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53화 (253/332)

# 253

253. 적이 된 아군(3)

머리 위 공중에 떠 있는 금색의 왕관.

금빛 입자가 흩날리는 머리카락.

투명하게 빛나는 금색 눈동자.

그 모습은 마치 태양과도 같았다.

대지를 밝히는 황금의 여신.

인류의 정의이자 인류가 지닌 모든 가능성을 한 몸에 지닌 소녀.

아니, 이제는 여성이 된 린 테일러의 모습에 세한은 마른침을 삼켰다.

‘한번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다만.’

10년도, 20년도 아닌 30년 후의 린.

다행스러운 점은 린의 상대가 대부분 고만고만 녀석들이라 파격적으로 강해지지는 않았다는 거다. 30년 내내 반고나 이미르, 7대 악마급 인물과 싸웠다면 그 힘도 몇 배는 강해졌을 테지.

‘그래도 좋은 상황인 건 아니야.’

앞으로 남은 건 고작 5층.

그러나 세한에겐 그 5층이 지금까지 돌파해온 25층보다보다 수십 배는 높아 보였다.

다른 이들에겐 대처가 가능하지만 린에겐 그조차 힘들었으니까.

몽상의 신전이 던전이던 시절,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구하기 위해 던전 안에 들어가 린과 싸운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때의 린은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고, 아스트라이아와 막 합신했던 때였다.

지금의 린과는 비교조차 힘들었다.

“익숙한 느낌.”

린은 세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구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디어사이드의 길드타워.

그 중심부에 침입한 남자.

악마나 거인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눈앞에 있는 인간이 해냈다.

‘악마……는 아니야. 거인이나 신도 아니고.’

강렬한 신격이 풍겼지만, 뭔가 달랐다.

마치 외신에게서 풍기는 그런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외신은 아니었다.

눈앞의 존재는 확실히 인간이었다.

‘골격이나 신장은 아저씨와 같은데.’

문제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얼굴은 가리고 있지만, 역시 아저씨와는 달라.’

마왕의 힘을 지닌 세한이라면 길드타워에 침입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수아가 관련된 일이니 마왕 세한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뭔가 달랐다.

‘내 눈으로도 꿰뚫어 볼 수 없는 환상이라니. 거기다 목소리도 변조됐어.’

평범한 적은 아니다. 린의 눈은 거짓을 꿰뚫어보는 정의의 여신의 눈.

그럼에도 사내의 얼굴을 덮은 환상도, 변조된 목소리도 진실과 구분할 수 없었다.

그 이야기는 사내가 가진 힘이 외신급 존재라는 것이다.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전함이 느껴졌지만 린은 알 수 없었다.

‘만약 아저씨라면 저런 환상 같은 힘을 다룰 리가 없지.’

마왕 세한의 특기는 혈천수라공을 위주로한 근접전이다.

마법이나 다양한 기술을 익혔지만 환상을 다루는 힘은 없었다.

적어도 린의 기억에는 그랬다.

“멋대로 길드타워에 침입한 죄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다 이유가 있는 일인데 넘어가 주면 안 되나?”

“이유?”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린의 시선에 세한은 잠시 고민했다.

‘본 모습을 보이고 다른 분기에서 왔다고 하면 설득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민수아가 말하길 린은 결코 세한을 믿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린은 거짓말과 진실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도 세한의 말을 믿지 못한다는 건가?

‘아니면……’

린을 설득하는 건 올바른 답이 아닌 걸까.

민수아는 그걸 막으려는 건지도 모른다.

모든 건 어디까지나 추측.

린을 설득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강제로 뚫고 지나가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훔치는 것이 옳은가.

답은 알 수 없다.

언제나 세한은 1회차의 지식을 바탕으로 움직였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미래를 아는 건 오직 민수아뿐.

그녀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것에서 답이 갈렸다.

“됐다.”

“?”

“우선 그걸 차지하고 나서 생각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이야.”

“그거라니…….”

린은 시야를 올려 위를 보았다.

세한이 향하려던 장소는 분명 이 위에 있는 최상층이었다.

최상층에는 디어사이드에서 보관하는 일급 기밀이나 보물이 수없이 많았다.

이 남자가 노리는 건 그 보물 중 하나라는 걸까.

“설마 저를 지나 저 위로 갈 수 있다는 뜻인가요?”

“못할 것도 없지.”

자신감 넘치는 말에 린은 잠시 말을 잃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앞에서 저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린은 포식자였고,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린의 앞에선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유일하게 다른 상대라면 광기에 사로잡힌 세한과, 그의 곁에 있는 지수.

아자젤이나 루시퍼, 그리고 이미르와 같은 존재뿐이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그런 괴물들과 동등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리석은 이의 만용. 혹은 허세.”

