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92화 (292/332)

# 292

292. 한계돌파(2)

“흥, 부질없는 짓을.”

쌍검을 손에 쥔 아자젤을 보며 이디크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이제와 혼자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서 이 악마를 처리하고 마왕을 쳐죽여 주마.’

비록 마왕에게 한번 당하긴 했지만, 그건 기세에 밀렸을 뿐이다.

다시 싸운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하얀 악마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검을 들어봤자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이디크는 디엔드라와 한번 시선을 교환한 뒤, 지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방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단번에 끝을 낼 생각이었다.

콰아아아!!

그들이 있는 하늘위에서 아자젤이 있는 지상까지 공간이 뒤틀렸다.

이계로 통한 검은 공간이 열리고, 사방에서 무수한 이빨이 자라난 촉수가 튀어나왔다.

지면에 만들어진 기이한 그림자들이 꿈틀거리며 사냥개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얌전히 있으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이디크의 입에서 잔혹한 선고가 떨어지자 방금 전보다 배는 되는 숫자의 공격이 아자젤을 덮쳤다. 촉수가 대지를 집어삼키며 아자젤이 있던 장소를 도려냈고,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이 아자젤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음?”

개미지옥처럼 무너져 내리던 대지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자, 구멍에서 빠져나오며 높이 뛰어오르는 아자젤의 모습이 보였다.

“허튼 짓을!”

높이 뛰어오른 아자젤을 쫓으며 틴달로스이 사냥개가 허공을 질주했다.

새까만 잔영이 길게 늘어지며 족히 스물 이상의 사냥개가 아자젤의 다리를 물어뜯기 위해 입을 벌렸다.

서걱!

발목을 물어뜯기 직전이던 사냥개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그뿐 아니라 금색의 검광이 궤적이 그려지며 뒤이어 따라오던 사냥개들까지 단숨에 토막났다.

아자젤의 쌍검이 춤을 추는 것처럼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자신의 사냥개들이 단번에 쓰러지자 이디크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디엔드라!! 보고만 있을 거냐!”

“흥분하지 마라, 이디크.”

흥분한 이디크와 달리 디엔드라는 아자젤에게 일어난 이변을 눈치챘다.

방금 전과는 그녀의 움직임은 전혀 달랐다.

속도도, 힘도. 모든 것이 배는 상승해 있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나?’

아자젤의 능력을 모르는 그들로선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나 확실한 건, 더 이상 놀지말고 단번에 끝내야 한다는 것.

“게이트를 열겠다. 너도 전력을 다하도록 해라.”

“뭐? 그럼 아버지가 즐기실 수…….”

“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디엔드라의 모습에 이디크는 작게 혀를 차며 그가 가진 ‘권능’을 개방했다.

그가 부릴 수 있는 건 틴달로스의 사냥개만이 아니다. 모든 틴달로스의 군주가 자신의 아래였다.

“므히트르하.”

그는 틴달로스의 군주 중에서도 특출한 강자였다.

한때 아우터갓에게도 덤벼들었던 틴달로스 최강의 군주.

이디크의 부름에 공간이 무언가에 잡아 뜯긴 것처럼 갈라지며 수십 개의 날카로운 손가락을 지닌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이미르만큼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거인이 공간을 비집으며 나오고 있었다.

“저것을 짓눌러 버려라.”

「───」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음이 울리며 거대한 팔이, 틴달로스의 사냥개와 촉수를 가르며 나아가던 아자젤을 향해 뻗어졌다.

그러나 그의 손은 아자젤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맨 땅을 두드렸다.

간발의 차로 므히트르하의 손을 피한 아자젤은 그 거대한 팔을 타고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열려라, 예쿠브.”

이디크가 므히트르하를 소환하는 사이, 디엔드라는 다수의 그레이트 올드원들이 서식하는 별의 문을 열었다.

외우주로 통하는 문이 열리자, 거대한 지네와도 같은 괴물이 문에서 튀어나오며 무히트르하의 팔을 타고 달려오던 아자젤을 덮쳤다.

용과도 같은 거체를 지닌 지네, 에쿠비안이라 불리는 괴물이 기괴한 입을 벌리며 아자젤을 단번에 삼키려했지만 아자젤은 양손에 쥔 검을 꽉 움켜쥐며 풍차처럼 회전했다.

촤아아악!!

톱니처럼 회전하며 아자젤의 몸이 거대한 지네의 몸을 반으로 가르며 전진했다.

하지만 에쿠비안의 숫자는 하나나 둘이 아니었다.

거기다 괴물은 에쿠비안만이 아니었다.

니알라토텝이 열었던 드림랜드에 서식하던 괴물들까지 어느새 사방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무수한 숫자의 샨타크 무리가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느려.’

