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엔딩, 그 후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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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엔딩, 그 후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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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엔딩, 그 후에(1)
2022.06.28.
몽상의 던전으로 탄생했던 세계.
그 세계의 사람들과 작별한 후, 나와 이드라는 수많은 세계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아자토스가 세계를 관조하던 ‘혼돈의 영역’의 심처.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만도 할 텐데, 볼 때마다 낯설었다.
“아버지가 보던 세계란 이렇게 하찮았던 게로구나.”
수많은 공기 방울들을 바라보며 이드라가 중얼거렸다.
비록 대부분의 힘을 한 우주에 두고 왔지만, 그런 건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작은 편린에 불과한 힘이라도 다른 세계로 도약하는 데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으니까.
작은 요정의 형태로 내 어깨 위에 서 있던 이드라는, 그런 아자토스의 힘을 내가 다룰 수 있게 조율했다.
“정말 그곳에 아버지의 힘을 두고 와서 다행이로구나. 만약 전부 다루려고 했다면 그대의 인격이 소실되는 게 빨랐을 거라 본다.”
“네가 곁에 없었다면 그랬겠지.”
별생각 없이 그렇게 말하자, 이드라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리곤, 새빨개진 얼굴로 내 볼을 작은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정말! 적응 안 되는 말은 하지 말 거라! 내 계약자는 그런 말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단 말이다!”
“……내가 뭘 얼마나 특이한 말을 했다고.”
“으으.”
파르르 몸을 떠는 이드라의 모습에 나는 픽 웃었다.
“이미 십 년에 가깝게 이런 태도였는데? 오히려 ‘플레이어’인 나와 만난 시간이 이젠 더 짧잖아?”
내가 ‘새로운 미래’의 세계에 머문 기간은 거의 10년이다.
내 입장에선 오히려 이런 이드라의 태도가 신기했다.
“그건 그렇다만…… 그때의 인상이 워낙 강하지 않느냐. 그, 그리고 외신에게 10년이란 찰나와도 같도다.”
뒤로 갈수록 이드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도리어 나는 이런 그녀의 모습이 신선했다.
내가 플레이어였을 때는 오히려 이드라 쪽에서 감정표현과 스킨십에 충실했으니까.
“아무튼, 찾았어?”
“그래.”
“이제 저곳만 거친다면 본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나?”
“아마 그럴 거다.”
이 혼돈의 틈새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세계들.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그 세계들에 간섭하는 데 드는 힘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다른 수많은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세계일수록 더더욱 많은 힘이 필요하다.
‘그러니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돌아갈 수 없단 말이지.’
혼돈의 틈새, 수많은 공기 방울들 사이에 거대하게 빛나는 ‘별’이 있었다.
이 어두운 공간을 밝히고 있는 하나의 세계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나의 세계.
아자토스의 힘을 일부 흡수한 나조차 감히 간섭할 수 있는 곳.
수많은 세계를 마치 성운(星雲)처럼 거느려 쉬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장소.
“아버지를 쓰러트리고, 거기에 1회차의 세계와도 합쳐진 세계이니 당연한 일이야.”
이드라가 나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함께 나의 세계를 보았다.
수많은 세계 중 단 두 곳만 존재하는 마왕이 저기에 있다.
또한 모든 가능성을 손에 쥔 정의의 여신이 별을 수호하고 있다.
사랑을 깨달은 나태의 악마가 존재하며, 수많은 신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세계.
어떤 세계도 도달하지 못한 궁극의 결말.
심지어 아자토스를 죽인 세계가 바로 저곳이니, 아무리 나라도 한 번에 저 세계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아자토스의 힘조차 간섭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니 한 다리 거쳐서 가야지.”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또 다른 미래’에서 살아가며 아자토스의 힘에 익숙해졌고, 이드라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저 세계는 아니어도, 비슷한 세계에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나의 세계’로 도약한다면 보다 거리가 가까우니 충분히 가능할 터.
‘뭣보다 거기엔 도와줄 사람들도 있으니.’
나는 이드라와 시선을 마주친 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목표는 ‘나의 세계’의 주변을 떠도는 수많은 성운.
