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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해피엔딩(3) (326/332)


326. 해피엔딩(3)
2022.06.28.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두 달.

나의 일과는 지극히 간단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왕의 일을 하기 위해 마계로 떠나는 지수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한 뒤, 배웅을 해준다.

그다음 적당히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조금 늦게 이드라가 일어나고, 마찬가지로 식사를 준비해준 뒤에 일을 하러 떠나는 이드라를 배웅해 준다.

시스템은 사라졌지만, 그 편린은 남아 있는 상태.

뭣보다 온갖 세계과 뒤섞이기도 해서 아직도 지구에는 몬스터가 나타나는 상태다.

그러니 정기적으로 이드라는 ‘각성자’를 선발하여 인류에 배정을 할 필요가 있고, 여러모로 세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아예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지만.’

이미 이 세계는 새롭게 균형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몬스터가 사라진 강철의 시대로 돌아가게 된다면 신들을 처우도 애매해진다.

지금 신들이 인간 세계에 남아 도움을 주는 건 ‘영웅’이 존재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

덕분에 수많은 신들의 영향으로 오염되었던 지구의 토지도 회복되었으며, 기존에 과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던 일들도 다수 회복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가 없을 수는 없는 법.

이드라는 그런 신과 인간의 중재자이자, 세상의 관리자로서 하는 업무가 무척 많았다.

“으, 으음.”

나는 가만히 TV의 뉴스를 보며 깎아둔 사과를 하나씩 집어먹었다.

겨우 되찾은 평화란 정말로 달았지만, 묘하게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 마왕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나타난 상위 괴수의 처리를 위해 마족의 계약을 늘려 보다 안전한 방위망을 구축하기로 했으며…….]

뉴스에서 나오는 지수의 모습은 무척 낯설다.

신과 마찬가지로 악마인 지수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악마는 한 번에 다수의 계약자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각성하지 못한 인간들 다수에게 상당한 무력을 부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일반적인 방위는 악마의 계약자들이 맡고 있는 형편이었다.

하나하나는 신들이 선정하는 ‘각성자’.

일명 헌터보다는 약하지만, 그 숫자가 많아 집단전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다수로 쏟아져나오는 하위 마물들은 악마의 계약자가, 간혹 등장하는 상위 마물이나 던전들은 헌터들이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다음 뉴스입니다. 인류의 재건 이후, 상징적인 건물이 된 ‘몽상의 신전’에서 수수께끼의 인물이 목격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응?”

멍하니 뉴스를 보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몽상의 신전은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주요 시설로서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자주 쓸 일은 없지만 이드라의 권능이 깃들어 있는 만큼 내버려둘 수는 없었으니까.

“아.”

나는 뉴스에 어렴풋이 찍힌 물체를 보며 잊고 있었던 인물을 하나 떠올렸다.

적색으로 반짝이는 어떤 물체.

이곳에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서, 서둘러야겠군.”

잘못 했다간 큰 문제가 터질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저기에 있었으니까.

***

“응? 여기엔 무슨 일인 게냐?”

몽상이 신전에 도착하자, 마침 이드라도 있었다.

수많은 신과 인간에게 둘러싸여 무언가를 말하고 있던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한달음에 내게 다가왔다.

“혹시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러 온 건가? 그렇다면 조금 기쁘구나.”

이드라는 그렇게 말하며 양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재스처였다.

한 달 동안의 결혼생활은 이드라에게 ‘애정’이라는 감정을 자각시키기 위해 충분했다.

이전에는 그 감정에 부끄러워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지수보다도 적극적으로 표현을 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사람이 많으니까 나중에.”

“정말 슬픈 말이로구나.”

“아니, 사람이 많잖아, 사람이.”

뚱한 얼굴로 변한 이드라는 살짝 시선을 피하며 안아주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재스처를 취했다.

“하아, 진짜 이래서 내가 밖에 나가질 못하지.”

결국 살짝 안아주고 나서야 이드라는 반짝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이곳엔 무슨 일이냐? 정말로 나를 보러온 건 아닐 테고.”

“몽상의 신전에 엘리제가 있어.”

“……응?”

엘리제는 이미르와의 싸움 이후, 잠시 우리가 데리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에 또 사라졌다.

아마 야생동물과도 같은 그녀의 성격상 우리와 함께 있는 건 갇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 잠깐 주변의 사람들이 몽상의 신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줘.”

“근데 잡아서 어디로 데려갈 생각이냐?”

“이런 녀석이 잘 살 수 있는 곳으로 보내줘야지.”

그리고 엘리제에게도 빚이 있었다.