아자젤은 그런 괴물의 무리를 보며 생각했다.

한없이 느리다고.

그건 괴물들이 움직이는 속도를 말한 게 아니다.

바로 아자젤, 자신이 너무 느렸다.

‘느려, 그리고 약해.’

쏟아지는 괴물은 문제가 아니었다.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그레이트 올드원들과 그 모든 걸 통제하는 이디크와 디엔드라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들은 아직 여력이 있었다.

다수의 괴물들을 소환한 지금, 그들은 본격적으로 자신을 공격해 올 것이다.

드드드드!

무수한 촉수와 수만 마리의 사냥개.

그리고 외신의 권능까지 합쳐져 아자젤은 하늘조차 볼 수 없었다.

무수한 괴물들이 자신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더, 더 강해져야만 했다.

이런 괴물들은 가볍게 뿌리치고, 두 외신을 넘어 아자토스에게 도달하려면.

꽉!!

아자젤은 양손의 검을 꽉 움켜쥐었다.

금색으로 빛나던 검이 불꽃처럼 타오르며 점차 백색으로 변했다.

아자젤의 머리색과도 같은 순백의 빛이 뿜어지며 아자젤은 뛰어올랐다.

「──!!!」

므히트르하가 괴성을 지르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기괴하게 길어지며 촉수처럼 아자젤의 몸을 구속하기 위해 주변을 에워쌌다.

카가가강!!

아자젤의 검이 므히트르하의 손가락을 향해 휘둘렀지만, 단번에 베지 못하고 불꽃을 튀기며 밀려났다.

‘더.’

금색 눈동자가 빛을 머금으며 그녀의 힘이 점차 개방되기 시작했다.

나태의 악마가 지닌, 여태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한계돌파의 능력이.

‘더!’

서걱!!

튕겨져 나갔던 칼날이 므히트르하의 손가락을 잘라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므히트르하의 손가락을 베어낸 아자젤은 그렇게 생긴 틈을 비집고 빠져나가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며 덮치는 샨타크의 몸통을 짓밟으며 계속해서 공중으로 뛰어올라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백색의 잔상이 그려졌다.

땅에서 시작된 백색의 섬전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점점 더 빠르게.

“막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디엔드라가 소환한 모든 괴물과 그레이트 올드원을 향해 소리쳤다.

몬스터의 폭포가 하나의 악마를 집어삼키기 위해 쏟아졌다.

수십 마리의 에쿠비안이 아자젤을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든다.

그것을 몸을 반회전하며 반으로 가른 뒤, 잘려진 몸통을 밟고 뛰어오른다.

거대한 뿔이 달린 인간의 형상을 한 나이트 건트들이 괴성을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른다.

서걱!

백색의 빛이 스쳐지나가며 나이트건트들이 목이 우수수 잘려나가며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앞으로 나아가던 아자젤의 앞에 거대한 괴물의 머리가 보였다.

바로 아자젤을 막아선 므히트르하의 본체다.

「───!」

괴물의 입에 검붉은 빛이 모여들며 아자젤을 향해 쏘아졌다.

붉은 광선을 향해 아자젤은 쌍검을 앞으로 교차하며 그대로 꿰뚫고 지나갔다.

「……」

검붉은 빛이 사라지자, 므히트르하의 머리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미친, 씨발!”

이디크는 인간의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이 부를 수 있는 모든 틴달로스의 사냥개와 군주를 불렀다.

백색의 악마가 이곳을 향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수천 마리의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을 베고.

그런 사냥개들을 부리는 군주들의 목을 베고.

외계(外界)의 괴물들을 베어냈다.

베고, 베고, 또 베어내자 양손의 검에 깃든 백색이 점점 더 밝게 빛났다.

“크투가, 이타콰!”

그건 지금까지의 괴물과는 격이 다른 그레이트 올드원의 이름.

불과 얼음을 상징하는 두 외신이 공간을 비집으며 튀어나왔다.

거대한 지렁이의 모습을 한 아크만의 몸을 반으로 가른 아자젤을 향해 그들의 권능이 가해졌다.

모든 걸 얼려버리는 냉기.

모든 걸 재로 만드는 열기.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별을 궤멸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들이다.

그러나 하필 시기가 좋지 않았다.

서걱.

백색의 검이 둥근 궤적을 그리며, 두 그레이트 올드원의 목이 잘려나갔다.

단번에 목이 잘려나간 이타콰와 크투과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지상으로 쓰러졌고, 아자젤은 그들의 육신을 밟으며 뛰어 올라갔다.

이미 아자젤의 앞에는 이디크와 디엔드라밖에 남지 않았다.

저 둘을 지나간다면 아자토스에게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디크는 식은땀을 흘리며 초조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그 탓에 제대로 상황을 읽고 판단하기 힘들었다.

