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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여신의 학창생활(2) (328/332)


328. 여신의 학창생활(2)
2022.06.28.


“설마 세한 아저씨가 올 줄이야.”

이젠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되나?

그런 고민을 하던 린은, 안경이 흘러내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올려 썼다.

나름 변장을 하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착용한 도수 없는 안경이었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얼굴도 환상으로 덮었는데 굳이 안경까지 쓸 필요는…… 응?’

세한과 헤어진 이후 걸어가던 린은, 문득 자신을 둘러싸는 무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숫자는 대략 다섯.

‘뭐야?’

곧 수업이 시작하는 터라 서둘러 가야하건만 귀찮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린이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시선을 올리자, 가장 앞에서 건들거리던 남학생이 입을 열었다.

“송아린이라고 했던가?”

“?”

송아린, 그 이름은 린이 아카데미에서 사용하는 가명이었다.

비켜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보다 빠르게 무리의 남학생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기울이며 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야, 너 아까 내가 불렀는데 무시하고 지나갔지?”

그랬던가?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불량한 무리가 자신을 불렀던 기억이 있다. 괜히 얽히고 싶지 않아 지나간 건데 설마 이렇게 다시 마주칠 줄이야.

‘참 쪼잔하네.’

한심하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 그를 쳐다보자, 남학생의 이마에는 굵은 핏대가 솟아올랐다.

당연히 겁을 집어먹으리라 생각했는데 이토록 태연하다니.

“와, 야, 너 내가 누군 줄 아냐? 나 주도훈이야. 주, 도, 훈. 이름은 들어봤지?”

“못 들어봤는데?”

“……뭐?”

“내가 네 이름을 어떻게 알아?”

불량아 무리. 린은 이런 부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린은 정의의 여신이니 당연하다.

그런 판에 바쁜 자신을 붙잡고 시비를 걸어대니 짜증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주도훈은 자신의 목숨줄이 왔다갔다하는 것도 생각 못 하고 연신 윽박질렀다.

“돌겠네. 이 콩알만 한 년이 간이 부었나.”

“……콩알만 하다고?”

그저 도훈이 귀찮을 뿐이었던 린은 그 말에 처음으로 화가 치미는 걸 느꼈다.

하필 건드려도 키를 건드리다니.

“지금 콩알만 하다고 했어?”

“응? 그랬는데? 뭐, 어쩌게? 햐~, 내가 요즘 조용히 살긴 했구나. 이런 같잖은 것도 기어오르고. 내가 말이야 여자는 잘 손대지 않는데…….”

뚜둑, 뚜둑, 주먹의 관철을 풀며 린에게 걸어가던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신경 쓰고 있었는데.”

린의 신장은 15세 이후로 성장하지 않고 있었다.

보통 여성의 신체 성장은 그 부근에서 멈추는 경우도 꽤 있었으니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본래 ‘10년 후’의 자신과 비교했을 때 심하게 작다는 게 문제였다. 이래서야 초등학생 때와 크게 달라진 것도 없지 않은가.

‘왜 더 키가 크지 않는 거야?’

분명 미래의 자신은 신장이 더 성장했으니 클 테지만, 계속 키가 자라지 않으니 내심 불안해진 린이다.

그리고 미래란 간혹 바뀌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설마 시스템을 쓰러트리고, 퍼블리셔를 무너트렸기 때문에 성장이 멈춰버린 건가?

거기에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고!

‘고작 3cm.’

지난 2년 간 성장한 건 고작 그것뿐이었다.

그나마 149cm에서 152cm로 성장하여 150cm의 벽을 깼다는 게 유일한 성과였다.

고오오오!!

주변의 마력은 그런 린의 분노에 따라 크게 요동치고 흔들렸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신격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헉, 허억!!”

당연히 코앞에 있던 도훈을 비롯한 그 패거리는 그런 린의 막강한 기세에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저년 정말로 인간인가?’

언뜻 보이는 검은 눈동자에 금빛이 스쳐 지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 하지만 이대로 도망칠 수는…….’

도훈은 뒤에서 덜덜 떨고 있는 자신의 패거리를 힐끗 보았다. 여기서 이대로 도망쳤다간 그만한 쪽도 없었다.

“이, 이이 죽어!!”

도훈은 용기를 쥐어짜 크게 소리치며 린을 향해 덤벼들었다. 사실, 이건 굉장히 대단한 일이었다.

