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해피엔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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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해피엔딩(1)
2022.06.28.
세한과 이드라, 그리고 지수의 결혼식은 커다란 뉴스가 되었다.
물론 다른 세계처럼 TV에 나오거나, 세간의 사람들에게까지 퍼져나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많은 신들, 그리고 지인들에게는 깜짝 놀랄만한 이슈였다.
“지수 언니가 용케도 허락해 줬네요. 난 세한 오빠 머리가 멀쩡히 붙어 있는 게 너무 신기하다니까.”
깔끔한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성이 중얼거렸다.
얼마 전에 입었던 이 예복을 설마 이렇게 빨리 다시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하하하!! 사랑하는 사람 두 명과 결혼하는 거지 않느냐. 그리고 겨우 두 명인데 참 소란스럽기도 하구나!”
껄껄 웃으며 답하는 금발의 미중년, 제우스의 말에 민아는 차마 뭐라 반박을 못 했다.
정확히는 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하기야 그리스 신화를 조금만 보더라도 이 남자가 무슨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워낙 급이 높은 신이라 차마 그런 제우스에게 반박을 하는 신은 없었다.
민아의 곁에 서 있던 연보라색 머리칼의 미남자를 제외한다면.
“아저씨, 그런 말 함부로 하다간 정말 죽을걸요? 주변에 악마들 보이죠?”
“음? 흠흠, 흠. 그렇군.”
그제야 웃던 입을 조심스럽게 닫는 제우스의 모습에 민아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신을 보았다.
“로키는 어쩐 일로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응? 저번에는 여자의 모습으로 왔으니, 이번엔 남자의 모습으로 축하해 줄까 해서.”
연보라색 단발을 깔끔하게 정돈한 로키는 이전보다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아니면, 여자의 모습이 좋았나? 우리 계약자는.”
“……별로 그런 건 아닌데요.”
투덜거리는 자신의 계약자를 로키는 귀엽다는 듯이 보았다.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주변을 살피자, 얼마 전에 보았던 악마들이 부지런하게 일하는 게 보였다.
“악마들도 고생이네. 바로 얼마 전에 아자젤의 결혼식이었는데, 이번에는 마왕님의 결혼식이니.”
로키는 그렇게 말하다, 문득 눈에 띄는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10대 중반이 막 넘은 것 같은 소녀 두 명이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뛰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린, 그러니까 마법으로 오면 편하지 않았나요.”
“간만에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었는걸. 그래도 안 늦었으니 괜찮잖아.”
“그건 그렇지만…….”
백설이와 린은 아카데미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뛰어온 것 같았지만, 로키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쟤네는 대체 왜 아카데미 같은 교육기관에 다니는 거야?”
“그냥 평범한 학창 생활을 하고 싶었데요. 하긴, 그럴 만도 하죠.”
“그래?”
로키로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감상이었다.
특히 린은 정의의 여신으로 워낙 유명한 탓에, 학교에선 마법으로 적당히 얼굴을 바꾸고 다니는 모양이다.
“어쨌든.”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로키가 시선을 돌려 점차 모여드는 하객들을 지켜보았다.
아자젤 때도 어마어마한 숫자였지만, 이번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은 배는 많은 것 같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상 퍼블리셔로부터 우주를 해방한 영웅의 결혼식.
거기에 신부과 외신과 마왕이라면 얼굴이라도 한번 비추기 위해 오는 게 정상일 것이다.
“잘만 하면 이 세상의 새로운 지배자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세한 오빠는 그 정도로 야망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로키의 말에 민아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긴 시간 동안 지켜봐 온 그는 자신의 정한 목표를 위해선 무슨 수단이든 달성하지만, 커다란 야망을 가진 남자는 아니다.
“그렇죠. 세한 씨 성격에 그런 건 무리라 생각합니다.”
“오, 송창우, 제법 번듯해졌구나.”
그런 둘의 대화에 끼어든 건, 바로 창우였다.
