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84화 (284/332)

# 284

284. 결전(3)

거인과 별의 군세,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수많은 플레이어들에 의해 지구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기 직전이었지만, 현재는 상황이 반전되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수많은 신들이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인류의 적을 상대로 본신의 힘을 뽐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투아하 데 다난의 누아다 아케트라브.

유럽에는 아스가르드의 오딘.

그리스에는 올림포스의 제우스.

등등 수많은 신들이 지상에 강림하여 도리어 퍼블리셔의 군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거인이 강하고, 신격을 지닌 별자리가 많다해도 신에 비하면 부족하다.

거기다 주력이 되는 거인들은 대부분 한국에 강림한 탓에 타국의 거인들은 속절없이 당해야만 했다.

“발, 발두르…….”

가장 완벽한 신이라 불리며, ‘빛나는 자’라는 칭호를 가진 신.

그의 손은 거인의 가슴팍을 꿰뚫고 있었다.

“네, 네놈들이 이런다 해도 멸망은 막을 수…….”

“시끄럽다.”

“끄아아악!!”

그의 팔이 밝게 빛나는 순간, 거인의 몸이 재로 변하며 단번에 흩어졌다.

샹관 유엔, 그리고 김태훈은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고 경이적인 광경이었다.

발두르는 등장하자마자 수십의 거인들을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일소해 버렸다.

그의 몸이 번쩍인다 싶은 순간, 거인들의 몸이 오체분시가 되어버렸다.

하나하나가 신격을 지닌 신급 존재들이었을 텐데도.

‘사, 산 건가?’

친위대의 거인을 떨쳐냈더니, 별들이 쏟아지며 베이징의 절반이 박살 났다.

그것들을 상대로 어떻게 버텼더니 이번엔 다른 차원의 플레이어들이 몰려왔다.

이젠 정말 끝이다 싶었는데 갑자기 신들이 강림하더니 전세가 뒤바뀌었다.

순식간에 휙휙 바뀌는 상황에 샹관 유엔은 정신이 없었다.

“괜찮은가? 인간들이여.”

“……예, 괜찮은데 어떻게 된 거죠?”

“흠, 그 영악한 까마귀에게 휘둘렸을 뿐이다.”

까마귀라면 김세한을 말하는 건가?

세한에게 여러 가지 계획을 들었던 유엔이지만 신들을 강림시킨다는 계획시킨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거기다 ‘휘둘렸다’라는 말치고 발두르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썩 괜찮았다.

“그럼, 이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건가요?”

“모른다. 우리는 이 순간을 즐기러 온 것이니. 거인왕과 까마귀의 싸움은 이제 시작됐고, 모든 건 곧 결판나게 될 테지.”

“거인왕이면 이미르 말인가요?”

“그래.”

샹관 유엔은 이미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건 어떻게 됐지?

유엔은 발두르의 옷깃을 황급히 붙잡고 말했다.

“저기, 괜찮으시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호오, 맹랑한 아이로구나.”

설마 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내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발두르의 아바타인 김태훈조차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무엇을 도와달라는 거냐. 특별히 들어주지.”

다행히 발두르는 굉장히 관대한 신이었고, 세한의 활약을 계속 지켜봤기에 인간에 대한 호감도도 상당히 높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 여자는 그 까마귀 김세한의 수하 중 하나였다.

분명 다른 신들이 모르는 특별한 계획에 연루되어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호기심이 일었다.

“만리장성으로 가야 해요.”

“그 뱀처럼 긴 성 말이냐?”

“네.”

“그 성에서 어디를 가면 된다는 거지? 상당한 길이인지라 그것만 말하면 모른다만.”

“그건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상당히 다급해 보이는 유엔의 모습은 보통 일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그곳에 무엇을 숨기고 있구나.”

발두르의 말에 유엔의 몸이 움찔했다.

말해야 되나 망설였지만 부탁하는 입장에서 숨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뭣보다 그는 인간의 편인 게 분명했다.

자신을 구하러온 김태훈의 신이라고 했으니까.

“예. 한 자루의 검이 있습니다.”

바로 거인왕을 대비해 만들어둔, 수천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검이 말이다.

***

“크흐흐, 하하하하!!”

광소와 함께 자신을 ‘먹기’ 위해 달려드는 괴물을 보며 디엔드라는 생각했다.

‘아버지여, 이들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거대한 덩치에 갑옷처럼 뒤덮인 근육.

사자의 갈기와 같이 휘날리는 흑발.

‘폭식’의 악마 벨제부브를 상대하는 그는 지금 상당히 당혹스런 상황이었다.

디엔드라는 기본적으로 압도적인 물리간섭 능력을 지닌 아우터갓이었다.

그는 공간이나 시공마저 잡아 찢는 수백만 개의 이빨을 지녔고, 육신은 연기와도 같아 일반적으로는 공격조차 받지 않았다.

