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67화 (267/332)

# 267

267. 별들의 전쟁(1)

하늘에서 무수한 별이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세계의 종말을 보는 것 같았다.

어두워진 하늘을 금빛으로 밝히며 유성들이 비처럼 쏟아져 인간의 대지로 추락했다.

쿠쿠쿠쿠쿵!!

유성들은 도시를 보호하는 결계에 부딪치며 떨어졌는데, 만약 결계가 없었다면 별들이 떨어지는 것만으로 지상은 초토화됐을 것이다.

꿈틀, 꿈틀.

떨어진 별들은 자신의 호칭이나 직위에 맞는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최소 하위부터 최대 상위까지 신격을 뿜어내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호호! 이곳이 지구로구나!]

하반신은 뱀, 상반신은 인간 여성을 닮은 괴물이 마침 세한이 있던 장소를 스쳐지나가며 흉소를 흘렸다.

족히 5층 건물만 한 녀석이 웃으니 주변이 쩌렁쩌렁 울렸다.

‘뱀자리의 에키드나인가.’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 별자리다.

황도 12궁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제법 강한 별자리.

녀석의 하체가 꿈틀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근처의 건물들이 우수수 무너졌다.

[이곳에는 인간이 없구나! 끄으응. 떨어져도 하필 이런 곳에 떨어지다니.]

에키드나는 주변의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다 주변에 인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양손을 좌우로 펼치며 자신의 권속들을 불러들였다.

[자, 나의 아이들아! 인간을 찾아라!]

순식간에 에키드나 주위로 수많은 뱀들이 나타나며 대지를 가득 채웠다.

평범한 뱀부터, 뱀형 몬스터까지 소환되며 족히 수천 마리에 이르는 뱀들이 부서진 도로를 헤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좀 징그러운데.”

한두 마리도 아닌, 수천 마리의 뱀이 동시에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리 나라도 비위가 좀 상할 정도였다.

“응?”

에키드나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어느새 다가온 뱀들이 내 발을 물어뜯고 있었다.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뱀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오호호호! 그래, 거기에 숨어 있었구나!!]

특별히 숨어 있던 건 아니지만 에키드나의 입장에서는 마치 자신을 피해 숨어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필 본녀와 만나게 되다니, 참 운이 없는 인간이로구나. 내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이…… 꾸엑!!]

“운이 없는 건 내가 아니라 너지. 왜 하필 여기로 떨어졌냐?”

퍼억! 콰콰쾅!!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에키드나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넣자, 녀석의 거대한 육신이 붕 날아가며 몇 개의 건물을 무너트리고 쓰러졌다.

[아, 아파!]

“아프라고 때렸으니까 아프겠지.”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 녀석을 내려다보자, 에키드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더듬었다.

[시, 신이신가요? 왜 신이 이런 곳에…….]

너무 쌔게 때렸는지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에키드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얘는 내 얼굴도 모르나?

‘하긴, 대부분의 별자리들은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없으니.’

커뮤니티에 접속이 가능한 별자리는 신이 별자리를 맡고 있는 경우나, 황도 12궁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당연히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신이나, 퍼블리셔와 달리 별자리들은 나와 관련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건지도 모른다.

“걱정 마라, 저항하지 않으면 몇 대 때리고 좌로 돌려보내줄 테니.”

[저, 저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했으면 죽었지.”

에키드나의 눈앞에서 주먹을 붕붕 흔들자, 덩달아 에키드나의 동공도 함께 흔들렸다.

크기만 보자면 에키드나의 입장에선 조막만 한 주먹이지만, 방금 얻어맞고 날아갔던 녀석의 입장에선 거대한 몽둥이처럼 보이리라.

“참. 그러고 보니 너 안타레스와 꽤 친한 사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나?”

[안타레스 님이요?]

안타레스는 황도 12궁 중 제 8궁 천갈궁의 주인.

나와는 꽤 인연이 깊은 녀석이었다.

1회차에서는 나를 몇 번이나 죽일 뻔했고, 2회차에도 나를 귀찮게 만들었던 녀석.

“걔한테 안내해 주면 특별히 봐줄게. 어때?”

[안내만…… 하면 되는 건가요?]

처음에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악녀처럼 웃어대던 에키드나였지만 지금은 순진한 눈망울을 반짝이는 강아지 같았다. 에키드나는 뱀자리에 있는 녀석 답게 눈치가 빨랐고, 타인을 파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리죠!]

