을 앓고 있는 의대생 최기석 씨가 그의 심장을 이식받게 되었다. 정해진 씨는 평소······.]

장기기증 소식이 뉴스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정해진과 최기석이 신상정보 공개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법률상 장기기증 홍보사업 등 공익 목적을 위하여 장기등기증자 또는 장기등이식대기자 본인이 정보제공에 동의한 경우 정보를 공개할 수 있었다.

과거 정해진은 신상정보 공개를 당연한 일로 생각했고 최기석도 의학도로서 신상정보 공개를 마다하지 않았다.

"······."

최기석은 기사를 보며 야릇한 감상에 빠졌다.

매스컴으로 죽음을 한 번 더 선고 받는 기분이란······.

그런데 바로 그때다.

"일찍 일어났네요?"

이미애가 무균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트레이에는 혈압계를 비롯한 다양한 의료도구들이 있었다.

"네. 잠이 안 와서요."

최기석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억지로 잘 필요는 없죠."

이미애가 활력징후를 체크하고 주사기를 들었다.

오늘은 피 검사가 있는 날.

혈액을 임상과로 보내서 오전 회진 전까지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이미애는 토니켓으로 최기석의 팔뚝 위쪽을 묶었다. 그리고 혈관을 찾은 뒤 알콜솜으로 부위를 문질렀다.

푸우우욱!

주사기 바늘이 피부를 꿰뚫었다.

그런데 주사기 끝 부분에 피가 맺히지 않았다. 이미애가 요리조리 움직이며 혈관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하면서 애꿎은 혈관이 망가졌다.

"죄송해요."

이미애가 당황한 표정으로 새로운 주사기를 꺼냈다.

반대쪽 팔로 재차 채혈을 시도했지만 역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미애가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최기석은 이미애를 안심시켰다.

최기석의 팔은 가늘고 얇아서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라도 채혈에 실패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란 말이지.'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이미애를 파악했다.

직업 및 전공: 간호사/액팅

체력: 2/10

진단력: 2/10

외과적 처치: 3(-1)/10

내과적 처치: 2/10

평판: 1

액티브 스킬: 무

패시브 스킬: 무

[특이사항: 책임간호사의 호통 디버프에 걸렸습니다.]

[자신감, 환자 대처 및 처치 능력이 소폭 감소합니다.]

이미애의 능력치는 준수한 편이다.

다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우선 나이트 근무로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책임간호사에게 갈굼까지 당해서 외과 처치 능력이 한 단계 깎였다.

"이미애! 뭐해?"

무균실 밖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곰같이 생긴 간호사가 두 팔을 허리에 얹은 채 이미애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도 채혈 중이야?"

"최기석 환자만 하면 됩니다. 금방 갈게요."

"빨리 와!"

책임 간호사가 눈치를 주며 자리를 떠났다.

그로 인해 이미애가 눈에 띄게 동요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보는 최기석이 다 초초해질 지경이다.

최기석은 이미애의 그런 모습에서 과거 자신의 인턴 시절을 떠올렸다.

C급 인턴.

무능력한 인턴.

욕이라는 욕은 다 먹고, 어깨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했던 의기소침했던 날들.

만약 그 때 누군가가 따뜻하게 위로를 해 줬다면 어땠을까.

조금이라도 일찍 처치에 능숙해지지 않았을까.

"괜찮아요. 일이 안 풀릴 때도 있죠."

최기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채혈은 제가 할까요?"

"안 돼요. 환자가 직접 채혈하는 경우는 없어요."

"저는 환자지만 예비 의사이기도 한데요."

"그래도 안 돼요."

"나이트 근무 서느라 피곤하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시간 끌면 아까 그 간호사가 엄청 볶을 텐데."

최기석의 말에 이미애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고민하지 말고 절 믿으세요."

"그건 그런데요. 어떻게 채혈을 본인이 스스로 해요? 방법이 있어요?"

"당연히 있죠. 그러니까 주사기 주세요."

최기석이 손을 내밀었다.

이미애는 망설이는 듯하다가 결국 최기석에게 주사기를 건넸다.

"오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최기석은 씽긋 웃으며 작업에 들었다.

우선 발목에 토니켓을 묶고 발등을 살폈다. 시간이 지나자 발등 부근에 채혈하기 좋은 혈관이 튀어 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발을 침대에 올렸다.

그리고 몸을 숙여서 알콜솜으로 혈관을 소독했다.

푸우우우욱.

바늘로 혈관을 찌르자 주사기 끝에 핏방울이 물감처럼 번져 나갔다.

혈관을 제대로 찌른 것이다.

밀대를 잡아당기자 빨간 피가 눈금선을 채워 나갔다.

"우와. 진짜 됐네요!"

이미애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아직 일반의가 되지 않은 최기석이다.

그뿐만 아니라 채혈 경험도 이미애가 최기석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최기석은 이미애만큼 능숙한 솜씨를 보여 주었다.

"받으세요."

"고마워요. 덕분에 한숨 돌렸어요."

이미애는 최기석이 내민 주사기를 받고 헐레벌떡 무균실을 나갔다.

최기석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다.

[최초의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평판이 1 올라갑니다.]

[액티브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