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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가족(2) (323/332)


323. 가족(2)
2022.06.28.


“…….”

“…….”

기묘한 침묵이 일었다.

먼저 말하자면, 이드라가 지수의 주먹에 얻어맞아 비명횡사하는 일은 없었다.

딱히 지수가 주먹을 멈췄거나 한 건 아니다.

주먹에 얻어맞기 직전, 이드라가 눈을 뜨며 황급히 고개를 젖혀 피했기 때문이다.

“주…….”

자신의 볼을 스치며 틀어박힌 지수의 주먹을 응시하던 이드라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너는 나를 죽일 생각인 게냐!!”

있는 힘껏 소리치는 이드라를 빤히 바라보던 지수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봤죠?”

“…….”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은 이해하는 법이에요. 니알라토텝도 그랬잖아요?”

지수는 니알라토텝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자토스도 비슷하지 않았던가.

‘아니, 뭐 확실히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긴 할 텐데…….’

외신들은 죽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죽음의 무게를 더욱 크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이드라는 현재 인간.

불사의 육신을 가졌다지만 현재 마음은 인간과 같다.

그러니 인간의 생존본능이 합쳐져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 그걸 알아도 그렇게 하는 건 너뿐일 거다! 보통 이런 건 좀 감동적인 장면을 넣어서 깨우거나 하지 않느냐!”

“감동적인 장면?”

“그…… 입을 맞추거나…….”

의아하다는 듯 묻는 지수의 물음에 이드라가 살며시 볼을 붉히며 답했다.

설마 그런 걸 바라고 있었던 건가 싶어 멍하니 바라보자, 지수의 손가락이 이드라의 이마를 때렸다.

딱!!

“악!!”

“대체 남의 약혼자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으으.”

지수의 근력이 근력인지라 가벼운 딱밤도 이드라에겐 망치로 얻어맞은 충격일 것이다.

심지어 나름 저것도 힘 조절을 한 걸 테지.

이드라는 끙끙거리며 이마를 쓰다듬다, 나를 느릿하게 올려보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곳에 있고, 너와 세한은 왜 이곳에 있는 것이냐.”

“그건.”

아무래도 이드라는 자신이 왜 이런 곳에 틀어박히게 된 건지 이해 못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뭐라 대답하지 못하자, 지수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삐져서요.”

“응?”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도 감당 못할 만큼 우울해진 게 원인인지도 모르겠네요.”

침착한 지수의 말에 이드라는 이마를 매만지던 손도 멈추고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곤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씁쓸하게 웃었다.

“과연, 나도 오만했던 건가. 인간의 감정이란 쉬이 억누를 수 없는 게로군.”

“이드라.”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그동안 그대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속앓이를 해왔으니 말이다.”

그녀는 잔잔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두운 세계는 여전히 어두웠다.

그 이야기는 이드라의 마음에 담긴 어둠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참을 필요 없어.”

“…….”

“어떤 말이든 받아들여 줄 테니까.”

“저 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냐?”

“그래.”

내 대답에 이드라는 힘없이 웃었다.

가슴을 움켜쥐고 입술을 달싹이며 몇 번이나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런 이드라를 나도, 그리고 지수도 재촉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치 쥐어짜내는 것 같은 목소리가 이드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의 계약자여, 그리고 나의 위대한 신이여. 이 기회에 말하마. 나는 그대를 좋아한다. 단순히 인간으로서가 아닌 이성으로서 사랑한다.”

나는 이드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내게 호감을 표하고 사랑한다 이야기해온 이드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과 아바타로서의 자애로서의 표현이었다.

아니,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인간으로서, 그리고 남성과 여성으로서 ‘사랑’을 언급한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 아이가 곁에 있기에 차마 할 수 없었던 말이었지. 특히 그대가 그 아이를 선택했을 때부터 나는 영원히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의 머릿속에 이드라의 ‘생각’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여태 억누르던 감정이 폭발하자, 그 기억도 둑이 터진 물살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게 보여주기 싫어했던 ‘인간’ 이드라의 갈등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몽상의 던전’의 기억에서 이어진 수많은 세계의 여행.

광기의 마왕에 도달하여 보게 된 또 다른 자신의 미래.

지수와 함께 공존하는 세계를 보며 망설이게 되었다.

‘정말 저래도 괜찮은 것인가?’

‘세한’과 지수의 사이에 정녕 끼어들어도 괜찮은 것인지 갈등했다.

자신은 상관없지만, ‘세한’에게는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까.

동시에 자신이 독점할 수는 없는 것인가.

지수는 어떤 세계에서도 그의 가장 가까운 장소에 있었다.

그건 운명에 가깝다.

알고 있다. 이 세계가 게임이 되기 전부터 ‘그’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것이 인간의 ‘질투’라는 감정을 자각했을 때 이드라는 ‘세한’에게서 멀어지기로 했다.

이런 추한 감정을 ‘세한’에게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선 언제나 자애롭고 고고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째서, 안 되는 걸까.”

이드라의 눈에서 작은 눈물방울이 흘렀다.

많은 세계를 보았고, 많은 미래를 보았지만 이드라가 눈물을 흘리는 건 처음 보았다.

“나는 신인데.”

오만한 말투도 잊고, 고고한 기품도 스러지며 이곳엔 그저 이드라만이 남았다.

“그야 당신, 지금은 인간이잖아요.”

그런 이드라에게 지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오히려 평소처럼 웃으며 가만히 있었다면 기분 나빴을 거예요. 정말로 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그럴 수 없을 테니까요.”

“……너도 마찬가지인가?”

