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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해피엔딩(2) (325/332)


325. 해피엔딩(2)
2022.06.28.


“아자젤이 제 아버지 역할을 해주세요.”

“?”

지수의 부름에 신부 대기실로 이동한 아자젤은 순간 자신이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게 다짜고짜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마왕님,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 수 있나요?”

“편하게 말하세요.”

“그럼 한지수, 갑자기 아버지 역할을 해달라니 무슨 소리니?”

이곳에 오기 전 묘한 반응을 보였던 신자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자젤과 신자운에게 배정된 자리는 신부의 가족들이 앉는 자리라고 했던가.

“성별로 따지면 그런 건 차라리 신자운이 맞잖아?”

“제가 신자운에게 왜 그런 부탁을 해야 하죠?”

마왕답지 않게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지수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아자젤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나라고.’

아자젤은 옅은 한숨을 쉬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럼 왜 나한테 부탁하는 거니?”

“제 악마로서의 부모는 아자젤이잖아요.”

그게 그렇게 되나?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분명 아자젤의 피를 통해 지수를 악마로 각성시킨 건 맞았지만, 그게 부모가 된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본래 가족이란 서로 피를 나눈 존재죠. 그런 의미에서 아자젤은 제 유일한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지수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했다.

어찌 됐든 지수와 꽤나 긴 시간을 보낸 아자젤이다.

아자젤은 지수가 가족을, 그것도 부모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안다.

그랬기에 설마 지수가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지수는 언제나 타인에게 무심한 인간이었으니.

“설마 마왕님께서 내게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저도 마왕이 되며 이것저것 변화가 일어났거든요. 인간이었을 때는 오히려 느끼지 못하던 감정이나 생각들도 가지게 되었어요.”

참 우스운 말이다.

평범한 인간이었을 때는 오히려 결여되었던 감정들이 악마가 되며 회복되다니.

물론 여전히 본성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부분에선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지수가 아자젤을 생각하는 마음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지수는 세한을 제외한 타인을 돌멩이라고 생각한다.

이드라도, 아자젤도 이전에는 다 비슷한 돌멩이들이었다. 하지만 세한과 함께 게임을 클리어하고, 아자젤을 통해 악마가 되었을 때.

조금이지만 변화가 있었다.

돌멩이라고 생각했던 인간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덕분에 오빠의 동료들도 이젠 제법 제대로 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건 전부 아자젤 덕이라고 생각해요.”

지수가 처음 악마가 되기 위해 아자젤을 찾아갔던 건, 어디까지나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자젤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린이나 이드라와 같은 ‘신격’을 지니지 못한 지수로선 짧은 시일 내에 신격을 얻고 그에 준하는 힘을 얻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정말 그러길 잘했어.’

이후 일어난 변화는 지수로선 예상하지 못한 것이지만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이득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저는 아자젤이 제 부모님의 역할을 해줬으면 해요.”

“…….”

아자젤은 지수의 진지한 말에 잠시 말이 없었다.

처음엔 단순한 장난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수의 말을 들을수록 생각이 복잡해졌다.

‘부모님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 말을 들으니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시 떠올랐다.

“……난 기왕이면 아버지보단 어머니로 생각해 주는 게 좋지만 말이야.”

“네.”

“아니야.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지. 난 아버지에게 좋은 기억이 없거든.”

그 말에 지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감정의 동요가 적은 지수로선 무척 놀랐다는 얼굴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자젤에게도 부모가 있었나요?”

정말로 놀라서 한 말이었겠지만 어감이 묘했다.

“그야 당연하잖니. 내가 혼자서 태어났을 리는 없고. 그리고 다른 이들이 말하지 않았나? 나는 악마 중에선 무척 어린 편이야.”

물론 어리다고 해도 대악마 사이의 이야기일 뿐, 상당한 세월을 살아온 건 맞다.

“뭐어,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네, 기대할게요.”

지수는 아자젤의 과거 이야기에 내심 호기심이 생긴 얼굴이었지만, 간단히 넘어갔다.

우선 중요한 건 오늘 자신의 결혼식이었으니까.

“그럼 제 부탁을 들어주는 거죠?”

“그래, 어려울 것도 없잖니. 그보다 이드라는? 같은 신부 대기실에 있을 줄 알았는데.”

“긴장된다면서 잠시 밖에 나갔어요.”

“외신이 긴장한다는 말은 살다살다 처음 듣는걸.”

“네, 그러니 그런 감정조차 익숙하지 않은 거겠죠.”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아자젤은 그런 이야기를 나눈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수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이상, 자신도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으니까.

“한지수.”

신부 대기실을 나가기 전, 아자젤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행복하니?”

이번 결혼식에 대해 우회하지 않느냐는 말.

그런 아자젤의 질문에 지수는 활짝 웃었다.

“네.”

이젠 저렇게도 웃을 수 있게 됐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아자젤은 등을 돌렸다.

***

우리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계의 지배자인 마왕의 결혼식이니 당연한 일이다.

나나 이드라는 지수의 곁다리로 낀 느낌이 아니었을까.

‘뭔가 순식간에 끝나버렸군.’

분명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워낙 긴장했던 터라 기억이 모호할 지경이었다.