순식간에 크기를 줄이며 날개 달린 뱀으로 변한 에키드나가 날아올랐다.

가볍기 그지없는 녀석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괜히 힘 뺄 일이 없으니 나야 편했다.

‘기억을 찾아보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군.’

쪽지에 적혀 있는 장소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별자리까지 온 이상, 기억을 찾는 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별자리들은 본신의 힘도 힘이지만, 별의 지배자들인 만큼 자신의 군세를 지니고 있었다.

즉, 이제부터 플레이어와 퍼블리셔간의 전면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별자리와 플레이어들이 싸우며 어느 정도 지쳤을 때, 녀석이 나타날 것이다.

거인왕 이미르가.

***

황도 12궁 중, 제5궁 사자궁.

모든 별자리들 중에 정점에 위치한 황도 12궁 중에서도 사자궁은 특별했다.

사자궁의 지배자, 레굴루스는 언제나 강한 자를 찾아다니며, 자신이 강해지는 것에만 집착하는 광인이었다.

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고, 오직 강자와의 싸움만이 그가 살아 있음을 일깨워줬다.

‘기다렸다.’

레굴루스는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계속 이 날만을 기다렸다.’

이 두근거림이 시작된 건 꽤 오래 전부터였다.

바로 알데바란이 쓰러졌던 그날부터.

알데바란은 레굴루스에게 있어서 재미없는 숙적이었다.

강함을 추구하며, 오직 ‘무(武)’를 탐하는 성향은 비슷했지만 알데바란과 레굴루스는 달랐다.

광인과 무인의 차이.

그럼에도 둘의 실력은 늘 엇비슷했다.

‘언젠가는 저놈을 반드시 죽여주마.’

레굴루스는 늘 그렇게 생각했고, 알데바란을 쓰러트리기 위해 강자를 찾아다니며 싸웠다.

자신의 힘을 보다 완성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알데바란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손에 죽었다.

그것도 게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구라는 별의 플레이어에게.

처음에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분명 신이나 악마의 개입이 있었다고, 시스템의 농간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대체 누가 알데바란을 죽였는가.

레굴루스는 그 사실을 알기 위해 겨우겨우 한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지구에는 ‘신과 비슷한 무언가’가 지상에 강림했고, 그 탓에 지구에 접속 중이던 모든 신을 비롯해 퍼블리셔의 연결마저 끊어졌다.

아직 게임이 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상급 신격을 지닌 존재가 강림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알데바란이 쓰러지던 당시의 전투를 기록한 신은 거의 없었지만 딱 하나 영상을 보유한 이가 있었다.

외신 니알라토텝.

서버가 끊어진 상태에서 그는 지구에 접촉했고 외신의 힘을 이용해 접속할 수 있었다.

그는 알데바란이 싸우던 어떤 존재를 기록하는데 성공했고, 레굴루스는 그 기록을 어렵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린, 테일러.”

얼마나 많이 그 말을 되뇌었을지.

알데바란을 죽인 자.

그것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죽여 버린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통해 미래의 시간을 불러왔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반고를 쓰러트린 괴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싸움은 빠짐없이 보았고, 레굴루스는 지금껏 자신을 억누르던 벽을 깨부술 수 있었다.

‘이것이 지고의 존재만이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힘.’

최상급 신격을 넘어 외신의 편린을 레굴루스는 보았다.

신을 초월한 신이 지닌 힘.

만약 린 테일러와 싸울 수 있다면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느껴진다.”

거대한 사자의 머리에, 근육질의 인간의 몸을 지닌 괴물.

레굴루스는 어디선가 느껴 지닌 신격을 쫓아 계속해서 걸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인간들이 시끄럽게 외치며 공격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외피를 감싼 신격의 막조차 뚫지 못하는 벌레들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콰콰쾅!!

“으아아악!!”

마치 파리를 쫓는 것처럼 가볍게 휘두른 레굴루스의 손짓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저게 대체 뭐야!’

상황을 지켜보던 제네시스의 길드장 박성혁은 이를 악물었다.

놈이 향하는 장소는 분명 디어사이드의 건물이 분명했다.

여태 이미르의 친위대라 불리는 거인들을 몇이나 상대했고, 별자리와도 싸웠던 플레이어들이었지만 레굴루스는 위압감이 달랐다.