그 속에서 가장 빛나는 세계.
편린의 힘을 이끌어, 나는 가까스로 그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바로, 광기의 마왕.
그 후의 세계에.
***
광기의 마왕.
이드라를 잊은 내가 미쳐버려 세계의 적이 되어버린 세계.
하지만 반드시 필요했던 세계이기도 하다.
“이 세계도 벌써 두 번째로구나.”
광기의 마왕 세계는 ‘또 다른 미래’보다는 훨씬 발전된 세계였다.
이전에 한번 몽상의 신전을 통해 왔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보다 한층 활기차고 발전되어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 있는 빌딩들과, 하늘에 떠도는 수많은 옵저버들.
물론, 저건 퍼블리셔와는 관련이 없는 옵저버였다.
“근데 너.”
거리에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묘하게 밝은 이드라의 얼굴이 보였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
“으응?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
“뭐가.”
“전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감상에 젖을 수 없었다만. 이 세계는 결국 나를 잊어 망가진 그대가 원인이 된 세계다.”
그렇게 말한 이드라는 이 세계 자체가 무척 흡족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는 존재가 그대에게 그 정도로 크다는 증거이니, 흡족할 수밖에.”
“크흠.”
이번엔 나도 곧바로 반박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으니까.
“……아무튼 바로 마계로 가야 하나? 어쨌든 직함은 마왕이니 마계에 있을 거 아냐.”
내가 이드라에게 그런 말을 꺼낸 순간, 묘한 기척이 옆에서 느껴졌다.
찰칵!
“응?”
시선을 돌리자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두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나로선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들이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갑자기 왜 내 사진을 찍지?’
다른 연예인이랑 착각이라도 한 건가?
아무튼 멋대로 남의 사진을 찍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저기.”
“무례하구나! 갑자기 사진을 찍다니!”
내가 말을 거는 것보다 빠르게 이드라가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지금의 이드라는 평소의 요정만 한 크기가 아닌, 인간의 신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날카로운 이드라의 말에 두 여성은 당황하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뭐야?’
갑작스런 그녀들의 반응에 당혹스러운 건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세등등하게 따지려던 이드라도 묘한 기색을 읽었는지 발을 멈췄다.
“이드라 님 아니세요?! 요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분명 인터넷에선 함께 가족 여행을 가신다고 들었는데 두 분은 왜 여기 계신가요? 지수 님은 어디 계시죠?”
아무래도 이드라는 주변 인간들에게 친숙한 이미지인지 저마다 다가와 말을 걸었다.
덕분에 나와 이드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여행? 그걸 내가 이드라와 함께 간다고?’
물론 이드라는 내게 있어 가족만큼이나 친숙한 존재다.
아니, 애초에 마땅히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없는 나로선 유일무이한 가족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나와 이드라는 어디까지나 인간과 외신이었다.
“묘하구나.”
이드라도 그걸 느꼈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전과 달리 이젠 사람을 대하는 데 제법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그야 ‘이루어진 꿈’의 세계에서 보낸 시간이 상당히 길었으니 당연한지도 모른다.
“우선 이 사람들에겐 제대로 된 답변을 듣기 힘들 거다. 그러니…….”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가자?”
이드라의 머리가 미약하게 끄덕여졌다.
나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우선 이런 건 당사자에게 이야기 듣는 게 좋겠지.
‘이 세계의 나는 대체 뭘 한 거야?’
묘한 불안감이 생겼다.
뭔가 달라졌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어디 보자…….”
나는 익숙한 기운을 찾았다.
바로 마왕인 내가 흘리는 기운.
정확히는 마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열쇠, 검은 왕관의 기운이었다.
‘찾았다.’
기운이 느껴지는 위치는 지구가 아니었다.
바로 마계.
‘……가족 여행을 마계로 갔나?’
그 황폐한 세계에 뭐가 볼 게 있다고 거기로 갔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우선 진실을 알기 위해 나는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로 도약했다.
그것에 무엇이 있을지는 상상조차도 못한 채.
***
마계, 나태의 영토.
