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
298. 경계 밖의 세계(1)
외신 아자토스를 죽인다.
그 터무니없는 계획에도 불구하고 악마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마왕인 지수가 그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도 알고 있는 거겠지.
아자토스가 살아 있다면, 결국 이 우주는 길게 가지 못한다는 걸.
솔직히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우주를 리셋시켜 버리면 대응할 틈도 없이 그대로 소멸이었다.
아자젤의 희생을 통해 얻은 현재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다.
“세한, 잠시 나 좀 볼 수 있겠나?”
대략 악마들에게 계획을 이야기한지 이틀.
외우주로 향할 날짜만을 기다리던 내게 루크가 말을 걸어왔다.
“물론입니다.”
진지한 루크의 모습에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건물 내에 있는 휴게실로 이동하여 적당히 자리에 앉았다.
“Tekeli-li.”
“아, 고, 고맙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쇼거스 리리가 다가와 탁자 위에 커피 두 잔을 올려두고 사라졌다.
잊고 있었는데 저 녀석 여전히 여기에서 살고 있었구나.
이드라가 말하길 외신들의 집사나 시종, 메이드 같은 녀석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리리는 복도로 지나가며 마주치는 사원들의 등을 촉수로 두드리며 인사했다.
처음엔 질겁하던 사원들도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그런 인사를 받아줬다.
“아자토스를 죽이러 간다고 들었네.”
그런 초현실적인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 루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렇습니다.”
“7대 악마들만을 꾸려 조용히 다녀온다고 하더군.”
“예.”
“우리 린도, 거기에 있고.”
루크는 그렇게 말하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커피잔을 뚫어져라 보았다.
분명 린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은 걸 테지.
나는 그런 그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린의 도움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린은 오랫동안 눈을 뜨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나는 자네를 존경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하지만, 원망하는 면도 있지.”
루크는 쓰게 웃었다.
“린은 아직 어려. 그 아이가 재능이 있고 대단하다는 건 누구나 알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 아이는 인류가 가진 모든 가능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 여신님이 말했으니까.”
계속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아마 루크는 내게 이 말을 줄곧 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선 루크 자신이 대신해서 린의 역할을 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린에게 주어진 짐은 너무 무거웠다. 평범한 루크는 감히 곁에 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나도 알고 있다. 린이 이번 싸움에 꼭 필요하다는 걸. 열쇠를 다룰 수 있는 자는 린뿐이니.”
이전이라면 내가 억지로 이드라를 통해 다루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이 아직 모형열쇠이던 때다.
이제 시스템을 통해 하나의 열쇠로 완성 된 이상 아무리 나나 이드라라도 두 개의 열쇠를 동시에 다룰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열쇠를 다를 사람이 필요하며, 그건 린을 제외하면 누구도 다룰 수 없다.
반으로 쪼개진 열쇠는 거인이 아닌 이상 완벽히 다루는 게 불가능하니까.
거인이 아닌 다른 절대자가 다루려 한다면 그 힘이 크게 반감된다.
하지만 린은 특성 ‘메리수’를 지닌 탓에 그녀의 의지가 닿는 한 뭐든지 할 수 있다.
거기다 단순히 열쇠를 다루는 것뿐이 아니라 린 본인이 가진 힘도 이번 싸움에 필요했다.
현 인류 중에 7대 악마 이상의 힘을 지닌 존재는 린 하나다.
인간이 지닌 모든 가능성과 소망, 그 모든 걸 한 몸에 지닌 아이.
그건 축복이며 동시에 저주다.
“하지만 아버지로선 말리고 싶은 게 사실이야. 아자토스의 힘은 나도 그때 보았어.”
하나의 별이 아니라,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우주를 일소해 버릴 수 있는 ‘신’.
이제 린은 그런 신을 상대하러 간다.
“아내가 죽은 이후, 나는 린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기로 맹세했네. 하지만 나는 그 맹세를 지킬 수 없을 것 같군.”
루크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머리를 숙였다.
