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68화 (268/332)

# 268

268. 별들의 전쟁(2)

인간이란 참으로 어리석다.

약하고, 너무나 약해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두 눈이 있다면 소용이 없다는 걸 알 터인데.’

레굴루스는 자신을 막아선 인간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저렇게 약해서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만약 레굴루스였다면 부끄럽고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약함을 안다면 나서야 할 곳과 나서지 말아야 할 곳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눈앞의 인간은 그 간단한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러선다면 적어도 지금은 살려주마.”

눈앞의 만찬을 두고, 불량식품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런 약해빠진 인간을 향해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도 모욕이었다.

“그럴 순 없지. 내 딸아이가 아직 자고 있거든.”

루크는 손에 쥔 리브라를 한층 강하게 쥐며 레굴루스를 겨누었다.

이길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자신은 린의 아버지다.

어찌 딸을 버리고 도망칠 수 있겠는가.

“쓰레기 주제에.”

레굴루스는 두 번 경고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발이 대지를 박차며 단숨에 루크의 앞까지 접근했다.

“……!!”

루크로선 감히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였다.

막는다? 그조차 불가능하다. 그럴 힘도 없고 속도도 없었다.

멈춰 있지 않는 한, 루크가 레굴루스의 몸에 손을 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가강!!

“음?”

그러나 레굴루스의 발톱은 루크에게 닿기 전에 튕겨나갔다.

설마 자신의 공격이 막힐 줄은 몰랐던 레굴루스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레굴루스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당혹감이 느껴졌다.

그럴 만도 하다. 지금 그의 공격을 막은 건 이곳에 존재할 리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검성,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페트로이아의 검성 가일.

그가 자신의 검을 빼든 채, 레굴루스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부탁을 받았지. 디어사이드에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는 강자가 나타난다면 나서달라고 말이야.”

“네놈은 부탁을 받는다고 움직일 놈이 아니잖나. 거기에 다른 행성에 오려면…….”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레굴루스, 난 플레이어다.”

별을 넘나드는 건 보통 불가능한 일이다.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이미르조차 다른 행성에 가려면 자신의 힘을 크게 억제하고 열쇠의 힘을 이용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플레이어라면 아주 간단한 편법이 있었다.

“퀘스트를 받으면 간단해.”

가일은 이드라로부터 퀘스트를 받았다.

바로 콜라보 퀘스트.

그가 받은 퀘스트는 디어사이드의 수호다.

게임 지구의 운영자인 이드라만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난 양쪽 다 갚아야 할 게 있거든.”

지구에는 빚을.

퍼블리셔에는 굴욕을.

검성이라 불리는 이로서 그것을 잠자코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하나같이 귀찮게 하는구나.”

확실히 검성은 강하다.

지구가 오픈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강의 플레이어라고 불리던 자였으니까.

순수한 인간으로서 최상급 신격까지 올라간 존재.

분명 레굴루스도 감탄해 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지금 자신의 앞을 막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쿵, 쿵, 쿵.

무거운 발을 내디디며 걸어오는 레굴루스를 향해 검성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래도 이런 건 귀찮단 말이지. 이제 나이도 있고 좀 편한 상대랑 싸울 수는 없나.”

투덜거리는 가일의 모습에 루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존재일 텐데 하는 행동은 젊은 청년과도 같았다.

“검성 가일.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내게?”

이 상황에서 할 말이라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루크는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어떤 계획을 보냈다.

“……정말 그걸 할 거요?”

“당신도 저 괴물을 이길 수는 없잖습니까.”

“허참.”

가일은 방금 이야기한 루크의 ‘계획’에 헛웃음이 나왔다.

참으로 허무맹랑하고 무모한 계획이었으니까.

“까짓 거 한번 해보자고!”

다행히 가일은 그런 무모함을 좋아했다.

흔쾌히 자신의 계획을 수긍하는 가일의 모습에 루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서로의 공격을 맞부딪치는 가일과 레굴르스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오직 위만을 바라보는 괴물이라…….’

루크는 저런 자를 자주 보았다.

그렇기에 그런 이를 쓰러트리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

“카카카카칵! 인간 놈들, 지난 굴욕을 드디어 갚을 수 있겠구나!”

부산광역시.

한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이며, 동시에 플레이어 숫자도 서울 다음으로 많은 장소다. 하지만 그 많은 플레이어들도 지금 도시를 습격한 괴물들을 막아내기엔 벅찼다.

“이 지랄 맞을 독!”

“젠장, 그래도 성녀님이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 거야.”

곳곳에서 플레이어의 욕설이 들려왔다.

자욱하게 낀 독 안개에 플레이어들은 죽을 맛이었다.

거기다 사방에서 기어 나오는 전갈들은 정신적으로 내몰리게 만들었다.

‘하필 부산의 도로나 길이 복잡한 것도 문제야.’

