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화&프롤로그 (1/407)

프롤로그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병실로 들어왔다.

남자는 말없이 창가에 자리 잡은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환자번호: 745898

남/정해진/29세

창가에서 불어온 바람에 환자 명패가 쓸쓸하게 흔들렸다.

"바보 같은 자식."

김태식이 입술을 깨물었다.

정해진은 김태식과 흉부외과 레지던트로 세 기수 아래 후배다.

적어도 일주일 전까지는.

그런 후배가 지금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서 실낱같은 목숨을 지키고 있었다.

잠깐 병원 밖으로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돌아올 때 간식을 사오겠다는 말이 떠오른 순간 가슴이 저릿하게 아팠다.

"이젠 보내 줄게."

"······."

"그렇다고 너무 쓸쓸해하지는 마. 네가 말했던 것처럼 이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지 몰라."

김태식은 정해진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귀환(1)

정해진은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었다.

목적지는 하얀빛이 새어 나오는 터널의 끝.

다만 왜 터널 끝까지 가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걷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하아······."

정해진은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힘들어서 걷기를 멈춘 게 아니다. 실제로 육신은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그저 더 걸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멈췄다.

"야. 포기하면 편해."

"넌 항상 일을 미련하게 한다고."

동료와 선배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 순간 정해진은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쉴 때도 됐다.

열심히 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터널 끝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점점 엷어졌다.

정해진의 몸이 어둠에 물들기 시작했다.

"선생님. 감사해요."

불현듯 한 여자의 미소가 아른거렸다.

레지던트가 되고 처음으로 담당을 맡았던 여자.

연예인이 꿈이라던 그녀를 떠올리며 정해진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치료했던 환자들의 얼굴이 스르륵 뇌리를 스쳤다.

따스한 감정이 온 몸으로 퍼지면서 다시 일어설 기운을 얻었다.

정해진은 또 걷기 시작했다.

이 터널을 통과하면 그들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영겁 같은 시간이 흘렀다.

정해진은 불굴의 의지로 터널 끝에 도착했다.

"아······."

터널을 통과하자 눈부신 빛이 몸을 휘감았다.

* * *

"크으으윽."

정해진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주변을 훑는 눈이 갈수록 커졌다.

현재 정해진은 수액을 맞은 채 침상에 누워 있었다. 기억이 끊기기 전 교통사고를 당했으니까 병원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가 무균실에 있다는 점이다.

무균실.

주로 소아암이나 백혈병 환자가 사용하는 병실이다.

정해진이 있는 곳은 1인실이었으며 TV를 비롯해 각종 가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

환자 명패를 확인한 정해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환자번호: 859741

남/최기석/26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울을 살폈다. 그 안에는 밀가루 반죽처럼 하얀 얼굴을 가진 청년이 있었다. 순간 정해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뭐지? 이건?"

정해진은 정신이 나간 얼굴로 거울을 쳐다보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정신을 차렸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가.

꿈인가 싶어서 볼을 꼬집어 봤지만 화끈하기만 했다.

정해진은 침상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지이이잉.

기묘한 공명음과 함께 최기석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최기석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다.

수재라고 불릴 정도로 공부를 잘했으며 국내 최고라 불리는 의진대학교 의대에 입학했다.

재학 중 호흡곤란과 흉통으로 병원을 찾았고 검사를 통해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심근병증이 있었던 것이다.

심장은 치료에도 불구하고 점점 나빠졌고 의사고시를 칠 때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심장이식 수혜자가 되어 정해진의 심장을 이식받았다.

"근데 왜······."

정해진은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장기를 기증했으면 최기석이 살아야 하거늘, 왜 자신이 살아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한 번 더 기회가 온 걸지도······."

정해진은 멍하니 있다가 중얼거렸다.

이 육신의 주인공인 최기석은 의사고시를 막 치른 따끈따끈한 의대생이다.

즉 정해진은 최기석이 되어, 일반의가 되어 새 삶을 설계할 수 있었다.

본래 육체의 주인공인 최기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이 상황은 정해진에게도 불가항력이다.

정해진은 가만히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과거 그는 흉부외과 레지던트 3년 차였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실력은 썩 좋지 않았다.

의사 중에서는 둔재에 속했다.

그가 인턴을 끝내고 흉부외과에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동기들은 하나같이 비웃었다.

흉부외과에서 흉보일라.

사람 잡는 의사 납시오.

몇몇은 정해진을 무시하는 듯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정해진은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독기를 품고 병원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행운과 불행을 동시에 맞았다.

행운이란 불굴의 노력으로 동기들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이고, 불행은 바로 교통사고였다.

"다시 시작해 보자."

정해진의 눈이 활활 불타올랐다.

두 번째로 주어진 의사로서의 삶.

이번에는 반드시 최고의 흉부외과 전문의가 되리라.

어쩌면 그가 뛰어난 의사로 성장하는 것이 최기석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려서 병실 문을 바라보았고 라운딩하던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간호사가 놀랐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깨셨어요?"

간호사 이미애가 병실 문 앞에 서서 말을 건넸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이미애가 덧가운을 착용하고 무균실로 들어왔다.

이미애는 정해진의 활력징후를 체크하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전부 정상이네요. 혹시 특별히 불편하신 건 있나요?"

"전혀 없어요."

정해진은 휘휘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무섭고 몸이 나른했지만 그것은 그동안 의식을 잃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던 탓이다. 심장이식으로 인한 부작용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정해진이 입을 열었다.

"저기······ 간호사 선생님."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아······ 아니에요. 없어요."

정해진은 눈을 박박 비볐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괜히 숨길 것 없어요."

"정말 없습니다."

"혹시라도 몸이 안 좋아지거나 불편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미애가 무균실을 나갔다.

"남의 몸에 들어오더니 미쳤나?"

정해진은 이미애가 서 있던 자리를 계속 쳐다보았다. 환영인지 몰라도 무언가 이상한 것들이 함께 보였기 때문이다.

탁자에 놓인 물을 마시고 거울 앞에 섰다.

놀랍게도 거울 옆으로 아까 봤던 것들이 떠올랐다.

직업 및 전공: 레지던트/흉부외과

체력: 6/10

진단력: 5/10

외과적 처치: 4/10

내과적 처치: 3/10

평판: 0

액티브 스킬

[살려야 한다 Lv.2]: 사용 불가

- 응급환자를 처치하는 경우, 난이도가 높은 처치를 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레벨에 따라 능력치가 상승폭이 증가하고 특수모드가 생깁니다.

- 최대 5단계까지 성장합니다.

패시브 스킬

[히포크라테스의 눈 Lv.1]: 사용 중

- 의료인 또는 의료기사 등, 환자의 상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레벨이 높을수록 더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 최대 3단계까지 성장합니다.

[의료모드에서 환자모드로 전환하시겠습니까?]

각종 정보 아래로 황금색 글자가 반짝거렸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