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엔딩, 그 후에(4)
(319/332)
319. 엔딩, 그 후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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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엔딩, 그 후에(4)
2022.06.28.
“대화는 끝났느냐?”
광기의 마왕인 ‘나’와 대화를 끝내고 한숨을 돌리니, 어느 새인가 이 세계의 지수와 이드라가 다가와 있었다.
평소보다 가벼운 옷차림은 과연 휴양지에 놀러온 관광객과도 같은 평범한 모습이었다.
‘뭔가…… 분위기가 다른데?’
눈앞의 지수와 또 다른 이드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뭐라고 해야 되나, 알 수 없는 개방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되나.
확실한 건 행복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그런 나의 심리를 읽었는지, 곁에 있던 이드라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멍하니 돌아보자, 이드라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늘 그렇듯 자신만만한 미소다.
“이 세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건 당연하다.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이드라는 말했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나도 자연스럽게 변화할 테지. 아마 저것보다 더 행복한 모습일 지도 모른다. 미래의 일이란 모르는 법이니까.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랬지.”
이드라의 말이 맞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미래를 알지 못한다.
분명 여태 살아온 시간보다 남은 미래가 훨씬 길겠지.
혼자서 회귀했던 과거와 달리, 많은 이들과 함께.
“…….”
나는 손가락에 끼워진 약혼반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은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다른 세계의 저를 어서 만나고 싶으신 모양이네요.”
그런 나의 행동을 묘한 눈으로 지켜보던 이 세계의 지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지수와 동일했지만, 역시 뭔가 달랐다.
“그래, 이제 돌아가야지. 너무 오랫동안 떠돌았어.”
이제 한 발자국 남았다.
현재 내가 하는 고민은, 모두 돌아간 이후에 생각할 것들이다.
“좋아. 어차피 한동안 푹 쉬어서 힘도 넘치니 바로 시작하는 게 좋겠군.”
‘나’는 평온하게 웃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별것 아닌 행동이었지만, 그것만으로 평온하던 해변에 막대한 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마왕인 나의 머리 위에 만들어지는 검은 왕관.
물론 진짜 마계의 열쇠는 아니다.
진짜 마계의 열쇠는 수연이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저것은 어디까지나, 수연이가 가진 마계의 열쇠의 힘을 멀리서 끌어와 이드라의 힘으로 현현시킨 거였다.
‘저런 식으로도 이드라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건가.’
분명 발휘할 수 있는 힘은 내가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능력의 활용은 이쪽의 내가 앞섰다.
아마 긴 시간 동안 능력을 활용해온 덕이 아닐까.
“거기에, 이것도 있지.”
마왕이 열쇠를 현현시키는 동안 이 세계의 이드라는 자신의 손 위에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작동시켰다.
단번에 빛을 발하는 그것에, 곁에 있던 지수가 힘을 더하자 마치 태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마계의 열쇠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온전한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
그야말로 행성이 떨릴 만한 엄청난 힘이 응집되기 시작했지만…….
‘부족해.’
이런 막대한 힘으로도 우리 세계로 통하는 통로를 여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해야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요동치는 거대한 마력, 그리고 외신의 힘.
나는 그 속에서 길을 찾았다.
나와 이드라, 우리의 앞에 또 다른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이 나타나며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세계의 섭리를 다루는 인조열쇠의 힘.
그리고 마왕인 내가 가진 진짜 열쇠의 힘.
마지막으로 외신의 왕, 아자토스로부터 받은 왕의 힘을 전력으로 개방한다.
콰아아아아!!!
하늘에 새까만 구멍이 뚫리며 어딘지 모를 공간으로 연결된다.
이곳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저갱과도 같은 암흑 속이었지만, 나는 희열을 느꼈다.
‘느껴진다.’
여태 아무리 닿으려고 해도 닿을 수 없었던 나의 세계.
모든 세계 중 유일무이하게 ‘왕’을 죽이는 업적을 달성한 장소.
나의 지구가 지금 바로 눈앞에 있었다.
‘예전엔 정말 보기 싫은 광경이었는데.’
하늘에 뚫려 있는 검은 구멍.
이전의 나에게 저 광경은 트라우마와 같았다.
