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73화 (273/332)

# 273

273. 강림(4)

플레이어들이 힘겹게 상대하고 있던 괴물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가듯 사라지자,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팔을 늘어트리며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말이 되나?’

수십 명이 하나를 겨우겨우 상대할 정도로 강한 별자리나 거인들.

그런 괴물들이 이끌고 온 군세의 숫자가 단숨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개중에는 군세뿐이 아니라 상처를 입은 별자리들도 있었다.

전황이 역전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분으로 충분했다.

그런 세한의 공격에 놀란 건 플레이어만이 아니었다.

[와, 외신의 힘 얻었다고 하더니 오지긴 오지네.]

[안타레스 잡는 영상이나 보고 와라. ‘링크’]

[미쳤네. 씹사기네. 이래서 외신 외신 하는구나.]

[ㅋㅋㅋ 문제는 저 힘도 아직 완전한 게 아님.]

신들조차 세한이 보여준 능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면 전능에 가까운 수준이 아닌가.

환상을 현실에 덮는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건 현실조작에 가까운 능력이다.

오히려 환상으로 얼마든지 현실을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순한 현실조작보다 유용한 부분도 많았다.

대신 그만큼 많은 신격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아직 완전히 외신의 힘을 손에 넣은 건 아니었기에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사기급 능력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외신되려면 어캄? 신격부터 최상급으로 올려야 되나?]

[그건 기본이고 시스템의 영향을 안 받아야 함.]

[그건 그쪽 애들이 우리 우주랑 달라서 그런 거 아냐? 내내 아자토스가 저쪽 시스템이잖아.]

[하지만 외신들이 아자토스의 통제를 받을 급이 아니니깐 그렇지. 그레이트 올드원보면 잘 통제 받잖아.]

[하긴 걔네도 신급이지. 흠.]

[시스템을 벗어나는 게 가능은 한가?]

[나야 모르지.]

덕분에 커뮤니티에서는 때 아닌 외신에 대한 토론이 오가고 있었다.

이드라는 그런 글들을 몽상의 신전에서 확인했다.

“이 정도면 대충 숫자는 확보한 것 같구나.”

이드라는 현재 자신의 영상을 시청한 횟수와 새롭게 생겨난 채팅방들을 확인하며 대략적인 상황을 추측했다.

‘퍼블리셔로부터 퀘스트가 발생한 별도 있군.’

채팅방 중에서는 퍼블리셔로부터 ‘콜라보 퀘스트’를 부여받은 신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족히 열이 넘을 정도니, 아주 지구를 부수기로 작정했다는 거겠지.’

이 정도면 퍼블리셔의 여력을 한계까지 사용한 것이리라.

이미르가 가진 열쇠는 완전한 하나가 아닌 반쪽.

반쪽인 열쇠로 이정도 일을 벌이려고 하니 상당한 시일이 걸렸겠지.

그만큼 신중하게 지구를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솔직히 이젠 끝이라는 생각도 든다만…….”

아무리 이드라라고 해도 이걸 뒤집을 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세한의 말에 맞춰 움직이고 있을 뿐,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수많은 별들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들이 지구로 오게 될 것이다.

그들은 별들의 군세에 비하면 약하겠지만 양은 비교도 되지 않을 테지.

거기에 이드라는 본능적으로 또 하나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고 있다.’

아버지라 부르지만 사실상 모든 외신 위에 군림하는 ‘신’.

아자토스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먼 우주너머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에 이드라는 쓰게 웃었다.

이미르는 어떻게 아자토스를 설득한 것일까.

아니, 어쩌면 단순히 이드라를 보고 관심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혹은 니알라토텝을 죽이고, 이드라를 인간으로 복속시킨 인간을 보고자 하는 건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가 움직인 가장 큰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는 걸 테지.

‘……거기다 아버지만 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외신의 기척도 다수 포착되었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이드라에게 부족함이 없는 아우터갓들.

그들이 지구에 강림하게 되면 설령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들을 아바타로 삼은 신들이 지상에 강림해도 막기 어려워진다.

외신을 막을 수 있는 건 외신과 동급의 존재들뿐이니.

거기에 그레이트 올드원까지 움직이게 된다면…….

‘상상하기도 싫구나.’

세한은 이걸 이겨내고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그리고 민수아는 그런 그에게서 어떤 미래를 보고자 하는 것인가.

“그리고 과연 정말로 이게 도움이 된다는 겐가? 나는 잘 모르겠구나.”

