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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이루어진 꿈(2) (314/332)


314. 이루어진 꿈(2)
2022.06.28.


꿈과 환상의 마녀.

드림위치 이드라.

나름 외신으로서 한 끗발을 날리는 그녀지만, 최근 고민이 생겼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도다.’

양자택일 퀘스트 이후, 인류는 다시 부흥기를 맞았다.

인구는 여전히 부족했지만, 현 상황이 유지된다면 언젠가 아이들이 생기고 인류의 숫자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건 분명 좋은 일이었으나,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일이 수월해도 너무 수월하지 않은가.

“저기, 계약자여. 최근 퀘스트의 진행사항은…….”

“당분간은 없을걸? 이미 다 깨버려서.”

“……벌써?”

이드라는 최근 나타났던 퀘스트들을 떠올렸다.

하나 같이 최소 B급 이상. A급이나 S급도 섞여 있는 지옥 같은 퀘스트의 릴레이.

‘당황한 퍼블리셔가 작정하고 지구를 조지려는 모양인데.’

양자택일 이후에 퍼블리셔는 지구를 망가트리기 위해 퀘스트를 말 그대로 쏟아냈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스울 정도로 간단히 클리어되었다.

대부분의 퀘스트는 모든 재능을 각성한 린 테일러가 말 그대로 쓸어버렸으며, 정 위험하다 싶은 건 세한이 나서면 간단히 정리되었다.

‘이상하다, 이상해.’

세한이 분명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게 분명한데 알 수가 없었다.

외신인 자신조차 계약자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계약자의 얼굴을 이드라는 몰래몰래 지켜보았다.

그것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유리창에 비친 세한의 얼굴을.

이전의 세한이라면, 곁에 이드라가 있다면 저런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복잡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였으나, 이드라는 유리창에 비친 입술의 움직임으로 세한의 혼잣말을 알아차렸다.

“지수는 잘 있으려나……라니?”

지수? 이드라는 합신했을 때 읽었던 세한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수라고 하면 처음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 죽었다는 후배가 아닌가.

‘죽은 사람에게 애도를 표하는 느낌은 아닌 것 같다만.’

이래서야 세한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평생 이 찜찜한 기분을 해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혹시 합신할 정도로 강한 적만 나오면 좋을 텐데.’

합신을 하면 아바타와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그럼 분명 지금 세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왜 저렇게 된 건지 알 수 있을 터.

“음?”

그런 이드라의 바람이 닿았기 때문일까.

서울의 상공에 이변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창밖을 바라보던 세한 또한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으니, 결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마,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지만.’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러면 마치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 것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지 않은가.

“……뭐,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

딱 봐도 세계적인 위기였으나 세한은 살짝 눈을 찌푸렸어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저렇게 하늘에 구멍이 뚫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퍼블리셔가 시스템의 제약을 풀고 지상에 강림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이드라.”

“응? 왜 그러느냐, 계약자여.”

“가자. 너의 도움이 필요해.”

세한은 망설임 없이 이드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눈에는 전과 달리 무한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 눈을 빤히 바라보던 이드라는 이내 픽 웃었다.

‘그래, 아무렴 어떤가.’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사랑하는 계약자가 자신을 믿고, 이토록 신뢰를 보낸다면 이 세계가 한낱 몽상일지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으니까.

***

서울의 상공에 하늘이 열렸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웅장해지고, 공포에 떨 만한 광경이었으나 이제 나는 좀 심드렁했다.

‘이걸 본 게 이번으로 세 번째인가?’

처음 보았을 때는 절망감을 느꼈고.

두 번째 보았을 때는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지 긴장감을 느꼈다.

하지만 세 번째는…… 뭐라고 해야 하나.

좀 귀찮았다.

“아저씨!! 저게 대체 뭐죠? 하늘에 구멍이 뚫렸어요!!”

비명을 지르며 저마다 도망가는 시민들의 틈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언제 왔는지 린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2회차의 린 정도는 아닌가.’

지금의 린도 자신의 재능을 모두 개화한 상태인 건 맞다.

하지만 2회차의 린은 재능을 개화하고, 열쇠를 얻은 뒤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단련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의 린은 열쇠도 없을뿐더러, 신격을 다루는 방법도 완벽히 익히지 못했다.

‘뭐, 지금 그런 건 별로 상관없다만.’

나는 하늘을 보았다.

열린 구멍에선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거인들과 그 뒤에 거대한 신격을 드러내며 나타나는 이미르, 반고.

그리고 ‘GM’들 사이에 서 있는 아카터스.

참 반가운 얼굴들이 아닐 수 없다.

‘외신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없군.’

이럼 쉽지.