‘인간의 감정이란 참으로 불필요하고 쓸모없구나!’

그렇다고 인간의 모습을 버리자니 아자토스가 신경 쓰였다.

거기다 자신도 없었다.

‘본체로 돌아간다면 저걸 죽일 수 있나?’

이젠 그런 의문이 들 정도다.

대체 무슨 힘을 가지고 있기에 계속 강해지는 거지?

‘재능?’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보다 순수한 강함.

이젠 아자젤이 가진 힘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녀의 힘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시계바늘이 한 칸씩 움직일수록 아자젤은 한 단계 나아갔다.

한계를 넘고 넘어. 그 자신도 지금이 어디인지 모를 때까지.

그렇지 않으면 닿지 않을 테니까.

인식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그런 힘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그만 좀, 꺼져라!!”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울리며 이디크가 양손을 뻗었다.

그의 힘에 지구 전체가 공진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도 전에 백색의 검광이 번쩍이며 아자젤의 신형이 이디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흔들리던 진동이 뚝 멈췄다.

‘이게 뭐야?’

헛웃음을 짓는 순간, 시야가 빙그르르 돌았다.

그제야 자신의 머리가 잘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 정도로 이디크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자젤의 목적은 외신을 죽이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을 넘어 아자토스에게 도달하는 거였다.

굳이 시간을 길게 끌며 그를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큭!!”

머리가 잘리며 떨어지는 이디크를 본 디엔드라가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시여, 죄송합니다!!”

이디크의 머리가 잘리자, 디엔드라는 더 이상 인간의 몸으로 저걸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디엔드라의 몸이 뒤틀리며 단번에 거대한 괴수의 모습으로 변했다. 무수한 촉수와, 전신에서 벌름 거리는 수 천 개의 입.

본래라면 크기도 별과 비등한 수준이었겠지만, 그렇게 커지기엔 지금 시간이 부족했다.

거대한 고깃덩어리와도 같은 거체에서 무수한 이빨이 자란 수 만개의 촉수가 아자젤을 노렸다. 여린 팔과 다리를 끊고 더 이상 전진하는 걸 막기 위해서.

작고 여린 육신을 노리며 휘둘러진 촉수를 향해 아자젤의 검이 움직였다.

머리를 노리는 촉수를 반으로 가르고, 몸통을 둘러싸는 촉수를 끊으며 쏟아지는 이빨의 비를 검을 휘둘러 튕겨냈다. 튕겨낸 이빨을 도리어 거대한 디엔드라의 육신에 박혔다.

「……!!」

디엔드라는 자신이 가진 촉수들이 죄다 잘려나가기 시작하자, 육체의 중심에 있는 거장 거대한 촉수, 무수한 돌기가 자란 자신의 혀를 움직였다.

촤아아악!!

거대한 혀를 가볍게 피한 아자젤은 검을 박아 넣고 혀의 위를 달리며 반으로 갈라버렸다.

디엔드라가 자신의 실책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아자젤은 자신의 무수한 눈동자의 앞에 있었다.

아자젤의 몸이 풍차처럼 회전하며 정면을 향해 돌진했다.

서걱!!

거대한 디엔드라의 육신이 반으로 갈라졌다.

두 토막으로 나뉜 거대한 고깃덩어리에서 기괴한 색상의 액체가 뿜어지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쯧.”

반으로 갈라진 디엔드라의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아자젤을 보며 아자토스가 짧게 혀를 찼다.

지금까지 즐기던 ‘인간의 흉내’조차 잊은 채, 눈살을 찌푸렸다.

“쓸모없는 것들.”

천천히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크기를 키우던 구체는 어느덧 상당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대략 십 수 미터가 될 법한 구체에는 이 별만이 아니라 주변의 항성계 전체를 지워버릴 힘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우주를 한번 리셋 할 정도의 힘은 아니었다.

아자토스가 일부러 상황을 즐기기 위해 천천히 크기를 키운 탓이다.

“그래서 본 게 이런 불쾌한 광경이라니.”

고작 악마 하나에게 외신 둘이 가볍게 농락당했다.

수많은 외신의 군세가 돌파 당했다.

마왕이 없으면 제대로 힘도 사용할 수 없는 하찮은 미물 따위에게.

아자토스가 보기에 지금의 아자젤은 외신 하나나 둘로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저 검에 담겨 있는 힘은 아자토스조차 ‘어떻게?’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수준이었으니.

“질렸다. 그만 사라지도록 해라.”

빙글빙글 돌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아자토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아자젤을 보며 좀 더 몸을 뒤로 뺐다.

굳이 저런 불쾌한 것과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일은 이미르가 부탁한 것처럼 이 우주를 리셋하는 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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