내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부탁하네. 세한. 나를 대신하여 그 아이를 꼭 지켜줄 수 있겠나?”
제발 데려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린이 오랫동안 눈을 뜨지 못했을 때, 루크는 잠든 린을 보며 싸우게 해서는 안 됐다고 말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세계의 미래보다도 딸의 생명이 중요할 것이다.
아직 어린 딸이 싸우지 않기를 바랄 게 분명했다.
“제발, 부탁하네!”
나는 그런 루크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런 건 굳이 부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린은 루크가 말하지 않아도 기필코 지킬 것이다.
그것은 한번 실패했던 일이었으니까.
“저는 당신과 린에게 빚이 있으니까요.”
“……빚?”
내 말에 묘한 느낌을 받은 듯, 루크는 조용히 시선을 올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루크에게 그런 부탁을 받은 건 두 번째였다.
1회차에 알데바란을 죽인 루크는 죽기 전 내게 린을 부탁한다고, 지켜달라고 말하며 숨을 거뒀다.
그때의 나는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 내리라.
***
외우주로 향하는 계획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악마들과 루크를 제외하면 민아나 창우가 전부였다. 시우나 유엔, 그리고 아서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함부로 말하고 다녔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간신히 회복되기 시작한 사회에 큰 혼란을 줄 수도 있었으니까.
창우나 민아는 자신들이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섭섭한 얼굴이 되었다.
창우는 플레이어 중에서 최강급 강자. 민아는 어지간한 신을 상대할 정도의 실력자였지만, 외신은 급이 달랐다.
그들은 내게 그저 잘 다녀오라고 말하며 뒷일을 맡겼다.
사실 말해도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면 전부 끝이라니. 이 거대한 세계가 단번에 사라진다니 솔직히 상상도 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
나는 창밖으로 대부분 복구되어 활기를 찾고 있는 서울을 바라보았다.
시스템이 남아 있는 탓에 간간이 던전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플레이어들이 간단히 해결할 수준이 되었다.
“저건…….”
밖을 보다가 문득 길드 밖으로 나가는 여성을 발견했다.
새까만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바로 지수였다.
‘어디 가는 거지?’
문득 오늘은 지수가 내 방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무척이나 드문 경우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내 방에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오늘 따라 유독 새까만 복장을 입고 있는 것도 거슬렸다.
늘 검은 복장을 즐겨 입는 지수이긴 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의아한 마음을 담아 지수를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지수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그리곤 창밖을 내려다보던 내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붉은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냥 평범하게 눈치채면 덧나나?’
저럴 때는 아무리 나라도 가끔 좀 무섭다.
어쨌든 눈이 마주친 김에 나는 허수공간을 열고 지수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어디 가?”
“가족들에게요.”
워낙 담담하게 이야기해서 순간 아 그래? 라고 답할 뻔했다.
“……왜?”
“오빠랑 약혼했다는 거 말하지 못했거든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지수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닫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수의 가족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지수의 기억을 통해 그들이 지수에게 했던 짓을 알고 있었고, 그 동생과 어머니는 솔직히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혹시 나도 같이 가도 괜찮아?”
“오빠는 싫어하지 않으셨나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네가 그들을 가족이라 생각하는 게 신기해.”
지수를 학대하고, 두려워했으며 지수가 죽었을 때 안도한 이들이다.
몽상의 신전에서 보았던 광경이지만 꿈에서 가끔 그 장면이 나올 때마다 역겨워서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동생도 마찬가지. 지수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끝내 자신의 어머니마저 살해했으며, 그 시체를 이용해 자신의 누나마저 죽이려 했다.
나도 썩 좋은 가정사는 아니지만 지수는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처참했다.
사람으로 취급받지도 못했으니까.
“그 말은 조금 기쁘면서도 슬퍼요.”
“…….”
알고 있다. 지수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슬퍼한다는 걸.
나는 애써 분을 삭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알겠어. 아무튼 함께 가도 괜찮아?”
“네.”
오늘 지수가 유독 검은 옷을 입었다 싶더니 상복이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이 딱 기일이기도 했다.