아니, 데려왔으면 오히려 도움이 됐으려나?

내가 가진 힘을 생각한다면 아군으로 포섭할 수도 있을 테니.

“흠, 좀 이상하구나. 이렇게 퍼블리셔가 대규모로 모습을 드러낸다면 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놈?”

“니알라토텝 말이다.”

“아아.”

생각해 보면 녀석도 이 세계에선 살아 있을 것이다.

모든 시공간을 아우르는 외신은 아자토스와 요그 소토스 단둘뿐이니.

그 외의 외신들은 아무리 강해도 ‘다중우주’의 벽을 넘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자토스와 요그 소토스의 경우, 모든 다중우주 속에서도 단 하나의 개체만 존재한다.

아자토스는 죽었고, 요그 소토스는 이드라에게 쓰러졌으니, 외신들이 침묵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자젤이라면…… 모르겠다만.’

뭐 그건 녀석의 능력인 한계돌파에 따라 달라지니 잘 모르겠다.

그 녀석은 린 만큼이나 존재 자체가 버그 덩어리이니.

‘아니지. 생각해 보면 이드라도 해냈으니. 외신급이 된다면 누구나 가능한지도 모르겠군.’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이드라를 보며 녀석의 머리를 슥 쓰다듬었다.

녀석은 갑자기 무슨 짓이냐는 눈으로 보았지만, 나는 딱히 설명하지 않았다.

“녀석이라면 지금 아주 바쁠 거다.”

“바쁘다니?”

“누군가가 실종되셨을 테니 찾고 있을걸?”

“??”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이드라를 보고 있으니, 녀석이 외신 쪽과 연락을 하지 않은지 정말 오래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간 축이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이 세계가 사라지기 전의 시간에 간섭한 것이라면 분명 ‘양자택일’이 끝난 시점부터 이 세계는 완벽히 활성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아자토스의 존재 또한 그 시점을 계기로 완벽히 소실되었다는 뜻이니.

아마 니알라토텝은 사라진 아자토스를 찾아 우주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저씨!! 이대로라면 모두 죽을 거예요!!”

평온한 나의 마음과 달리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린은 다급히 나를 불렀고, 옵저버들도 아주 난리가 났다.

게임이 역주행하고, 이 세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새로운 엔딩에 도달하기 직전이라고 봐도 좋다.

그런데 그걸 퍼블리셔가 나타나 죄다 깨부수려는 거다.

‘신들은 분노하고, 퍼블리셔에 큰 반감을 가질 테지.’

우리 2회차의 세계를 생각하면, 퍼블리셔를 향한 신들의 불만은 이미 가득 쌓여 있었다.

나는 그 감정을 이미 2회차에서 한번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두 번째는 더욱 쉬웠다.

“모두 도망칠 필요 없다고 전해.”

“네?”

“내가 모두 끝낼 테니까.”

나는 린의 등을 손바닥으로 탁 치며 앞으로 나섰다.

이전에는 힘이 부족했기에 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힘이 있는 지금이라면 아직 어린 린을 싸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린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으나, 그 가능성을 꼭 무력에 꽃 피울 필요는 없다.

“이드라.”

나의 신을 본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녀석은 단 한 번도 약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믿었다.

내가 무슨 해답을 가지고 있으리라 순수하게 믿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신이니까.

신은 무지하기에 고귀하다.

“합신 한번 어때?”

“그럼 몸이 또 망가지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괜찮아.”

오히려 더 좋다.

양자택일의 나와, 지금의 내 육신은 전혀 달랐으니까.

“좋다. 나의 계약자여, 그리고 나의 대리자여.”

이미 한번 합신을 했기에, 재차 계약의 언령을 읊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이드라에게 손을 뻗고, 그녀가 그 손을 잡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

콰아아아!!

밝은 광채가 서울을 뒤덮는 동시에 하늘에 뚫린 구멍에서 거인의 군세가 쏟아져 내려왔다.

괴성이 울리며 수많은 마법, 그리고 무수한 무기의 세례가 지상을 향해 비처럼 떨어졌다.

이것만으로 서울을 초토화시키는 건 간단할 것이다.

적어도 아카터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외신과의 합신이라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드라, 이 변질자 년!

저년만 아니었어도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돌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야 당분간 승진은 글렀구나.’

아카터스는 어깨를 움츠렸다.

외신과 플레이어가 합신하며 광채를 발하자, 퍼블리셔의 고위직들이 죄다 자신을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사장인 반고와, 이미르의 시선은 사나웠다.

“대체 한국 서버를 어떻게 관리하면 저런 존재가 튀어나오는 거냐.”

“그, 그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얼마 전까진 죄다 죽기 직전이었는데…….”

