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9. 여신의 학창생활(3) (329/332)


329. 여신의 학창생활(3)
2022.06.28.


“무예를 견식……이라고요?”

린은 정신이 아득해진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게 린은 지금 한창 학창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세상이 게임으로 변하며 어린 린은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몬스터와 싸우거나 어린아이가 겪어선 안 되는 일을 몇 번이나 겪었다.

솔직히 린이 평범한 아이였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일들이었다.

겨우 세상이 평화로워지고 나서야 린은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감투를 모두 숨기고, 평범한 소녀가 되어 다니게 된 학교생활.

지금 그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아저씨도 태연하게 지켜보고 있지 말고 뭐 좀 말해주세요!”

린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이 아이가 이 정도로 다급하게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흠, 어쩐다.’

하지만 알나드의 꼴을 보아하니 어지간한 말로는 떨쳐내기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쫓아내는 건 린의 성정상 허락하기 힘들겠지.

자신의 의지로 자연스럽게 돌려보내야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까.

“아, 그렇지.”

“뭐, 뭔가 방법이 있나요?”

“그런 말이 있잖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네?”

불안해진 얼굴로 되묻는 린에게 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알게 될 테니까.

“알나드.”

“세한 님. 아무리 그대의 요청이라도 나의 의지를 쉽사리 꺾을 생각은…….”

“너 아카데미 다닐래?”

“음?”

알나드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카데미? 이 인간의 교육기관을 말하는 건가? 거기에 내가 왜 다녀야 하지?”

“린에게서 금우파성권의 극의를 보고 배우고 싶은 거 아니냐?”

“그렇소.”

“린은 하루의 대부분을 이 아카데미에서 보내지. 그럼 아카데미를 함께 다니는 게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그건 그렇겠지만…….”

알나드는 슬쩍 린의 눈치를 살폈다.

비록 갑자기 아카데미를 습격했지만, 그는 아예 눈치가 없는 자는 아니었다.

“그건 린 테일러가 받아들이지도 않을 터이고,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실력을 볼 기회도 없을 것 같소.”

“너는 그걸 알고도 여기에 쳐들어온 거냐?”

“우선 싸움을 건다면 무인으로서 상대해 주리라 생각했소.”

하지만 결국 소머리인 건 변하지 않는다.

말끝마다 소소 거리는 것도 이놈이 소의 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뭐, 걱정 마라. 내 능력이면 너희들이 얼마든지 싸워도 티나지 않게 만들 수 있으니까. 하루에 3번 정도는 싸울 기회를 주지.”

“그, 그게 정말이요?!”

“아저씨!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린, 이건 너에게도 나쁜 제안이 아니야.”

“네?”

린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놈만큼 연습상대로 좋은 녀석이 없었다.

“너 신격이 계속 세어 나가서 문제라며? 약하게 싸우는 법도 모르겠고.”

“그, 그런데요?”

“이놈 꽤 튼튼하거든. 네가 힘 조절하며 싸우기 딱 좋지. 성격이 이럴 뿐 악인도 아니라 네 신격에 노출돼도 멀쩡할 거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알나드는 린에 비해 심하게 약하다.

린은 알나드와 싸우려면 꽤나 심혈을 기울여 힘을 조절해야 할 거다.

“너 방금 알나드 기절시킬 때도 거의 반죽일 뻔했잖아. 갈수록 힘 조절이 안 되지?”

“…….”

잠깐 기절했다 일어나긴 했지만, 평범한 인간. 아니 하급신만 되도 린의 주먹에 머리통이 터졌을 것이다.

‘하여간.’

워낙 강자들하고만 싸우다 보니 약자와 싸우는 법을 잊었다는 게 우습다.

너무 급격하게 강해진 탓이겠지.

그나마 신격을 컨트롤하는 건 올림포스에서 차근차근 배워서 망정이지, 그것도 없었다면 지금도 신격을 줄줄 흘리고 다녔을 거다.

