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306화 (306/332)

# 306

306. 신의 종말(3)

백색으로 타오르는 하얀 악마.

그녀는 두 자루의 검을 손에 쥐고 가장 위대한 신을 향해 나아갔다.

자신의 한계를 넘고 넘어, 무한의 영역에 발을 디디며.

린은 그 모든 걸 바라보았다.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자신의 망막 안에 그녀의 모습을 새겼다.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처음으로 들었다.

여태 무엇을 보더라도 단번에 익혔던 린이 처음으로 자신을 잃었다.

그녀의 권능이라 할 수 있는 한계돌파는 아무리 린이라고 해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것을 사용하는 게 허락된 존재는 아자젤 본인과 그녀의 계약자인 신자운뿐이었다.

평범한 악마의 권능이라면 빼앗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자젤이 지닌 권능은 무한.

아무리 메리수를 지닌 린이라고 해도 그것을 익힐 수는 없다.

──그럼 불가능한가?

아니. 린은 아자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우주조차 멸할 수 있는 힘의 결정조차 갈라버리는 백색의 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하아아아!!”

리브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백색의 빛이 뿜어져나왔다.

아자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신격조차 초월한 그것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아자토스의 힘을 모조리 베어냈다.

아자젤의 검기를 흉내낸 건 아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건 반고를 반으로 가를 때 사용했던 심판검 백야.

그것을 아자젤이 보여준 움직임과 힘의 유동을 본 떠 영구적으로 구현화시킨다.

그녀의 검술, 그녀가 사용하던 신격의 사용법.

지금 이 자리에서 재현한다.

부족한 무한한 힘은, 그녀의 재능과 특성이 채운다.

그건 분명 무한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한계를 모르는 린의 재능이라고 할지라도 분명 언젠가 넘을 수 없는 벽에 도달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아자토스도 마찬가지였다.

한계가 있는 건 그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 아닐까?

쉬이이익!!

비처럼 쏟아지는 레이저를 백색의 검광이 모조리 튕겨낸다.

사방에서 덮쳐오던 거대한 구체들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지며 분해된다.

“이게……!”

아자토스는 그런 린에게서 아자젤을 겹쳐보았다.

보려고 하지 않아도 그녀의 환상이 어른거렸다.

처음으로 그에게 벽을 경험시켜 준 악마의 환영이 아자토스를 괴롭혔다.

‘사라져라, 사라지란 말이다.’

인간은 어째서 과거에 얽매이는가.

그리고 왜 자신은 그런 인간이 되어버린 것인가.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던 불쾌함이 한계에 도달하고 이윽고 넘쳐흘렀다.

“나는, 인간이 아니야. 나는 신이다!!”

“알아요.”

“──!!”

지수의 붉은 눈동자에 아자토스의 얼굴이 비쳤다.

“네년!”

그가 린에게 시선을 판 사이, 지수는 아자토스에게 도달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빨랐다. 아자토스가 만든 방벽과 구체를 세한이 모조리 해제해버렸기 때문이다.

거대한 둔기가 휘둘러지며 아자토스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백색의 공간을 물들이던 검은 반점들이 그 충격으로 순간적으로 흩어졌다.

“하…….”

지상으로 떨어진 아자토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지면에 내리섰다.

상처는 없었지만 얻어맞고 날아갔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감히, 나를 내려다보려 하다니.”

새하얀 바닥에 서 있는 아자토스를 향해 지수와 린이 떨어졌다.

흑색의 둔기와 백색의 검이 각각 아자토스의 머리와 가슴을 노렸다.

“인류 따위가……!!”

아자토스의 오른손이 검은 물감이 번지듯 검게 물들어갔다.

손목을 꺾어 위를 향하자, 그 위로 검은 구체가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까지 만들어낸 단순한 에너지덩어리가 아니었다.

반물질.

검은 구체안에서 입자가 가속하며 지수와 린이 닿기 직전, 아자토스의 손에 들린 주먹 만한 반물질이 폭발했다.

별을 통째로 날려버릴 것만 같은 폭발이 일어나며 달려들던 지수와 린을 날려버렸다.

‘놀라라.’