“외신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의의 여신과 합신한 계집도 그렇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필경 퍼블리셔에 큰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일개 플레이어입니다! 지금이라면 분명 전부 처리할 수 있습니다!”

아카터스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강해도 저들은 플레이어이니 시스템의 힘을 벗어날 수 없다.

대단한 재능을 지녔어도 ‘열쇠’를 가진 플레이어가 아닌 한, 이미르의 권한을 넘어서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설령 권한을 사용하지 않아도, 최상급 신격을 가진 거인들의 군대.

거인왕 이미르와 태초의 거인 반고.

이들을 막아낼 존재가 있을 턱이 없다.

보통, 이라면 말이다.

“어?”

아카터스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서울을 향해 떨어지던 마법이 사라졌다.

공중에서 쏟아지던 거인들은 공중에 우뚝 멈춰 버렸다.

그들이 내던진 무기들 역시 지상에 닿지 않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건.”

그것을 바라보던 이미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벌어진 일은 설령 ‘최상급 신격’을 가진 신이라도 불가능하다.

시스템의 권위를 등에 업은 거인들을 모조리 저지해 버리다니.

‘이드라의 힘인가? 아니, 그녀는 그 정도의 힘이 없다.’

외신은 강하지만, 이드라는 그 정도로 강한 외신은 아니다.

이런 게 가능할 정도의 외신은…….

“이런 것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군.”

그때, 수많은 거인들의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뚜벅뚜벅,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을 밟으며.

아카터스는 그를 벌게진 눈으로 노려보며 외쳤다.

“김세한!! 서, 설마 네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

“이거?”

세한은 움켜쥔 주먹을 천천히 들었다.

허공에서 쏟아지던 마법들과 무기들은 허수공간에 삼켜졌다.

거인들은 자신의 신격으로 만든 주박으로 묶어버렸다.

간단하다.

가장 전능한 신의 편린은, 이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당연히 내가 했지.”

움켜쥔 오른손의 주먹을 확 펼치자, 거인들의 주변에 수천 개의 검은 공간이 열렸다.

동시에 녀석들이 사용했던 마법들이 공간에서 튀어나와 신격에 구속된 거인들을 향해 쏟아졌다.

“이, 이건!! 으아아악!!”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지며 단번에 퍼블리셔 병력의 3분의 1이 일소되었다.

그것도 단 한 번에.

당연히 기세등등하게 서 있던 거인들의 안색은 단번에 창백해졌다.

살기 어린 외침도, 혼란 섞인 웅성임도 들리지 않았다.

세계는 단번에 고요해졌다.

갑작스런 사태에 지상의 인간들과, 하늘의 옵저버들도 굳어버렸다.

이건 결코, 일개 플레이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입을 열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 고요한 침묵 속에서도 시끄럽게 떠드는 건 세한의 어깨 위에 떠 있는 자그마한 이드라였다. 세한과 합신하며 작은 요정만 한 분체를 만들어낸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세한의 어깨 위에 서서 그의 머리를 작은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렸다.

“이제는 알겠다!! 그대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구나! 내 계약자가, 아니 나의 신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정말로 대단하다!!”

아낌없이 칭찬을 퍼붓는 이드라의 외침에 나름 폼을 잡고 있던 세한은 조금 머쓱해졌다.

나름 분위기를 잡았는데 이드라의 주책에 분위기가 미묘해진 탓이다.

‘합신하며 기억을 읽었을 텐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참으로 이드라답다고 해야 할지.

세한은 힐끗 이드라를 보았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정말 대단한 외신이지 않느냐. 아버지를 상대로 마지막까지 싸우다니. 이걸 당장 니알라 토텝에게 말해 녀석의 표정을 보고 싶구나. 분명 감정 없는 그 녀석도 크게 놀랄 게다.”

“워워, 진정해.”

지금 앞에 얼어 있는 퍼블리셔를 두고 할 말은 아니었다.

세한은 고개를 돌려 아직 남아 있는 수많은 거인들을 쭉 훑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키넨은 나가 있어.”

“예?”

거인들 틈에 긴장한 얼굴로 서 있던 거인이 벙 찐 얼굴로 답했다.

“왜? 계속 거기 있을래?”

“아, 아뇨. 고맙습니다.”

아키넨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거인들의 틈을 빠져나와 후다닥 도망갔다.

뒷일도 생각 않고 튀는 걸 보면 참 개방적인 성격의 거인이 아닐 수 없다.

아키넨이 사라진 걸 확인한 세한은 천천히 몸을 풀며 말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처음에는 저항이었고, 두 번째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는──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에게 벌을 주마.”

──일방적인 학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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