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63화 (263/332)

# 263

263. 퍼블리셔(3)

“여기서 뭐 찾을 게 있습니까? 보기엔 별다른 건 보이지 않는데요.”

컴퓨터실에서 나오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박동권이 말을 걸어왔다.

건물을 살피러 왔다고 하더니만 계속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 네게 떨어질 콩고물이 없나 살펴봤냐?”

“아, 아닙니다.”

속이 훤히 보이는 녀석이다.

아마도 내가 이곳에 뭔가 숨겨둔 게 있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너도 참 일관적인 놈이다.”

“그, 그래도 나쁜 짓은 한 적 없습니다!”

“알아, 임마.”

만약 그랬다면 내가 녀석의 목에 채운 은색의 띠에 목이 졸려져 죽었을 것이다.

‘아니, 내가 채운 게 맞나?’

뭔가 기억이 미묘했다. 머리가 살짝 지끈거린 걸보면 그것도 ‘그녀’와 관련이 있는 거겠지.

메모장에서 나를 오빠라고 부른 걸 보면 내가 잊은 대상은 여성인 게 확실했다.

“야, 너 혹시 네 목에 그거 누가 채운 건지 기억나냐?”

“네? 그거야 당연히 당신이…….”

녀석은 그렇게 말하다 말을 멈췄다.

그리곤 인상을 찡그리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내가 황급히 녀석의 어깨를 흔들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아, 아니. 갑자기 머릿속에 섬뜩한 붉은 눈동자가 보였습니다.”

“붉은 눈동자? 누구의?”

“그, 그건 기억나지 않아요. 떠올리려고 하면 머리가, 크윽!”

붉은 눈? 잊혀진 자는 붉은 눈동자를 지닌 여성인가?

‘그러고 보니 천살성이 있었지.’

역시 그녀는 혈천수라공을 익힌 게 분명했다.

혈천수라공을 익히면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하게 되니까.

‘정말로 난 천살성을 동료로 두고 있었나.’

그런 위험천만한 존재를 동료로 두고 있었던 나란 녀석은 대체.

하지만 아마 난 그녀 덕에 혈천수라공을 익혔을 테니 이제 와서 뭐라 하기도 그렇다.

“그 외에 더 생각나는 건…….”

혹시 더 괜찮은 정보가 있나 싶어 물어보려던 순간, 내 감각에 기이한 뭔가가 걸렸다.

“왜 그러십니까? 말하다 왜 멈춘…… 커억!!”

나는 황급히 녀석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었다.

워낙 갑작스러운 행동이었기에 녀석은 제대로 반응도 못하고 족히 십 미터는 날아가 뒹굴었다.

“가,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데굴데굴 굴러서 날아간 박동권은 억울한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녀석의 목소리는 내게 닿지 않았다.

콰아아앙!!

방금 전에 녀석이 서 있던 장소에 날카로운 칼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시퍼렇게 빛나는 신격의 칼날에 대지를 후벼 파며 기다란 실선을 만들어냈다.

“헉!”

당연히 박동권은 내게 소리치던 것도 있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누, 누구.”

“거기서 움직이지 마.”

덜덜 떠는 녀석에게 나는 경고하며 주변을 살폈다.

시퍼런 검날이 떨어지는 건 확인했지만 공격한 대상은 보지 못했다.

‘퍼블리셔의 선발대로군.’

곧 오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도착했을 줄이야.

아마 기습을 가해 약한 박동권부터 처리하려고 했던 거겠지.

‘확실히 괜찮은 실력이야.’

집중해야 간신히 미약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해서 기척이 느껴지는 장소가 달라지는 걸 보니 속도도 상당히 빠른 모양이다.

아키넨의 말처럼 말이 선발대지, 이미르의 친위대라는 게 겉멋은 아닌 모양이다.

‘뭐, 그래 봤자.’

녀석의 기척은 내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박동권을 노리는 건 포기한 것 같았다. 예상보다 박동권이 허접했던 게 원인인지, 아니면 기습에 실패한 이상 조금 위험을 감수하고 나와 전력으로 싸우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나야 아무래도 좋다만.

쉬이익!! 카아앙!!

뒤에서 내 어깨를 노리며 날카로운 칼날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칼날은 내 어깨를 가르지 못하고 갑자기 치솟아 오른 대지의 벽에 막혔다.

“큭! 이런!”

평범한 돌이나 금속이었다면 그대로 갈랐겠지만 내가 만들어낸 벽은 어디까지나 환상.

그 강도는 내가 상상하는 그대로 강도가 투영되며 신격을 많이 집어넣을수록 강해진다.