세한은 백색의 공간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폭발 속에서 무사한 두 여성의 모습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사적으로 그녀들의 주변에 결계를 치지 않았다면 지수는 몰라도 린은 큰 피해를 받았을지도 몰랐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강렬한 폭발에 몸을 움츠렸던 둘은 피해가 없자, 재차 아자토스를 향해 덤벼들었다.

아자토스를 지상에 발을 내딛게 한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모두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아자토스는 인간의 몸에 익숙하지 않을 거다.’

아자토스와 싸우기 전에 세한은 린과 지수에게 대략적인 작전을 이야기했다.

아자젤에 의해 인간의 몸에 갇혀버린 아자토스를 이기려면 철저하게 그가 익숙하지 않은 싸움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를 신의 싸움이 아닌 인간의 싸움에 끌어들인다.

힘 대 힘의 싸움이 아닌, 인간의 기술을 사용하여.

인간의 기술은 부족한 힘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아자토스는 그런 것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무술도, 계책도. 마법도. 과학도.

“어리석은 것들이!!”

아자토스는 그런 둘의 생각을 읽고 분개했다.

분명 자신은 그런 인간의 기술 따위를 익힐 생각도 없었고, 익히더라도 사용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는 신이었으니까.

신에게는 신의 싸움이 있는 법이다.

‘멈춰라.’

아자토스의 가슴을 노리던 검과, 머리를 노리며 시공을 동결시키려 했다.

기술을 알지 못해도 시간과 공간을 얼려버린다면 육신을 움직이는 행위 따위 간단히 봉할 수 있었다.

콰아앙!!

그랬을 터였다.

“큭!!”

지수의 둔기가 아자토스의 머리를 후려 갈겼다.

시뻘건 불길이 튀기며 흉성의 학살자가 크게 밀리며 튕겨져 날아갔다.

아자토스의 몸을 둘러싼 방벽을 부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격이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아자토스는 육체적인 충격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가운데 지수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멈춘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냐!”

시공에서 자유로운 건 요그 소토스 정도 되는 외신뿐이다.

신격을 지닌 최상급 신이라고 해도 시공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일반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지금 아자토스가 상대하는 이들은 그런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아아아아!!”

지수가 둔기째로 튕겨진 팔을 억지로 비틀며 코뿔소처럼 달려들었다.

아자토스는 재차 시간을 동결시키려 했지만 지수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인력과 척력을 조절하여 억지로 밀어내려 해도 단 한 걸음조차 물러서게 할 수 없었다.

그녀를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그런 그녀의 마음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기이이잉!!

지수의 머리 위에 있는 흑색의 왕관이 빛나며 그녀의 각력에 힘을 더했다.

악마의 힘은 감정에서 나온다.

그녀의 병적인 집착은 그녀가 원천으로 삼는 감정을 무한히 증폭시켰고, 그건 하나의 영구동력이 되었다.

“갈라져라!!”

아자토스의 팔이 휘둘러지며 지수를 향해 휘둘러졌다.

공간조차도 베어버리는 신의 칼날을 양팔을 들어 막아, 억지로 비틀어 양쪽으로 흘려내었다.

덕분에 지수의 양팔은 잘려 뒤로 날아갔지만, 두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달려든 자세 그대로 머리를 치켜들고 망치처럼 휘둘러, 아까 둔기가 강타했던 장소를 들이박았다.

콰콰쾅!!

“──커억!!”

머리가 울릴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다.

그 이야기는 머리를 보호하는 방벽에 금이 갔다는 뜻이다.

처음 아자토스를 땅에 떨어트리는 순간부터 지수가 계속 한 곳만 노리고 강타한 탓이다.

맞은 장소를 계속 얻어맞을수록 더 아픈 건 만고불변의 진리였으니까.

‘거리를 벌려야 한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두 개의 붉은 안광에 아자토스는 어질한 정신을 애써 바로잡았다.

인간이란 존재는 머리에 타격을 받으면 제대로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진다.

이대로라면 불리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피하려고 하면 공격을 해올 테니, 아자토스가 선택한 건 시간 자체를 되감는 방법이었다.

시간을 되감아 거리를 떨어트리고 강도가 약해진 방벽도 처음의 상태로 되돌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아자토스의 실수였다.

이미 그와 비슷한 능력을 경험해 본 존재가 이곳에 있었으니까.

‘이건.’

