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
291. 한계돌파(1)
“아자젤 님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나요?”
그건 퍼블리셔가 지구에 침략하기 며칠 전이었다.
미래를 예지하기 위해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민수아는, 방에서 나오자마자 아자젤에게 그런 말을 했다.
“호오.”
7대 악마 중 하나, 나태의 악마 아자젤에게 하는 말이라곤 참으로 시건방진 말이 아닌가.
민수아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붕붕 머리를 흔들었다.
“아, 아뇨! 아자젤 님을 도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단지…….”
“단지?”
“……정말로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민수아의 얼굴은 썩 좋지 않았다.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지을만한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미래에 대체 뭐가 오기에 그러니?”
“저도 모르겠어요. 애초에 미래가 뒤틀리며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그다지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뭔가 불안한 게 있구나.”
“네. 가장 흐릿한 미래가 있었거든요.”
가장 흐릿한 미래라.
아자젤은 계속 말해보라는 듯, 탁자에 턱을 괴고 민수아를 응시했다.
“그건 거인왕이 아니었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저는 감히 관측할 수도 없는 그런 이가 지구에 나타나게 될지도 모른다고요!”
“그럼 외신인가?”
“그, 그런 거 같지만 잘 모르겠어요. 그걸 외신이라고 불러야 할지…….”
자신 없다는 얼굴로 말하는 민수아에게 아자젤은 시선을 뗐다.
그리고 창밖으로 어두운 하늘을 응시했다.
현재 그들이 있는 장소는 마계였기에 지구와는 전혀 다른 잿빛 하늘만이 보였다.
조용한 침묵이 방 안에 맴돌았다, 아자젤의 입이 열린 건 대략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나도 몰라.”
“네? 뭐, 뭘 모르신다는 건가요?”
“아까 네가 물었잖니. 내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아.”
“미안하지만 나도 몰라. 내 힘을 제대로 사용할 만한 상대는 딱 한번 빼고는 없었거든.”
사실 그때도 모든 힘을 다 사용한 느낌은 아니었던지라 아자젤은 본인의 능력이 가진 한계를 알지 못했다.
“힘을 사용했던 상대는 누군가요?”
“전대 나태의 악마.”
“그……렇군요.”
아자젤은 7대 악마 중에서는 비교적 어린 축에 속했다.
다른 악마들에게 물어도 아자젤의 신상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소문에 의하면 천사와 악마의 혼혈이며, 어느 날 마계에 나타나 나태의 악마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물론 지금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과연 누구려나.”
아자젤은 창밖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민수아가 보았다는 ‘정체 모를 어떤 존재’가 신경 쓰였다.
외신이었다면 외신이라고 민수아가 말했을 것이다.
‘설마…….’
아자젤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절대자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라고 생각했으니까.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
아자토스는 절망에 빠지는 지상의 생명들을 즐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아자토스를 향해 발악하듯 공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워낙 높은 하늘에 있는 터라 제대로 닿지도 않았다.
닿는다고 하더라도 아자토스에게는 웃음만 나오는 공격이었겠지만.
신들의 경우엔 도리어 담담했다.
아자토스의 등장에도 초연한 모습으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음?”
그런 지상의 상황을 흥미진진한 얼굴로 지켜보던 아자토스는 하얀 소녀를 발견했다.
아까 전 자신과 시선을 마주쳤던 악마다.
혼란스러운 주변은 그런 그녀의 등장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아자토스만큼은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그냥 그러네.’
주변의 다른 존재들에 비하면 강하지만 아자토스에 비하면 실로 하찮았다.
허나 오만하게도 그 악마는 아자토스를 직시하며 느릿하게 허리를 숙였다.
마치, 춤을 추기 전 숙녀의 인사와 같이.
“가장 위대한 신이시여.”
워낙 사방이 고요했던 터라, 그녀의 음성은 주변의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춤을 한곡 청해도 될는지요.”
아자젤을 아는 신이나 거인들이라면 ‘혹시’라는 시선을 보냈고, 플레이어들은 대체 뭔 미친년인가 싶은 눈으로 보았다.
아자토스의 경우엔 후자였다.
별 같잖은 게 이상한 말을 하는구나 싶어 아자토스는 피식 웃었다.
“그래, 얼마든지.”
“영광입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다면 말이야.”
딱!