민수아의 부탁으로 이곳에 오기는 했지만, 이드라는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그건’ 애초에 한번 세한과 싸웠던 존재. 그녀가 과연 우리를 도와줄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이성이라는 게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드라는 몽상의 신전에서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민수아가 다시 쪽지를 보낼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해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

대다수의 신들은 지구가 금방 무너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발대가 도착하고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고, 황도 12궁들과 별의 군세를 상대로도 어떻게든 막아내는 모습에 여론은 점차 달라졌다.

[정말 퍼블리셔를 막을 수 있는 거 아냐?]

[보통은 이쯤 되면 별의 절반은 날아갔는데.]

지구의 플레이어 중에 신격을 얻은 자는 현재 단 셋뿐이다.

외신의 힘을 손에 넣은 세한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정의의 여신이 된 린 테일러.

그리고 새로운 분노의 악마 신자운.

분명 이 셋은 파격적으로 강했다. 게임을 즐기던 신들의 입장에서도 대체 어떻게 이런 놈들이 튀어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강한 괴물들이다.

그렇다 해도 단 셋이다.

반면 퍼블리셔 측은 신격을 가진 존재가 수십, 수백은 됐다.

하급부터 상급까지, 질이 좋지 않은 별자리도 많았지만 그런 별자리도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훨씬 강하다.

그런데도 아직 지구에선 무너진 지역이 없었다.

디어사이드의 본거지가 있는 한국만이 아니다. 지구 전체 어디를 뒤져도 별들의 군세에 짓밟힌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대비를 했다고 해도…….]

[신격도 지니지 못한 인간들이 정말 놀랍군.]

[신화시대가 딱 이랬는데.]

신들은 점차 이 상황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옵저버들의 숫자도 점점 많아져 전 세계 하늘 어디를 봐도 둥근 옵저버가 떠 있었다.

“끄으응. 우리 린은 정말 괜찮은 겐가?”

“아버지 좀 진정하시죠.”

“이걸 진정하겠느냐?! 이미르 놈이 언제 지구로 올지 모르는데!”

개중에는 올림포스의 신들도 있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다른 별들의 신들과 달리 하나 같이 랜덤박스를 왕창 지른 탓에 개성을 뽐내는 옵저버를 자랑하며 하늘을 누비고 있었다.

‘그리스대장’이라는 닉네임을 자랑하는 제우스의 옵저버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지구를 도우러 갈 생각은 없잖아요?”

“없어? 누가?”

“예??”

올림포스는 지구만이 아니라 이 우주에서도 손꼽히는 집단이다.

엄청난 숫자의 신들을 보유한 올림포스의 신들이 죄다 홀에 두런두런 앉아 거대한 스크린으로 제우스의 옵저버가 보여주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더불어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대화를 들으며 내심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린이!! 지금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란 말이냐!”

“언제부터 아버지의 린이 되었습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집착하면 무섭다고요. 혹시 노리시는 건 아니죠?”

“뭐래, 이 미친놈아. 내 나이가 몇인데.”

“그 나이에 맞지 않는 주책을 좀 많이 저지르셨어야 알죠.”

세한과 상대할 때는 제법 근엄한 모습을 보였던 제우스지만 헤르메스에게는 그냥 평범한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해도 올림포스의 정점인 제우스의 앞에서 저런 막말을 내뱉을 수 있는 건 헤르메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열두신 중에서도 몇몇 정도밖에 없었다.

“아무튼 지금 다른 게임들에 이벤트 돌았다 이거지?”

“예. 아마 곧 움직이리라 생각됩니다.”

“큼. 세한 그 아이가 알아서 잘 하리라 생각되지만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군.”

“린이라도 깨어있다면 모르겠지만, 위험하긴 하죠.”

솔직히 이 상황을 세한이 어떻게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헤르메스만이 아니라 제우스도 그 의견엔 동감했다.

그렇지만 여태 수없이 터무니없는 일을 한 세한이 아닌가?

“……그래서, 난 왜 이곳에 꺼내둔 거냐. 같이 영상을 보자고 부른 건 아닐 테고.”

떨떠름한 말을 한 남자는 자색의 머리칼을 한 남자였다.

목과 양팔, 그리고 양다리에 족쇄가 채워진 사내는 제우스를 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시끄럽다, 아바돈. 나라고 꺼내고 싶은 게 아니다.”

제우스도 자색의 남자, 아바돈에게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이전에 제우스가 가진 열쇠 반쪽을 가져가려고 했던 ‘질투의 악마 아바돈’.

세한에게 제압당한 이후에는 타르타로스에 갇혀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제우스가 꺼내 이곳으로 데려왔다.

