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
269. 별들의 전쟁(3)
세한이 안타레스와 조우했을 무렵.
이드라는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레굴루스가 우선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지만…… 저 남자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터.’
당장 디어사이드의 바로 앞에 있는 레굴루스로 절체절명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드라는 어쩐지 크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루크는 계획 없이 상대와 싸우는 자가 아니었다.
무언가 가일과 대화를 주고 받은 건 알았기에 분명 레굴루스를 저지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테지.”
커뮤니티의 여론을 확인하자, 조금씩 지구에 일어난 사건이 화자가 되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올림포스에서 힘써준 덕이다.
이드라는 자신의 옵저버를 이용해 녹화한 현재 지구의 상황을 자신의 갓튜브 계정에 업로드했다.
현재 이드라는 갓튜버 중에 단연 1위.
거기다 헤르메스까지 도와주니 올리기 무섭게 영상의 조회수가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헐, 벌써 퍼블리셔에서 지구 침략함?]
[진짜네. 영상 봐, 아주 작정을 했네.]
[시발ㅋㅋㅋ 황도 12궁이 전부 떨어지는 건 첨봤다. 오진다.]
[저 작은 한국에만 둘이네. 레굴루스 저놈 언제 저렇게 강해졌냐. 저 정도면 나보다 강하겠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영상을 본 다른 별들의 신들은 엄청난 속도로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대략 30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갓튜브 영상 랭킹 1위에 올라갔다.
가히 놀라운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드라 님, 대량의 옵저버가 접속 중입니다!”
덩달아 바빠진 김경수 팀장이 외쳤다.
그의 눈앞에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로그가 있었다.
“숫자는?”
“지금 벌써 5천을 넘었습니다. 근데 이렇게 내버려둬도 괜찮을까요?”
“세한의 말대로라면 꼭 필요하다고 하더구나.”
“옵저버가? 퍼블리셔와 싸울 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김경수 팀장은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이드라의 영상을 보고 수많은 신들이 옵저버를 지구로 보냈다.
보통 게임에 옵저버를 넣기 위해선 가입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이드라가 그걸 열어버렸기 때문에 기존에 지구를 플레이하지 않았던 신들도 간단히 접속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 지구의 하늘에는 못보던 옵저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지구의 옵저버들은 죄다 룩을 바꿔서 저런 동글동글한 눈알 같은 옵저버는 오랜만에 보는군요.”
기존에 지구에서 플레이하던 신들의 옵저버와 그렇지 않은 옵저버는 또렷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세한이 고안한 랜덤박스를 통해 소위 룩변템이라 불리는 걸 구매한 신들의 옵저버는 하나같이 개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블리셔 소속 게임들에서 쓰이는 옵저버는 상당히 초라해 보였다.
[뭐야, 여기 옵저버 하나 같이 휘황찬란한데, 그거 머임?]
[랜덤박스라는 거 지르면 나온다. 이 기회에 찍먹 한번 해봐.]
[게임 망하게 생겼는데 미친놈아 ㅋㅋ]
[선생님. 선생님이 과금해 주시면 살 수도 있습니다.]
[안 돼, 우리 지구 이렇게 못 보내. 내가 살린다.]
다양하게 활성화된 채팅방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색다른 옵저버들의 모습에 뽐내기 좋아하는 신들은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본래 지구에 관심이 없던 신들도 혹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지금 지구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섣불리 신규 유입으로 들어오는 신은 없었다.
그건 예상하던 바였다.
세한이 노리는 건 어디까지나 ‘관객’이니까.
‘사실상 전 우주에 있는 별에 지구의 소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건 사실이다.’
문제는 이제 승부수를 어디서 띄우느냐다.
세한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억을 되찾지 못한 그는 이미르를 상대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이드라도 알 수 없었다.
“음?”
“왜 그러십니까?”
“아니…… 갑자기 쪽지가 왔구나.”
이드라는 갑자기 알람이 울리는 자신의 쪽지함을 보았다.
그녀를 잘 아는 누군가가 쪽지를 보낸 모양이었다.
세한인가 싶어서 쪽지함을 확인했지만, 쪽지를 보낸 건 전혀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민수아.”
지금쯤 마계에 있을 그녀가 이드라에게 쪽지를 보낸 것이다.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이드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아니, 할 일이 생겼을 뿐이다. 김경수 팀장 뒷일을 부탁하겠네.”
이드라는 주변 사원들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한시라도 빨리 가야만 했으니까.