당연히 최상급 신격에 이른 내 방어를 이미르의 친위대 따위가 뚫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를 노리러 온 것치고는 굉장히 허술한 게 왔는데?”

“젠장!”

그제야 나는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푸른 머리칼과 이마에 박혀있는 푸른 보석은 방금 녀석이 사용했던 검기의 색을 연상시켰다.

탁!

녀석은 황급히 몸을 빼려고 했지만 그보다 내 손짓이 빨랐다.

주르르륵!

대지가 마치 에스컬레이터처럼 내 쪽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도망치려던 녀석의 몸을 내 앞으로 당겼다.

“어딜 가려고?”

“이, 이런 무슨 말도 안 되는 능력이!”

순식간에 내 앞까지 끌려온 녀석이 당황하며 양손에 든 검으로 내 목과 명치를 노리며 찔렀다.

대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상대가 나빴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허수공간이 열리며 프라가라흐가 떨어지며 녀석의 검 두 자를 한 번에 두 동강 냈다.

‘역시 SS급 아이템은 폼이 아니구만’

그냥 튕겨낼 심산으로 날린 프라가라흐가 설마 신격으로 덮인 검 두 자루를 한 번에 잘라낼 줄이야.

“이이익!!”

하지만 녀석은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했는지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대지에 양다리를 박아 넣으며 균형을 잡고는 전신의 신격을 꺼내기 시작했다.

푸른 보석이 빛나며 막대한 신격이 놈의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중급? 아니 상급인가.’

한번 본 적이 있는 기술이다.

환상의 세계에 아카터스를 가뒀을 때 녀석이 사용했던 기술.

거인의 힘을 모두 끌어내는 비장의 수인 모양이지만 지금 나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 건 미리미리 사용해야지.”

쿠우웅!!

“컥!”

검지를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자, 대지가 치솟으며 녀석의 턱을 망치처럼 강타했다.

살짝 공중으로 떠오른 녀석을 향해 이번엔 위로 올렸던 검지를 재차 녀석을 가리켰다.

그러자 아까 녀석의 검을 반 토막 냈던 프라가라흐가 나를 스치며 날아가 녀석의 목젖을 향해 쇄도했다.

푸우욱!!

“크으윽!!”

녀석은 그것을 황급히 양팔을 들어 막았지만, 프라가라흐는 녀석의 양팔을 꼬치처럼 꿰어내며 목의 바로 앞에 멈췄다.

“대체 뭔 생각으로 혼자서 온 거냐?”

양팔이 봉인된 녀석의 몸에 현실조작을 가해 넝쿨로 전신을 속박했다.

거미줄에 묶인 나비처럼 묶인 녀석의 모습은 웃음이 나올 만큼 처량했다.

“날 노릴 거면 적어도 다섯은 왔어야지.”

“네, 네놈을 노린 거 아니다.”

“응?”

양팔이 꿰뚫린 통증 때문인지 놈은 얼굴은 한껏 일그러트리며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저 쓰레기를 잡으러 온 거라고! 왜,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냐! 분명 너는 디어사이드에 있다고 들었는데!”

“아, 날 노린 게 아니었어?”

어쩐지 한 명이더라.

‘난 약한 녀석부터 죽이려고 박동권을 노린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애초에 박동권을 죽이기 위해 온 녀석이었나.

“왜 이런 놈을 노리냐? 다른 노릴 사람도 많은데.”

“크윽, 저 인간놈도 꽤 중요한 인물이라고…….”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힐끔 박동권을 보았다.

박동권은 멍청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어쨌든 저 녀석도 블루에일의 부길드장이지.’

적어도 손에 꼽히는 길드의 부길드장이니 암살대상으로 부적절한 건 아니다.

실제 전투력도 낮은 놈이니 선발대 하나면 암살도 간단히 성공했을 것이다.

다만 박동권은 재수가 좋았다.

하필 녀석이 습격당할 장소에 내가 있었으니까.

“그럼 지금 다른 중요인물들도 이렇게 습격하기 시작한 거냐?”

“…….”

녀석은 입을 꾹 닫고 대답하지 않았지만 대답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과연.’

대놓고 덤비는 게 아니라 암살의 형태로 습격하는 건가.

그것도 최소 중급 이상의 신격을 지닌 존재들이.

나야 간단히 쓰러트렸지만 그건 나니까 그런 거다.

아무리 본 실력의 반도 낼 수 없다지만 나는 니알라토텝을 죽임으로서 기본 신격만 최상급 이상이 되었다.

거기다 1회차 이드라를 통해 얻은 환상의 실체화라는 사기 스킬까지 지녔으니 단순 신격의 출력만으로 찍어누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박동권처럼 다른 플레이어들은 솔직히 위험할지도 몰랐다.

