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이루어진 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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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이루어진 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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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이루어진 꿈(3)
2022.06.28.
이미르는 이 모든 게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초월자들인 거인들을 저리 간단히.’
최상급의 신격을 가진 신도 저런 건 불가능하다.
아니, 애초에 저 남자가 가진 힘의 총량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르도 짐작하기 힘들었다.
이 정도의 힘을 지닌 건, 자신이 알기로 전 우주를 관리하는 시스템과…… 외우주에 존재한다는 외신의 왕뿐.
‘외우주에 연락이 닿지 않은 지가 언제부터였지?’
이드라가 이 우주에 간섭한 순간부터, 조금이나마 시선을 두던 존재가 사라진 게 언제였던가.
“막아! 막으라고!!”
거대한 거인들이 마치 평범한 필멸자처럼 스러져갔다.
남자가 손짓하자 허공에 검은 공간이 생겨나며, 그 속에서 흑색으로 이루어진 무수한 창들이 튀어나와 거인들을 꿰뚫었다.
공간 자체를 비틀어버린 것이기에 튼튼한 거인의 피부라 할지라도 간단히 꿰뚫렸다.
“이미르 님, 제가 나서겠습니다.”
“반고.”
이미르가 뭐라 말릴 틈도 없이 부사장인 반고가 검은 남자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 우주에 거인이란 존재가 처음 탄생한 순간부터, 무(武)에 매진해온 반고다.
퍼블리셔 최강의 전사라고 불러도 좋은 그가 나섰으니, 보통이라면 든든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불온하게 뛰는 가슴은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
“반고.”
매서운 기세를 뿜어내는 거인을 보며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나를 아나?”
“모를 리가.”
퍼블리셔를 아는 이 중에 반고를 모를 리가 없다.
2회차에선 린이 쓰러트렸던 상대.
그 힘은 퍼블리셔의 부사장이라는 직책에 맞게 대단히 강력했다.
시간마저 역행시키는 그를 상대하려면 시공의 법칙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어야만 했으니까.
“이드라, 괜찮지?”
“물론이지 않느냐.”
나는 슬쩍 이드라에게 물었다.
반고를 상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나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지 물은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신은 언제나 그렇듯이 든든한 미소를 보였다.
“그대의 육신은 1회차와 2회차의 나를 합친 것이다. 세 명분의 나라면, 아버지의 힘을 조금이나마 사용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좋아. 그럼 잘 좀 가르쳐 달라고.”
외신의 힘을 다루는 건 인간인 나에겐 어렵다.
단순히 정신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이드라의 도움을 받아, 조금이나마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 몸에서 움직이는 ‘외신의 왕’의 편린을 느끼고 읽는다.
“이 힘은, 대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대한 힘을 느낀 반고가 경악하며 내게 덤벼들었다.
무(武)의 극한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주먹은 보는 것만으로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 하겠네.’
린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무재가 그 정도로 뛰어나지 못했다.
딱!
나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나를 향해 쇄도하던 반고와 나 사이의 공간이 비틀리며 반전됐다.
“!!”
반고의 몸은 단번에 나를 지나쳐 내 등 뒤에 나타났고, 나는 녀석의 등 뒤에 섰다.
“빵.”
콰아앙!!
녀석의 등을 향해 오른손으로 총을 쏘는 재스쳐를 취하자, 굉음이 울리며 반고의 몸이 수평으로 붕 날아가며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물론 녀석이 지상에 떨어지기 전에, 가볍게 손바닥을 펼쳐 그 몸을 재차 하늘로 반전시켰다.
“크으으윽!!”
그 상황에서도 몸의 균형을 잡은 반고는, 시간의 흐름을 역행시키려 했지만.
“상대가 영 좋지 않아.”
안타깝지만 반고는 무(武)를 제외한다면 다양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시간을 역행하고, 강력한 무력을 지닌 반고는 실로 무적에 가까운 힘을 지녔지만, 나와 같이 다양한 능력을 사용하는 상대에겐 그다지 어려운 상대가 아니다.
