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
308. 불완전한 미래를 향해(1)
아자토스.
그는 우주가 탄생한 이래 언제나 절대자의 자리에서 군림했다.
길디긴 시간 동안 그가 지배하는 왕의 자리를 빼앗은 이는 없었으며 누구보다 완벽하고 절대적인 신으로서 존재했다.
그는 전지전능하고, 영원불멸하다.
그러니 그의 자리는 영원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이제 조금이었다.
죽음을 극복하고 가장 위대한 신으로 돌아가기 직전.
전지전능한 아자토스로 돌아가려는 찰나.
‘내 외피는 무적이다.’
그리 생각했다.
세한이 자신을 향해 불쾌한 쇠말뚝을 겨누는 순간에도 아자토스는 침착했다.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백색의 검을 보기 전까지.
‘그 악마!’
아자토스의 힘을 돌파하여, 그에게 인간이란 시련을 부여한 악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것이 도달하지 못하도록 현재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쥐어짜 막아 보려 했지만, 죄다 백색의 검에 베어졌다.
‘너는 나를 끝까지 방해하는구나!’
저 검술. 저 검기. 저 움직임.
모두 그 악마를 빼닮아있었다.
지금 저 정의의 여신은 그 악마의 움직임을 따라하고 있었다.
‘아니야.’
아자토스는 곧바로 자신의 판단을 수정했다.
‘단순히 따라하는 게 아니다.’
따라하는 동시에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것에 담긴 힘이나 속도는 진짜에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녀의 재능이 그것을 채웠다.
부족하다면 부족한 대로 현재의 자신에게 어울리게 개변한다.
그 결과.
백색의 검은 아자토스의 외피에 박혔다.
그리고 절대로 파괴될 리 없는 외피를 부쉈다.
여태 누구도 부수지 못했던 그것을 완전히 분쇄했다.
“너는 두 번 다시 신이 되지 못한다.”
망연하게 부서진 외피를 응시하던 아자토스의 귓가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외피가 부서지는 동시에 안으로 들어온 세한이었다.
그는 아자토스를 향해 파일벙커를 겨누었다.
“……김세한!!”
은색으로 빛나는 쇠말뚝.
저것이 어떤 물건인지 아자토스는 모른다.
하지만 저것에 담겨 있는 힘은 익숙했다.
바로 자신을 이 꼴로 만든 게 바로 저것에 담긴 힘이었으니까.
“내가 신이 되지 못한다고?”
방금 충격으로 회복되던 아자토스의 힘이 일부 흩어졌지만 시스템과 왕관은 아직 그의 수중에 있었다. 그것을 사용한다면 억지로 이어붙이는 정도는 가능했다.
물론, 시간이 허락한다면 말이다.
파지직!!
“큭?!”
열쇠와 시스템을 사용하여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으려던 아자토스의 몸에 스파크가 튀었다.
무언가가 열쇠와 시스템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자토스의 시선이 코앞까지 다가온 세한에게 향했다.
“이드라.”
그리고 그의 어깨 위로 뒤따라오는 작은 마녀를 보았다.
꿈의 마녀 이드라.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아자토스의 힘을 막아내고 있었다.
쩌적! 쩌저적!!
그 반동으로 그녀가 사용하는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이드라!!”
아자토스는 양손을 뻗었다.
분명 그의 생각대로라면 그가 뻗은 양손에서 쏘아진 힘에 눈앞의 인간이 소멸돼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양손에는 어떠한 힘도 모이지 않았다.
실낱같이 작은 힘조차.
무력한 인간과도 같은 몸부림만이 있을 뿐이었다.
“네가, 나를……!!”
이드라와 아자토스의 시선이 교차했다.
단호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는 더 이상 외신으로서의 그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저건 인간이었다.
「인간은 뭔가 신기한 존재입니다.」
아자토스는 아주 오래전, 이드라가 그런 말을 했을 때를 떠올렸다.
이드라는 이미 그때부터 인간의 형상을 하고, 아자토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와 이드라는 그다지 안면도 없고 말을 할 기회도 얼마 없었기에, 아마 제대로 된 대화는 그것이 유일했다.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다.」
「아버지의 시선에는 모든 게 그러하겠죠. 하지만 전……」
별과도 같이 거대한, 우주의 왕을 바라보며 이드라는 말했다.
「그들을 알고 싶습니다.」
그녀의 말에 아자토스는 어떤 말도 답하지 않았다.
하찮고 하찮은 우주의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에 대해 알아서 뭐하겠나.
