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
301. 무명(無名)의 방(1)
‘……뭔가 이상해.’
묘한 불안감에 디엔드라는 눈을 찡그렸다.
이미 이디크에게서 왔어야 할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덜거렸지만 꾸준히 보고는 하던 녀석이 연락을 하지 않다니.’
디엔드라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이디크에게 일정 시간마다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이야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지속적으로 오던 연락이 어째선지 깜깜무소식이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정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방침이었지 이디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수로 이디크가 숨어 있는 장소를 찾는단 말인가.
모든 사각에 존재하는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을 피해 이디크를 찾아내는 건 설령 슈브니구라스라도 불가능했다.
그런 게 가능한 건 아자토스 정도나 되는 전지전능한 신뿐이다.
“이디크? 뭔가 일이라도 생긴 건가? 이디크!”
디엔드라가 이디크를 향해 사념을 보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슈브니구라스!!”
사라져 버린 이디크를 찾기 위해 디엔드라는 황급히 슈브니구라스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어둠으로 뒤덮인 공동에 도착하자, 새까만 어둠 속에 무수한 눈동자가 생겨나며 디엔드라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어인 일이냐.”
“이디크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다.”
“…….”
행성을 감시하기 위해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건 슈브니구라스도 알고 있었다.
가뜩이나 이상해진 아자토스 때문에 신경 쓸 것이 많은 슈브니구라스로선 그런 하찮은 문제에 관심을 주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사냥개들의 왕인 이디크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스르륵!
수많은 눈들이 감겨지며 사방을 물들이던 어둠이 한곳으로 뭉쳤다.
잠시 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변한 슈브니구라스가 느릿한 발걸음으로 디엔드라에게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지?”
“오늘 아침.”
“위치는?”
“이디크가 숨어있는 장소는 나도 모른다. 일정 주기로 공간의 틈 속에서 이동하고 있으니.”
만약 계속 한 곳에 있었다면 슈브니구라스에게 오는 것보다 먼저 이디크가 있는 장소를 한번 살펴보았을 것이다. 물론, 직접 가지는 않았겠지만.
“그럼 상대는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이디크를 잡았다고?”
“……그렇지 않다면 이디크에게 연락이 닿지 않을 리가 없다.”
“하.”
슈브니구라스는 기가 찬 얼굴로 피식 웃었다.
‘정말로 그 우주의 미물들이 이곳으로 왔나?’
솔직히 디엔드라가 지나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경계를 넘어 외우주로 이동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며, 심지어 아자토스의 옥좌에 도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죽음 같은 하찮은 개념조차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을 가슴에 올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불쾌하게 뛰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만 아니었어도 인간의 몸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자토스 본인이 인간의 껍질을 버릴 수 없기에 다른 외신들도 인간의 모습을 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외신들은 별생각 없이 그 명령에 따랐지만 슈브니구라스는 그런 아자토스의 명이 크게 잘못됐다고 느꼈다.
만약 인간의 모습을 할 필요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외적의 침입에 당황할 일도 없었으리라.
“슈브니구라스, 서둘러 잡지 않는다면 놈들이 아버지를 분노케 만들 거다.”
“놈들을 잡는 것이 아버지와 무슨 상관이지?”
“너는 왜 놈들이 이곳에 왔으리라 생각하는 거냐. 그건 아버지가 저쪽의 열쇠와 시스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놈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것을 되찾을 생각이다.”
아자토스를 죽인다고? 슈브니구라스는 익숙하지 않은 당황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디엔드라를 보았다. 아무래도 디엔드라는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았다.
“불가능하다 생각하나? 이미 아버지를, 아자토스를 이상하게 만든 건 놈들이다. 백색의 악마가 한번 저질렀던 일을 다른 이들이 못하리라고 생각하나?”
그런 슈브니구라스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디엔드라는 말을 이었다.
백색의 악마라는 말에 가슴이 섬뜩해졌다.
이디크와 디엔드라를 단칼에 베어버리고 순간적으로 아자토스의 힘을 초월하던 그 모습은 슈브니구라스조차 몸을 굳게 만들 정도였다.
만약 그 일행 중에 백색의 악마가 있거나 그에 준하는 존재가 있다면 디엔드라의 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좋다. 그럼 당장 외신들을 움직여 놈들을 찾도록 하마.”
“굳이 찾을 필요 없다.”
“뭐라?”