시간의 속박이 풀리자, 린의 금색 눈동자가 아자토스를 쫓았다.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이 선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미 이것을 한번 거슬러 오른 적이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타고 그 속에 흘러 내려오는 감정을 쫓는다.

‘──보인다.’

신이라면 결코 흘리지 않을 강렬한 감정을.

그것을 쫓고 쫓자 린의 검은 아자토스의 목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아자토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인간……!!”

새하얀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진 검은 놀랍도록 아자젤의 검격을 닮아 있었다.

그것을 아자토스는 간발의 차로 피했다.

약해진 방벽으로는 견딜 수 없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스르며 미래의 정보가 흐트러졌다.’

시간과 공간, 인력과 척력을 비롯한 사상에 간섭하며.

미래조차 읽을 수 있는 그였다.

아자토스는 자신이 밀리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전지전능을 잃었을지라도 가장 그것에 가까운 건 그였다.

“흐.”

아자토스의 입에서 미약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자신의 꼴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임계점을 넘는 분노에 치닫게 되면 웃음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흐, 하하하하하!!!”

아자토스가 양팔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 있던 시스템의 반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시스템의 반쪽과 열쇠의 힘을 단순히 힘을 보조하는 데 사용했다.

그는 위대한 신이었기에 이런 것에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자토스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니 지금 그 자존심이 무너졌다.

다른 이도 아닌 아자토스가 ‘불리하다’ 판단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아자토스는 지금 깨달았다.

“크크크, 크…….”

이 이상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다.

조금 굴욕적일지라도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사용해 저놈들을 지워 버려야만 했다.

인간 아자토스를 기억하는 인간들을 눈앞에서, 모조리 소멸시켜야만 했다.

“──.”

뚝, 아자토스의 웃음이 멈췄다.

웃음이 멈춘 아자토스의 머리 위의 왕관이 빛을 발하며 점자 보라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검게 물들었던 시스템의 반쪽도 자색으로 물들며 연한 빛을 흘렸다.

“──죽어라.”

짤막한 선고와 함께 아자토스의 시선이 린과 지수를 향했다.

‘이건 또 뭐지?’

린과 지수는 아자토스의 시선에 몸이 급격하게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공중에 떠 있던 린은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떨어졌다.

겨우겨우 땅에 착지는 했지만, 그 이상 움직이기는 힘들었다.

마치, 게임이 시작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

“윽!!”

그런 둘의 머리 위로 무수한 흑색의 구체들이 만들어졌다.

아까 아자토스가 터트렸단 반물질들이었다.

그것이 수십, 수백 개로 늘어나며 공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것이 일제히 터진다면 먼지조차 남지 않으리라.

“침착해, 열쇠의 힘을 사용한다면 회복할 수 있어.”

“오빠?”

언제 왔는지 세한이 둘을 보호하며 말했다.

이래서 열쇠를 가진 이가 아니면 아자토스와 싸울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아자토스가 시스템의 힘을 사용하게 된다면 시스템의 영향을 벗어난 존재라고 할지라도 강제로 속박하는 게 가능했다.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열쇠의 주인뿐.

‘나는 이미 한번 겪어봐서 별거 아니다만.’

무력해진 상황을 처음 맛보는 둘은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지금은 회복하는 데 전념해, 그동안은 내가 상대할 테니.”

“하지만……!”

다급하게 말하는 지수에게 세한은 피식 웃으며 검지로 그녀의 이마를 툭 쳤다.

“걱정 마라, 오히려 지금이 기회니까.”

“네?”

지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세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세한은 더 설명하지 않고 하늘 위의 아자토스를 올려보았다.

‘드디어 사용해 주셨구나.’

오히려 세한은 아자토스가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싸우면 할 게 그다지 없었다.

사실상 환상의 실체화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건 아자토스가 지닌 힘의 하위호환에 불과했으니까.

심지어 출력도 달리니 할 수 있는 건 린이나 지수의 보조 정도였다.

하지만 시스템의 힘을 사용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건 나도 가지고 있거든.”

세한의 오른손 위에는 작은 새장이 들려있었다.

흑색의 창살로 이루어진 새장.

그 안에 갇혀있는 건 작은 까마귀였다.

물론 진짜 까마귀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까마귀의 형태를 취한 ‘어떤 것’일 뿐.

바로, 그 까마귀가 세한이 지닌 시스템의 반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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