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
304. 신의 종말(1)
아자토스는 인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영원히 그러했을 터다.
그런 아자토스가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공교롭게도 니알라토텝의 죽음이었다.
거기에 니알라토텝의 죽음과 동시에 소실된 요그 소토스의 행방.
대다수의 외신을 아래로 깔아보는 아자토스조차 요그 소토스는 쉽게 볼 수 없는 신이다.
모든 시공간에 단 하나만이 존재한다는 그 절대 신이 어느 날 갑자기 소실됐으니 아자토스로서도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요그 소토스의 죽음이 니알라토텝과 연관이 있나?’
니알라토텝도 제법 강한 아우터갓이었지만 요그 소토스와 비교하기엔 상당히 부족했다.
그렇다면 니알라토텝이 요그 소토스를 소실시켰을 리는 없었다.
그러니 전혀 다른 누군가가 요그 소토스를 소실시켰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체 누가?
거기서부터 아자토스는 추적을 시작했고, 전지전능의 힘을 지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회차의 존재와, 이드라가 여태 벌였던 일들을.
니알라토텝이 죽은 것도 그런 이드라가 벌인 일 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아우터갓이 인간에게 죽어?’
죽음은 아우터갓에게 참으로 낯선 개념이었다.
큰 피해를 받아도 금방 회복하는 아우터갓들은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니알라토텝이 고작 인간 따위에게 죽은 것이다.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먼지보다도 작은 하찮은 미생물과 같은 존재에게.
그런 인간을 사랑하는 이드라는 아우터갓들 중에서도 별종이었다.
하지만 그 별종의 행동으로 인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아자토스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외신 중의 외신인 그는 함부로 타우주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특히 이미 그곳은 시스템이 지배하는 우주.
시스템의 권한은 아자토스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그건 열쇠와 힘이 분할되었기 때문이다.
절대자로서의 힘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평범한 아우터갓이었다면 몰래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아자토스는 위치상 그럴 수 없었다.
우주를 넘는 순간 곧바로 시스템이 전력으로 차단해 올 테니까.
“부탁이 있다, 아자토스.”
그런 아자토스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얼마 후였다.
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용히 지켜보던 아자토스에게 이미르가 찾아왔다.
시스템의 대리자이자, 퍼블리셔의 사장으로서 현재 우주를 쥐락펴락하는 거인왕.
그는 앞으로 있을 싸움에 만약을 위한 보험을 만들어두고자 했다.
“만약 퍼블리셔가 패배하게 되면 우리 우주를 초기화시켜다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였다.
아자토스는 이미르라는 거인도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령 퍼블리셔가 패배한다고 해도 전우주의 생명을 리셋시켜 멸해버리려 하다니.
물론 아자토스에겐 거리낄 것 없는 일이었다.
「시스템이 있는 한 불가능하다.」
“훗, 그건 신경 쓸 필요없다. 퍼블리셔가 패배하게 되면 시스템도 기능을 상실하게 될 테니.”
「그건 무슨 뜻이지?」
“지켜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뭐, 되도록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겠지만 말이야.”
정말 만약.
기적에 가까운 확률로 퍼블리셔가 패배하게 되었을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면.
“시스템의 핵과 내가 가진 열쇠를 회수해주길 바란다.”
「그 다음 우주를 초기화하여 다시 시스템을 되살리라는 건가?」
“그래.”
그것이 이미르의 부탁이었다.
아자토스로선 계속해서 지켜보던 일들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거기에 이미르는 지구와의 전쟁에서 다른 외신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니알라토텝의 죽음으로 지구에 관심을 가진 외신들은 꽤 있었기에 그것도 어려울 것 없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외신들은 퍼블리셔의 부름을 받아 지구의 전쟁에 끼어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설마 이미르가 예상한 최악의 경우가 일어나게 될 줄이야.’
이미르의 죽음. 시스템의 정지.
상황이 워낙 재밌게 돌아가서 아자토스는 아주 조금 늦고 말았다.
세한이라는 인간이 시스템의 핵을 반으로 부쉈을 때 움직인 것이다.
덕분에 회수한 건 이미르의 열쇠와 핵의 절반뿐이었다.
‘뭐 상관없겠지.’
그때까지는 핵의 절반을 빼앗긴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우주를 초기화하는 건 핵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으니.
조금 놀다가 이미르의 부탁을 들어주면 그만일 터였다.
하지만 설마, 그것이 실수였을 줄이야.