그때의 아자토스는 이드라의 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시스템이 지배하는 우주로 떠났을 때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외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녀를 별종으로 취급했고,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존재는 니알라토텝이 유일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아자토스에게 돌아왔다.
인간이 되어, 어떤 외신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이제.”
흔들리는 동공으로 이드라를 바라보는 아자토스에게 세한은 그의 가슴팍을 향해 파일벙커를 겨누었다. 이제 더 이상 그에게는 어떤 수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끝이다.”
짤막한 세한의 선고와 함께 파일벙커가 사출됐다.
콰아아앙!!!
여태 모아두었던 세한의 신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그 힘으로 파일벙커를 앞으로 밀었다.
아자토스가 뻗은 양손의 사이.
그의 심장이 있는 장소를 향해.
“커어억!!”
가슴팍에 격돌한 파일벙커의 충격에 아자토스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웃기지, 마라.”
이를 악물고 말하는 아자토스는 자신의 가슴팍에 충돌한 쇠말뚝을 양손으로 쥐었다.
파일벙커는 확실히 아자토스의 심장이 있는 가슴팍에 닿았다.
하지만 꿰뚫지 못했다.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세한은 린이나 지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힘을 아꼈다.
직접적인 싸움보다는 둘의 싸움을 보조했다.
그것은 만약의 사태를 생각한 것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모든 힘을 폭발시키기 위함이다.
반면 아자토스는 불완전한 상태로 둘을 계속해서 상대했고, 모든 힘을 소모했다.
그런데도 파일벙커가 아자토스의 가슴을 꿰뚫지 못했다.
“나는 아자토스다.”
드득, 드드득!!
말뚝의 끝은 분명 그의 가슴팍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꿰뚫지 못했다. 앞부분이 조금 박혀 그의 가슴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 나를, 죽인다고?”
도리어 아자토스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말뚝에 양손을 좌우로 감싸고 짓눌렀다.
그의 힘에 조금씩 말뚝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주제를 알아라, 하찮은 미물들이!!”
부족하다.
세한은 깨달았다. 이 정도 출력으로는 아자토스의 심장을 꿰뚫을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진 신격, 이드라가 가진 힘. 그 모든 걸 쏟아도 결국 이 정도가 한계다.
소모됐던 아자토스의 힘은 점차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고 본래의 전지전능을 손에 넣게 되겠지.
그럼 말뚝은 파괴되고 모든 건 끝이다.
아자토스는 그런 세한의 생각을 읽었다.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야 깨달아도 늦었다. 이 말뚝을 부수고 당장……!”
“알고 있었다.”
“……뭐?”
기세를 높이며 소리치는 아자토스에게 세한은 씩 웃었다.
“나는 나를 신용하지 않아. 쉽게 풀리지 않을 건 진작 알았지. 내가 힘을 아무리 아꼈다고 한들 한계가 있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미 파일벙커의 쇠말뚝은 부서지고 있었다.
시간 안에 그가 자신의 가슴을 꿰뚫을 힘을 얻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이 당당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닥치고 죽으라는 거다.”
세한은 파일벙커를 장착한 오른팔의 장치를 꽉 죄며 아자토스의 가슴팍에 고정했다.
혹시나 파일벙커의 쇠말뚝이 옆으로 비어져 튕겨져 날아가지 않도록.
‘내 힘이 부족하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면 그만이다.
“한지수.”
세한의 등 뒤에 붉은 안광이 나타났다.
아자토스는 그제야 그의 등 뒤에서 계속 뒤따라왔음을 깨달았다.
‘언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체 언제부터 세한의 등 뒤에 있었던 것인가.
답은 간단했다.
지수는 린이 외피를 부술 때 이미 세한의 뒤에 있었다.
그것을 아자토스가 눈치채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스토킹」
스토킹의 대상으로 선택된 대상은 지수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다.
평소의 아자토스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지만, 아자토스는 지금 시스템의 힘을 사용하는 만큼 시스템이 창조한 스킬에 영향을 받았다.
검붉은 둔기, 흉성의 학살자를 높이 치켜드는 지수를 향해 세한은 마지막 지시를 했다.
“후려갈겨.”
콰아아앙!!
단순한 물리력이라면 그 누구도 지수를 능가할 수 없다.
린과 같이 세련된 기술을 지니지 못했지만, 지수는 무엇보다 순수하고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엄청나게 빠르고, 엄청나게 강할 뿐인.
어떤 것으로도 멈출 수 없는 일격.
가가가각!!
지수가 온 힘을 다해 파일벙커의 뒷면을 후려갈기자 멈춰있던 말뚝이 앞으로 전진했다.
“아아아아아!!”