아자토스는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열쇠의 힘에 봉인되어 있던 두 외신, 노스 이디크와 디엔드라가 구속에서 풀려났다.
“앗!”
지수가 황급히 그것을 막아 보려했지만, 혼자서는 아자토스의 힘에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단숨에 인간의 육신을 수복한 디엔드라와 노스 이디크는 아자토스의 곁에서 한없이 죄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숙였다.
“아버지시여, 죄송합니다.”
“조, 금 방심했습니다. 다시 싸운다면 다를…….”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자토스는 손가락을 허공에 빙빙 돌렸다.
그러자 작은 점의 형태였던 구체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마침 인간의 ‘심심하다’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어. 이 기분 나쁜 감정을 해소하게 해주면 돼.”
“알겠습니다. 저 하찮은 악마를 짓밟으면 되는 겁니까?”
“음, 그래. 이게 기분 나쁘다…… 인가? 저 악마의 시선이 좀 마음에 안 들거든.”
아자젤은 아자토스에게 있어 인간과 별다를 것도 없는 존재다.
그러나 벌벌 떠는 주변의 인간이나 신과 달리, 아자젤은 지극히 초연했다.
사실 아자젤만이 아니다.
지금 이 상황을 침착하게 지켜보는 세한과, 그 무리들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니알라토텝이 언제나 떠들던 인간의 공포에서 나오는 격한 감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곳에 오지 못하게 막아. 여기까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줘.”
“이번에도 인간의 모습으로 말입니까?”
“좋을 대로 해도 되지만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면 이 작은 별에서 제대로 볼 수도 없잖아.”
“알겠습니다.”
즉, 인간의 모습으로 싸우라는 소리다.
디엔드라는 그런 아자토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비록 악마들에게 굴욕을 맞보긴 했지만, 그건 갑자기 난입한 여신 때문.
악마 하나라면 인간의 몸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흐음.”
그런 외신들을 보며, 아자젤은 손에 쥔 양산을 흔들었다.
아자토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전부 들었다.
감정에 심취하여 인간의 오만마저 얻은 건가?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후우.”
나태의 악마가 되었던 이후, 제대로 된 첫 싸움이었다.
여태까지 있었던 자잘한 전투는 아자젤에게 ‘싸움’이 아니었으니까.
아자젤은 활의 시위를 당기듯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목표는, 아자토스의 앞.
쾅!!
화살이 쏘아지는 것처럼 아자젤의 신형이 날았다.
찰나라는 말이 무엇보다 어울리는 속도였지만, 두 외신은 그런 그녀의 움직임을 명확히 보며 반응했다.
“흥!”
아자젤이 날아가던 정면에 공간이 뒤틀렸다.
그것을 양산을 사용해 비틀어 튕겨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혼자서 무얼 하겠다는 거지? 이번엔 방심하지 않는다.”
사방에 공간이 열리며 무수한 촉수가 튀어나왔다.
마치 문어의 다리와도 같은 촉수에는 기괴한 형상의 이빨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콰아아아!!
촉수가 크게 흔들리자 수천, 수 만개의 이빨들이 비처럼 아자젤을 향해 쏟아졌다.
저 이빨에 찢기게 되면 존재 자체가 집어삼켜질 게 분명했다.
그것을 아자젤은 양산을 휘둘러 튕겨내고 막아냈다.
실로 경이적인 광경이었지만, 아자젤의 움직임은 금방 한계에 부쳤다.
이빨과 함께 주변의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꺼져라.”
이디크의 짤막한 말이 들리는 동시에 아자젤은 자신의 발목 근처에서 이질적인 감각을 눈치챘다.
‘틴달로스의 사냥개.’
모든 시공의 그림자에 존재하는 맹수.
죽여도 죽지 않으며, 한번 마주친 존재를 영원한 시간동안 추적하는 괴물이 아자젤의 발목을 물어뜯었다.
“아.”
짤막한 신음과 함께 아자젤의 신형이 틴달로스의 사냥개에게 이끌려 지상으로 추락했다.
아자토스가 있는 장소의 절반조차 도달하지 못한 채 아자젤은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거대한 촉수가 마치 발로 밟는 것처럼 짓뭉개 버렸다.
콰과과광!!
크게 들썩이는 대지에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은 침통한 얼굴이 되었다.
역시 아자젤이라고 하더라도 외신 둘을 상대하며 아자토스에게 도달하는 건 무리였다.