그가 손을 한번 휘두르면 그 궤적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이빨들이 벨제부브를 물어뜯었지만, 그것도 처음뿐이었다.

“네놈은 맛이 없군. 마치 질긴 오징어를 씹는 느낌이다. 아우터갓은 다 그런가?”

까득.

그의 입에서 부서진 이빨 조각이 튕겨져 나왔다.

벨제부브의 이빨이 아니다.

저건 방금 갈라진 공간 내에서 그를 물어뜯었던 이빨이었다.

벨제부브의 몸에는 이빨에 물어뜯긴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완전히 뜯겨지는 것보다 빠르게 벨제부브가 그것을 먹어치워 적응해 버리고 말았다.

잡아먹으려했던 것이 역으로 잡아먹힌 것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능력은 이제 안 통한다.”

“……성가신 능력을 가진 놈이군.”

디엔드라 등 뒤의 공간이 갈라지며 검은 촉수들이 무수히 튀어나왔다.

너무 만만하게 봤던 탓에 상황이 꼬여버렸다.

설마 상대의 능력을 먹어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줄이야.

만약 그렇다면 기체에 가까운 자신의 육신도 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짜증나는 놈이야.’

상성이 최악이었다.

차라리 슈브 니구라스가 상대하는 편이 나았다.

아니면 지닌 능력이 이드라의 환상처럼 애초에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우선 최대한 버티는 방향으로 가야겠군.’

디엔드라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슈브 니구라스와 노스 이디크라면 악마들 따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우터갓 중에서도 제법 강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니까.

하지만 그런 디엔드라의 생각과 달리, 이디크는 지수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으며 슈브 니구라스도 마찬가지였다.

“큭.”

몇 번의 손속을 섞은 슈브 니구라스가 얼굴을 와락 찌푸리며 루시퍼를 노려보았다.

“이 우주에서 너와 같은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슈브 니구라스의 가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미 그의 손에 불태워진 자신의 아이들이 수백이 넘었다.

저 검은 날개를 지닌 천사가 지닌 능력은 한두 개도 아니었다.

슈브 니구라스 역시 다양한 능력을 지닌 아우터갓이며, 아자토스나 요그소토스 정도 되는 아우터갓이 아닌 한 대부분 아래로 보는 강자다.

그런데 자신과 동등하게 맞서는 저 검은 날개의 천사는 대체 누구인가.

“생명이 있는 존재는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랬을 테지.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다만.”

“그래, 너는 아니로군. 대체 어째서지?”

슈브 니구라스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자신의 권능에 저항할 수 있는 자가 이 우주에 있을 줄이야.

“내가 다루는 힘 또한 너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루시퍼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그 숫자는 열둘, 그가 지닌 권능의 숫자와 같았다.

그리고 열세 번째 날개가 펼쳐졌을 때, 그는 ‘생명’의 의미를 버리게 된다.

“물론, 나 역시 너를 죽일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아우터갓에게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다.

죽이려고 해도 죽음이 존재하지 않으니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1회차의 이드라는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불멸자에게 죽음을 부여할 수 있는 말뚝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말뚝을 루시퍼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 말뚝을 가진 자는 거인왕과 싸우고 있으니까.

“이전에는 불사에 가까운 괴물과 싸웠는데 이번엔 아예 죽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니…… 참 불합리한 일이야.”

“후, 이제야 두려움이 느껴지는 겐가? 허나 늦었나. 내 아이들을 죽인 이상, 넌 곱게 죽지 못하리라.”

슈브 니구라스의 말에 루시퍼는 웃었다.

설마 두려울 리가 있나.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강자란 루시퍼에게 있어 늘 바라던 것이었다.

“너는 내게 공포를 줄 수 없다.”

자신의 모든 걸 받아주고도 망가지지 않을 상대.

천계를 몰락시킬 때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했던 그 힘을, 루시퍼는 사용했다.

“열세 번째.”

무한의 가능성을 손에 쥘 수 있게 해주는 세피라.

“다트(Daath).”

지수와의 전투에서는 사용하지 못했던 그것이 지금 발현되었다.

***

천재지변이 이런 것일까.

이미르와 싸우는 세한을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도망치기 바빴다.

이미르는 본디 마법을 비롯한 특별한 능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자색의 보석이 빛나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이미르는 그 능력을 아낌없이 해방했고, 그 힘은 고스란히 서울의 플레이어들에게 향했다.

“으아아악!!”

갑자기 땅이 뒤집히며 대지의 틈 사이로 떨어지는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질렀다.

용암의 파도가 솟구쳐 오르며 그런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어?”

이젠 죽었다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지만, 어째서인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슬그머니 눈을 뜨자 용암이 넘쳐흐르며 뒤집혔던 대지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있었다.

마치 방금 보았던 모든 게 환상처럼 느껴졌다.

“성가신 능력이로구나.”

“그러니 마법이나 그런 잔재주는 그만 사용하고 직접 덤비는 게 어때?”