그가 나름 아카데미에서 날고 긴다는 건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도훈과 린의 사이에서 떨어진 것은.

쿠우웅!!

그것은 거대한 신장을 지닌 장신의 남자였다.

도훈도 꽤 키가 컸지만, 남자는 그런 도훈보다 머리 한 개는 컸다.

“비켜라.”

“켁!!”

남자는 멍하니 자신을 보는 도훈을 가볍게 손으로 툭 쳤다.

말이 툭 친 거지, 도훈의 몸은 말 그대로 수십 미터를 붕 날아가 나뒹굴었다.

“어? 어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건 린도 마찬가지였다.

화가 나긴 했지만, 그건 도훈에게 화가 났다기보단 성장하지 않는 자신의 신장에 대한 분노에 가까웠다.

특별히 도훈을 해코지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런 불량학생을 자신이 실수로 때렸다간 단순히 병원에 입원하는 거로 그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설마 갑자기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질 줄이야.

“신격을 숨기고 있었구나.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말하는 이는 짙은 갈색 머리칼의 남성이었다.

대략 190cm가 넘는 거대한 신장에 린은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저렇게까지 커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 큰 신장이 조금 부러웠다.

그러면 굳이 ‘변신’할 필요 없이 여신의 위용을 뽐낼 텐데.

‘근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인데?’

키는 커도 얼굴은 묘하게 어린 느낌이었다.

거기다 눈에 띄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뿔?”

남자의 양쪽 관자놀이에 자란 길쭉한 뿔.

린은 그 뿔이 어디에서 봤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말은 들었다. 그래서 찾는 데 시간이 걸리고 말았지. 하지만 오늘, 네가 신격을 뿜어낸 덕분에 겨우 찾을 수 있었구나.”

그는 거대한 몸에 걸맞은 두터운 근육을 꿈틀거리며 린을 향해 한걸음 접근했다.

그러자 방금 린의 몸에서 흘러나왔던 신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신격의 폭풍우가 사방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잔뜩 쫄아 있던 학생들은 그 신격만으로 단번에 졸도할 정도였다.

“……!”

그 사실을 깨닫자, 린의 행동은 신속했다.

자신도 무심코 신격을 흘리긴 했지만, 그건 린이 가진 신격 중에 극히 소량.

그것도 감정에 반응한 먼지와도 같은 수준이었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은 큰 위압감을 느낄 정도.

하지만 돌려 말하면 직접적인 방출이 아니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몸에 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귀찮은 사람들을 쫓아내는 경고와도 같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눈앞의 남성이 뿜어내는 신격은 달랐다.

이건 자칫하면 사망자가 나올 수 있는 수준이었다.

“후우우.”

린은 아주 오랜만에 신격을 해방했다.

얼굴에 덧입혀져 있던 환상이 일시적으로 흩어지며, 금색의 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그 모습을 본 남자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바로 저 여자가 그토록 자신이 찾던 ‘정의의 여신’이 분명했다.

이 압도적인 신격!

악을 심판하고자 하는 무시무시한 권능의 기척까지.

“뭐가 역시죠?”

“!!”

환하게 웃고 있던 남자의 미소가 굳었다.

그도 그럴 게 린이 움직이는 게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이진 않을게요. 묻고 싶은 게 있으니까.”

“큭!!”

지척에 다가온 린을 향해 남자는 급히 자세를 잡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게 전부 다였다.

이미 린의 주먹이 그의 턱을 후려치고 있었으니까.

시야가 핑그르르 돈다고 느낀 순간, 그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

설마 출근 첫날부터 이런 사태가 터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갑작스런 거대한 신격의 방출에 아카데미에 있던 학생 절반이 졸도했으며, 선생들도 아주 난리가 나며 뒤집어졌다.

당연히 수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오늘은 강제로 휴교 조치 되고 말았다.

“진짜 어이가 없네. 왜 하필 오늘이야?”

오늘 수업이 끝나면 조교를 비롯한 선생들과 회식이 있었다.

좀 귀찮기는 했지만, 얼굴을 터둘 좋은 기회였기에 참석하기로 말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설마, 이놈이 나타날 줄이야.

“아는 사람이에요?”

“알지.”

사실 이름만 아는 녀석에 가깝다.

나는 침대 위에 대충 눕혀둔 남자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의 이름은 알나드. 현 금우궁의 주인이다.”

“그렇군요, 금우궁의 주인…… 네?”

