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66화 (266/332)

# 266

266. 정면대결(3)

‘자신감 넘치는 모습 보기 좋아.’

그래서 숨어들기가 더 쉬웠다.

아무튼 민아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것을 어떻게 이용할 수 없을지 고민했다.

“이미르 님.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음? 좋다, 허락하지.”

“제가 한때 GM 업무도 맡았던 터라 플레이어의 심리에 대해선 아주 잘 압니다.”

“그래서?”

“인간놈들은 아주 교활한 놈들이죠. 퍼블리셔의 보안은 우주제일입니다만, 그 교활한 놈들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 이미 잠입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로키의 아바타인 민아라는 플레이어는 아주 영악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니까요.”

“아름다운 건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저는 퍼블리셔 내부에 이미 잠입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 통제실까지는 아니어도…… 음. 이미 회사의 사원으로 변신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아의 말에 이미르는 조금 언짢은 얼굴이 되었다.

아무래도 퍼블리셔의 보안을 뚫고 플레이어 따위가 숨어들었다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상당히 열린 생각을 가진 군주였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제대로 민아와 로키를 잡을 단체나 부서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미르 님은 곧 지구로 가실 테니, 그사이 녀석들이 활개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과연.”

이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변신능력자를 상대하는 건 귀찮다.

어느 순간 숨어 들어와서 문제를 야기할지 모르니 녀석들을 전담할 자가 필요했다.

“그럼 그 일을…….”

“혹시 따로 생각해 두신 자가 없다면 제가 맡아도 괜찮을런지요.”

“요루엠, 그대가?”

“옙.”

손을 살살 비비며 간사한 미소를 짓는 요루엠의 모습은 이미르에게 무척 익숙한 모습이었다.

어떻게든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은 10년 지기 친구라도 언제든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보습이었다.

‘그래도 능력은 있는 놈이니.’

이미르는 요루엠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GM출신인 거인을 중앙 통제실로 들여보냈을 리 없다.

요루엠은 야망이 있었고, 비열하며 잔머리가 좋았다.

퍼블리셔가 우주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한, 요루엠은 결코 퍼블리셔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거기다 누구도 믿지 않는 녀석이었지. 확실히 나쁘지 않군.’

생각해 보면 요루엠만큼 이 일에 딱 맞는 거인이 없었다.

변신 능력을 지닌 존재를 색출하려면 그에 걸맞은 지위가 필요했다.

자신보다 상관으로 변신해 있다면 의심스러워도 떠보기가 힘든 법이다. 하지만 중앙통제실에 속한 거인들은 퍼블리셔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거인들.

더군다나 요루엠은 중앙통제실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주요 업무에서 한 발 떨어져있어, 잠시 중앙통제실 관련 업무를 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었다.

거기다 플레이어들을 자주 상대해본 GM출신이 아닌가!

이보다 적절한 인선은 이미르가 생각하기에 없었다.

“좋다. 그럼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지.”

“저, 정말이십니까?!”

“확실히 그대의 생각이 맞다. 요루엠, 너에게 거신병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그것이라면 나를 제외한 누구도 널 막지 못할 것이다.”

거신병은 이미르 직속의 산하기관 중 하나로, 친위대 못지않은 실력자로 구성된 집단이다.

친위대가 주로 외부의 공격을 위해 쓰인다면, 거신병은 오직 퍼블리셔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다.

단순 강함만 따지자면 친위대보다 거신병들이 더 강했다.

그런 이를 붙여준다고 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부디 날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마.”

“옛! 감사합니다, 이미르 님!! 녀석들이 이곳에 나타나는 순간 바로 이미르 님께 잡아다 바치겠습니다. 아니면 죽일까요?”

“플레이어는 죽여도 되나, 로키는 죽이지 마라. 지구의 신들은 이래저래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어 성가시니까.”

“알겠습니다.”

극도의 저자세로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는 요루엠의 모습은 그야말로 기회를 노려 욕심을 챙기려는 간신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이미르는 요루엠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런 1차원적인 녀석일수록 다루기가 쉬우며 버리기도 쉬운 법이니.

‘됐다!’

물론 그건 ‘진짜 요루엠’일 때의 이야기다.

민아에게 있어 비열한 인간을 연기하는 건 밥 먹고 자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요루엠으로 변한 민아는 속으로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사용할 패가 하나 늘었어.’

더불어 이미르의 경계망에서도 멀어졌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타인을 감찰할 수 있는 권한도 얻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정말 감사해요, 이미르 오빵.’