마계의 7대 악마 중 3위이자, 유일무이한 대공인 아자젤의 영역.
그곳에는 드물게도 많은 인간들이 머물고 있었다.
“후후후.”
“……?”
나태의 궁(宮)에서 열리는 간단한 다과회.
아자젤은 대화를 나누던 민수아가 갑자기 웃자 조금 의아해했다.
“갑자기 왜 웃는 거니?”
“아, 죄송합니다. 조금 재밌는 미래를 봤거든요.”
“재밌는 미래?”
아자젤은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지만, 특별히 묻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의 입에 젖병을 물릴 뿐이었다.
“예전처럼 묻지 않으시는군요?”
“그래, 물었다간 움직이고 싶어질 테니까.”
나태의 악마라고 불리지만, 아자젤은 무척이나 호기심이 많다.
특히 재미있는 일이라면 언제나 끼어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 아자젤은 자신의 호기심을 죽이면서까지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민수아는 신선하면서도 조금 감동했다.
“처음 자운 씨가 아자젤 님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는 불안했는데, 좀 안심되네요. 후후.”
“자, 자운 씨?”
별생각 없이 칭얼거리는 아이를 어르고 있던 아자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늘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겐 무척 드문 모습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거니? 전에는…… 그냥 오빠라고 불렀으면서.”
“어머나, 언제나 여동생으로 있을 수는 없지 않나요? 마침 마왕님께서 이렇게 먼저 일을 벌여주셨는데.”
고양이처럼 미소 지은 민수아가 테이블 위의 차를 가볍게 마셨다.
아자젤은 차마 준비된 다과에 손을 뻗지 못했다.
늘 눈을 감고 있는 민수아는 아무리 아자젤이라도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포기한 거 아니었니?”
“제가 그런 미래가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나요?”
“너 인기도 많고, 솔직히 자운이가 아니어도 되잖아.”
“이젠 그냥 이름으로 부르시나 보네요? 보기 좋아요.”
아자젤은 조금 초조해졌다.
이렇게 초조한 게 얼마만일까.
처음 나태의 위(位)를 따내기 위해 벨페고르에게 도전할 때가 이런 기분이었다.
“인간은 보통 한 명하고 결혼하는데…….”
“그건 문화권마다 다르고, 이젠 자운 씨는 인간도 아닌걸요.”
얘가 이렇게 집요한 성격이었나.
아자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품에 안긴 아기만 열심히 흔들었다.
아이는 엄마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꺄르르 웃었다.
“아무튼.”
초조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자젤의 시선에 민수아는 픽 웃었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죠.”
“노, 농담? 정말?”
“물론 사심도 섞여 있지만요.”
대체 그 사심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이래저래 신자운은 민수아에게 의지를 많이 하며, 많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광기의 마왕 엔딩 이후, 민수아를 홀로 지구에 내버려두고 와야만 했으니까.
그게 그녀의 의지였다지만, 신자운은 그녀가 자신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민수아가 이 나이 먹도록 결혼도 못한 자신을 책임지라고 한다면, 과연 신자운은 거절할까?
그 고지식한 남자가?
“아자젤 님, 그보다 마중 나가는 게 어떨까요?”
“……마중이라니? 오늘 나태의 영역에 오기로 한 이 중, 내가 마중 나갈 자는 없을 텐데?”
“그야 예약되지 않은 손님이니까요.”
그럼 무려 7대 악마의 영역에 미리 말도 않고 멋대로 찾아온 자가 있단 말인가?
혹시 적이 쳐들어왔다는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민수아의 표정을 보면 그건 아니었다.
‘정말 예전엔 저런 애가 아니었는데.’
인간은 너무 빨리 변한다.
어른이 된 민수아는 아자젤로선 감당하기 힘들 만큼 지독한 능구렁이로 성장해 있었다.
애초에 예지의 신보다 뛰어난 예언능력을 지닌 그녀를 심리전으로 이길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좋아.”
그러니 아자젤은 흔쾌히 승낙했다.
어쨌든 민수아는 허튼소리를 하는 성격은 절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