‘다른 별자리는 물론, 친위대보다 훨씬 강해.’

신과 별자리, 그리고 거인에 대한 내용은 이미 자신의 신을 통해 숙지한 상태였다.

황도 12궁에 속한 이들은 분명 다른 별자리보단 강할지 몰라도 이미르의 친위대와는 비슷하거나 좀 떨어지는 게 정상이었다.

당장 황도 12궁 중, 제 6궁이자. 정의의 여신인 아스트라이아가 중상급 신격을 지닌 여신이지 않은가?

그 정도라면 이곳의 플레이어들과 신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침 이곳을 습격한 거인 셋 중 하나를 죽인 참이라 사기도 크게 오른 상태였으니까.

‘저걸 어떻게 막지?’

박성혁의 신은 티르.

최상급 신격을 지닌 북유럽의 신이다.

그에게 저것을 어찌하면 막을 수 있을지 물어봤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저건 이미 나와 동등한 힘을 얻은 괴물이다. 별자리 중에 저런 괴물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군.」

“그럼 막을 방법은 없는 겁니까?”

「까마귀가 나서거나, 혹은 그 어린 정의의 여신이 나서지 않는 한 무리일 것 같구나.」

하지만 그 정의의 여신은 지금 잠들어 있다.

이대로 저 괴물이 디어사이드를 파괴한다면 모든 게 끝이다.

“모두 공격! 조금이라도 저 괴물의 발을 멈춰야 합니다!”

혹시 1초라도 멈출 수 있다면, 그 사이에 린 테일러가 눈을 뜰지도 모르니까.

유일한 희망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드디어…….”

필사적으로 공격하는 플레이어들을 무시하며 레굴루스는 오직 한 건물만을 바라보았다.

저곳이다.

바로 저곳에서 그가 찾던 신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자신이 온 것을 모르나?

설마, 이렇게 신격을 방출하고 있는데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레굴루스, 자신의 힘 정도로는 움직일 가치가 없다는 건가?

“아무래도 상관없지.”

어차피 자신은 할 일을 할 뿐이다.

이미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건 자신이 책임질 테니 마음껏 날뛰라고.

설령 지구라는 별을 지워버린다고 해도.

“후.”

레굴루스의 주먹이 움직였다.

뒤로 당겨졌다가 빠르게 앞으로.

섬전처럼 쏘아진 흑색의 발톱이 디어사이드의 건물을 뭉개려던 순간.

금색의 빛이 튀어나오며 주먹의 방향을 바꿨다.

콰콰콰쾅!!

방향이 바뀐 그의 주먹은 단번에 수십 개의 건물을 꿰뚫으며 붕괴시켰다.

뿌연 연기가 치솟으며 땅이 울렸다.

“드디어 움직…… 음?”

레굴루스는 방금 자신의 주먹을 쳐낸 존재가 린 테일러라 확신했다.

익숙한 신격의 힘이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의 앞에 서있는 건 전혀 예상 밖의 남자였다.

“넌 누구냐.”

“…….”

레굴루스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현재 레굴루스의 신장은 대략 3미터.

본체의 크기를 최대한 줄였음에도 인간에 비하면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했다.

그런 괴물에 맞선 건 중년의 남성이었다.

어째서인지 린 테일러와 닮은, 그리고 그녀의 검인 리브라를 쥔 남성.

“너는 린 테일러가 아니다. 그런데 닮았군, 대체 누구지?”

“……난, 그 아이의 아비다.”

“하. 그렇군. 그랬으니 닮은 것도 당연한가.”

루크 테일러라고 했던가.

린 테일러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워낙 존재감이 없어 기억 속에 묻어두었을 뿐.

“약하군, 약해. 정말 정의의 여신의 아버지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야.”

루크는 그런 레굴루스의 말에 변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변명할 힘도 없었다.

‘이런 걸 린은 언제나 휘두르고 있었다는 건가?’

루크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리브라의 힘에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여신이 가진 최강의 무구.

레굴루스의 힘을 튕겨내기 위해서 억지로 불러들여 사용한 것이었지만 루크에겐 벅찬 물건이었다.

‘두 번은 없다.’

방금 한 번 공격을 막아낸 요행이 전부였다.

레굴루스가 한 번 더 공격을 가한다면 꼼짝없이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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