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여신의 학창생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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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여신의 학창생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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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여신의 학창생활(1)
2022.06.28.
세상은 평화로워졌지만, 언제까지 놀 수는 없는 법.
적당히 헌터 일이나 할까 생각했지만, 이제 몬스터를 잡는 건 솔직히 질렸다.
물론 내가 했던 일과, 헌터의 일은 좀 차이가 있지만 헌터의 삶은 플레이어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플레이어와는 달리 불합리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지. 신들도 많은 도움을 주기에, 헌터들의 사망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싫어.’
거기다 내가 평범한 헌터들과 경쟁하는 건 솔직히 양심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번듯하게 입은 정장을 거울에 비추며 씩 미소를 지었다. 다시 생긴 다크서클 탓인지 인상이 상당히 험악해 보였다.
“요즘 게임을 너무 많이 하긴 했지…….”
지수와 이드라가 일을 하러 나간 동안 내가 할 일이란 건 그다지 없었다.
내 능력을 사용한다면 집안일은 손가락만 튕겨도 해결되었으니까.
결국 나는 이전처럼 다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에 다크서클이 생기고 말았다.
‘딱히 피로한 것도 아닌데.’
거울을 보며 눈 아래에 생긴 다크서클을 매만졌다.
약간 그리운 느낌이 들었지만, 대체 왜 생기는 건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학교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제대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인상도 바꾸는 편이 좋았다.
‘어떤 얼굴이 좋으려나.’
어쨌든 ‘김세한’이라는 이름은 세간에 너무 유명했다.
그러니 적당히 얼굴을 환상으로 덮어 정체를 숨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빠, 그 얼굴은 별로예요, 다른 거 어때요?”
“나도 동감이다. 좀 더 눈가를 이렇게 만져주면 좋을 것 같구나.”
내가 얼굴을 바꿀 때마다 뒤에서 훈수가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그럼 이건 어때?”
“흐음.”
적당히 얼굴을 성형하자 지수와 이드라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정도면 괜찮네요.”
“그래, 나도 딱 좋다고 본다.”
‘완전 평범하게 생겼는데 이게 좋다고?’
둘의 호평에 얼굴을 거울에 비춰 봐도 특별한 특징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얼굴이 들어온다.
기왕이면 좀 더 잘생긴 얼굴로 만들고 싶었지만 둘이 저런 반응이어서야.
“조금 아쉽기는 한데…….”
“우린 지금 그대의 모습이 좋다! 그러니 그대로 있어주면 안 되겠느냐?”
내 작은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이드라는 내게 바싹 붙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보자 이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슬슬 가실 시간이에요. 첫 출근이니 늦으시면 안 되잖아요.”
“그래, 돌아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이야기해다오.”
그녀들의 말처럼, 오늘은 내가 헌터 아카데미의 ‘교사’로 채용되어 출근하는 첫날이었다.
일찍부터 준비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버린 탓에 조금 늦어버렸다.
“알겠어. 그럼 다녀올게.”
그래, 오히려 이런 평범한 인상이 학생들에게 친근함을 줄 수도 있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카데미로 통하는 허수공간에 발을 내디뎠다.
***
“야, 거기서 봐.”
한 무리의 학생들이 지나가는 흑발의 작은 여학생을 불렀다. 하지만 여학생은 자신을 부른 남학생의 말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거 봐라? 야, 저년 뭐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무시해?”
“저, 도훈 선배님. 쟤는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뭐?”
인상을 와락 찡그리고 있는 남학생, 도훈의 말에 무리에 섞여 있던 다른 남학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왜, 저년이 누군데?”
“소, 송아린이라고 합니다.”
“송아린? 유명한 애인가?”
도훈이 그리 말하며 주변에게 시선을 돌리자, 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사이, 흑발의 여학생은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와, 대박이다. 진짜 걍 가버렸네? 야, 너 쟤 알지?”