‘뭐, 그건 내가 아자토스의 편린을 지녔기 때문이지만.’
일반적인 ‘법칙’을 가볍게 저항하는 반고지만, 내가 가진 힘은 열쇠를 상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시스템의 최우선적인 권한과 같다.
안타깝지만 반고의 저항력으론 나의 힘에 버틸 수 없다.
아마 이걸 저항할 수 있는 건 지수나, 혹은 린.
그리고 한계돌파를 사용한 아자젤 정도가 전부다.
이 세계에선 유일무이하게 열쇠를 가진 이미르뿐이겠지.
“너는 덤비지 않나? 이미르.”
“…….”
반고가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음에도 이미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진작에 나를 향해 덤볐어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이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르는 굳은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너는, 아자토스인가?”
“오.”
제법 예리한 말이었으나, 안타깝지만 달랐다.
“그럴 리가 있나. 아자토스가 인간의 모습을 했다고 말하는 건가?”
“그건…….”
“아무튼 너라면 알 거다. 너희들은 나를 이길 수 없다.”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살아남은 거인들의 근처에 공간이 열리며, 새까만 칼날이 튀어나와 목을 겨누었다.
“나는 환상을 현실화할 수 있거든. 이전이라면 신격을 퍼부어도 그 힘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실이 된 환상에 실린 신격의 격이 현저히 올라갔다.
지금 ‘이드라’의 능력은 사실상 전능에 가까운 상태라고 봐도 좋다.
단순한 꿈과 환상이 아닌, 아자토스의 꿈에 가까운 힘이니까.
‘이런 엄청난 힘을 생각하면 우리가 아자토스를 꺾은 건 정말 운이 좋았어.’
만약 아자젤이 한계돌파를 하지 못했다면, 아자토스에게 닿을 만큼 무한하게 강해지지 못했다면. 그리고 이드라가 필멸의 말뚝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대로 패배했을 것이다.
“영리한 너라면 알 테지, 이미르.”
“…….”
이미르는 시스템과 합신할 수 있다.
분명 그렇게 된다면, 나라도 조금은 귀찮아질 거다.
아직 나는 이 힘에 완전히 익숙해진 게 아니었으니까.
‘물론, 패배할 일은 없겠지만.’
이미르는 말이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타파할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이대로라면 말 그대로 퍼블리셔가 괴멸하고 말 것이다.
나와 퍼블리셔의 싸움은, 일방적인 학살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너라면 시스템조차 무너트릴 수 있을 터.”
나는 녀석의 입을 열었을 때, 가볍게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나와 이미르를 둘러싸는 검은 장막이 생겨났다.
“네 말대로, 나라면 할 수 있다.”
본래는 그렇게 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뭐?”
“당장 너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할 수 있다. 시스템을 부수고, 게임으로 점철된 이 세계를 끝내는 것도 가능하다.”
퍼블리셔는 이미 큰 타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거인들을 죽었고, 남은 건 주요 간부들 정도가 전부다.
이전처럼 섣불리 별을 멸망시키고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끝내면, 신과 인간이 갑자기 달라진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
2회차에선 차근차근 이야기를 진행하여 신들 스스로 시스템에게 반역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지금은 불가능하다.
“나는 시스템을 부술 거다, 이미르. 하지만, 조금의 여지는 주마.”
우선 시스템과 퍼블리셔의 의도는 나쁘지 않다.
우주의 존속을 바라는 게 나쁠 리가 없다.
다만 방법이 잘못됐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새장에 가둬버렸으니까.
이미르는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여태 시스템의 사도로서 움직여온 자이니, 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거겠지.
생각에 잠겨 있던 이미르의 입이 열린 건 대략 5분이 지난 후였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 거냐.”
결국 녀석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하나뿐이었다.
***
시간이 흘렀다.
‘게임’은 끝나지 않았지만, 세상은 평온하게 흘러갔다.