내가 상태창을 부쉈을 때, 만약 엘리제가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이미르에게 죽었을 것이다.

“그럼 부탁할게.”

“맡겨두거라!”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이드라에게 피식 웃은 후 몽상의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내 부탁대로 몽상의 신전 안에 있던 사람들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물러나는 게 느껴졌다.

‘좋아, 그럼.’

이제 신전 안에 숨어 있는 말썽꾸러기를 잡을 때였다.

***

“낑, 끼잉!”

마치 강아지와도 같은 소리를 내며 엘리제는 내 손을 벗어나기 위해 팔을 잡아당겼지만, 당연히 내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내 육신도 외신의 것.

아무리 엘리제라도 손쉽게 뿌리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결국 연약한 목소리가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전보다 확연히 인간의 말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언제까지 몽상의 신전에 있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여긴 꿈을 꿀 수 있어.”

물론 아직 어눌한 느낌은 남아 있었다.

지능도 아직 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말은 통했다.

‘꿈이라.’

그제야 엘리제가 몽상의 신전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유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과거에 나는 몽상의 신전에 그녀를 봉인해, 행복한 꿈을 꾸게 해줬다.

분명 마마잭과 함께 있는 꿈이었겠지.

비록 꿈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이젠 굳이 그런 꿈을 꿀 필요 없다.”

“싫어……. 나는 꿈을…….”

“이젠 꿈이 아니게 될 텐데도?”

“?”

그 말에 엘리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보았다.

대체 무슨 소리냐는 의미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으며 허수공간을 열었다.

“따라오면 알 거다.”

“…….”

엘리제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얌전히 내 뒤를 쫓았다. 본래라면 허수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생물’은 외우주의 존재로 한정되지만, 엘리제의 능력 특성상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리라.

자연스럽게 몸이 변화하면 허수공간에 적응할 수 있는 최적의 육체로 엘리제의 피부가 변화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어두컴컴한 허수공간 속에서 몇 걸음을 걷자, 단번에 주변의 풍경이 달라졌다.

“여긴……?”

“마계다.”

엘리제는 멍한 얼굴로 푸른 하늘을 보았다.

마왕이 없던 시절의 마계는 잿빛 하늘에 제대로 빛도 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푸른 하늘에 그야말로 낙원과도 같은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언제나 살기등등한 악마들도 지금은 상당히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저 모습을 보고 어찌 저들이 악마라고 생각하겠는가.

“오빠!”

마계에 도착하기 무섭게, 바람이 몰아치며 시커먼 인영이 쿵! 떨어졌다.

“마계에 오실 거였으면 미리 말해주셨으면…… 응?”

당황한 얼굴로 옷매무새를 다듬던 지수는 내 옆에 서 있는 엘리제를 뒤늦게 발견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여자는 또 왜 오빠의 곁에 있는 거죠?”

살벌한 어조로 묻고 있는 거 같지만, 의외로 그냥 묻고 있는 거다.

만약 지수가 정말 기분이 상했다면 오히려 ‘착한아이’의 모습으로 엘리제를 대했을 테지.

물론 이후 다음날 엘리제가 어떻게 됐을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엘리제를 마계에 둘 생각이야. 혹시 마땅한 장소가 있어?”

“다른 마족들이 얌전히 두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엘리제를?”

나는 피식 웃었다.

분명 마계에 있는 악마들이 강한 건 안다.

하지만 누가 감히 엘리제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7대 악마 정도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럴 수 있을까.”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제를 보았다.

엘리제는 그 이미르조차 쉽사리 이기지 못했다.

만약 엘리제가 이전처럼 전투적으로 나선다면, 솔직히 폭식의 악마인 벨제부브조차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나 강력한 존재이니, 엘리제가 있을 만한 장소는 신들이 살아가는 초상계나, 악마들이 사는 마계 정도.

‘거기다 엘리제는 신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과거 플레이어였던 영향일 거다.

그러니 결국 남은 건 마계뿐.

“그래도 되도록 악마들이 오길 꺼리는 빈 지역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 마침 그런 곳이라면 하나 있어요. 마계의 열쇠가 보관되어 있던 장소는 마족들이 가길 꺼리거든요.”

“근데 거긴 루시퍼가 살고 있잖아?”

“쫓아내면 되죠. 어차피 걔는 어딜 가서도 잘 살 텐데.”

마계의 2인자나 마찬가지인 루시퍼를 이렇게 막 대할 수 있는 건 아마 지수뿐일 것이다.

‘근데 지수는 유독 루시퍼에겐 가차 없단 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해서 루시퍼는 살 장소를 잃어버렸고, 엘리제는 기존에 루시퍼가 살던 지역에서 머물게 되었다.