‘내가, 실수를…….’
가장 위대한 신이자 전지전능의 구현.
그런 자신이, 인간의 육신에 갇히게 되다니.
두근, 두근.
아자토스는 손바닥으로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빠르게 뛰는 심장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졌다.
한계를 넘고 넘어 자신에게 도달한 백색의 악마가 이 심장이 있는 장소에 날카로운 파편을 꽂아 넣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등이 차가워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가장 위대한 신이여. 인간의 형상을 한 관에 갇힌 기분이 어떠한가?」
가벼운 웃음기마저 섞인 여성의 목소리.
그 말을 끝으로 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떨어지던 하얀 악마.
단순한 놀이를 위해 만든 인간의 모습에 아자토스는 갇혀 버렸다.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며, 뇌를 통해서 생각하는 인간.
죽음이 존재하는 생명체.
아자토스가 그토록 하찮게 보던 미물이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아자토스는 더 이상 지구에 있을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고, 몸은 무거워서 제대로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것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라는 걸 아자토스는 깨달았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아자토스의 판단을 흐렸다.
‘기다려라…….’
아자토스는 새하얀 공간에 누워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 죽음이라는 끔찍한 개념에서 벗어나게 되면 바로 지구로 갈 것이다.
이미르의 부탁을 받은 것처럼 가볍게 우주를 초기화시킬 생각은 없었다.
인간들이 이룬 모든 걸 차근차근 부순 후 지구를 우주의 먼지로 만들어 주리라.
드드드드.
“……?”
그때, 아자토스가 머물고 있는 무명의 방이 흔들렸다.
이곳이 흔들린다는 건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아자토스는 눈을 찌푸렸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외신들끼리 다툼이 일어난 건가? 설마 그럴 리가.
아자토스는 자신이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자 다른 외신들도 외신의 모습으로 바꿔 버렸다.
익숙하지 않은 육신에 외신들은 그 몸에 적응하기도 바빴다.
“설마…….”
누군가가 이 아자토스의 옥좌에 침입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설마’였다.
외우주의 끝, 혼돈의 소용돌이에 있는 아자토스의 옥좌에 침입하는 간 큰 짓을 할 존재는 이 우주에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곳에는 아자토스가 모아둔 수많은 외신이 있었다.
정말 만약의 일을 대비해 모아둔 외신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하지만 그토록 철두철미하게 대비했던 이미르도 그 만약에 당해버렸다.
기적과도 같은 확률로 죽을 수 있다는 걸 그가 몸소 보여준 탓에 아자토스는 수많은 외신들을 한곳에 모으는 과격한 짓을 벌였다.
‘설령 침입자가 발생했다고 해도 외신들의 손에 죽을 테지.’
아자토스는 묘하게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천천히 힘을 해방했다.
인간의 몸으로 변하며 힘이 잘 모이지 않은 탓에 신격을 억제하고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자토스는 해방된 힘을 사용해 진동의 원인을 찾고자 했다.
정말 혹시 모를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으니까.
“뭐야.”
얼마 지나지 않아 아자토스는 진동의 원인을 알았다.
바로 무명의 방으로 통하는 입구에서 다섯의 악마들이 외신들과 싸우고 있었다.
“저놈들이 대체 어떻게 이곳에 온 거냐!”
다른 우주의 악마들이 어떻게 자신이 옥좌의 위치를 안 거지?
그 답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드라, 그 아이가…….”
니알라토텝이 만든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 거기에 이드라와 합신한 인간은 시스템의 반쪽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들을 이용한다면 옥자에 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드라도 외신, 아자토스가 머무는 옥좌의 위치는 알고 있는 게 당연했으니.
“……잠깐.”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드라의 도움으로 이곳에 왔다면 지금 외신들과 싸우는 게 어째서 다섯의 악마뿐인 거지?
이드라는 대체 어디에…….
쿠웅.
무언가가 ‘문’을 두드렸다.
쿠웅!
쩌저적, 소리를 내며 문에 금이 갔다.
누가 저 문을 두드리는지는 굳이 능력을 사용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드라……!!”
콰과과광!!
문이 부서지며 백색의 방에 작은 틈새가 만들어졌다.
백색의 파편이 부서지며 세 명의 인형이 천천히 추락했다.
그 세 명 중 두 명은 아자토스도 익히 아는 이들이었다.
이드라를 자신의 아바타로 삼은 인간, 김세한.