“신격 통제에 대해선 내가 알려줄 수 있지만, 알다시피 전투 때 무심코 세어버리는 게 문제야. 힘을 최대한 억제할 때, 신격도 제대로 억누를 수 있어야 하겠지.”

“그 상대로 이 남자가 어울린다는 건가요?”

“그래.”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린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녀석은 잠시 망설인 뒤, 알나드에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런 취급을 받아도 괜찮은가요?”

“이런 취급?”

알나드는 오히려 그런 린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대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겠나?”

“그…… 이런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저와 싸우게 된다면 당신은 일방적으로 약자가 되어버릴 거예요.”

“하하! 그래, 그런 말이었군.”

알나드는 린의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그건 당연하다! 나의 아버지도 그대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았지. 그러니 내가 약자인 건 당연하다! 어떤 위치이건 난 그대에게 무예를 배울 수 있으면 그만이다.”

“……알데바란의 아들답네요.”

최후까지 기쁘게 싸우던 알데바란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일까.

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이제야 린은 알나드를 제대로 보게 된 것 같았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힘과 무예의 이야기. 나는 같은 황도 12궁으로서 그대에게 존대를 할 수 없다만, 그건 괜찮은가?”

“네, 그건 상관없어요.”

현재 린은 신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러니 어지간한 신들의 왕, 신화의 지배자들이라도 린의 앞에선 쩔쩔매는 경우가 많았다.

제우스나 오딘처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대하는 이들도 있다지만, 대부분은 아니라는 거지.

하지만 알나드는 격이 아득하게 떨어짐에도 ‘같은 황도 12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린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일일 것이다.

“근데 아저씨. 알나드를 아카데미에 다니게 한다면, 선생이나 조교가 되려나요?”

“아닌데?”

“그럼요?”

“당연히 학생이지. 너 알나드를 몇 살로 생각하는 거야? 아, 뭐 인간으로 치면 충분히 많긴 하다만.”

분명 내가 알기로 알나드의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별자리 중에선 특히나 어린 편이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대략 얼마였더라…….

“아, 열다섯 정도일걸?”

“……네?”

“인간으로 치면 너보다 어리네. 네가 누나야.”

정확한 나이는 기억 못 하지만 분명 제우스가 그렇게 말했다.

알데바란의 아들이 어린대도 참 당차다고.

인간으로 치면 린보다도 어린데 어른스럽다고 말이다.

“그래도 실제 나이는 너보다 많긴 하지. 어디까지나 인간으로 쳤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 그렇죠?”

겨우 웃으며 답했지만, 린은 알나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야 저 거대한 덩치가 아직 ‘성장기’인 소년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아무튼 잘 됐어.’

린이 난감하건 뭐건, 나는 알나드를 무척 반겼다.

스스로의 힘을 제대로 통제 못 하는 린과 달리 알나드는 어린시절부터 차근차근 강해진 덕에 약한 이들을 상대로도 적당히 맞춰서 싸울 수 있었다.

‘우리 반에 입학시켜서 성적 좀 올리라고 해야겠어.’

그럼 교직원 평가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겠지?

썩 괜찮은 계획인 것 같았다.

그럼 지수나 이드라도 내가 학교에서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둘 다 잘 좀 부탁한다.”

나는 씩 웃으며 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내 교원평가는 고공행진할 일만 남아 있었다.

***

첫날부터 여러 일이 있었지만 썩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알나드의 입학은 시우에게 부탁해 추천장을 받아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나서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일이 너무 커질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참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알데바란을 쓰러트린 린이 설마 알나드와 엮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운이 좋다고 할지.

만약 알나드가 아니었다면, 린을 상대해 줘야 하는 건 내가 됐을 것이다.

린과 싸울 수 있는 건 신격을 가진 이들 뿐이며, 그런 신이나 별자리들은 린과 싸우는 걸 지극히 꺼려한다.

두려워한다고 봐도 좋다.