린의 눈에서 금빛이 흘러나오며 주변이 확 밝아졌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신격이 태양의 열기처럼 주변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우선 대화는 당신을 잡은 뒤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칼이 쥐어져있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금빛은 칼날의 표면을 타고 흐르며 금색의 테두리를 만들었다.

‘다행히 리브라는 아니군.’

리브라까지 쥐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텐데.

당장은 죽일 생각은 없고 제압을 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디…….’

세한은 힐끗 어느 한 곳에 시선을 주었다.

이곳에는 조금 떨어진 장소.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 시선을 두었다가 린을 올려보았다.

“오랜만에 교육시간이다.”

“……?”

뜬금없는 말에 린의 눈이 살풋 찡그려지는 순간, 갑자기 린의 옆의 벽이 꿈틀거리며 치솟았다.

콰아아아!

마치 전철처럼, 치솟은 벽은 린의 몸을 강타하며 단번에 몇 개의 벽을 부수며 날려 보냈다.

길드 타워의 외벽이 최소 미스릴 이상의 강도라는 걸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위력이 아닐 수 없다.

세한은 린이 날아가는 동시에 날개를 펼치고 위로 날아올랐다.

허수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면 편했겠지만 민아가 만든 결계 때문에 먼 거리는 공간이동을 할 수 없었다.

최소 물건이 있는 장소 5미터내에는 진입을 해야만 했다.

“이 힘은 대체?”

자신의 몸을 후려친 벽을 반으로 가르며 린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갈라진 벽은 마치 환상처럼 부스러져 흩어졌다.

실제로 린이 얻어맞고 날아가며 부서진 벽들을 제외하고 방금 벽이 튀어나왔던 장소는 매끄러울 뿐이었다.

‘대체 무슨 힘이지?’

벽이 튀어나온 건 시작이었다.

세한을 쫓기 위해 발에 힘을 넣는 순간, 미스릴로 이루어진 바닥이 넝쿨처럼 변하며 린의 다리를 옭아맸다. 물론 겨우 그정도로는 린의 각력에 가볍게 끊어졌지만 그런 작은 현상 하나하나가 린에게는 당황스러웠다.

‘읽히지 않아.’

어떤 힘이든 린은 그것의 근원을, 근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힘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마법인지, 아니면 신의 권능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치 덧없는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읏.”

처음으로 린의 표정이 변했다.

감출 수 없는 짜증이 얼굴에서 나타나며 그녀의 신형이 금색의 빛으로 화했다.

‘미친.’

세한은 날아가며 양팔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린의 움직임을 쫓아 몇 개의 장벽을 만드는 건 물론, 허수공간을 열어 무기를 마구잡이로 날렸다.

콰콰콰콰!!

그러나 금색의 빛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허수공간에서 날아간 무기들은 재로 변해 사라졌다.

건물의 구조를 조작하여 만들어낸 장애물을 관통하거나 미끄러지듯 회피하며 세한과의 거리를 단번에 좁혔다.

쉬이익!!

눈을 두 번 깜박였을 때 린의 검은 세한의 목젖에 닿아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당황한 그에게 린은 말했다.

“잔재주는 이걸로 끝인가요?”

“아니.”

창백했던 얼굴에 웃음이 맺혔다.

당황했던 얼굴 자체가 연기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의 몸이 부스러지듯 사라졌다.

그가 갑자기 사라지자 린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수십 명으로 분열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신?!”

하지만 분신이라기엔 모두 진짜 같았다.

어떤 게 거짓인지 사실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거짓을 간파하는 정의의 여신의 눈을 지녔음에도.

“당신의 힘은 이 우주에 속한 존재의 것이 아니군요.”

외신, 아우터갓 중에 환상을 다루는 신이 있었던가.

린은 30년간 얻은 수많은 정보를 떠올려 봤지만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가신 사람.”

분열된 세한은 하나같이 린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목표는 위. 아예 린을 상대하지 않는 그 모습에 린은 내심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린은 확실히 대단한 재능을 지녔다. 전투에서는 더할 나위 없을 만큼 경이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재능이라고 해도 상대가 무시한다면 빛을 바랬다.

거기다 상대의 힘은 환상처럼 아무것도 없었기에 ‘먹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걸 먹어봐야 어떤 원리로 저런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거기다 마치…….’

린을 자주 상대해 본 것 같았다.

상대는 린이 먹을 만한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어요.”

분열된 세한들은 이미 28층을 넘어가고 있었다.

린의 눈이 움직이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가 뒤로 당겼다.

뚜드드득!!

그러자 중력 자체가 뒤로 움직이며 세한의 날개가 모조리 꺾여버렸다.