방금 전까지 잊고 있었지만 말이야.
“여기 오는 건 오랜만이네.”
묘소가 있는 장소는 서울 외각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서울에서 일어난 격렬한 싸움에도 비교적 멀쩡한 장소였다.
“혹시 매년 왔었어?”
지수가 폭주했던 날.
우리는 지수의 동생과 어머니의 시체를 수습하여 매장한 뒤,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제대로 된 묘지가 없던 탓에 근처의 뒷산에 묻고 묘지를 만들어뒀을 뿐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그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지수의 어머니이니 나름 최선을 다해 묘지를 만들어주긴 했지만 그게 전부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 지수는 매년 찾아왔던 모양이다.
“찾아왔어요. 보고 싶었거든요.”
지수는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묘소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지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검은 눈동자에는 원망 따위는 한 줌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빠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지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제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부모님도 좋은 분들이었어요.”
그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지수의 기억을 읽으며 직접 보기도 했다.
확실히 지수의 부모님이 처음부터 이상했던 건 아니다.
“모든 건 제 이상함을 느끼고부터였죠.”
무서울 정도로 사랑에 집착하던 아이.
그 무엇보다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던, 그런 소녀.
“확실히 저는 이상한 아이였으니까요.”
사랑하는 이의 모든 걸 웃으면서 받아들이는 지수에게 부모님은 두려움을 느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혼낸 적도 있었지만, 지수는 그런 부모님의 질책조차 기쁨으로 받았다.
“영원하다는 부모님의 사랑조차 망가트릴 정도로.”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지수는 부모님에게 누구보다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심지어 무엇이든 잘하는 우수한 재능까지 지녔으니 더더욱 기괴해 보였겠지.
이해한다.
그래, 이해하고말고.
나조차 예전에는 지수를 섬뜩하다 느낀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됐다.
지수가 지금 사랑에 더욱 집착하는 면이 있는 건, 부모님에게 받았던 사랑이 단번에 부서졌기 때문이다.
결코 부서지지 않는 사랑, 그것을 갈망하는 마음.
그 마음은 집착이 되었고, ‘착한아이’의 가면을 쓰게 만들었다.
“그거 아세요?”
지수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솔직히 저는 지금 오빠의 분노조차 기쁘게 받아들여요. 너무 기뻐서 지금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만큼.”
그리곤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빠의 기쁨도 슬픔도 오롯이 모두 제게 향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는 옅게 웃으며.
“저 역시 이상하죠?”
그 말이 나는 어쩐지 굉장히 슬프게 들렸다.
나는 그런 지수를 꽉 껴안았다.
늘 그렇듯 지수의 몸에는 한 줌의 떨림도 없었다.
감정의 동요도 지극히 적었다.
“안 이상해.”
“그런가요.”
지수는 껴안은 내 팔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마치 나의 온기를 느끼는 것처럼.
어쩐지 지수의 두근거림이 내게도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저는 분명 악마가 되었을 텐데, 어째선지 이제야 인간이 된 기분이에요.”
“왜?”
“평범하게 심장이 뛰니까요.”
지수는 멍하니 묘소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평범이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지금 제 모습을 봤으면 부모님도 저를 다르게 보지 않았을까요?”
“그럴지도 몰라.”
“네, 그래서 더 아쉬워요. 저도 평범하게 남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사랑에 조금 집착할 뿐인, 평범한 사람.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지수의 목소리에는 작은 실소가 담겨 있었다.
“이제, 제게 기회는 없네요.”
지수는 천천히 내 품에서 빠져나와 무릎을 굽혀 작은 묘비에 손바닥을 댔다.
차가운 묘비를 매만지며 하염없이, 정말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잃는 걸 두려워한다.
지수는 그 무언가가 사랑이었다.
요령이 좋지 못한 지수는 가장 소중한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아, 발버둥 쳤던 것이다.
그들은 고작 그런 간단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 알 기회도 없겠지.
그 점이 통쾌하면서도.
조금,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