“내가 온 건 어디까지나 다른 외신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다. 나 혼자서는 가봤자 놈들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도, 다른 우주에서 온 존재들을 얕보지도 않았다.
‘이디크에게 미안하지만 오히려 기회인지도 모른다.’
디엔드라도 상당한 힘을 지닌 외신이지만 다른 외신들에게 명령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는 아니다. 그런 게 가능한 건 아자토스나 요그소토스 정도.
요그소토스가 현재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이상 그런 게 가능한 건 요그소토스의 아내인 슈브니구라스뿐이다.
“놈들이 어디로 갔을지는 굳이 찾을 필요도 없어.”
녀석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아는 이상, 놈들이 향한 장소는 단 하나뿐.
바로 무명의 방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
모든 틴달로스 사냥개의 움직임을 동결시킨 후, 우리는 곧바로 이드라가 말했던 방의 입구로 향했다.
워낙 거대한 행성인데다 외신들을 피해 움직여야 했던 탓에 조금 시간이 걸리고 있었지만,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을 걱정할 필요 없다 보니 그다지 어려울 건 없었다.
사각에 숨어 있어 기척조차 알 수 없는 틴달로스의 사냥개들과는 달리 외신들은 자신의 힘을 풀풀 풍기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슬슬 알아차렸을 것 같은데.”
“불안한 말은 하지 말거라.”
내 혼잣말을 들은 자그마한 이드라가 내 볼을 쭉 잡아당겼다.
그녀는 여간 불안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디크가 숨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역시 다른 대처도 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해.”
“그건…… 그렇겠지만.”
참고로 이디크는 꿈속에 가둬뒀기에 한동안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디엔드라였다.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던 이디크의 말에 따르면 디엔드라는 우리가 이곳에 오리라 예상했던 모양이다. 이디크에게 몸을 감추라 명한 것도 그놈.
‘그러니 이디크가 발각되었을 때를 대비하지 않았을 리 없지.’
겉모습만 보자면 가장 흉측하게 생긴 놈이 머리를 쓸 줄이야.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다.
“호오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걸~?”
그때, 긴장감 따위는 갔다 버린 마라 파피야스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당연히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자는 이곳에 없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그래, 까마귀. 아무래도 나는 그다지 강하진 않다 보니 이런 것에 민감하거든. 느리지만 외신들의 움직임이 달라진 건 분명하단다.”
중성적인 그의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드는지 지수는 살며시 눈을 찡그렸다.
“네, 이쪽으로 오는 기척의 수가 늘어나고 있어요. 조금 있으면 오빠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느껴져요.”
지수의 말에 린도 곧바로 수긍했다.
다른 이들은 아직 느끼지 못한 것 같지만 린과 지수의 말이니 분명할 것이다.
예지의 영역에 도달한 본능과 직감을 지닌 녀석들이니까.
“아무래도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 것 같군.”
신자운이 덤덤하게 중얼거리자 그의 곁에 있던 루시퍼가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오히려 너무 순조로웠습니다. 사실 저는 이디크를 발견하기 전에 사냥개에 들키는 것도 생각했으니까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래서 지금 이야기하는 겁니다.”
루시퍼는 정말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이었다.
하기야 슈브니구라스와 동수를 이뤘던 그로선 어지간한 외신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마침 근처에도 하나가 있었던 모양이야.”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나도 다가오는 신격들을 느낄 수 있었다.
뭐, 신격을 느낄 필요도 없이 주변의 환경이 변하는 터라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쪽을 향해 스물스물 다가오는 안개가 불길하게만 느껴졌다.
“이드라 저건?”
“니요그 소텝이다. 이름 없는 안개라 불리지.”
“진짜 딱 생긴 대로의 이명이네.”
뿌연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놈은 우리를 관찰하며 천천히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저것만이 아니에요. 바람의 흐름도 이상해졌어요.”
안개와 바람, 거기에 조금 먼 하늘에서 우글우글 몰려오는 마물들의 숫자도 보였다.
저 중에는 단순한 마물만이 아니라 그레이트 올드원급의 괴물들도 섞여 있으리라.
“네크로노미콘 가져올 걸.”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그런 마도서를 사용했다간 도리어 문제가 생겼을 게다!”
“그래도 너무 많잖아.”
르뤼에에서 얻었던 네크로노미콘은 현재 모르간에게 부탁하여 보관 중이었다.