적당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미르는 민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준 후, 밖으로 나갔다.

이제부터 지구로 향할 군대를 이끌어야 할 테니 더 이상 중앙통제실에 올 일은 없으리라.

‘만약 이미르 말고 따로 퍼블리셔를 통제할 이가 있다면 위험했겠지만.’

다행히 반고를 대신할 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미르가 사라진 동안 그 역할은 중앙통제실에 있는 거인들이 대신 맡게 될 것이다.

고로 중앙통제실의 힘에 거신병들을 얹은 민아를 막을 자는 사실상 없었다.

‘나머지는 지구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네.’

그건 세한이 알아서 할 테니 민아는 우선 신경을 껐다.

이제 그녀가 할 일은 ‘변신 능력을 사용해 숨어있는 누군가’를 색출하는 것이었으니까.

***

‘생각보다 대응이 너무 빠르다.’

친위대 제 1석. 그렌델은 점차 초조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이미르의 명에 따라 수많은 별들을 침략해 온 그였지만 이렇게 저항이 거센 건 처음이었다.

대체로 별을 침략하게 되었을 때는 퍼블리셔의 운영으로 인해 피폐해진 별을 침략하는 경우가 많았고, 당연히 플레이어들도 살아갈 의지가 망가진 경우가 많아 저항이 약했다.

어차피 자신들이 저항한다고 해도 퍼블리셔는 계속해서 병력을 보낼 테니, 헛된 몸부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는 달랐다.

하나가 되어 똘똘 뭉쳐서 저항했고, 플레이어의 질도 그렌델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일개 플레이어들이 거인을 상대한다고?’

만약 누가 그런 말을 했다면 비웃었을 것이다.

거인은 신화를 양분하는 존재. 기본적으로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며 특별한 방법이 아니면 죽을 일이 없다.

반면 인간은 어떤가? 사사로운 병이나 사고에도 쉽게 죽는다.

아무리 플레이어가 되어 강해졌다고 한들 거인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는 경우는 지극히 드문 일이다.

가장 오래된 별이라고 불리는 페트로이아의 플레이어들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

게임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은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그렌델의 생각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특히.

“외신의 괴물마저 부릴 수 있을 줄은.”

[───!!]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울음소리가 대기에 울려 퍼졌다.

지금 그렌델이 있는 장소는 서울의 중심부.

디어사이드가 있는 장소이며 나름 거대한 플레이어 길드가 모여 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이곳에 파견된 거인들의 숫자도 가장 많은 넷.

그렌델을 포함한 실력자들로만 파견되었기에 손쉽게 제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데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첫 습격으로 디어사이드 건물을 박살 낸다는 것부터 실패했다.

원거리에서 상대가 알아차릴 틈도 없이 날려버리려고 했지만 근처에 펼쳐져 있는 마법결계에 무산되었고, 도리어 자신들이 침입했다는 걸 알린 꼴이 되었다.

덕분에 습격을 대비하고 있던 서울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그렌델을 비롯한 거인들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고작 플레이어들이니 쉽게 죽이리라 생각했는데.’

확실히 하나하나는 벌레와 같다.

하지만 작은 벌레라도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법.

심지어 벌레들이 지혜가 있으며, 거인조차 집어삼킬 수 있는 마수를 지배하고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콰콰콰콰!!

“크으윽!!”

포효를 내지른 마수가 그렌델을 덮쳤다.

마치 거대한 웜(Wyrm)과도 같은 형태였지만 이건 단순한 마물이 아니다.

해신 다곤.

어째서 해신이라 불리는 괴물이 대지를 바다처럼 헤엄치며 자신을 덮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레이트 올드원을 아우터갓이 아닌 한낱 인간이 조종하다니!’

그렌델은 다곤의 공격을 피하며 하늘에 떠 있는 한 여성 마법사를 보았다.

그녀는 세한의 부탁에 따라 서울에 와 있던 이수린이었다.

현재 디어사이드 최강의 전력이라고 하면 단연 그녀였기에 디어사이드의 수호를 부탁한 것이다.

‘나중에 이건 제대로 받아낼 거야.’

이수린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그렌델의 시선을 피했다.

아까부터 자신을 노리는 걸 알았기에 최대한 방어에 집중하며 다곤을 움직이고 있었다.

르뤼에 이본을 사용한다면 다곤을 부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은 괜찮을 것 같네.’