“그, 그게.”
“이름도 알고 있으니, 몇 학년 어디 클래스인지 아냐?”
도훈의 겁박에 남학생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언제나 도훈에게 빵이나 우유를 바치던 남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도훈보다 저 여학생을 두려워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것 봐라? 말 안 해? 이걸 확!”
“히, 히익!! 2학년 C클래스입니다!”
“하여간 손을 들어야 말을 들어요.”
도훈은 그렇게 말하며 남학생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다른 패거리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패거리들은 움츠러든 남학생에게 비웃음을 던진 뒤, 도훈을 따라 사라졌다.
아마 방금 전에 지나간 여학생이 있는 2학년 C클래스로 간 게 분명했다.
“……난 모르겠다.”
그런 도훈과 패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남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흑발에 작은 신장을 지닌 소녀, 송아린.
그녀가 속한 클래스는 비록 C클래스였지만, 남학생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본 실력을 아카데미에서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걸.
***
“오늘부터 2학년 C클래스 실습 교사로 온 김세한이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반의 지도 교사의 곁에서 인사를 한 세한은 짝짝 박수를 치는 학생들을 둘러보다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쟤가 이 반이었어?’
작은 키에, 흑발에 평범한 인상을 한 소녀.
그녀도 깜짝 놀란 것처럼 세한을 보고 있었다.
세한이 린의 변장을 꿰뚫어 본 것처럼, 린도 세한의 변장을 꿰뚫어 본 것이다.
‘설마 린이 있는 반에 걸릴 줄이야.’
이런 것도 운명이라고 해야 되나.
자칫했으면 표정관리를 못 할 뻔했다.
‘아마 열쇠의 힘으로 얼굴이나 머리색은 열쇠의 힘으로 적당히 바꾼 모양인데…….’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대체 어떻게 다니고 있나 했다.
린은 정의의 여신이었고, 정의의 여신은 현재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인이었다.
텔레비전에도 수도 없이 출연했으며, 팬의 숫자도 우주적 규모를 자랑하는 대스타였다.
그야 인간출신에 우주에서도 손에 꼽는 강자이며, 정의의 여신이다.
인기가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신장은 그대로네? 아직 안 컸나?’
다른 건 열쇠의 힘으로 변조를 준 것이지만, 신장은 본인의 것이었다.
‘분명 20대의 린은 키가 꽤 컸는데…….’
아직도 성장기인 모양이다.
보통 여성들이 빠르게 신장이 성장하는 걸 생각하면 특이한 일이다.
변장한 린을 보며 그런 생각에 잠겨 있자, 옆에 있던 지도 교사가 한숨을 푹 쉬며 말을 걸었다.
“김세한 선생님, 후. 저희 애들이 좀 부족하지만 잘 좀 부탁드립니다.”
“예?”
아니 다른 애들은 몰라도 저기에 린이 있는데 뭐가 부족하다는 거지?
하지만 무려 지도 교사의 말이니 무시하고 넘길 수가 없었다.
보통 아카데미는 지도 교사가 학생들의 교육을 총괄하고 평가한다.
실습 교사는 어디까지나 실습에서 학생들을 인솔하며 보호하는, 사실상 호위에 가까운 역할이라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을 가장 자세히 꿰고 있을 지도교사 저렇게 말하니 나로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 애들이 조금…… 부족해서 실습평가가 줄곧 안 좋았거든요.”
“그, 런가요?”
“예……. 그래서 실습 교사분들이 계속 그만두셨죠.”
보통 교사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의 실적으로 봉급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실습에서 성적이 좋지 않다면 해당 반의 실습 교사의 봉급에 영향이 가는 거다.
‘그동안 어지간히 실습 평가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군.’
하긴 C클래스이니 이상한 건 아니다.
아카데미는 보유 마력의 양이나 성적에 따라 클래스가 반년마다 바뀐다. 그 등급은 S부터 D급까지.
