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96화 (296/332)

# 296

296. 끝을 향한 준비(3)

“한지수, 너 혹시 이번 주 시간 괜찮아?”

“네?”

연회가 끝나고 며칠 후, 나는 조심스럽게 지수를 불렀다.

시급한 문제들은 이제 대체로 정리됐고, 지수가 할 일도 그다지 없는 터라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수는 내 부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놀라?”

“아뇨, 오빠가 저한테 시간이 있냐고 묻는 건 드믄 일이니까요.”

……그런가?

그렇게 말하니 괜히 신경 쓰였다. 이전에 이드라가 했던 말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약혼을 하는 것 같다는 말.

나는 그 말에 부정했었지만, 이래서야 그렇게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후우우. 아, 진짜.”

“무슨 일 있어요?”

“특별한 건 없지만…….”

“이번 주에 시간이 비었냐고 하기에 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어요. 아니라면 다행이네요.”

지수는 내 어두운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눈동자를 굴려 내 안색을 살폈다.

그런 지수의 모습을 볼수록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언제나 지수는 나를 첫째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는 그런 지수를 믿었고, 그걸 이용하여 계획을 짠 적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지수가 내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여태 지수를 구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했던 거고.

단지, 나는 아직 지수가 말하는 사랑과 같이 타인을 좋아한다는 마음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다.

‘변명처럼 들리네.’

참으로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태는 세상의 일이 먼저라 미뤄뒀던 문제지만, 슬슬 제대로 답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건 아자토스와 끝을 내기 전에 마무리 짓는 게 좋겠지.

그래서 미리 로키에게 조언도 들어뒀고, 예물도 준비했다.

로키가 제안한 방법은 지극히 간단했다.

바로 ‘데이트’를 하여 분위기를 잡고 고백을 하는 것.

말하자면 이번 메인 퀘스트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좋아한다고 말한 건 지수가 먼저였으니.’

이번만큼은 내가 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막상 지수에게 권하려고 하니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음, 이제 여유도 생겼으니 데이트라도 한번 하는 게 어떤가 해서.”

“?”

내 말에 지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데이트? 방금 진짜로 오빠가 한 말이에요?”

“했는데.”

“와.”

짤막하게 감탄한 지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응시했다.

어째선지 새빨갛게 변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덤으로 머리 위에는 검은색 왕관까지 나타나 거무죽죽한 기운을 풀풀 흘렸다.

“……다른 사람이 변한 모습은 아니네요. 정말 오빠였어요.”

얘는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솔직히 오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생각 못했거든요. 그런 말 하는 성격도 아니고. 조금 숙맥이니까.”

차마 뭐라 변명할 수 없다는 점이 슬펐다.

다시 마주할 일 없으리라고 생각한 아싸 김세한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저야 오빠가 권해준다면 얼마든지 가겠지만요.”

다행히 지수는 흔쾌히 승낙했다.

내가 먼저 권해준 탓인지 얼굴도 평소답지 않게 상기되어 있었다.

언제나 무미건조한 표정만 짓는 지수가 저런 얼굴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다 끝나면 자주 권해야겠다.’

민아가 말하길, 이런 건 원래 자주 표현해야 하던가.

지수가 의심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지.

아무튼 중요한 건 이번 주 주말이었다.

***

약속 당일. 지수는 평소의 검은 원피스가 아닌 다른 아이보리색 상의와 연한 갈색 치마를 입고 왔다. 어디선가 봤던 기분이라 유심히 보니, 우리가 처음 게임이 시작되었던 날 입었던 복장이었다.

“그 옷 아직도 있었어?”

“계속 인벤토리에 넣어뒀어요. 이거 말고도 여벌로 몇 벌 넣어뒀죠.”

생각해보니 지수는 옷을 꽤 자주 갈아입었다.

민아가 늘 교복만 입었던 걸 생각하면 은근 패션에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오빠가 너무 한 벌만 입는 거예요. 근데 왜 하필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가요?”

지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현재 우리가 있는 장소는 나와 지수에게 무척 익숙한 장소였다.

바로 로메월드 타워 근처.

바질리스크와 싸웠고, 지수와 처음 떨어지게 되었던 장소였다.

“이 이후에 전 부모님을 찾으러 갔었죠.”

“그랬었지. 잘 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아마 어머니는 몬스터보다 제가 두려웠으리라고 생각해요.”

지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로메월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는 다른 사람과 달랐으니까요.”

지수는 자신의 부모가 왜 자신을 두려워했는지 안다.

나 역시 몽상의 신전을 통해 지수의 부모를 보았기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수가 이런 성격이 된 건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부모에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저는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거든요. 뭐든 시키면 잘했지만 저는 그 일에 대한 성취감보다 그것을 했을 때 좋아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괜찮았을 거다.

그러나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한 인식의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그렇게 됐으리라.

“그건 이제 됐잖아. 이제 다 끝난 일이야.”

“그렇죠.”

“그보다 이 근처에 있는 놀이공원 어때?”