지수는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쥐어짰다.
검은 왕관이 빛나고, 붉은 눈동자가 긴 잔상을 남겼다.
전심전력.
필사의 일격이 파일벙커에 가해졌다.
우드득!!
“크아, 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아자토스가 모든 힘을 다해 저항했다.
말뚝을 붙잡고 있던 아자토스의 양팔이 비틀리며, 그의 가슴팍에 파일벙커가 틀어박혔다.
막으려고 힘을 사용해도 지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사용해도 이제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
‘내가.’
이 아자토스가.
하찮다 생각하며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미물에게 지다니.
콰아아앙!!
무명의 방을 흔드는 거대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아자토스의 심장을 파일벙커가 꿰뚫었다.
짐승과도 같이 울부짖으며 파일벙커를 부여잡던 아자토스의 양팔이 축 늘어졌다.
증오와 당혹감으로 가득 차 있던 눈동자가 흐려지며, 아자토스의 육신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끝났, 나요?”
“……나도 몰라.”
파일벙커에 꿰뚫린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아자토스를 보며 지수가 말했다.
이미 지수의 눈동자는 본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제 혈천수라공을 운용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거겠지.
머리 위에 있던 검은 왕관도 점차 빛을 바래며 그녀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정말 끝났나?’
아자토스는 죽었다.
그건 확실했다. 이미 그의 육신에서는 방금 전과 같은 절대신의 기백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세한, 뭔가 잘못됐다.”
그때, 이드라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분명 아버지는, 아자토스는 죽었다. 허나 그렇다면 열쇠와 시스템의 반쪽은 분리가 됐어야만 한다.”
세한은 황급히 아자토스의 등 뒤에 있는 거대한 링, 시스템의 반쪽과 그의 머리 위에 있는 왕관을 보았다.
그것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죽지 않았어.’
세한은 황급히 아자토스의 몸에 박힌 파일벙커를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축 늘어져 있어야 할 아자토스의 양팔이 파일벙커를 감싸 쥐었기 때문이다.
“늦었다, 김세한.”
굳어 있던 아자토스의 입매가 움직였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아자토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익숙했다.
드드드드드드!!
이미 파일벙커는 아자토스의 몸을 꿰뚫으며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그런 그것을 양손으로 꽉 틀어쥐고 힘을 가하자 조금씩 갈라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신의 힘인가.”
천천히, 숙여졌던 아자토스의 머리가 올려졌다.
아까부터 서서히 변하던 자색의 눈동자가 세한의 눈과 마주쳤다.
‘보석.’
아무것도 없어야 할, 아자토스의 이마에 보라색 보석이 박혀있었다.
이마에 보석이 박혀있는 존재는 세한이 알기로 단 하나뿐이다.
거인족.
거기에 보라색 보석이 박혀 있으며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벌일 수 있는 자는 ‘그’밖에 없었다.
“……이미르.”
“그래, 정답이다.”
콰아아앙!!
세한의 외침과 함께 아자토스의 가슴팍을 꿰뚫었던 파일벙커가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당연히 방금 전까지 파일벙커가 박혀 있던 장소는 뻥 뚫려있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오빠, 왜 죽지 않는 거죠?”
하늘을 날 수 없는 지수는 세한이 만들어준 발판 위에 서서 이미르를 경계했다.
하지만 이미 지수에게 싸울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방금 아자토스에게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거인족의 약점은 몸이 아니니까.”
“그렇다. 내 약점은 바로 여기지.”
이미르는 자신의 이마에 박힌 보석을 가리켰다.
그는 싱긋 웃으며 자신의 손을 쥐락펴락하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너는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었던 것 같군.”
그의 말에 세한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확실히 지수에 비해 세한은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세한은 이미르를 차분히 응시했다.
“‘혹시’라고 생각은 했지.”
정말 만약의 만약이었다.
이미르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아주 적었으니까.
“너는 마지막에 시스템과 합신했다. 즉, 시스템은 너와 한 몸이 된 상태였고 나는 그것을 완전히 파괴하지 못했어.”
절반으로 쪼개기는 했지만 아자토스가 나머지 절반을 회수하며 완벽하게 파괴하지 못했다.
“아자토스에게 반드시 핵과 열쇠를 회수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
시스템의 핵이 부서지지 않으면 이미르도 죽지 않는 게 분명했다.
거인은 시스템에게 탄생된 존재, 합신한 상태의 그는 이미 시스템의 모든 것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역시…….”
이미르는 옅게 웃으며 느릿하게 박수를 쳤다.
“너는 나와 닮았다, 김세한.”
그 말은 이미르의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