그 마도서만 있었다면 어지간한 마물은 가볍게 일소시킬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워졌다.
사용할 시 따라오는 문제들을 넘어간다면 말이다.
사아아아!!
“씁! 뭐야 이거!”
순식간에 뻗어오는 안개에 벨제부브가 화들짝 놀라며 팔을 휘둘렀다.
팔의 궤적에 따라 안개가 폭발하듯 퍼졌지만,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상처 입은 건 도리어 공격했던 벨제부브의 팔이었다.
어마어마한 강도를 자랑하는 그의 피부에 자잘한 상처가 남자, 벨제부브의 얼굴이 굳었다.
“이봐! 입구까지는 얼마나 남았냐!!”
“앞으로 10분은 더 가야 된다! 이 산의 정상으로 가야 해!”
이를 악물며 외치는 벨제부브의 말에 곧바로 이드라가 답했다.
산의 정상이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가파르게 치솟은 능선을 보면 그저 까마득하게만 보였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10분이 아니라 며칠을 걸려도 올라가지 못하리라.
“칫!!”
당연히 적은 뒤에서만 오는 게 아니었다.
산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마물의 무리와 아우터갓의 모습이 보였다.
“린, 나는 앞을 맡을 테니 너는 뒤를 맡아라!”
“알겠어요!”
린의 머리 위로 금색의 왕관이 나타나며, 손에 쥔 리브라에서 금색의 휘광이 뻗어 나왔다.
이전보다 한층 강렬해진 빛에 다가오던 외신과 마물들이 멈칫했다.
“오빠, 저는요?”
내가 린에게만 말하자 지수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게 마치 자신에게도 말해달라는 것 같았다.
“당연히 나랑 가야지.”
“네!!”
길을 뚫는 건 누구도 지수를 따라올 수 없었다.
함께 가자는 말에 지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손에 쥔 흉성의 학살자를 꽉 움켜쥐었다.
그 모습만 보자면 단순한 사냥터와도 별다를 게 없는 모습이다.
“이드라, 너는 도착하면 바로 입구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준비해 줘. 할 수 있겠지?”
“나를 뭐라 생각하는 게냐? 도착이나 하고 말하거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이드라의 모습에 나는 씩 웃었다.
계속 불안한 눈치더니 막상 싸울 상황이 되자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럼, 돌파한다!”
나는 외침과 함께 오른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땅이 원뿔 형태로 치솟으며 다가오던 마물들의 몸을 마구잡이로 꿰뚫었다.
“가가가가───!!”
그때,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리며 주변을 휘감고 있던 바람이 뭉쳤다.
뭉쳐진 바람은 황색으로 빛나는 괴생명체로 변하며, 내가 만든 원뿔들을 문어다리와도 같은 촉수로 부쉈다.
“기야아아아!!”
그리곤 단숨에 나를 향해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무수한 이빨이 달린 기괴한 아귀와도 같은 모습으로.
“하스터!”
이드라가 깜짝 놀라며 소리친 걸로 보아 최소 그레이트 올드원쯤은 되는 존재인 모양이다.
하지만 하스터라 불린 괴물은 나를 집어삼키지 못했다.
콰콰쾅!!
“가각──!!”
어느새 뛰어오른 지수가 주먹으로 하스터의 머리를 후려치자 머리가 폭발했다.
그리곤 거대한 육신이 무너지며 바람으로 변해 흩어졌다.
죽은 건 아니었다.
기습이 실패하자 다시 바람으로 변해 숨어버린 것이다.
“후우.”
하스터의 머릴 부순 지수가 내 앞에 가볍게 착지하며 짐승처럼 몸을 구부정하게 굽혔다.
그러자 그녀의 전신으로 붉은 실선이 퍼져나가며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르르…….”
혈천수라공을 비롯한 수많은 힘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붉어진 동공에서 적색의 광채가 빛나며 지수의 입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이잉!!
거기다 지수의 머리 위로 나타나는 흑색의 왕관에 다가오던 외신과 마물들이 주춤하는 게 느껴졌다. 그건 단순히 지수의 강함 때문이 아니다.
마물들 사이에 보이는 인간.
즉, 감정을 가진 외신들이 ‘당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느꼈겠지.
우리가 절대 외신들의 아래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아자토스에게 고마워해야겠군.’
감정을 가진 외신들이란 생각보다 상대하기가 쉬웠다.
아주 강한 힘을 지닌 어린아이들에 불과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