기억나는 건 이드라와 지수가 나를 향해 부끄럽게 웃고 있던 것뿐.

‘솔직히 그거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그 외에도 기억나는 건 많았다.

특히 아자젤과 지수가 손을 잡고 나타났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아자젤과 지수의 사이가 좋은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뭐, 그때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다들 놀랐겠지.

오직 이드라만이 대충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런 거 보면 은근 둘이 서로를 잘 알긴 한단 말이지.’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두 여성을 보았다.

이드라와 지수.

하얀 웨딩드레스는 벗은 지 오래였지만, 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뭔가 실감이 잘 안나는 것 같네요.”

“…….”

“왜 이드라는 말이 없어요?”

“아니, 괜히 좀 뭔가 어색하구나.”

실제로 이드라는 평소와 달리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에 반에 지수는 좀 지친 기색을 보이는 것 빼고는 다르지 않았다.

“나도 좀 실감이 나지 않네.”

“그래요?”

“아니, 보통은 그렇지 않을까?”

나로선 귀환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일이 진행된 느낌이다.

물론 차일피일 미룰 수도 없는 일이긴 했지만, 묘하게 훨씬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해야 이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지수는 생긋 웃으며 옆에 있는 이드라를 보았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여자를 꼬시고 다니는 쓰레기로 보이잖아.

‘아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당장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해도 연관 검색어 맨 위에 있는 게 ‘김세한 쓰레기’다.

분명 처음에는 저렇지 않았는데, 오늘 성대한 결혼식 이후로 최상단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아마 한동안은 내 연관 검색어를 곱씹으며 조용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 미안하구나.”

괜히 이드라가 사과를 하니, 더욱 쓰레기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차라리 이게 낫다고 봐요.”

“……그런가?”

“어느 한쪽을 내쳐도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여성들을 내친 게 되는걸요.”

“그……것도 그렇긴 하지.”

“그러니 어느 한쪽을 고른다면 이게 낫다고 봐요. 차라리 이게 관리하기 편한……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후후후, 하고 입을 가리고 웃는 지수는 참 귀여웠지만 뭔가 가슴은 서늘해졌다.

‘앞으로 조심해야지.’

저 관대한 지수의 얼굴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았다.

“후후, 그래도 좋네요. 이젠 정말 오빠랑 한 가족이 되었잖아요?”

“나도 그래.”

“그리고 오늘은 가족이 된 첫날이고요.”

그렇게 말한 지수는 앉아 있는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지수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왜 그래?”

“네? 그야 첫날밤이잖아요? 그동안은 기회가 없었다지만…….”

지수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게 천천히 접근하며 상체를 기울였다.

“오늘은 놓칠 생각 없거든요.”

“…….”

그제야 지수가 무얼 말하는지 깨달았다.

내 입장에선 뭔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말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니, 그야 부부니까. 그렇긴 한데.

뭔가 분위기도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나?

“저 처음이거든요. 근데 잘할 자신은 있어요.”

“자, 잠깐.”

“분명 광기의 마왕 세계에선 제 딸이 둘째였죠?”

이윽고 지수의 눈이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이전에 ‘머리를 노렸어야죠’라고 했을 때 보았던 지수의 미소다.

“이번엔 첫째가 될 거예요.”

마치 선고와도 같은 말을 하며 지수가 나를 향해 바짝 접근하던 순간.

“응? 뭐가 처음이라는 것이냐?”

순진무구한 이드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정말 아이와도 같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드라가 보였다.

“…….”

“…….”

지수와 나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입을 닫았다.

신이란 순수하다.

아니, 그래도 지구의 신들은 좀 이런 쪽에선 대부분 전문가들이지만, 이드라는 다르다.

물론, 아이가 어떻게 하면 생기는지나, 스킨쉽에 대한 지식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정말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을 뿐.

막상 지수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정확히는 저 말이나 행동을 통해 거기까지 유추하지 못한 거겠지만.

“……하아.”

지수는 내게 접근하던 몸을 떼고,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이드라는 두 눈을 깜박이며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뭔가 할 게 있었던 것 아니었느냐?”

“그랬는데, 아무래도 당신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요.”

“?”

“네, 정말 당신은 순수하네요.”

“어쩐지 놀리는 것 같은 말이구나.”

이드라는 눈을 살며시 찡그리며 말했지만, 지수는 드물게 한숨만 내쉴 뿐 뭐라 쏘아붙이지 못했다.

‘덕분에 한숨 돌렸네.’

아니, 나도 싫다는 건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러우니 놀랐을 뿐이다.

‘이걸 육식계……라고 하던가.’

분명 인터넷에서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나도 지식으로만 아는 영역이라 차마 뭐라 말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은 해야겠지.’

광기의 마왕 세계에서 보았던 둘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건 아마 단순히 나와의 결혼생활만이 아닌 자식이 주는 행복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보았던 딸들과도 빨리 재회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오빠.”

그때, 지수가 나를 불렀다.

옆에 앉아 있는 이드라는 붉어진 얼굴로 완전히 넉다운 되어 있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대략 상상이 됐다.

“오늘은 이렇게 되었지만 내일은 각오하셔야 해요.”

귀엽게 미소 지으며 말하는 지수의 모습에 나는 여러 의미로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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