이곳에는 이수린을 제외하고도 서울 3대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몰려 있었다.

3대 길드라는 말은 허명이 아니다.

세계에서 워낙 강한 길드가 많아 조금 주춤하기는 했지만, 본디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

길드 하나가 거인 하나를 맡아서 싸울 만큼 강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인 것 같은데…….’

상황 자체는 세한의 의도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좋지만은 않다는 거다.

‘이 상황을 이미르가 모를 리 없고, 그렇다면 그가 움직이게 될 시간이 더 빨라질 거야.’

세한은 그렇게 말했고, 이수린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친위대가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니 이미르가 직접 움직이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부디 서둘러주길.

이수린은 지금 이곳에 없는 세한을 생각하며 르뤼에 이본을 펼쳤다.

***

「서울도 훌륭히 방어했고, 부산지역은 블루에일과 성녀가 움직여 버티는 중이다.」

“사망자는?”

「아직은 일반 플레이어 중에서만 나왔다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이드라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큰 문제가 생겼다면 직접 움직일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성공적으로 선발대들을 방어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줘. 바로 날아갈 테니까.”

「알겠다. 하지만 그대의 기억을 찾는 게 최우선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그렇게 말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 전에 본거지가 날아가 버린다면 본말전도다.

‘그래도 확실히 아직은 괜찮은 것 같으니.’

나는 이드라와의 통신을 끊은 후, 폐허가 된 건물들을 돌아다녔다.

본래 악마의 계약자나 하수인들이 모여 있던 장소였지만,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다른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더불어 그 어떤 사건은 나와 ‘그녀’ 때문에 일어났던 사건인 모양이고.

‘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군.’

내가 왜 이곳에 왔더라.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드라의 말에 따르면 나는 이곳에서 ‘그녀’와 싸웠다.

그것도 놀랍게도 내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내가 그 정도로 신경을 쓸 정도라니.’

하기야 천살성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해가 안 되는 건 나와 그녀가 싸워야 했던 이유다.

“정말 답답해 미치겠네.”

이드라가 표시한 장소는 이제 거의 다 돌았다.

하지만 대학을 제외한 어떤 곳도 마땅한 단서가 없었다.

그냥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다, 라는 이드라의 설명만이 떠오를 뿐이다.

정말로 내가 그런 일을 겪었는지는 둘째 치고 해당 장소에서 있었던 사건 자체들이 통째로 잘려나가거나 기억이 수정되어 있어, 이드라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구별할 수 없었다.

이 장소의 경우엔 누군가와 싸운 기억이 아닌, 제대로 이드라가 지구에 강림했던 ‘첫 조우’로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그때 이드라는 왜 나와 만났더라?”

생각을 바꿔서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아닌, 왜 이드라를 만나야만 했는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드라와 만나 무엇을 했는가. 분명 그건 이드라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몽상의 던전.”

아니 신전이다.

그래, 그때 몽상의 던전을 신전으로 개조했었지.

그리고 과거로 이동했다.

분명 그때 이동했던 과거가…….

「절대, 절대로……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분명 ‘그녀’인 게 분명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몽상의 신전을 통해 이동한 과거에서 있었던 일인가?

아니, 과거라면 어느 시점인 거지?

“젠장!”

중요한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잖아.

그런데 왜 목소리는 스쳐지나간 거지? 그건 ‘그녀’와 관련된 게 아닌 건가?

혹은…….

“잠깐.”

나는 황급히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곤 내 특성부분에 있는 한 문구를 확인했다.

‘아픈 소녀의 사랑.’

그러고 보니 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특성이 왜 생겼는지 모르는 걸보면 분명 이것도 ‘그녀’와 관련된 게 분명할 터.

‘그녀이면서 그녀가 아니라는 건가.’

마치 대학에 남겨져 있던 다른 세이브 파일처럼.

무언가 알 듯 말 듯 가슴을 간질였다.

‘아.’

문득 이 상황을 타계할 하나의 가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건 정말 최후의 상황이 아니면…… 응?”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고민하던 순간, 어째서인지 머리 위가 밝아진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정말로 밝아졌다.

‘이곳은 가로등 같은 게 켜질 일이 없을 텐데?’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보자 나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밤하늘을 밝히며 금빛 유성우가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시작됐군.”

드디어 퍼블리셔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깨달았다.

첫 번째가 선발대였다면, 두 번째는 퍼블리셔가 가진 가장 강한 무기 중 하나.

별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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