이미르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상당히 언짢은 얼굴이었다.

1회차 이드라의 힘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세한의 힘은 말 그대로 전능의 편린을 손에 쥔 수준이었다.

이미르가 사용하는 각종 마법과 능력에 간섭하여, 그로 인해 일어나는 피해를 환상으로 변환시킨다.

그렇게 되면 땅이 뒤집히건 뭐가 되건 이미르의 공격은 완벽히 무효화되었다.

반고와 같이 무(武)를 사용하는 게 특기였다면 달랐겠지만, 이미르의 특기는 마법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너랑 난 상성이 좋은 것 같네. 그렇지?”

세한의 빈정거림을 들은 이미르가 눈을 찌푸렸다.

“흥!!”

이미르의 거대한 손이 세한을 향해 뻗어졌지만, 세한은 그것을 가볍게 피하며 그의 손가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나름 신격을 집중시킨 일격이었지만, 칼날은 이미르의 피부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역시 몸이 커지는 것뿐이 아닌가.’

하기야 단지 그뿐이면 거대한 과녁이 될 뿐이다.

고고고고!

이미르의 몸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이미 구름에 맞닿을 만큼 거대해진 그의 육신은 이미 천 미터를 넘겼다.

‘이대로 내버려뒀다간 발을 한번 구르는 것만으로 서울 전체가 쥐포가 되겠어.’

이미르의 본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서울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리라.

물론 세한은 그렇게 둘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드라,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은?”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다.”

세한의 어깨에 위에 매달려 있던 이드라가 답했다.

“그걸 사용하면 지금 녀석이 커지는 걸 억제할 수 있나? 열쇠와 비슷한 힘을 지녔으니 잠시 억제하는 건 가능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마!”

세한의 어깨에서 손을 때며 이드라가 양손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그 위로 검은 부등변다면체,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사용하게 둘 것 같으냐!!”

이미르의 왕관에서 빛이 일어나며 이미르의 몸 전체에 자색의 빛이 스치듯 지나갔다.

세한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녀석이 가하는 공격을 쉽사리 ‘환상’으로 변환할 수 없음을.

열쇠의 힘을 사용해, 환상의 간섭을 차단해버린 것이다.

핑핑핑!!

이미르의 등 뒤로 백색의 칼날이 생성되며 세한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숫자는 족히 수천.

‘맞으면 골로 가겠는데!’

단순히 신격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아니다.

열쇠의 힘이 담긴 만큼 맞았다간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가능성이 크다.

지수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것처럼.

카카카캉!!

궁기의 날개를 펼치고 세한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백색의 칼날을 피했다.

막을 수 없는 건 손에 쥔 검으로 튕겨 내거나, 방패를 이용해 막았다.

사각으로 날아오는 공격은 허수공간에서 튀어나온 프라가라흐를 통해 방어했다.

“큭?!”

이미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몸에 간섭하는 이질적인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시스템에 간섭하는 열쇠의 힘과 비슷했다.

드득, 드드득!

그 힘은 계속해서 거대해지고 있던 이미르의 몸을 사슬처럼 옥죄기 시작했다.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열쇠의 힘으로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부수는 것뿐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지닌 열쇠에도 상당한 타격이 되어 한동안 열쇠를 사용할 수 없게 되리라.

‘이대로 억지로 커져봐야 낭비일 뿐이다.’

이미르는 곧바로 판단을 내렸다.

현재 자신에게 간섭하는 힘에 저항해봐야 괜한 힘 낭비일 뿐이다.

굳이 커지는 것에 집착할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그것으로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다른 곳에 사용하지 못하는 게 이득이었다.

‘내가 가진 열쇠가 온전한 하나였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테지.’

그가 가진 건 어디까지나 열쇠의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은 린 테일러가 지니고 있었다.

만약 온전한 한 개였다면 이런 식으로 열쇠를 흉내 낸 모조품 따위에 휘둘릴 일도 없었으리라.

“아직 여유가 있는 모양이구나.”

이미르는 세한을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

지금 세한이 이미르의 몸을 억제시킨 건 그가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플레이어들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힘을 쓴다는 건 이미르가 보기에 멍청한 짓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것에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낭비하다니.”

이미르의 전신이 자색의 불꽃에 휩싸였다.

거대한 육신이 불꽃으로 뒤덮이자 마치 거대한 화산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기나긴 시간 동안 여전히 예전과 같은 힘만을 지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김세한.”

분명 마법이 그의 특기인 건 맞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거인왕으로서 살아온 기나긴 시간 동안, 이미르는 자신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했다.

‘이런!’

세한의 안색이 변했다.

이제 더 이상 이미르의 공격을 환상으로 변환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육신을 이용한 단순한 물리공격은 이드라의 힘으로 간섭할 수 없었다.

콰콰콰쾅!!

거대한 발이 땅을 짓밟자 서울 전체가 흔들리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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