그러나 알나드는 그런 린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같은 황도 12궁으로서 동등하게 봤으며, 무인으로서 존경했다.

“예상외네요.”

“응? 알나드가 린에게 증오를 품지 않은 거?”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자, 지수가 내 곁에 앉아 입을 열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오빠요.”

“응? 나?”

“네.”

지수는 조금 재미없다는 듯, 새침하게 말했다.

“솔직히 교직원 일을 잘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요.”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한 거야? 하지만 뭐, 옛날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군.”

본래 나는 타인과의 접촉을 꺼렸다.

솔직히 말해, 그때 나는 사람이 무서웠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사촌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숨통이 트였지만, 무너진 자존감이 쉽게 회복될 리가 없었다.

사람을 기피하고, 게임에 몰두했던 것도 전부 그런 이유.

“우습지만, 한번 세상이 멸망했기에 달라질 수 있었던 건지도 몰라.”

진짜 절망을 겪었다.

회귀라는 기적 같은 기회를 얻어 두 번 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사람들을 가릴 처지도 아니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너나, 다른 이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준 게 도움이 된 거겠지.”

혼자서 이기적이게 강해지는 게 아닌, 타인에게 가진 걸 베풀었다.

아마 2회차에서 쌓은 경험들이 지금 내가 교직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게 아닐까?

“흠, 그런 의미에서 나쁘지 않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제법 보람되더라고.”

“저는 조금 아쉽네요.”

“왜?”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지수는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저는 오빠가 차라리 일을 못 하겠다며 저에게 매달리는 걸 기대했거든요.”

“…….”

뭐라 말을 못 하고 가만히 보고 있자, 지수가 풋 하고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농담이에요.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하면 괜히 부끄럽잖아요.”

아니, 농담 같지 않았는데.

지수는 분명 내가 일을 안 하고 이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좋아할 녀석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걸 바라지 않을까…….

‘일 열심히 해야겠군.’

물론 지수의 성격상 극단적으로 갈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방에 쳐박힌다고 해서 말릴 녀석도 아니다. 그리고 그건 이드라도 마찬가지. 신인 그녀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을 테고, 내가 하는 대로 곁에서 돌봐줄 게 분명했다.

자칫하면 인간 이하의 존재로 타락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거지.

나중에 생길 아이들을 위해서 그것만은 결코 막아야만 했다.

딸들이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참 오빠, 아카데미에서 혹시 친해진 사람은 있나요?”

“친해진 사람? 기껏해야 지도 교사 정도?”

“지도 교사는 혹시 여자인가요?”

“어.”

“흐으응.”

내 답변에 지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덕분에 별생각 없이 답변했던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결코 업무적인 것 외에는 얽힐 일 없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지도 교사는 남편도 있다고!”

“아,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후후후, 하고 웃는 지수의 모습에 오랜만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기혼자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다음날 기존 지도교사가 잘리고, 근육 빵빵한 남자 지도교사로 바뀌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 아무튼.”

나는 그런 쪽 이야기가 더 나오기 전에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근데 오늘은 좀 일찍 퇴근했네?”

보통 지수는 업무가 많기에 늦은 밤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정시퇴근이었다.

“이제 대체로 일이 정리돼서 당분간 마왕이 할 일이 없어졌거든요.”

“그래?”

“네.”

싱긋 웃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열려 있던 방의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갑자기 왜 문을 닫아?”

“오늘은 이드라가 집에 못 들어오는 날로 알고 있어요. 일이 바쁘다던데요?”

“그건 그런데…… 왜 갑자기 그 말을…….”

지수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웃는 낯으로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오늘따라 지수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전에 한번 말했잖아요.”

무엇을, 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지수는 내 양손을 꽉 움켜쥐고 나를 찍어 눌렀다.

“이번엔 제 딸이 첫째가 될 거라고.”

“아니, 잠깐 기다려, 잠……!!”

황급히 외쳤지만, 이미 스위치가 들어간 지수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저항할 방도 따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16631259643133.jpg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