“한때 황폐해졌던 장소지만 지금은 그런대로 복구가 됐거든요, 괜찮죠?”

“그러네.”

우리는 방금 전까지 루시퍼가 머물던 오만의 영역을 둘러보았다. 왕관이 있던 신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허허벌판과 루시퍼가 썼던 것 같은 작은 텐트만이 남아 있었다.

‘……설마 저런 텐트에서 생활한 건가.’

이쯤 되니 아무리 나라도 루시퍼에게 동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고마워. 여기면 딱 좋을 거 같네.”

“그래요? 그럼 상을 주세요.”

“상?”

“그럼요. 이렇게 도와드렸는데.”

지수는 생긋 웃으며 내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딱 봐도 뻔했다.

“흠,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한 이후, 슬쩍 엘리제의 눈치를 살피며 지수의 입에 조심스레 입맞춤을 했다.

입술에 남는 따스한 온기를 느끼자, 지수는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내게서 떨어졌다.

“근데 엘리제가 혼자 살기엔 너무 넓지 않나요?”

“그건 걱정하지 마.”

나는 멍하니 벌판을 바라보는 엘리제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뒤늦게 나의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너에게 진 빚을 지금이라도 갚도록 하마.”

“어?”

아마 엘리제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설명하기보단 직접 보여주고자 했다.

우우우웅!!

손을 뻗어 엘리제의 이마에 검지를 가볍게 대자, 그녀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플레이어 시절의 엘리제와, 그녀의 성좌였던 마마잭.

그리고 비극적으로 끝난 세계와 죽어버린 그녀.

마마잭의 힘으로 엘리제는 되살아날 수 있었지만, 외톨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너는 계속 꿈을 꾸고 싶다고 했지.”

마마잭과 함께 있는 행복한 꿈.

그것이 그녀에겐 외톨이뿐인 현실보다 나았을 것이다.

“근데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거든.”

엘리제의 기억에서, 그리고 그녀의 꿈속에서.

또한 그녀의 육신에 깃들어 있는 마마잭의 힘과 기억을 찾는다.

그의 육신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그의 혼을 찾아, 한 곳에 엮어낸다.

“읏!”

엘리제의 몸이 비틀거린다 싶은 순간,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금빛 기류가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반듯한 정장을 입고 있는 단정한 인상의 남성.

카멜레온 자리의 마마잭.

“어?”

마마잭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그의 기억에선 방금 엘리제에게 자신의 모든 걸 내어준 시점에서 바로 이어진 것일 테니까.

“분명 저는 모든 신격을 잃고…… 죽었을 텐데?”

“그랬지.”

“!!”

마마잭은 나를 발견하고는 뒤늦게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뭐, 이해한다.

녀석의 기억에서 나는 방금 전까지 싸우던 적이니까.

“마마잭?”

그러나 그런 마마잭의 경계심은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단숨에 사라졌다.

그의 등을 붉은 머리칼의 여성이 와락 껴안았으니까.

“마마잭! 마마잭!!”

“에, 엘리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저는 어떻게 살아났고, 엘리제는 또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연인의 등을 보듬으며 마마잭은 나를 보았다.

그런 그에게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기적이 일어난 거지.”

“예?”

“엘리제에게 고마워해라. 그 녀석이 이미르를 막아준 보답이니까.”

“이미르……라니요? 그게, 무슨 말인지…….”

당황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등을 돌렸다.

어차피 자세한 내용은 엘리제가 설명해 줄 거다.

여기서 내가 설명해 주는 건 영 멋이 없었으니까.

“의외네요. 오빠가 이런 걸 신경 쓰고 있었을 줄이야.”

울고 있는 엘리제와 그런 그녀를 달래는 마마잭을 뒤로하자, 지수가 생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뭐든 해피엔딩이 좋으니까.”

“그건 그렇죠.”

결국 마마잭도 엘리제도 시스템과 이미르에게 희생당한 이들이었을 뿐이다.

큰 피해를 입힌 자들도 아니었으니, 이 정도 보답은 해줘도 괜찮을 거다.

“그럼 돌아갈까? 아직 퇴근할 시간 안 됐어?”

“아직 좀 남았네요. 혹시 도와주시게요?”

“그래, 어차피 할 일도 없는 백수잖아.”

그런 내 말에 지수는 맑게 웃었지만, 나는 내심 진지했다. 요즘 집에서 혼자 놀고먹으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일이라도 구해봐야지.’

그러고 보니 린이 다니는 아카데미에서 교사를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나중에 한번 말해봐야겠다.’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가만히 놀고 있는 게 영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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