성녀 신유화는 엄지를 이빨로 잘근잘근 깨물며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겨우겨우 거인들을 상대로 겨우겨우 이기나 싶었더니, 갑자기 나타난 황도 12궁 때문에 모든 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루? 이틀?’

거인을 맡은 플레이어와 황도 12궁과 별자리들을 맡은 플레이어들.

그나마 거인쪽은 셋 중 둘이 큰 부상을 당했기에 인원배분을 황도 12궁에 더 비중을 실었다.

‘안타레스인가 하는 전갈새끼는 둘 째 치고 뒤에 있는 저놈은 뭐야?’

안타레스가 한번 서울에 나타났을 당시, 신유화는 서울에 있었기에 그가 말하는 ‘지난 굴욕’이 뭔지 몰랐다. 그녀의 입장에서 안타레스는 괜한 히스테리를 부리는 관심종자일 뿐이다.

거기다 안타레스의 주무기는 독.

모든 걸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성녀에게는 비교적 상대하기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안타레스가 아닌 빌딩 위에 잠자코 서 있는 한 명의 수인(獸人)이었다.

머리의 양쪽에 둥글게 나 있는 뿔로 볼 때 마치 성경에 나오는 악마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악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 걸로 보아 악마는 아니었다.

그 수상쩍은 수인은 안타레스와 함께 지상에 강림한 이래 가만히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보통 저런 놈이 문제더라.’

아무튼 지금 당장은 가만히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안타레스의 군세를 격퇴하는 게 문제였다.

「현재 지구에 강림한 황도 12궁은 셋. 그중 둘이 부산, 하나가 서울에 있도다.」

“네네. 알겠습니다. 이드라 님.”

귓가에 들려오는 이드라의 메시지에 가볍게 대답하면서도 신유화의 인상은 펴질 줄을 몰랐다.

‘왜 둘이 부산인 거야?’

처음에는 외신이라는 존재가 대화를 건다는 것에 신기한 기분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장 인류가 멸망지경인데 그런 것에 감탄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B팀 뒤로 빠지세요! C팀 다 쉬었으면 바로 들어갑니다. 버프 걸어드릴게요!”

“옙!”

우렁차게 대답하는 블루에일의 길드원들을 향해 신유화는 재빠르게 버프를 걸었다.

“휴, 겨우 살았습니다. 성녀님.”

“방금 B팀에서 싸우고 있었나 보네요.”

“하하, 네. 전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신유화는 시원한 미소를 흘리며 답하는 윤현균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상황에서도 비교적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는 그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당신네 부길드장은 어디 갔는데 안와요?”

“지금 서울에서 내려오는 중일 겁니다. 하필 길드의 새 거처를 알아볼 때 습격해 올 줄은 몰랐네요.”

“그걸 말이라고…….”

황당하긴 했지만 확실히 퍼블리셔의 습격은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아무튼 뭔가 방법 없어요? 당신, 그래도 머리는 제법 좋아 보이던데. 웃고 있는 걸보니 좋은 수가 있는 것 아니에요?”

“아뇨. 그냥 좀 행운이다 싶어서요.”

“행우우우운~?”

지금 이 상황에서 행운이라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황도 12궁 중 셋이 대한민국에 떨어졌다.

이 좁쌀만 한 땅에 뭘 볼 게 있다고 셋이나 왔단 말인가.

거기다 둘이 부산이란다.

이게 불행이 아니라 행운이라고?

“……왜 제 머리에 힐링을 하시죠?”

“혹시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건가 싶어서요.”

“안타깝지만 제 몸은 상처 하나 없고 제정신입니다.”

힐링도 걸어보고 상태이상 회복도 해봤지만 놀랍게도 윤현균은 제정신인 모양이었다.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그런 대답이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아, 잠시.”

화아아악!!

그녀의 손이 빛나자 이쪽으로 퍼져오던 독안개가 씻겨나가듯 사라졌다.

더불어 부산의 복잡한 도로를 타고 지나가 플레이어들의 몸을 중독시킨 독들도 깔끔하게 정화됐다.

“언제 봐도 놀라운 능력이군요, 대체 무슨 신의 아바타가 되면 그렇게 됩니까?”

“가브리엘이요.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천사죠.”

“허, 천사.”

천사는 대부분 멸종했다고 신에게 들었다.

그런데 설마 살아남은 천사가 있었을 줄이야.

“가브리엘은 본디 천사장이었던 인물인 만큼 지닌 힘도 강해요. 저와 상성도 괜찮고요.”

“허. 진짜로 성녀였군요?”

“그렇게 부르지 마요. 오글거린다고요.”

“그런 것 치고는 꽤 즐긴다고 들었습니다만…….”

현균이 들은 성녀에 대한 소문을 떠올려보면 꼭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치 사이비종교 교주와도 같은 모습으로 신도들을 이끌고 다닐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튼 왜 행운이라고 한 건지 대답해 주세요.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죠?”