딱 봐도 단련된 무인 같아 보이는 그의 곁에는 송시우도 함께 서 있었다.
“시우도 많이 컸네. 오랜만이지?”
“네, 네. 안녕하세요.”
민아가 툭툭 머리를 두드리자 시우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당황했다.
그런 시우의 모습에 민아는 킥킥 웃었다.
나이를 좀 먹으니 이런 작은 스킨쉽에도 반응하는 시우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먼저 오신 하객분들은 홀에 먼저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많으니 질서 있게 움직여 주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는 하객에 마족들이 바삐 움직이는 게 보였다.
민아와 로키도 슬슬 홀로 이동하려는 찰나,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뚫고 들어오는 인파가 보였다.
바로 아자젤과 신자운이 이끌고 온 무리였다.
그중에는 이제 제법 성숙해진 민수아도 함께 있었지만, 민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뒤에 따라 들어오는 두 여성이었다.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은지, 눈치를 살피는 두 여성은 바로 민아의 친구인 지선과 혜미였다.
“민아야!”
“뭘 그렇게 반가워해. 바로 얼마 전에 봤는데.”
“그, 그래도.”
지선과 혜미는 여전히 주변의 악마들을 보며 몸을 떨었다.
현재 둘은 아자젤이 머무는 나태의 궁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다른 악마들이 두려워할 만한 위치였다.
7대 악마 중에서도 상위 세 명의 악마는 그 격을 달리했으며, 그런 나태의 궁에서 아자젤의 직속 하수인이라 할 수 있는 둘은 다른 악마들이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이 변했구나.’
지선과 혜미와 대화를 나누며 주변의 악마들을 힐끗 보자, 그들은 괜히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황급히 피하는 게 보였다.
처음 ‘게임’에 휘말렸을 때만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지선과 혜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자젤은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눈을 찌푸렸다.
“후후후, 다들 아름답게 성장했구나. 아자젤.”
“마라 파피야스.”
아자젤은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하는 다른 7대 악마, 색욕의 마라 파피야스를 보며 눈을 찡그렸다. 아자젤은 개인적으로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껄끄러워한다는 편이 옳다.
“이런, 그렇게 노려보지 말았으면 하는구나. 이쪽은 그저 사랑스런 계약자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왔을 뿐이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마라 파피야스의 말에 아자젤은 한층 눈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게, 마라 파피야스의 뒤에 서있는 건 녀석의 계약자인 크리스와 시리스 자매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먼저 입을 연 건 시리스였다.
눈치를 살피는 자신의 언니와 달리 그녀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저 녀석…….’
아자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도 그럴 게 시리스가 말을 건 것은 아자젤이 아닌, 그녀의 남편인 신자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오랜만이다. 잘 지냈나?”
“예.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해 죄송해요. 그때 바빴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는 시리스의 모습은 과연 색욕의 악마, 마라 파피야스의 계약자답게 무척이나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어쩐지, 무척 짜증나는데. 왜지?’
시리스와 자운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자니, 아자젤은 점점 짜증이 치미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운과 시리스의 대화는 별로 대수로운 내용이 없음에도 왜 이렇게 짜증나는 걸까.
‘설마, 나.’
그 이유는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낯선 감정이지만, 지수의 곁에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그녀이니 이 감정이 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질투하는 거야?’
황당한 마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설마 자신이 질투 같이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하기야 마왕도 벗어날 수 없는 감정에, 자신이 자유로운 것도 우습긴 하다.
“신자운.”
아자젤은 시리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신자운의 팔을 잡아끌며 잡아당겼다.
그리곤 그 커다란 눈망울을 부드럽게 휘며 생긋 웃었다.
“슬슬 입장해야 되니 그만 이동하자.”
“응? 그, 그래. 그러도록 하지.”
아자젤은 신자운을 그다지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처음에는 버러지라고 불렀으며, 시간이 흐르며 계약자로 격상되었고.
최근에는 남편이라는 호칭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아자젤은 부끄럽다는 이유로 굳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름으로 부르다니.