보통은 멸망한 세계에 나타는 현상이었으니까.
‘퍼블리셔가 이 세상을 침략했다는 흔적과도 같은 거였지.’
물론 지금 내 앞에 있는 구멍은 그런 흔적이 아니다.
멀어졌던, 나의 고향으로 통하는 길.
“그동안 고생 많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무언가 벅차오르는 기분이 느껴졌다.
‘이제 정말로 끝났구나.’
그런 실감이 처음으로 들었다.
결코 쓰러트리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존재들을 쓰러트리고.
혼돈의 틈에서 떠돌았으나 결국 이렇게 길을 찾았다.
“물론, 너의 삶은 끝나지 않으니 쉴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장난기가 깃든 말이었지만, 나는 웃을 수 있었다.
분명 이제 내가 ‘나’와 만나게 될 일은 없을 테지.
영원한 작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나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녀석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행복하냐?”
녀석은 그런 내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이내, 씩 웃었다.
“당연하지.”
그거면 됐다.
나는 녀석을 향해 마주 웃은 뒤, 등을 돌렸다.
“가자, 이드라.”
그런 나를 조용히 지켜보던 나의 신에게 손을 뻗자, 녀석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꽉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함께, 저 검은 구멍을 향해 도약했다.
줄곧 갈망했던, 나의 세계를 향해서.
***
눈을 뜨면 그곳은 익숙한 하늘이었다.
현실이 된 꿈도, 광기의 마왕의 세계도 똑같은 하늘이었지만, 내게는 무언가 다르게만 느껴졌다.
“옵저버의 수가 훨씬 적구나.”
그 사실을 이드라 또한 알았는지 멍하니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광기의 마왕, 현실이 된 꿈.
두 세계에는 더 많은 숫자의 옵저버가 있었다.
아마 신과 인간들이 완전히 교류를 트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달랐다.
옵저버들은 있었지만, 용도가 달랐다.
당장 지상을 보더라도, 신들이 인간들과 섞여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물론 그 숫자는 극히 적었지만 말이다.
“예상보다 미래적인 모습은 아니로군.”
“그야 시간대만 따지면 여긴 과거에 가까우니까.”
현재 나와 이드라가 있는 장소는 한 건물의 위였다.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라고 할까.
여태 지나쳐온 다른 세계보단 발전이 더뎠지만, 그건 아마 시간이 덜 흘러서 그럴 게 분명했다.
“흠.”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내게 이드라는 내 주변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그제야 나는 내 주변에 투명한 장막이 감싸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해?”
“이 세계엔 또 다른 내가 있지 않느냐. 정확히는 그쪽이 본체이겠지만 말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드라는 본디 꿈이었던 세계에 존재했던 이드라다.
2회차의 이드라에게 기억을 전달해준 본인이라 사실상 같은 존재이긴 했지만, 미묘하게 다르기도 했다.
“아직은 하나가 될 생각은 없다. 나는 좀 더 이 여운을 즐기고 싶구나.”
물론 내가 이드라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터라, 이미 합쳐진 상태나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거기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 세계의 내가 그대가 돌아왔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게다.”
“그게 왜?”
“그건 재미없지 않느냐. 꽤나 긴 시간을 들여 멋지게 귀환한 거다. 되도록 멋지게 등장하는 게 좋을 테지.”
“……특별히 그럴 마음은 없는데.”
이미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부터 이드라는 이런 상황을 염두하고 내 주변에 결계를 쳐두었던 모양이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
즉, DLC를 통해 파티원으로 등록된 이들이나 백설이.
그리고 이 세계의 이드라가 알지 못하도록 내 존재를 살며시 감춘 것이다.
이전의 이드라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아자토스의 편린 덕에 그녀의 힘은 사실상 전능에 가까워졌으니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드라는 나에게 바짝 다가오며 반짝이는 금안을 초승달처럼 휘었다.
“제대로 준비를 하고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
“…….”
아마 그게 이드라의 본래 의도였을 것이다.