“네. 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을걸요.”

“인간이니까?”

“네, 인간이니까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섬뜩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 어쩐지 ‘광기의 마왕’ 세계가 어땠는지 쉬이 상상이 갔다.

‘지수를 설득하긴 무척 어려울 거라 했지…….’

그곳의 상황은 아마 나와는 정반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훌쩍이며 눈물을 소매로 닦는 이드라를 바라보던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이드라.”

“응?”

그렇게 말한 후, 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말할 건 많은 각오가 필요했다.

“나도 너를 좋아해, 이드라.”

그렇게 말하자 이드라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의 동공이 빠르게 움직이며 나와 지수를 향해 번갈아가며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 나도 너를 좋아하며, 사랑하고 있어.”

“그, 그그. 그런.”

이드라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 모습에서 신의 위엄이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 한지수! 너는 왜 가만히 있는 것이냐! 나를 동정하여 이런 결정을 한 거라면…….”

“아쉽지만 그런 건 아니에요.”

지수는 눈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빚을 갚을 뿐이죠.”

“……빚?”

“역시 모르고 있군요.”

지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도 이드라는 정말로 모른다는 눈치였다.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입을 닫은 지수를 대신해 나는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수가 나와 다시 만나고 사랑하여 이어지려면 필연적으로 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한 사람의 도움이라니. 그런 게 있었느냐?”

“당연하지.”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와 지수의 관계는 게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끝났다.

지수는 고블린의 칼에 찔려 이성이 상실되고 은밀히 나를 따라다니다가 목숨을 잃는다.

나와 지수의 관계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네가 나를 회귀시켰기에,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거니까.”

“……!”

나와 지수가 한 번 더 기회를 얻은 건 1회차의 이드라가 스스로를 희생했기 때문이다.

‘광기의 마왕’ 세계의 나는 DLC가 없었음에도 무조건 이드라를 통해 과거로 회귀할 수 있었다.

거기서 생겨난 분기점으로 내가 탄생했고, 지수와 이어지는 미래를 만들어냈다.

“어떤 세계든 마찬가지야. 내가 지수와 이어지려면 과거로 회귀해야 하지. 그리고 그 역할을 늘 네가 도맡았어.”

“더불어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는 말이에요.”

어떤 세계에서든 나는 지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지수는 내가 회귀를 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다.

1회차의 세계는 그게 우리의 운명이었으니까.

“……물론, 이건 무조건 나의 손을 잡아달라는 건 아니야.”

멍하니 나를 응시하는 이드라에게 나는 싱긋 웃었다.

“네가 나를 선택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거지.”

“내가 그대를 선택할 위치라는 것인가?”

“그야 그렇잖아. 나는 이미 지수와 약혼을 한 놈이고, 그 상태에서 너에게 손을 내민 거니까.”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지수와 이드라, 어느 쪽도 나는 놔줄 생각이 없었다.

“만약 그 손을 잡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어둡던 세상이 점차 희게 변했다.

“행복하게 해줄게.”

마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영원히.”

이건 이드라만이 아닌 지수에게도 하는 맹세다.

‘광기의 마왕’이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나의 의무라고.

나를 위해 희생해온 둘을 위해 영원토록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고.

“……이번 일로 깨달았다만.”

이드라는 천천히 내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나를 올려보며 어쩐지 부끄러운 듯 미소 지었다.

“나는 상당히 어리석은 모양이다.”

따스한 온기가 손바닥에 퍼지며.

세계가 하얗게 물들었다.

***

“끄응.”

눈을 뜨면 평소처럼 의자에 앉아 있었다.

디어사이드에 있는 사장실.

즉, 나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몸이 뻐근한 기분이로다.”

이드라와 지수는 근처에 있는 작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꽤나 긴 시간을 잠들어 있던 탓인지 이드라는 여전히 졸린 눈치였다.

“그렇게 오래 잠들어 있었으니 그렇겠죠.”

지수의 어조는 무척 평온했다.

평소였다면 이드라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을 텐데, 상당히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아마 이번 일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지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지수가 시선을 돌렸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니, 그냥. 어쩐지 이제야 지수가 이드라를 받아들인 것 같아서.”

“아직 완전히는 아니에요. 천천히 납득할 뿐이에요. 그래도 뭐어, 언제나 이런 미래를 상정했던 탓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아요.”

아마 지수는 내가 이드라를 버리는 미래를 절대 선택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드라도 지수를 버리는 미래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겠지.

지수가 잊혀졌을 때 내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떠올리면 알기 쉽다.

“아무튼 그럼 언제가 좋을까?”

“음?”

내가 지수와 이드라를 번갈아가며 묻자, 나른하게 소파에 몸을 기댄 이드라가 눈을 껌벅였다.

“언제가 좋냐니?”

“저는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달도 좋고 다음 달도 좋아요.”

“응?”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지수와 달리 이드라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이제 다 해결됐으니 결혼식 날짜를 잡아야지.”

“겨, 결혼식?”

“기왕 마음을 정했다면 한시라도 빨리 하는 게 좋잖아?”

이드라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고, 지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이야기를 나눴던 지수와 달리 이드라는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이전이면 몰라도 ‘결혼’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알기에 더더욱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리라.

“좋아.”

나란히 앉아 있는 지수와 이드라를 보며, 나는 씩 웃었다.

“우선 결혼반지부터 맞추러 가볼까?”

한때는 학교의 선후배로서.

한때는 신과 계약자로서.

줄곧 우리는 그런 관계였다.

영원히 불변할 것만 같았던 그 관계는 이제 새롭게 변화할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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