“칫.”
그런 아자젤의 행동에 시리스는 짧게 혀를 찼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아자젤은 도리어 황당해졌다.
“……역시 색욕의 계약자답네. 미안하지만 나는 너 같은 거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단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힐끗 민수아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제 제법 성숙해진 민수아는 무구한 얼굴로 생긋 웃을 뿐이었다.
‘저 계집애 하나만 해도 골치 아픈데, 더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아자젤로서도 민수아는 무서운 적이다.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게 이렇게나 난감하며 곤란한 존재라는 걸 아자젤은 처음 알았다.
심지어 민수아는 신자운이 좋아하는 건 뭐든 꿰뚫어보고 있으며, 미래를 보기에 어떤 선택이 가장 옳은 건지 전부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이 이렇게 행동해도 결국 민수아가 본 미래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짜증나네.’
아자젤은 팔을 껴안고 있던 신자운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
말이 살짝이지 아자젤의 막강한 손아귀 힘에 신자운은 순간 입 밖으로 비명이 튀어나올 뻔했다.
“……왜 갑자기 화가 난 거지?”
“여자 좀 작작 후리고 다니라는 뜻이야.”
그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한 불합리한 분노였지만, 아자젤의 입장에선 지극히 합당한 분노였다. 마음 같아선 한 대 걷어차 주고 싶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참을 밖에 없었다.
“우리 마왕님은 참 대단하네.”
“흠, 그야 그렇지. 인간으로서 마왕의 자리에 올랐으며, 저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는 건 나로서도 좋은 자극이 된다.”
“그거 말하는 거 아니야.”
“?”
언제나 생각하지만 이 남자는 눈치가 더럽게 없다.
그것만큼은 아마 김세한과 닮은 점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더 짜증나는 점은 본인들은 자신이 눈치가 아주 좋은 줄 안다는 거다.
‘아니, 분명 눈치가 없는 건 아닌데…….’
대부분의 일에선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른데, 유독 연애와 관련된 부분에선 더럽게 눈치가 없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을 정도다.
아자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예식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자신들이 결혼했던 장소보다 배는 화려하며 거대한 곳에는 이미 빽빽이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아자젤 님과 신자운 님은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악마들은 저마다 귀빈들을 지정된 장소로 안내했다.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은 아자젤은 곧 시작될 결혼식을 기다리며 옷매무새를 정돈했고, 신자운은 어쩐지 묘한 얼굴이었다.
“왜 그런 얼굴이니?”
“우리가 안내받은 자리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는 기분이 드는군.”
“왜? 그냥 좋은 자리 아니니?”
“보통 여긴, 신부의 가족들이 앉는 자리다.”
“……뭐?”
“인간의 풍습으론 그렇지.”
아자젤이 인간의 풍습에 대해 알 리 없었다.
신자운의 취향에 맞춰 인간의 결혼식을 했던 아자젤이지만 자세한 것까진 전부 알지 못했다.
“설마, 우연이겠지.”
“흠.”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아자젤의 모습에 신자운은 피식 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마치 두고 보라는 태도다.
‘애초에 자기는 저쪽이랑 그다지 친하지도 않으면서.’
적대하지 않을 뿐이지, 신자운은 과거 디어사이드 길드원들과 한번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그 탓에 여전히 사이는 상당히 껄끄러운 상태였다.
“아자젤 님. 잠시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때, 악마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아자젤에게 허리를 숙였다.
“응? 내가 도와줄 게 있니?”
“마왕님의 요청입니다. 잠시 와달라고 하시더군요.”
뭐지, 갑자기 무슨 일이지.
아자젤은 악마의 말에 의아해졌지만 지수의 요청이기도 하니 선선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대되는군.”
그런 아자젤에게 신자운은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아니겠지.’
그런 신자운의 반응에 아자젤은 문득 자신을 부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으나, 금방 고개를 저었다. 설마 지수가 자신에게 그런 부탁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