바로 몽상의 신전을 향해서.
***
세한은 안타레스를 내려다보며 딱 하나 아쉬운 점을 느꼈다.
‘전갈이라 지금 무슨 표정을 한 건지 모르겠네.’
인간이었다면 보다 선명한 표정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안타레스는 기본적으로 전갈이라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세한은 그게 너무 아쉬웠다.
‘겨우겨우 신격은 상급에 턱걸이한 수준.’
육신도 강한 편이니 앵간한 신보다는 강하지만 지금의 세한이 상대하기엔 약하다.
예전에는 분체를 상대하기도 힘들었건만 이제는 본체도 가볍게 오시할 수 있었다. 새삼 자신이 얼마나 강해진 건지 느껴졌다.
‘곧 이미르가 올 테니, 그 전에 황도 12궁을 전부 정리해야 해.’
서울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가일에게 부탁해 뒀다.
1회차의 레굴루스는 대략 신격이 상급 끝자락 정도였기에 지금도 그 정도라면 검성이 능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세한의 실수였다.
레굴루스는 알데바란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최상급 신격에 올랐기 때문.
그 사실을 모르는 세한으로선 서울의 상황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거짓말이지? 어떻게 인간이 최상급 신격에 올라? 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의심스러우면 덤벼보든가.”
세한은 안타레스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굴욕감에 안타레스의 집게가 파르르 떨렸지만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젠장, 거기다 왜 이렇게 옵저버는 많아 가지고!”
안타레스는 하늘 위에 점차 늘어나는 옵저버들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데 보는 눈이 많아지니 난감해진 것이다.
이대로 있다간 황도 12궁인 자신이 플레이어에게 박살 나는 모습이 수많은 신들의 앞에서 생중계될지도 모른다.
“먼저 안 덤비면 내가 먼저 가마. 나도 시간이 그리 많은 건 아니거든.”
“잠, 잠깐……!!”
안타레스가 소리치는 순간 세한의 검지가 하늘을 가리켰다.
콰아아앙!!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안타레스는 인식조차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땅이 치솟으며 안타레스의 거체를 하늘로 날려버린 것이다.
‘뭐야? 마법인가? 마력이 움직이는 건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대체 무슨 힘을 가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플레이어가 저런 힘을 가질 수도 있나?’
지구의 사정을 모르는 신규 유입신들이 가지는 공통된 의문이었다.
그런 신들을 위해 지나가던 신들 몇몇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험험, 저 세한이라는 플레이어는 외신 꿈의 마녀를 자신의 아바타로 삼은 플레이어요.]
[아, 소문의?!]
[나도 들은 적 있어. 그 미친 놈이 저놈이었구만!]
[꿈의 마녀의 능력을 지녔다는 건 들었지만 저건 현실조작급 능력이 아닌가? 꿈의 마녀한테 저런 능력이 있었어?]
[ㅉㅉ 이래서 유입들이란. 이드라가 정리해 둔 영상을 처음부터 정독하고 와라. 애송이.]
그간 이드라는 다양한 영상으로 편집해서 올리고 있었고, 그중에는 최근에 올린 것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인기있는 건 린의 성장과정을 담은 영상이었고, 두 번째로 인기많던 영상 시리즈는 어째서인지 삭제됐다. 신들은 그게 이드라가 아닌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인기가 많은 것이 바로 세한과 관련된 영상이었다.
특히 1회차의 이드라와 관련된 영상들은 여태 안올리다가 오늘 이드라가 올린 터라 반향이 엄청났다.
[허, 1회차라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군.]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강해지는 건 불가능하지.]
[인간이라는 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군.]
[근데 여태 비밀로 달고 있었던 걸 왜 오늘 공개했대?]
세한의 1회차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 공개된 건 오늘이다.
1회차의 이드라의 힘을 흡수하고 외신의 편린을 얻는 영상도 오늘 공개되었다.
덕분에 안타레스를 두들겨 패는 게 이해가 됐지만, 이제 와서 공개한 이유가 궁금했다.
[아마 이번에 결판을 내려는 거겠지.]
[퍼블리셔와?]
[흥미로운데.]
처음에는 가볍게 대화하던 신들도 조금씩 상황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게임이 아닌, 현실로 상황을 받아들인 것이다.
“으아아아악!!”
물론 안타레스에게는 이 현실이 그저 지옥과도 같았다.
“땅에, 땅에 내려줘. 이 새끼야!”