어쩐지 우울해진 것 같은 지수의 등을 두드리며 말하자 지수는 어설프게 웃었다.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어차피 가도 폐허뿐 아닌가요?”

“복구는 진작 해뒀어. 사람은 없지만.”

“그럼 가도 소용없잖아요.”

“내가 있잖아.”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가볍게 손가락을 튕길 것 같은 자세를 취하자 지수는 그제야 이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땅을 뒤집고 운석을 떨어트리며 상상하는 모든 걸 실체화 할 수 있는 나다.

놀이기구를 작동시키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민아에게 들으니 여기서도 큰일이 있었다면서요?”

“그러고 보니 이곳에 있었던 일은 너한테 말한 적 없었네.”

“네. 계속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느라 바빴잖아요.”

나와 지수는 단둘밖에 없는 관람객이 되어 놀이공원을 걸었다.

조금 썰렁한 기분도 들었지만, 단둘이 이야기하기엔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음속보다 빠르게 뛰어다닐 수 있는 지수에겐 자이로드롭이나 롤러코스터보다 단순한 놀이기구가 더 즐거웠던 모양이다.

하긴, 마왕인 지수가 인간의 절규머신에 뭘 느끼겠어.

그렇게 우리는 대략 반나절을 놀이공원에서 보냈다.

이곳에서 있었던 까마귀자리 카라스의 일을 이야기했고, 지수는 나와 헤어진 사이 악마들의 하수인이나 계약자들을 대판 붙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나는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지수 딴에는 내심 숨기고 싶은 일이었던 모양이다.

“설마 제가 그렇게 찾아서 죽이고 다니던 악마들의 왕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솔직히 나도 놀랐어. 대체 몽상의 던전은 언제 클리어 했던 거야?”

루시퍼와 싸우던 지수를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지수가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그뿐 아니라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했다고 해도 루시퍼를 이길 줄은 몰랐다.

루시퍼는 ‘슈브니구라스’와 동수를 이룬 악마다.

아자토스의 부름에 겨우 빠져나와 외우주로 귀환했지만, 거의 동급이나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강자를 쓰리고 지수는 마왕이 되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잊히는 걸 감수하고서.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으니까.”

“안 해요.”

나를 보며 배시시 웃는 지수의 모습에 괜히 가슴이 간질거려서 시선을 돌렸다.

새삼 내가 지수를 기억하지 못했다면 광기의 마왕과 비슷한 꼴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드라도 인정한 내 강한 정신력은 이드라나 지수와 관련되면 비교적 물렁해지는 경향이 있으니.

“아, 학교다!”

놀이공원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하염없이 걸어, 어느새 학교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이전에는 거의 일주일에 걸쳐 이동했던 거리이건만, 지금은 불과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퍼블리셔의 침략에 의해 다 무너졌었던 장소지만, 린이 열쇠를 사용해 이전의 모습 그대로 복구한 것이다. 아마 반고와 싸우며 익혔던 시간 역행계열 능력을 흉내 낸 게 아닌가 싶다.

“여기도 오랜만이네요. 게임이 시작된 이후로는 처음인가?”

“난 한번 왔었어.”

“어? 언제요?”

지수는 내 말이 꽤나 의외인 모양인지 주변을 살폈다.

“여긴 특별한 것도 없을 텐데.”

“잊어버린 너를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때라서 말이야.”

“아.”

그제야 지수는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괜히 죄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았다.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뭘 그런 표정을 보냐?”

“하지만…….”

“덕분에 많은 걸 알 수 있었어. 네가 남긴 흔적이 그대로 있더라고.”

“제가 남긴 흔적이요?”

아무래도 이곳에 자신이 뭘 남겨놨는지 까먹은 모양이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지수에게 피식 웃으며 이전에 갔던 컴퓨터실로 이동했다.

완전 재구성된 탓에 거미줄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컴퓨터실의 모습에 지수는 뭔가를 깨달았는지, 얼굴을 굳혔다.

“……설마 봤어요?”

“봤어. 이 컴퓨터에 네가 남겨둔 메모까지.”

“하아…….”

내 말에 지수는 체념한 얼굴로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지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도리어 내가 메모장을 본 게 신경 쓰였는지 양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보라고 남겨둔 거 아니었어?”

“그건 그렇긴 하지만. 생각보다 충격이네요……. 이렇게 부끄러운 건 정말 오랜만이에요.”

나는 근처의 의자를 끌고 그런 지수의 앞에 마주보고 앉았다.

어둡고 쾌쾌한 컴퓨터실 안이지만 어쩐지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대학 시절의 일도 생각났다.

내가 대학 생활을 한 건 1회차이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니 족히 수십 년이 지난 일임에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내가 이곳에서 놀고 있으면 이렇게 지수가 자주 찾아와 앉아있고는 했다.

게임을 하는 날 구경하거나, 가끔은 이렇게 마주보고 대화했었지.

“사실…….”

지수는 얼굴을 덮었던 양손을 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에 다른 사람이 오지 못하게 한 건 저에요.”

“어, 진짜?”