C클래스면 바닥에서 고작 한 등급 높은 정도였다.
“이상한데…….”
“예?”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도 교사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나는 슬쩍 시선을 피하는 린을 빤히 응시했다.
린의 성격상 교사에게 피해가 오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나는 쉬는 시간이 오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그래야 린을 조용히 불러 이유를 물을 수 있을 테니까.
“저, 사실 못하는 법을 모르겠어요.”
그리고 쉬는 시간.
조용히 린을 불러내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내게 말했다.
“……못하는 법을 모른다고?”
“네. 그게…….”
“말하자면 린은 힘 조절을 못 한다는 뜻입니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하얀 머리칼의 아름다운 소녀가 걸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백설이는 몇 반이니?”
“전 S클래스입니다. 조금 잘난 척을 하고 싶었거든요.”
완전히 얼굴을 바꾼 린과 달리, 백설이는 뿔을 지운 것을 제외하곤 달라진 게 없었다.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린과 달리, 백설이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애초에 이미르도 몰랐는데 일반인들이 알 리가 없지.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세한을 보게 되니 무척 신기하네요. 정말로 일을 하기로 하셨군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줄곧 놀고먹던 백수였던 것 같잖아.”
“아니었나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 정도 휴식은 가질 수 있잖아?”
억울함을 담아 말하자 백설이는 옅게 미소 지었다.
“농담입니다. 세한에겐 쉴 자격이 있지요. 그래서 사실 좀 더 놀아도 크게 뭐라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예 뭐라 할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긴 내가 좀 오래 놀긴 했지.
“아무튼 린은 워낙 잘나서 못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냥 연기는 되는데 실습에선 힘 조절이 어려운 모양이에요.”
“조금만 힘을 주면 몬스터가 터져버려서…….”
린은 무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뭐, 그야 그렇겠지.”
아자젤을 제외하곤 감히 누구도 비빌 수 없는 재능을 타고난 린이다. 거기에 메리수라는 사기적인 특성을 지녀, 무엇을 하든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무엇이든 ‘나쁜 결과’를 도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지.’
린은 여신인 탓에, 마력을 사용하면 신격이 담긴다.
아무리 힘을 조절해도 신격의 농도를 아예 제로로 만들 수는 없다.
사실상 신격이란 존재의 가치와도 같은 것이니.
‘그런데 하필 린은 정의의 여신이고…….’
정의의 여신이 가진 권능은 악이라 규정된 존재를 멸하며 심판하는 힘.
극소량의 신격이라 할지라도 아카데미에서 상대하는 실습용 몬스터들에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아마 적당히 몬스터에게 타격을 주려면 1퍼센트 이하.’
즉 0.00 몇 퍼센트로 신격의 농도를 줄여야 하는데 아무리 린이라도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없었다.
신격을 다루는 건, 무예나 마법을 익히는 것과 달리 재능이나 메리수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린은 힘을 발산하는 것만 배웠고, 억제하는 건 배우지 못했으니.’
내가 그러했듯이 신격을 다루는 법을 누군가에게 긴 시간 동안 배우는 수밖에 없다.
“대충 이유는 알았다. 뭐…… 마침 잘됐네. 내가 교사이니 알려주면 되겠네.”
“으으, 정말 면목이 없네요.”
린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지만, 그런 것치곤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는 것 같네.”
“네? 아, 그렇죠, 아무래도 이런 취급을 받는 건 처음이라…….”
헤헤 웃으며 말하는 린은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C클래스의 천덕꾸리기 취급받는 게 오히려 린의 입장에선 ‘평범한’ 아카데미 생활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다른 신들이 보면 기겁하겠군…….’
신들은 대체 린이 아카데미에서 배울 게 뭐가 있냐고 커뮤니티에서 떠들었지만.
린은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며 친구를 만들고 싶어했다.
결국 린이 평범한 10대로 있을 수 있는 건 지금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