그 말처럼 아직 나는 지수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미아가 되었던 나를 지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 세계의 지수가 내가 사라진 후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긴 시간이 흘러 이미 나를 잊었다거나.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물론 도시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 정도로 긴 시간은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만큼 나는 여러모로 긴장하고 있었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자꾸나.”
“옷을? 이거면 되지 않았나?”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복장은 늘 내가 입던 시커먼 복장이었다.
수많은 권능으로 보호받는 탓에 더러운 부분은 없었고, 오히려 새것처럼 깔끔했다.
“기왕이면 깔끔하게 준비하고 돌아가는 게 좋지.”
나는 눈을 감고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들을 느꼈다.
그들은 아직 나를 느끼지 못했겠지만, 지수와 이 세계의 이드라.
그리고 민아를 비롯한 동료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묘하지만 그 기척들은 죄다 한 곳에 모여 있거나, 점차 모여들고 있었다.
“……응?”
거기에 느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존재의 기척도 느껴졌다.
바로 아자젤.
아자토스를 인간이라는 형태의 관에 가두며, 큰 타격을 입었던 그녀가 이미 깨어나 있었다.
‘분명 아자젤이 깨어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대략 백 년 정도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설마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는 건가?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분명 내가 느낀 기척에는 민아와 창우의 것도 있었다.
심지어 둘에게선 신격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백 년이 넘게 살아 있을 턱이 없었다.
‘예상보다 아자젤이 빨리 깨어났단 이야기인가?’
새삼 아자젤이 얼마나 괴물인지 실감했다.
지켜야 할 존재가 생긴 나태의 악마는 실로 막강한 존재였다.
그 아자토스에게 받은 상처를 단시간에 회복할 정도로.
“결국 또 아자젤을 만나봐야겠네.”
당장 만나기 가장 만만한 상대는 단연 아자젤이었다.
이 세계의 아자젤은 지수에게 있어 가족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현재 지수의 상태가 어떤지 묻기 가장 적절한 상대였으니까.
딱히 지수를 만나는 게 긴장되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다.
정말로.
***
“맙소사.”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자젤은 깜짝 놀란 눈으로 휘둥그레 눈을 떴다.
늘 하얀 드레스를 즐겨 입는 그녀였지만, 오늘 그녀가 입은 드레스는 유독 희었다.
“까마귀! 아니, 김세한, 당신 어떻게…… 돌아온 거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나와 이드라를 번갈아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자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그런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세계를 거치며 다양한 아자젤을 보았지만 이정도로 감정적인 아자젤은 없었으니까.
광기의 마왕 세계의 아자젤도 제법 감정적이었지만, 눈앞의 아자젤은 그런 그녀보다 적어도 더 감정에 충실했다.
“놀랍구나. 이 세계의 신자운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게냐?”
이드라도 내심 놀랐는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모른다.
분명 신자운과 아자젤의 관계는 다른 세계와 같을 텐데도, 보다 발전된 감정변화를 내보이고 있었다.
‘한계돌파의 영향인가?’
아자젤이 늘 쓰고 있던 가면이 몇 겹이나 부서진 느낌이었다.
“거기다 이드라까지! 분명 디아사이드의 건물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아! 세한이 돌아왔으니 마중을 나온 거야?”
“디어사이드는 아직도 유지가 되고 있는 건가?”
“아, 물론 내 편의상 그렇게 부르고 있을 뿐이야. 길드는 이미 해체되었지. 거기는 달라진 현 세계를 관리하는 정부와도 같은 장소가 되었어. 정확히는…… 신과 인간의 사이를 중제하는 곳이라고 해야 되나?”
“과연.”
나는 아자젤의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하나 더 신경 쓰이는 점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드라가 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건 무슨 뜻이지?”
“그야 당신 때문이지.”
이드라는 내가 실종된 이후, 줄곧 그곳에서 틀어박힌 뒤, 몇몇 소수를 제외하곤 교류를 가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심지어 마왕님이 찾아갔을 때도 만나주지 않았어. 무척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야.”
심지어 지수가 먼저 이드라를 만나러 간 적도 있었던 모양이다.
아자젤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눈치였지만, 나는 이드라가 왜 그런 상태인지 손에 잡힐 듯 알 것 같았다.
나의 신은, 무척이나 섬세한 성격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