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88화 (288/332)

# 288

288. 인간의 검(4)

세한이 시스템과 싸우고 있을 무렵, 샹관 유엔은 발두르와 함께 만리장성에 도착해 있었다.

비밀리에 만들어 둔 시설은 다행히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만, 별자리들과 거인들이 지상에 떨어지며 생긴 충격파 탓에 만신창이였다.

‘이걸 어쩌지?’

유엔은 부서진 시설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우선 검으로 가는 통로가 죄다 무너져 있는 탓에 검이 무사한지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이래서야 만약 세한이 검을 사용하고자 요청을 한다고 해도 운반을 할 수 없었다.

“……이건 검인가?”

“뭔가 보이시는 건가요?!”

떨떠름한 얼굴로 말하는 발두르를 유엔은 황급히 돌아보았다.

현재 그들은 지상에 있는 탓에 지하에 파묻힌 검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발두르가 볼 수 있는 건 그가 지닌 능력으로 땅을 투시해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 보인다. 이렇게 거대한 검은 신화시대에도 보지 못했거늘.”

“무사한 거죠?”

“음, 검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하다. 애초에 이정도 충격으로 부서질 물건도 아니다. 대체 어떻게 만든 거냐?”

발두르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저렇게 거대한 검을 만든 것도 만든 거지만 저 검을 코팅하고 있는 건 오리하르콘이었다.

대체 저 많은 오리하르콘이 어디서 난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유엔은 그런 발두르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 세한을 향해 막 쪽지를 보내고 있던 차였으니까.

「다행히 중국은 무사히 퍼블리셔의 공격을 막아냈어요. 하지만 검이 지하에 매몰된 상태라 그쪽으로 전송하기 힘들 것 같아요.」

유엔은 그렇게 쪽지를 적은 후, 곧바로 세한에게 전송했다.

그런 유엔을 옆에서 지켜보던 김태훈이 자신의 신을 대신하여 물었다.

“김세한에게 쪽지를 보낸 건가?”

“네. 지금 한국은 거인왕이 직접 간 것 같으니 바로 답이 오지는…….”

띠리링!

그런 유엔의 생각과 달리 쪽지는 곧바로 도착했다.

「지금 그쪽으로 분체를 보내마.」

“분체?”

우우웅!

쪽지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유엔의 바로 앞에 작은 공간이 열렸다.

세한이 애용하는 스킬인 허수공간이다.

“끙!”

하지만 작은 공간에서 튀어나온 건 자그마한 여성이었다.

검고 붉은 마녀복장에 금발을 한 여성.

마치 요정과도 같은 크기로 줄어들었지만 유엔은 그녀가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다.

“이드라 님?!”

“세한은 지금 시스템과 싸우느라 상당히 바쁜 터라 대신 왔도다.”

“이드라 님은 괜찮으신 건가요?”

“내 본체는 어디까지나 그와 함께 있지. 이곳의 난 어디까지나 환상으로 이루어진 분체다.”

팔짱을 끼고 씩 웃는 그녀의 모습은 어디로 봐도 이드라였다.

유엔은 잠시 벙 쪘지만 그녀는 인간이 아닌 신이므로 대충 납득하기로 했다.

그런 사소한 것보단 지금 ‘시스템’과 싸우고 있다는 세한 쪽이 신경 쓰였으니까.

하지만 유엔이 묻는 것보다 빠르게 발두르가 먼저 반응했다.

“뭣?! 이드라여! 까마귀가 지금 시스템과 싸우고 있는 건가?!”

“오, 발두르로군. 그렇다. 이미르가 시스템을 자신의 몸에 강림시켰다.”

“놀라운 일이로구나. 그 거인왕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붙였다는 건가…….”

발두르는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르의 힘은 신들이 더욱 잘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태 퍼블리셔의 눈치를 보며 초상계에서 살아왔을 리 없다.

그런 두 신의 대화를 듣던 유엔은 빠르게 상황파악을 마친 후, 날카로운 눈으로 이드라를 보았다.

“그런데 이드라 님. 이곳에 분체를 보내신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오, 그렇지. 역시 영특하구나.”

“그야 단순히 말을 전하실 거면 쪽지로 충분하니까요.”

“그렇지. 내가 이곳에 온 건, 현재 이곳의 상황파악을 하는 것과 검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다.”

“허수공간을 통해?”

유엔의 말에 이드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운반만 하려했다만, 마침 발두르도 있군. 세한은 이걸 노려서 이 아이를 이곳에 보낸 건지도 모르겠어.”

“저, 말입니까?”

이드라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건 다름 아닌 김태훈이었다.

갑자기 자신이 지목되자 그는 상당히 떨떠름한 것 같았다.

확실히 김태훈을 중국으로 보낸 건 세한이 맞았지만,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와 별개로 김태훈의 신인 발두르는 이드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듯 피식 웃었다.

“아아, 과연. 내가 여기에 강림할 이유를 만든 거였나.”