“야.”

“뭐, 뭐냐.”

“혹시 누구누구 먼저 습격하는지 말할 생각 있냐?”

“미친놈.”

녀석은 입가를 삐뚜름하게 비틀며 비웃음을 지었다.

썩어도 퍼블리셔를 대표하는 강자 중 하나이니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다.

“하긴 말해줄 리가 없지.”

“크, 흐흐, 비록 내가 싸움에선 졌을지라도…….”

“그럼 한숨 자라.”

“……뭐?”

당황하는 녀석의 얼굴을 향해 나는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놈의 이마에 박혀 있는 푸른 보석을 향해서.

“정보야 꿈속에서 읽으면 그만이거든.”

“……!”

놈은 그제야 내 능력이 뭔지 떠올린 모양인지 안색이 변했다.

지금이야 자신의 의지로 저항할 수 있지만 꿈속이면 이야기가 달랐으니까.

***

“후우.”

샹관 유엔은 피로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요즘 워낙 할 일이 많은지라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쉰다고 해도 지금처럼 자신의 집무실에서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

‘언제 퍼블리셔가 올지 모르니.’

이전에 연락받은 바로는 곧 퍼블리셔의 선발대가 지구를 습격한다고 했으니 그에 걸맞은 대비를 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형태로 지구를 습격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군대를 이끌고 올 것인지, 혹은 암살일지 모른다.

‘차라리 정면에서 덤벼주면 고맙겠지만.’

전면전 전에 온다는 녀석들이 정면에서 덤비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먼저 지휘관을 노려 죽인 후,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곧바로 차원문을 열고 쳐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게 유엔의 생각이다.

실제로 아키넨에게 물어봤을 때 퍼블리셔는 비슷한 방법을 취했다고 들었다.

‘만약 습격해 온다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유엔은 플레이어 중에서는 손꼽히는 강자다.

그녀의 신도 상당히 급이 높은 신이었고 인간에게 호의적인 신이었기에 유엔도 상당히 도움을 받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어디까지 했더라…….”

창천 길드는 인류의 길드 중 가장 많은 병력을 보유한 길드 중 하나였다.

그만큼 다양한 길드에 인력을 파견하곤 했고,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건 영국의 팬드래건 길드였다.

“내일 오후에는 아서 씨와 만나야겠네.”

또 영국까지 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모르간 님에게 부탁할까?’

호수를 통해 이동하면 5분이면 갈 수 있으니 유혹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신화 속 마녀를 고작 이동수단으로 생각한 걸 알면 본인은 화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미리 소지품이라도 챙겨둬야…….”

유엔은 피로한 얼굴로 중얼거리다 말을 멈췄다.

그녀의 기감에 이질적인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깐, 머리 위?’

그녀 역시 지구를 대표하는 실력자 중에 하나다.

중급 이하의 신격을 지닌 상대라면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중급 이하가 결코 아니었다.

‘위치는 건물의 옥상!’

순식간에 커져가는 신격이 건물 옥상에서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보단 유엔은 황급히 전신의 마력으로 전신을 둘러쌌다.

지금 옥상 위에 나타난 존재는 결코 자신에게 우호적인 자가 아니었다.

콰콰쾅!!

창천 길드의 건물이 터져나가며 옥상에서 지상까지 순백의 마력이 관통했다.

족히 수십 층이 되는 건물이 폭발하며 단숨에 붕괴했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당장 피해! 습격이다!!”

마력의 기둥에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황급히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서 뛰쳐나갔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건물이 붕괴되는 순간 죽었겠지만, 모두 한 플레이어들인지라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으윽!”

공격을 정통으로 맞은 플레이어 중에 살아남은 건 오직 유엔 하나였다.

아니, 애초에 유엔을 노리고 가한 공격인 게 분명했다.

‘덕분에 인명 피해는 적어.’

전신의 통증을 참으며 유엔은 애써 자세를 잡으며 지상에 착지했다.

건물이 무너지며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창천길드 주변에는 이런 사태를 대비해 온갖 방어마법이 설비가 준비되어 있었다.

상대는 그 모든 걸 아무도 모르게 돌파하여 창천 길드에 공격을 가했다.

“낄낄, 제법이야. 설마 인간 따위가 내 공격을 버틸 수 있을 줄이야.”

숨을 고르며 상처를 회복하던 유엔을 향해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2미터는 넘을 법한 거대한 덩치와 이마에 박혀있는 붉은 보석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선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었지.’

세한의 쪽지를 통해 들어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엔의 등 뒤로 차가운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