부러진 날개에 황급히 18층 바닥으로 착지한 세한과 그 분신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린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아오, 이게 말이 되냐?’

무슨 중력이 식탁보도 아니고 손으로 당긴다고 당겨지다니.

이치를 벗어난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날개를 잃은 건 조금 치명적이군.’

궁기의 날개는 갑작스럽게 변한 중력의 영향에 꺾여서 수복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카아아앙!!

“살벌한데.”

“계속 도망치기만 하니까요.”

단번에 접근한 린은 세한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세한은 그것을 분신들과 함께 받아쳤다.

다섯 명의 세한이 린의 다리를 노렸고, 몇 명의 세한은 허수공간을 열었으며, 나머지는 환상을 만들어 린을 공격했다.

“움직임이 뭔가 불완전한데, 이유가 있나요?”

“나도 그 이유를 몰라.”

태연한 린과 달리 세한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건물 내에 펼쳐진 결계 때문에 환상을 다루는 것도 제약이 컸다.

‘……그래도.’

세한의 시선이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가, 위로 향했다.

‘이제 됐어.’

30층, ‘어떤 물건’이 있는 장소를 응시하던 세한은 시선을 때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분신들을 쓰러트리며 접근하고 있는 린을.

짝!

세한은 양 손바닥을 마주쳤다.

양쪽의 벽과 바닥이 움직이며 덤벼들던 린을 압박했고, 린은 그것을 일검에 분쇄하며 세한을 향해 접근했다.

금색의 눈동자는 차츰 분신이 무엇인지 구분하기 시작했다.

환상에 익숙해진 걸수도 있고, 메리수의 특성으로 본디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른다.

모든 분신들이 사라지자, 마지막 남은 진짜 세한을 향해 린이 접근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금색의 눈동자에는 세한의 모습이 또렷하게 비쳤다.

신격으로 담금질 된 린의 검이 세한의 가슴팍을 찔렀다.

콰악!!

검이 세한의 가슴팍을 닿기 직전, 사방에서 허수공간이 열리며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사슬들이 튀어나와 검을 옭아맸다. 신격으로 감싼 오리하르콘 사슬이라면 아무리 린이라고 해도 쉽게 끊을 수 없었다.

검이 사슬에 묶여 빠지지 않자 린은 검을 손에서 간단히 놓았다.

그리곤 발을 앞으로 강하게 내딛으며 왼 주먹을 세한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컥!!’

황급히 팔을 올려 린의 주먹을 막았지만, 그 충격으로 양팔이 부러지며 세한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콰콰쾅!!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에 세한은 몸을 바로 잡는 것도 할 수 없었고 그대로 건물의 외벽마저 부쉈다.

콰아앙!!

몇 개의 건물을 꿰뚫으며 자동차 도로 한가운데에 떨어진 세한의 모습에 근처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졌어!”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지만 아스팔트 도로에 처박힌 세한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죽을 맛이었다.

‘28층까지 올라오는데 한 세월이었는데,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구만.’

단 한 대 맞았을 뿐인데 전신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살기를 담은 주먹이 아니었음에도 이 정도라니.

‘혈천수라공만 있었어도.’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근접전에서 밀리지는 않았을 텐데.

재생 스킬이 있었지만, 묘하게 재생능력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거기다 출력도 부족해.’

분명 벨제부브와 싸울 때의 자신은 환상을 조작하는 것보다 린과 싸울 때보다 배는 되는 규모로 힘을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비록 결계 안이었다고 해도 이래저래 출력이 떨어졌다.

분명 자신은 혈천수라공을 이용해 어떤 방법으로 지금의 배는 되는 힘을 사용했을 것이다.

탁.

“이제 다 끝났어요.”

부서진 도로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세한의 앞에 린이 내려섰다.

더 이상 공격 의사는 없어 보였다. 이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제압할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그래, 다 끝났지.”

“그럼 이제 저항하지 말고…….”

고고하게 쓰러진 세한을 내려다보던 린의 말이 멈췄다.

만신창이인 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 상황을 극복할 만한 방법이 있다는 건가?

그럴 리 없다. 지금 세한은 분명 전력을 다해 자신과 맞섰다.

더 이상 숨겨진 패가 있을 리가…….

“내가 오랜만에 교육해 준다고 했잖냐.”

웃음기마저 섞인 세한의 말에 린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 세한이 날아온 장소, 디어사이드의 길드타워.

그곳에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니까.

콰아아아!

타워의 위에서 가는 실선이 그어지며 마치 눈꺼풀처럼 벌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차원으로 연결된 거대한 검은 공간이 지금 열렸다.

“원래 눈에 띄는 녀석은 대부분 미끼인 법이란다.”

대놓고 30층까지 올라가려고 했던 세한, 바로 자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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