“아바타를 소중히 생각하는 그대라면 분명 이곳에 오리라 생각한 거겠지.”

“더불어 내가 까마귀의 일에 관심을 보이리라 생각했을 테고.”

“애초에 신이라면 이런 일에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으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는 발두르에게 이드라는 인형만큼 작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참 우스운 광경이었지만 유엔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발두르 님이 파묻힌 검을 꺼내는 것에 도와주신다는 건가요?”

“아마 이 작은 외신이 바라는 건 그것만이 아닐 테지.”

“그렇다.”

유엔은 둘의 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파묻힌 검을 꺼낸다고?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그런 게 가능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유엔이 ‘신’이라 자칭할 수 있는 존재를 얕본 것이었다.

비록 세한은 그들을 신이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눈에는 한없이 전능해 보이기에 신인 것이다.

“나중에 까마귀에게 이번 빚은 꼭 받도록 하겠다.”

그런 유엔의 의문에 답하듯, 발두르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흥분이 엿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그의 모습은 옵저버를 통해 수많은 신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 남의 눈에 띄기 좋아하는 신들에겐 무엇보다 큰 포상이었다.

지금 발두르의 모습을 수많은 신들이 지켜보며 부러워하고 있으리라.

“흡!!”

발두르는 오른 주먹을 땅에 메다꽂았다.

그의 주먹이 땅에 박히자, 대지가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틈에서 금색의 휘광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쿠르릉!!

마치 천둥과도 같은 굉음이 울리며 땅이 무너져 내렸다.

유엔은 작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런 유엔과 김태훈은 근처에서 날아다니던 이드라가 가볍게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자칫하면 무너져 내리는 땅과 함께 떨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덕분에 유엔은 발두르가 보여주는 경이적인 광경을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맙소사……!’

발두르가 대단한 신이라는 건 이미 거인들을 죽일 때 보아 알고 있었다.

당장 그의 아바타인 김태훈만 하더라도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지녔고, 웬만한 공격에는 몸에 흠집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발두르의 힘은 그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신’이라는 말이 이토록 와닿은 건 처음이다.

“조금, 무겁긴 하구나!!”

쿠구구구궁!!

땅속에 파묻혀있던 거대한 검.

족히 수천 미터는 되는 거대한 검을 지금 발두르가 아래에서 받치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저 검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유엔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인간과도 같은 크기의 신이 들고 있으니 마치 하늘을 떠받친 아틀라스를 보는 것 같았다.

“끄으응!! 확실히 조금 무겁긴 하군.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드라!”

“기다려라. 저쪽의 내가 상황을 보다 신호를 줄 테니.”

이드라는 시스템과 싸우고 있는 세한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완전무결에 가까운 존재인 시스템이 과연 틈을 내보일지는 솔직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한은 조금씩 시스템의 방벽을 깎아내며 버텨내고 있었다.

작은 틈.

아주 작은 틈만 있으면 ‘완전에 가까운’ 시스템을 ‘불완전’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세한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기적처럼.

기회가 생겼다.

시스템이 세한을 죽이기 위해 ‘세계의 틈’을 연 것이다.

계속해서 저항하는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지금이다!!”

이드라의 외침에 발두르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검의 자루를 치켜 올리며 한 곳을 조준했다.

바로 붉은 하늘이 사라지고 나타난 푸르른 하늘, 정 가운데.

“문을 열어라, 이드라!!”

발두르의 외침과 함께 푸르른 하늘에 거대한 검은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바로 세한과 이드라의 특기인 허수공간.

이 세계 어디론가 연결되어 있는 본래라면 존재하지 않을 구멍.

발두르는 그 구멍을 향해 수천 미터에 이르는 검을 내던졌다.

그의 팔에는 어느새, 금색으로 빛나는 황금팔찌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전승스킬이자, 권능이 발현된 것이다.

고오오오!!

북유럽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 발두르는 오딘의 둘째 아들이며 빛의 신이다.

또한 그는 ‘빛나는 자’라는 칭호를 지니고 있으며 모든 신중에서도 가장 완벽하다 칭송받았다.

그래, 그는 가장 빛나는 신.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의 호칭에 걸맞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손에 든 모든 걸, 빛의 속도로 날리는 권능.

발두르의 모든 능력은 모두 그 권능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의 아바타인 김태훈이 압도적인 속도와 강인한 육신을 지닌 것도 그 때문.

바로, 빛의 속도에 버티기 위해서.

“──드라우프니르!!”

발두르의 외침과 함께 수천 미터의 거대한 검이 사라졌다.

유엔의 눈에는 그렇게만 보였다.

금색의 잔상을 남기며 사라진 검은 빛의 속도로 날아가 허수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스템이 인지하는 것보다 빠르게 거대한 육신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

「오류.」

「오류.」

「오류.」

20킬로미터가 넘게 거대해진 이미르의 몸이었지만, 그 거대한 검은 심장을 꿰뚫기에 충분했다. 여태까지 세한의 공격을 받으며 약해진 탓에 빛의 속도로 날아온 검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타격에 딜레이 발생.」

처음으로 발생한 오류.