“아트로포스에게서 말이 나왔다.”

“아, 그래서 이놈을 꺼내두신 겁니까?”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말에 놀란 눈으로 아바돈을 응시했다.

아트로포스는 올림포스에 속해 있는 운명의 세 여신 중 하나.

미래를 담당하는 여신이다.

갑자기 왜 타르타로스에 가둬둔 녀석을 꺼내왔나 싶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뭐냐, 지구에 미래를 좀 보는 여자애가 있지 않느냐? 아무래도 신경을 썼던 모양이다.”

“왜요?”

“그 아이가 워낙 능력이 뛰어나 미래의 일을 다 읽어버리니, 미래를 담당하는 여신으로서 자존심이 상했던 거겠지. 그래서 최근 열을 올리더니 꽤 괜찮은 미래를 본 모양이다.”

“큼, 흠흠. 웃으면 안 되는데 좀 웃기긴 하네요.”

신이 인간에게 지고 싶지 않아 노력하다니.

헤르메스는 내심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지구의 플레이어가 없다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그쪽은 스쿨드와 하나가 되기 직전 아닙니까? 뭐 열 올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스쿨드랑 라이벌 관계잖느냐.”

“그것도 그렇군요.”

헤르메스는 자신의 선글라스를 대충 올려 쓰며 피식 웃었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군. 아바돈까지 필요한 일이 생긴다는 건가?’

대체 지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헤르메스는 가슴에 천천히 손바닥을 댔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이 흐르는 동안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 오랜만이다.

마치, 신화시대에 인간의 영웅과 함께 세상을 질타했을 때나 이렇겠지.

신들은 오래살기에 그만큼 자극을 바란다.

게임을 즐기는 것도 그 일환.

그리고 지금, 그런 게임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스의 기간토마키아, 북유럽의 라그나로크.

그와 같은 일이 지금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

“후.”

나는 한숨 돌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힘을 쓰기 시작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은 주변의 모습에 나는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당신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요.”

이아영은 진심으로 황당한 것 같았다.

그녀뿐이 아니다. 박성혁도 나를 거의 괴물 보듯 보고 있었다.

“예전이랑은 너무 차이가 심한 것 아닙니까?”

“좋은 걸 많이 먹었거든.”

“…….”

뭐라 설명하기 힘든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둘이었지만, 그렇게 보더라도 딱히 할 말은 없다.

어쩌다보니 신격을 계속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1회차의 이드라가 쫓아와 내게 힘을 주고 갔을 뿐이다.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제대로 다룰 수조차 없는 힘이겠지만, 내겐 1회차의 지식이 있었다.

또한 내가 스스로 자신해서 내세울 수 있는 장점 중 하나가 인내심. 강한 정신력이 이드라의 힘을 다루는 열쇠였기에 나와는 상성이 정말 좋았다.

“갑자기 긴장했던 게 바보 같네요. 이 정도면 우리가 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박성혁은 그렇게 말하며 방금 전에 내가 헤집어 놓은 주변을 보았다.

이미 내가 쓰러트린 거인의 숫자가 둘, 별자리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덕분에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서울에 침략했던 별자리들은 전처럼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도리어 이쪽의 눈치를 살피며 내 움직임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저 새끼들 봐. 쫄아가지곤. 큭큭큭!”

별자리나 거인들과는 반대로 플레이어들의 사기는 끝도 없이 치솟았다.

마치 퍼블리셔의 침략을 막아내는데 성공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마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퍼블리셔의 전력이 이 정도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신격을 지닌 별자리들과 군세. 거기에 강력한 힘을 지닌 선발대들.

평범한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경천동지할 만한 이들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네?”

박성혁은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게 끝이 아닌 겁니까? 이보다 더한 것들이 있다고요?”

“병력의 질은 확실히 이쪽이 더 좋을지도 몰라. 하지만 고작 그것뿐이지.”

선발대는 어디까지나 선발대.

황도 12궁을 비롯한 별자리는 퍼블리셔의 명령을 받는 하청 업체에 불과했다.

“정말 토할 것 같아.”

이아영은 이를 악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한계까지 커져 버린 검은 구멍이 한눈에 들어왔다.

“온다.”

내게는 선명히 느껴졌다.

광기의 마왕이 이드라의 힘을 이용해 열었던 문.

그 새까만 구멍에서 느껴지던 것과 지금 눈앞의 검은 구멍에서 느껴지던 힘이 점차 완전히 동일해졌다.

그것은 퍼블리셔가 지구에 도착했다는 말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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