모든 악마들의 지배자, 마왕.
‘다른 하나는 누구지?’
백색 바탕에 금색 자수가 들어간 옷을 입은 소녀.
다른 두 명에 비해 비교적 어려 보이는 인간이었다.
아자토스는 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워낙 늦게 합류한 데다 다른 이의 싸움에 아주 잠시 도운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힘을 알아보려고 해도 머리 위에 있는 금색의 왕관이 아자토스의 힘을 차단했다.
“오랜만, 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른가?”
린을 살피던 아자토스에게 세한이 씩 웃으며 말을 걸었다.
마치 오랜 친구라도 만난 것 같은 허물없는 태도였다.
“하, 그래. 설마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구나.”
“말투가 여전히 그런 걸 보면 인간의 놀이는 그만둔 모양이네.”
“……내가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잠시 인간의 아이의 흉내를 냈었지만, 그걸 계속 물고 늘어지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작 놀이가 이렇게 될 줄은 그때의 아자토스는 몰랐으니까.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된 거, 좀 더 즐기는 게 어떻습니까? 아버지여.”
“이드라, 네가…….”
기가 찬 얼굴로 바라보는 아자토스의 모습에 이드라는 비쭉 웃었다.
“생각해 보니 이젠 아버지라 할 수도 없겠군. 존대를 하는 것도 여기까지 하마.”
“하!”
세한의 어깨 위에서 당당하게 팔짱을 끼며 말하는 이드라의 모습이 아자토스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고작 꿈이나 환상을 다루는 네가 그런 태도를 보일 줄이야! 확실히 내게 조금 문제가 생겼지만, 그건 말 그대로 조금일 뿐이다.”
아자토스의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물들더니 남색으로 어두워졌다.
이윽고 남색은 검은색으로 물들며 깊게 가라앉았다.
“설마 이곳에서 볼 줄은 몰랐기에 조금 놀랐다. 그건 인정하마.”
가슴이 조금 술렁였다.
이건 당혹감이라는 감정인 걸까.
인간의 감정이란 복잡해서 꽤 오랜 시간 이 모습으로 있었음에도 알 수 없는 게 많았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불쾌하다는 것.
“이제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이었는지 알려줘야겠군.”
인간의 형상에 갇혀있고 힘의 회복도 더디다지만 그는 아자토스다.
가장 위대했던 신.
그의 전신에서 흑색의 신격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머리 위에 금색의 왕관이 떠올랐다.
고고고고!!
순백색 공간이 진동하며 아자토스의 등 뒤로 무수한 파편들이 회전하며 떠올랐다.
바로 아자토스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의 반쪽.
그것들이 부서지며 실체화하고 있었다.
거대하고 둥근 링의 형태로 변해 아자토스의 등 뒤에서 느릿하게 회전했다.
“먼저, 너부터다.”
공중에 천천히 떠오르며 아자토스가 손가락으로 지수를 가리켰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존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마왕’이었다.
세한이나 이드라도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백색의 악마를 휘하에 부리는 자가 바로 마왕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도전하기 전, 마왕의 명을 내리는 것도 보았다.
그 탓에 이런 꼴이 되었으니 결코 간단히 죽일 생각 따위는 없었다.
‘말이 되게 많네.’
지수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감상을 품으며 아자토스를 올려보았다.
늘 그렇듯, 대다수의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빨리 이 일이 끝나고 뭘 할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무덤덤한 지수의 반응에 아자토스의 입매가 비틀렸다.
정말이지 악마란 그 부하부터 왕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족속이었다.
핑──
아자토스의 손끝에서 검은 빛줄기가 쏘아졌다.
어떤 전조도 없이 쏘아진 빛은 빛보다도 빠르게 날아가 지수가 눈을 한번 깜박이기도 전에 그녀의 눈앞에 도달했다.
워낙 갑작스럽게 가해진 기습이라 세한도, 지수도, 그리고 이드라조차 반응하지 못했다.
단 하나.
“위험해요!”
백색의 검을 손에 쥔 린을 제외하고.
흑색으로 물든 아자토스와는 반대로 린의 눈동자는 백색에 가까운 금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아자토스의 검지 끝에서 쏘아진 묵빛의 광선은 백색의 검에 갈라지며 흩어졌다.
린의 검, 리브라는 찬란하게 빛나는 순백의 불꽃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아자토스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그가 아는 어떤 것과 무척 닮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