시스템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빠르게 현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검색했다.

「이물질을 삭제합니다.」

시스템은 가슴에 박힌 검을 양손에 쥐고 ‘삭제’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세한의 손이 검의 자루에 닿았다.

“그렇게는 안 되지!”

세한의 머리 위에 떠있는 금색의 왕관에서 빛이 일어나며 열쇠의 힘이 일부 검으로 흘러들어갔다. 열쇠의 힘이 검에 깃든다면 설령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삭제할 수 없었다.

시스템이 세한을 직접 삭제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플랜을 변경.」

검이 삭제되지 않자, 시스템은 가슴에 박힌 검을 우선 뽑아 던졌다.

던져진 검은 세한을 향해 날아왔지만 세한은 그 검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다.

콱!!

그러자 검은 마치 누군가에게 잡힌 것처럼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물론 그것을 잡은 건 세한이었다.

환상을 이용해 투명하고 거대한 손을 만들어 검을 받아낸 것이다.

「치명적인 상처를 확인. 육체의 수복을 위해 1분전 세이브 데이터를 로딩합니다.」

시스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뻥 뚫려 있던 가슴이 단번에 수복되었다.

정확히는 ‘이전으로 돌아갔다’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방금 난 상처를 이용해 몰아붙이려고 했던 세한으로선 허탈할 정도였다.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1분 전의 시간을 자신의 몸에 덮어쓰는 건가.’

만약 세계에 간섭하여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라면 열쇠를 이용해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분 전에 세이브 되어있던 자기 자신을 복사에 붙여 넣어버리니 간섭하고 자시고 할 수도 없었다.

“핵을 부수지 않으면 영원히 죽일 수 없을 게다.”

“그럴 거 같네.”

세한은 잠자코 시스템을 지켜보았다.

시스템은 육신을 회복한 후, 아까 같이 세계의 틈을 자신에게 인스톨하기 시작했다.

‘인스톨을 막아선 안 돼. 적어도 방금보다는 조금 더…….’

하지만 완전히 세계의 틈에 연결되어도 안 된다.

그럼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은 깨어지고 지구는 그대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기회는 한번 뿐이다.’

세한은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그에 따라 거대한 검이 팔의 궤적에 따라 그대로 움직였다.

이제부터 세한은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만 했다.

시스템의 근원까지 닿으려면 반드시 시스템이 세계의 틈에 연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완벽히 연결되면 끝장.

‘이거 뭐 말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헛웃음을 짓는 세한에게 이드라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세한의 앞에 작은 로딩 바가 나타났다.

현재 로딩 바가 나타내는 수치는 20퍼센트였다.

“50퍼센트. 시스템이 강제로 세계의 틈을 닫을 수 없는 수치이며, 근원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80퍼센트 이상이 되면 그대가 만든 세계는 부서지게 될 게다.”

“알기 쉬워서 좋네.”

세한은 숨을 고르며 시스템을 향해 천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뒤에는 전함만큼이나 거대한 검이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세계의 틈의 힘을 사용해, 적을 완벽히 제거합니다.」

딱딱한 알림과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기괴한 조형체가 만들어졌다.

근원에 접촉하며 세한이 만들어낸 환상에도 간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리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검을 만든 것이다.

열쇠의 힘을 담아 어떤 것에도 간섭받지 않는 무기를.

거대한 거인왕의 육신을 베어가를, 인간의 검을.

고고고고!!

시스템이 세계의 틈과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세한이 구축된 세계가 무너져간다.

붉은 하늘이 열리며 네모나고 새까만 거대한 물체가 세한을 향해 떨어졌고, 열린 공간에서는 이미르가 사용하던 검은 사슬이 세한을 뒤쫓아온다.

부서진 공간에서 만들어진 기괴한 조형체는 당장이라도 세한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온다!!”

이드라의 외침과 함께 세한은 팔을 움직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물체를 베어가르고, 쫓아오던 사슬을 끊어낸다.

좌우에서 덮쳐오던 기괴한 조형체를 끊어낸 후, 크게 팔을 휘젓는다.

그러자 거대한 검이 수평으로 회전하며 시스템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콱!!

목에 닿기 전, 시스템이 오른팔을 들어 올려 막았다.

장벽은 종이처럼 깨어지며 오른팔에 검이 반쯤 박힌다.

「상처를 확인. 육체의 수복을 위해 1분전 세이브 데이터를 로딩합니다.」

검이 뽑히자마자 시스템은 곧바로 상처를 수복했다.

‘불러올 수 있는 시간은 다행히 최대 1분이 한계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방벽이 약해지기 전의 시간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세계의 틈에 완전히 연결되기 전에나 그렇겠지.

80퍼센트가 넘어가면 제한이 사라지리라.

[인스톨 42퍼센트]

곧 50퍼센트다.

세한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래도 한 자루의 검이 더 필요할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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