“음, 뭐 그렇습니다.”

싱긋 웃으며 답하는 현균에게 신유화는 어서 말하라는 듯 눈을 찡그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현균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전에 서울에 한번 안타레스가 침략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청주로 내려가서 늦게 알았습니다만…….”

“그런 적이 있었나요?”

“제주도에 있으셨으니 몰랐을 수도 있군요. 네, 한번 서울에 안타레스가 왔고 그걸 누군가가 격퇴했죠. 그게 누굴 것 같습니까?”

“설마…….”

한번 강림했던 황도 12궁. 그걸 소리 소문 없이 격퇴할 만한 사람은 신유화가 생각하기에 단 한 명뿐이다.

그런 그녀의 생각에 쐐기를 박듯, 현균은 씩 웃었다.

“안타레스가 살아 있으니, 그건 ‘그’에게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겠죠. 제가 아는 그라면 결코 살려서 돌려보내지 않았을 테니까요.”

적어도 자신이 아는 그는 그랬다.

“받은 건 반드시 배로 돌려주는 성격이거든요. 그 녀석.”

피이잉!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신유화가 반사적으로 머리를 위로 젖히자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가르고 날아갔다.

인간?

아니다, 저건 검이다.

“끄아아아악!!”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사정없이 플레이어들을 꿰뚫던 안타레스의 꼬리가 잘려나갔다.

갑작스런 사태에 안타레스의 공격을 방어하던 플레이어들의 몸이 굳었다.

안타레스의 몸은 황도 12궁중에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튼튼하다.

특히 그의 껍질의 경도는 어지간한 공격으론 작은 기스조차 낼 수 없을 정도.

거기에 신격까지 두른 탓에 여태까지 어떤 플레이어도 안타레스의 껍질에 흠집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온 검 한 자루가 단 한 번에 안타레스의 꼬리를 자른 것이다.

“저건 프라가라흐?!”

신유화는 방금 날아온 검이 무엇인지 바로 눈치챘다.

세한이 가장 애용하는 검, 비검 프라가라흐.

이제는 비성검이 되어 한층 강력해진 그 검은 안타레스의 꼬리를 자른 후, 본래의 주인에게로 유유히 돌아가고 있었다.

“젠자아아앙! 어떤, 새끼가 내 꼬리를 자른 거냐!!”

피와 독액이 쏟아져 나오는 꼬리의 상처를 억지로 회복시키며 안타레스가 눈을 부라렸다.

적당히 놀아주면서 상대해주던 플레이어들이 그런 안타레스의 시선을 피해 물러섰을 뿐, 방금 자신의 꼬리를 잡은 존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다, 안타레스.”

“너, 너어어!”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안타레스는 황급히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곳에 검은 날개를 펼치고 느긋하게 내려오는 세한의 모습이 보였다.

“김세한, 김세한 네놈! 드디어 만났구나!”

“왜 서울로 안 오고 여기로 왔냐?”

악을 쓰며 외치는 안타레스의 말은 가볍게 씹으며 세한은 심드렁하게 물었다.

“이 건방진 놈이……!!”

황도 12궁, 천갈궁의 주인인 자신의 앞에서 오만하게 굴다니.

그렇게 생각하며 세한을 보자 녀석의 힘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최, 최상급 신격?’

안타레스가 알기로 최상급 신격은 황도 12궁 중에서 사자궁을 제외하고 없었다.

‘대체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거지?’

어처구니없이 강해진 세한의 모습에 안타레스는 당혹스러웠다.

황도 12궁은 일반적으로 커뮤니티를 이용하기 힘들다.

예외가 있다면 최상급 신격에 이르면 ‘격’을 인정받아 권한이 생기게 되지만, 황도 12궁 중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는 이는 태생부터 신인 아스트라이아와 레굴루스뿐이다.

“너 레굴루스 때문에 부산 왔지?”

“뭐, 뭐?”

“아니, 네 성격이면 당연히 날 죽이러 왔을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왔더라고.”

‘이, 이 새끼.’

세한의 말처럼 안타레스는 레굴루스 때문에 부산으로 오게 됐다.

본래는 서울에 가려 했지만 갑자기 레굴루스가 서울에 간다고 정했기에 과잉전력이라 판단되어 부산에 오게 된 것이다.

알데바란이 사라진 이상, 황도 12궁 최강은 레굴루스.

녀석의 말에 거역할 수 있는 황도 12궁은 없었다.

‘거기다 하필 나는 저런 양 따위랑 같이 왔으니.’

황도 12궁 중 제1궁. 백양궁.

워낙 존재감이 없는 황도 12궁인지라 안타레스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최약의 황도 12궁이라 알려졌을 뿐이다.

“아무튼 반갑다, 야. 너 진짜 보고 싶었어.”

세한은 안타레스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1회차에 이놈에게 당했던 걸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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