“덤으로 알데바란의 아들이기도 하지.”

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하며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여기서 알데바란의 이름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 그래서 그토록 저를 찾았던 건가요…….”

린은 복잡한 눈으로 기절한 남자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남자가 왜 그토록 자신을 찾았는지 짐작한 모양이다.

“아, 뭘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그건 아니야.”

“네?”

“이놈은 너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고 온 게 아니라고.”

동그란 린의 눈이 껌벅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대체 왜 저를…….”

“그건 직접 듣는 게 날 거다.”

나는 가볍게 손짓해, 기절해 있던 알나드를 깨웠다.

잠시 신음을 흘리던 알나드는 린을 발견하고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리, 린 테일러!! 정말로 린 테일러로구나!”

말하는 투가 어째 알데바란이랑 닮아 있었다.

그야 녀석의 아들이니 당연한가.

린은 자신을 응시하는 알나드의 시선에 살짝 아랫입술을 깨문 뒤, 입을 열었다.

“네, 제가 린 테일러입니다. 당신의 아버지를…….”

“그래, 알고 있다! 그대가 아버지를 꺾은 정의의 여신이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렇게 말한 알나드는 어째선지 활짝 웃었다.

당연히 분노를 토해내리라 생각했건만, 그의 눈에는 한 줌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과연 정말로 대단하군. 아버지와의 싸움은 몇 번이나 보았건만, 나는 단 일격도 버티지 못한 건가. 그것도 그대의 전력이 아닐 테지?”

“네? 아, 뭐. 그렇긴 한데요…….”

“정말 찾아오길 잘했군. 황도 12궁 중 최강이자, 현존하는 최강의 선신이라는 말은 헛말이 아니었어. 혹시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싸울 수 있겠나?”

알나드는 그렇게 말하며 린의 양 어깨를 잡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 적극적인 행동에 린은 쉽게 막지 못하고 크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만. 거기까지.”

결국 그를 만류한 건 나였다.

“아, 세한 님도 계셨군. 이거 사죄드리오.”

“흥분한 건 알겠는데. 린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주는 게 좋지 않겠냐? 나야 제우스에게 들었다지만 린은 모를 텐데.”

“음? 아아. 그런가.”

알나드는 그제야 린에게서 조금 떨어지며 팔짱을 끼고 침대 위에 정좌했다.

“내가 그대를 찾아온 건 사사로운 복수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대에겐 감사할 일이지. 아버지의 비원을 이루어줬으니.”

금우궁의 세대교체에 대해선 이미 제우스에게 들었다.

신격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타 별자리들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지닌 알데바란의 아들답게, 알나드도 중급 신격에 맞지 않는 뛰어난 무예를 지니고 있었다.

괜히 별다른 다툼 없이 금우궁을 승계한 게 아니다.

“아버지는 마수의 벽에 막혀 절망하고 있었지. 자신의 이룬 무예만으론 신격을 더 키우기 힘들었으며, 그 무예도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알나드는 알데바란을 존경했다.

그렇기에 그의 마지막 싸움을 몇 번이고 보았다.

이드라가 촬영한 ‘드림위치’의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 재생하며 정의의 여신과의 싸움을 보았다.

“그대와 싸우는 아버지는 그 어떤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최후에는 자신의 벽을 넘어, 금우파성권의 궁극에 도달하셨지.”

창성(昌星).

그 비의를 알나드는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래서다.”

“네?”

“나 역시 금우파성권의 궁극에 도달하고 싶었다. 너라면 이미 금우파성권의 궁극에 달해 있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창성. 그건 궁극에 달한 무예 중 하나였다.

실제로 린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 기술이며, 최후에 아자토스와 싸울 때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에게 도달했던 최후의 검격은 아자젤의 것을 모방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모방하기 위해선 여태 익혔던 수많은 절기들을 합칠 필요가 있었다.

‘금우파성권은 범용성이 크니, 거기에 큰 도움이 되었겠지.’

나는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우파성권 자체가 워낙 완성도 높은 무예이니, 그 극의라 할 수 있는 창성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역시 그렇군!”

활짝 웃으며 소리친 알나드는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덕에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며 구멍이 뚫렸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머리에 돌무더기를 얹은 채, 그대로 린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부탁한다. 나에게 그대의 무예를 조금만 견식할 수 있는 기회를 다오!”

“네……?”

갑작스런 그의 말에 린은 재차 돌처럼 굳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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