“네. 그리고 오빠는 몰랐겠지만 의외로 말 걸고 싶어 하는 여자애들도 있었어요. 제가 막았지만.”

정말로 몰랐던 사실이다.

나야 편했으니 좋았지만, 지수는 그때부터 낌새가 있었던 모양이다.

지수는 학과의 유명인이었고, 학생회에도 들어가 있었으니 사람을 움직이는 건 간단한 일이었으리라.

“근데 내 어딜 보고 말을 걸어?”

“그럭저럭 공부도 괜찮게 했고, 잘 보면 그럭저럭 괜찮게 생겨서.”

앞에 그럭저럭이 붙는 것만 빼면 썩 나쁘지 않은 평가였다.

“……죄송해요. 다른 사람이랑 친해지면 저와는 멀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나야 상관없긴 한데. 그리고 그건 내 탓도 있지.”

솔직히 나도 사람 어울리는 게 귀찮아서 옳다구나 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아무튼 이전에 지수와 기억을 공유하며 깨달은 거지만, 지수는 나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했다. 정확히는 두려워하는 면도 있었다.

자신을 사랑했지만, 기피하게 된 부모님처럼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대했다. 아마 지수의 행동은 모두 거기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수가 나를 의존하는 것처럼 내가 지수를 의존하도록.

아마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거겠지. 돌이켜보면 무서운 면도 있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별다른 감흥도 들지 않는다.

‘나는 착한 아이’라는 지수의 특성도 그런 지수의 정신적 문제에서 생긴 거리라 생각한다.

언제나 평범하고 착한 모습만 보여 타인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도록 만드는 가면.

지수는 언제나 그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처음 게임이 시작했을 때 내 말에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납득한 것도 전부 그런 이유다.

당시 지수의 능력치창을 보았을 때, 특성만을 지수가 보여주길 꺼려한 것도 자신의 그런 특성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다 극복했잖아.”

“그야 그렇지만……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선만 지킨다면야.”

스스로 ‘나는 착한아이’를 부수고 마왕이 되며 그런 지수의 정신적 문제는 사라졌을 거다.

물론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전과 같이 큰 문제를 야기할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뭣보다, 오늘 내가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도 더 이상 지수를 불안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였으니까.

“한지수.”

“네?”

나는 품속에 있는 케이스를 꺼내기 위해 만지작거렸다.

사실 이걸 준비하는데 여러 가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이걸 주는 순간 지수와 나의 관계는 단순한 남녀관계가 아닌, 약혼자와 약혼녀가 될 것이다.

뭘 그리 거창하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상당히 진지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운이 좋았다.

우연히 지수가 의존한 대상이 나였을 뿐이다.

그래, 정말 운 좋게도.

지수가 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정말 간단했으니까.

지수를 거부하지 않아서.

지수의 내면을 보고도 돌아서지 않아서.

언제나 똑같이 지수를 대했기 때문에.

그런 단순한 이유다.

그 정도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냉큼 받아들여도 될지, 지수에게 더 좋은 상대가 있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내릴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나 역시, 지수가 옆에서 사라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지금 내가 이곳에 있었던 것도, 생각해보면 1회차의 지수가 목숨을 바쳐가며 나를 지켜줬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수는 나를 지켜줬다.

분명 내게 집착하는 면이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배려했다.

나는 그런 지수를 좋아한다.

이제 나는 애써 외면했던 그 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니, 이번 한번은 이기적으로 행동할 생각이다.

지수에게 다른 사람에게 더 어울릴지 모른다고 해도.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하기로.

“솔직히 결혼은 이르다고 생각했어.”

“…….”

내 말에 지수는 조금 슬픈 기색을 띄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아직 모든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야.”

눈을 흐리던 지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품속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건…….”

지수의 눈은 내 손에 쥐어진 작은 케이스로 향했다.

아마 열지 않더라도 이곳에 뭐가 있는지는 깨달았을 것이다.

지수의 흔들리는 동공이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니 결혼은 아직 이르지만, 우선 약혼부터 하는 게 먼저라 생각했어.”

“아…….”

모든 게 끝나고, 평화로운 시기가 온다면 그때 훨씬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모두에게 축복받는 결혼을 위해서는 아직 때가 이르다.

아직 끝나지 못한 일이 하나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좋게 말해도 애정표현에 익숙하지 않아. 그러니 너를 섭섭하게 할 때가 있을지도 몰라.”

지수는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천천히 케이스를 열며 그녀에게 반지를 권했다.

로키가 직접 만들어준 약혼반지다.

“그래도 괜찮다면, 받아줄래?”

반지의 재질은, 1회차 이드라가 만든 말뚝의 일부를 살짝 떼어 만들었다.

“사랑한다, 지수야.”

조심스럽게 내민 케이스를 쥔 손이 약간 떨렸다.

지수는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천천히 양손으로 그런 내 손을 감싸 쥐었다.

손을 감싼 지수의 손도, 나 못지않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던 지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활짝 웃었다.

그것만으로 너무나 충분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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