자랑인 두터운 갑각과 독, 집개를 휘둘러도 세한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안타레스가 할 수 있는 일은 핀볼처럼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쳐 튕겨다니는 일뿐이었다.
독을 뿜어도 세한이 만들어낸 투명한 장벽 때문에 지상에 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몸부림쳐도 특별히 무(武)를 익히지 않은 안타레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적었다.
허공에서 몸부림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네 싸움방식은 지극히 간단하지. 튼튼한 방어력을 앞세워, 야금야금 자신의 독기로 상대를 죽인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전투법이다.
안타레스의 독기는 가브리엘의 전승 스킬 정도가 아니면 제대로 정화할 수 없었다.
만약 이곳에 성녀가 없었다면 큰 인명피해가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한도 바로 안타레스를 찾아서 날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설마 안타레스가 설마 서울이 아닌 부산, 그것도 성녀 신유화가 있는 도시에 있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인명피해도 적었고, 세한은 마음 놓고 놈을 두들겨 팰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널 죽을 때까지 이렇게 때려죽이고 싶지만, 시간이 없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공중으로 계속 튕기던 안타레스를 향해 세한은 검지가 향했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검은 공간이 열리며 한 자루의 검이 날아갔다.
비성검 프라가라흐.
맨 처음, 안타레스의 꼬리를 단칼에 잘라냈던 무기였다.
“내, 내가. 이 안타레스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검의 모습에 안타레스는 멍하니 그런 말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공중에 튕겨다니는 전갈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런 것뿐이었다.
꼬리는 잘렸고, 독을 사용해도 지상에 피해는 전무.
그런 무력한 안타레스를 향해 날아오는 유성과도 같은 검의 모습에 안타레스는 겁에 질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 검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모든 신격을 끌어모아 방어에 전념한다면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세한의 신격은 안타레스를 아득히 초월했기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콰자자작!!!
두터운 갑각을 마치 종이처럼 우그러트리며 안타레스의 몸을 프라가라흐가 꿰뚫었다.
천갈궁의 주인인 안타레스의 최후라기엔 너무나 초라했다.
세한은 허공에서 부서져 나가는 안타레스의 육신을 보며 여전히 빌딩 위에 서 있는 또 다른 황도 12궁을 응시했다.
코앞에서 동료인 안타레스가 죽었음에도 녀석은 조금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백양궁, 하말.’
황도 12궁 중 제1궁에 위치한 양자리의 주인.
워낙 비밀이 많은 자인지라 세한도 정확한 정보는 몰랐다.
“왜 너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
하말의 외형은 인간과 닮아 있었다.
단지 긴 하얀머리칼과 머리 양쪽에 난 둥근 뿔만이 그가 양자리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검은 피부에 담담한 얼굴을 한 그는, 팔짱을 낀 모습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세한을 향해 입을 열었다.
“황도 12궁은 김세한, 당신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포기하겠다는 뜻인가?”
“그래.”
하말은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상대할 건 네가 아니라 저 플레이어들이다.”
“누가 상대하게 해줄 것 같냐?”
“물론 그대는 그걸 막으려 할 테지.”
하말은 싱긋 웃었다.
양자리라서 그런가 그 미소는 지극히 선량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니.
세한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하말의 몸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최약’이라 불리는 백양궁이라기엔 지나치게 태도가 여유로웠다.
‘뭐야, 신격의 양이…….’
세한보다는 낮았지만 분명 최상급 신격에 이른 양이었다.
황도 12궁 중에 최상급 신격에 이른 자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이 정도면 세한이라도 간단히 쓰러트리지 못한다.
아니, 천살성을 잃고 혈천수라공을 잃어버린 지금의 세한은 승부를 장담하기도 힘들었다.
자칫하면 패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
“왕이 곧 오신다.”
“……!”
그 왕이 누군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신하,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테지.”
하말은 천천히 팔짱을 풀었다.
선량한 인상에 숨겨져 있던 무시무시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늦을 거다, 까마귀.”
장소는 말하지 않았지만, 세한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미르가 올 장소는 디어사이드가 있는 서울이라는 것을.
“하늘이……!”
“아아!”
주변의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며 하늘을 보았다.
별이 떨어지며 밝아졌던 하늘이 어두워지며 새까만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마치 ‘광기의 마왕’ 분기에서 이드라가 마계로 통하는 문을 열었던 때처럼.
문제는 그때 열었던 문의 수천, 수만 배는 될법한 크기였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하늘이 아닌, 지구에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저것이 완벽히 열렸을 때, 왕은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