“……아프네.”
그건 아자젤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뭉갠 촉수 틈에서 빠져나오며 순식간에 더렵혀진 백색의 드레스를 보았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를 떨쳐내긴 했지만, 다리에도 상처가 남아 있었다.
아주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와 춤을 춘다고 하지 않았어? 고작 그런 실력으로 떠들다니 우습기도 하지.”
그런 아자젤을 향해 아자토스가 비웃었다.
그의 양옆에 있는 이디크와 디엔드라는 그런 아자토스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외신이라는 존재는 강했다.
신의 틀을 벗어난 절대자들.
그런 두 존재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아자젤이라도 무리였다.
평소의 아자젤이라면 귀찮다고 말하며 그냥 드러누워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전이라면 그랬을 거야.’
허나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계에서 아자젤은 보았다.
오직 하나의 존재를 얻기 위해 끝없이 갈망하던 여성을.
어째서 저 여자는 저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자신이 희생할 필요 따위는 전혀 없을 텐데.
남을 위해서 강해질 이유 따위는 없는데.
그녀는 한 남자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걸 바치면서까지 싸웠다.
그리고 끝내 자신이 낼 수 있는 극한의 힘까지 끌어내며 끝내 루시퍼를 쓰러트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아자젤은 공포를 느꼈다.
그녀가 자신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니다.
본디 공포란 미지의 것에서 오는 법이니까.
그 공포는 아자젤에게 의문을 던졌고, 아자젤은 만약 자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나 고민했다.
그리고 그 답은, 아주 의외의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아.”
노력은 해본 적 없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지금까지는 말이다.
“가장 위대한 신이여. 혹시 그대는 아십니까?”
“뭐를?”
“인간이 가장 강해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
모른다.
당연히 아자토스가 알 리가 없었다.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인간이 강해져 봐야 인간일 뿐이다.
“답은…….”
아자젤은 천천히 반쯤 망가진 양산을 들어올렸다.
양산은 새하얀 빛을 머금으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을 아자젤은 양손으로 그러쥐며 천천히 반으로 쪼갰다.
“공포를 느꼈을 때입니다.”
그녀의 양손에는 순백으로 빛나는 빛이 각각 들려있었다.
하얗게 빛나던 빛은 점차 수그러지며 하나의 형상을 취했다.
각각 한 자루의 검으로.
“가장 약해질 때도 공포를 느꼈을 때이지요.”
새하얀 쌍검을 손에 쥔 아자젤은 그것을 양쪽으로 뻗은 뒤, 넝마가 된 드레스의 양쪽에 푹 찔러 넣었다.
촤아악!!
고풍스런 드레스의 양 옆이 베어지며 아자젤의 새하얀 맨다리가 드러났다.
한층 가벼워진 복장에 아자젤은 싱긋 웃었다.
“신이시여.”
“……또 뭐야?”
“저는 어느 쪽이라 생각하십니까?”
아자젤의 질문에 아자토스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계속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저 악마가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
그렇게 답한 아자토스는 자신의 좌우에 서있는 두 외신에게 손짓했다.
지금 떠들고 있는 악마를 당장 처리하라는 지시였다.
저런 짜증나는 악마는 어서 처리하고 다른 인간들과 노는 편이 재밌을 것 같았다.
아자토스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디엔드라와 이디크가 다시 움직였다.
아자젤은 자신의 주변 공간이 뒤틀리는 걸 느끼며 조소했다.
방금 그녀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럼…….”
마계에서 나태의 악마란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악마만이 지니는 자리다.
어떤 악마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아자젤은 공포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탓에 아자젤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녀가 가진 능력은 한계돌파.
한계를 모르는 그녀가 그 능력을 다룰 수 있을 리 없다.
굳이 한계를 넘어야 할 이유도 느끼지 못했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다.
아자젤이 한계돌파를 사용했던 건 단 한번.
전대 나태의 악마 벨페고르를 죽였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불완전했다.
한계를 넘는다는 건, 결국 막다른 길에 내몰린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었으니까.
공포를 몰랐던 아자젤이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유였다.
본인의 능력임에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능력.
그러니 아자젤은 자신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몰랐다.
어디까지 한계를 넘을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럼 이제 아자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뿐이었다.
“──직접 알아봐야겠지.”
바로 스스로의 한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