마치 ‘광기의 마왕’의 세계와 비슷했지만, 그보다 평화로웠으며 기운이 넘쳤다.
“정말로 괜찮은 게냐.”
디어사이드 길드의 옥상에서 발전한 도시를 바라보고 있자, 이드라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이방인이야, 이드라.”
“그렇지.”
“내가 이 게임을 끝내선 안 돼.”
모든 게임에는 엔딩이 존재한다.
그러니 이 세계도 분명 언젠가는 클리어가 될 것이다.
“그래도 전과 같이 시스템이나 퍼블리셔가 별을 멸망시키려 하진 않잖아?”
“못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대가 두려우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이젠 린도 컸거든.”
올림포스가 보관하던 열쇠의 반쪽도 린에게 넘어갔다.
마계의 열쇠는 여전히 비어 있지만, 그건 사실 이젠 없어도 된다.
우우우웅!!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에 검은 부등변다면체가 떠올랐다.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
니알라 토텝이 만들었던 것보다 강력하고, 한없이 진짜 열쇠에 같은 것.
“이미르는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게임을 올바른 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거다. 모든 신과 인간이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외로 놈을 믿는구나.”
“녀석은 나와 닮았거든. 대체재가 생겼다면 굳이 게임을 유지할 필요 없지.”
결국 이미르의 목적은 우주를 영구존속시키는 거다.
전이라면 ‘게임’이라는 걸 이용했지만, 이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이라면.
외신의 왕의 힘을 담은 그릇이라면 게임이 없어도 우주를 존속시키는 게 가능했다.
시스템도 이걸 사용하면 간단히 해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리사욕에 쓰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
“그럴 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린이 있잖아? 만약을 대비해 이것을 다룰 권한을 줬어.”
“그래…….”
이드라는 조금 슬픈 얼굴이 되었다.
내가 다루지 못하는 아자토스의 힘은 이 우주를 존속시키기 위해 남겼다.
솔직히 우주 하나를 존속시키기엔 차고도 넘치는 힘이다.
본디 환상에 불과했던 이 세계는, 이걸로 완벽한 ‘현실’이 되었다.
‘나 혼자라면 무리였겠지만, 이드라가 도와줘서 가능했지.’
이제 내가 가진 힘은 정말 아자토스의 편린뿐.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를 이길 존재는 없으리라 본다.
“언제든 회수할 수 있다지만…… 그대는 하지 않을 터.”
“나는 ‘신’이 될 생각이 없으니까.”
씩 웃으면서 답하자, 이드라는 옅게 웃었다.
“그럼 이제 떠나겠구나.”
“이제 이 세계는 내가 없어도 돌아갈 테니 이방인은 떠나줘야지.”
“내가 말린다면, 떠나지 않을 테냐?”
“아니.”
짤막하게 대답하자 이드라의 표정은 한층 울적해졌다.
나의 신은 정말로 감정표현이 풍부하다.
전보다 훨씬 인간다워졌다.
이 육신이 이드라의 몸을 기반으로 했기에, 2회차 이드라의 감정을 이어받은 건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이제, 그대가 없는 이 세계에서 살아야만 하는 건가.”
힘없는 혼잣말.
이젠 나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을 생각인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음…….”
나는 그런 이드라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이드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며 손을 뻗었다.
솔직히 스스로도 무슨 마음으로 녀석을 불렀던 건지는 모르겠다.
“같이 가자.”
하지만, 하나만은 확신한다.
나는 결코 이드라를 버릴 수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설령 다른 세계, 다른 차원의 이드라라고 할지라도.
“……!”
이드라는 그런 내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붉게 달아오른 볼은 노을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눈가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녀석의 눈에 담겨 있는 인간의 감정.
누가 저걸 외신의 눈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응!”
이드라는 망설임 없이 내 손을 잡았다.
평소에 보이던 거만하고 오만한 신의 모습조차 버린 채.
그렇게 우리는 그 세계에서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