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51화 (251/332)

# 251

251. 적이 된 아군(1)

마계, 마왕의 영역.

과거 오만의 악마가 지배하던 구역이었지만 마왕이 탄생한 이후에는 마왕의 소유로 넘어간 장소였다.

그 중심에는 거대한 성이 있었는데, 바로 마왕이 기거하는 장소였다.

‘이곳도 오랜만이군.’

분노의 악마로서 왕을 알현하기 위해 자주 오던 장소였지만, 근 20년 동안은 그다지 올 일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마왕이 성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전과 같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아는 건 악마들 중에서도 극소수뿐이었고, 그는 그런 극소수의 악마 중 한 명이었다.

“분노의 악마, 신자운이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왔습니다.”

신자운, 이제는 ‘분노의 악마’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잦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이름을 덧붙이곤 했다. 여전히 그는 자신이 악마보단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가 악마가 된 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곁에 있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들어와라.”

느릿한 대답에 신자운은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건…….’

알현실의 내부로 들어간 신자운은 주변에 펼쳐진 광경에 몸을 굳혔다.

밖에서는 몰랐지만 알현실 곳곳에 파손된 흔적이 보였다.

‘심지어 최근 생긴 흔적이다.’

이 성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성의 주인인 마왕뿐.

누군가가 마왕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막으면서 생긴 흔적들인 게 분명했다.

“오랜만이다. 신자운.”

그때, 앞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노인과도 같은 쉬어버린 목소리.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예, 폐하.”

어둑어둑한 알현실 안의 끝자락.

반쯤 부서진 왕좌에 앉아 있는 남성이 있었다.

검은 흑발에, 초췌한 인상을 한 남자.

머리 위에 있는 검은 왕관이 아니었다면 그가 마왕이라는 걸 짐작조차 하기 힘든 외견이었다.

“그 모습은…….”

“조금 일이 있어서 말이야. 만약 지수가 나를 막지 않았다면 밖으로 뛰쳐나갔을 테지.”

“자주 있는 일입니까?”

“그나마 좀 줄은 편이다. 지수가 없었다면 20년 전과 같은 짓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었을 거다.”

적어도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얼굴은 초췌해졌어도 눈은 상당히 맑았다.

아마 계속 그의 곁에 있던 ‘그녀’의 힘이 컸으리라.

“그분은 어디로 갔습니까?”

“청소를 해야 된다며 도구를 가지러 갔다. 타이밍이 좋군, 넌 지수를 꺼려하잖나.”

“애초에 그분을 꺼려하지 않는 악마는 아자젤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그렇군.”

마왕, 세한은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왕좌에 삐딱하게 앉았다.

“그래서 이곳엔 어쩐 일이지?”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

“예, 수아에게서…….”

20년 전, 갑자기 지구에 남은 신자운의 지인.

그녀는 정말 슬픈 얼굴을 하면서도 꿋꿋하게 지구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건 자운에게서도 꽤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수아는 언제나 자운의 곁에 있기를 바랐고, 그렇게 행동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녀의 행동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인 세한도 은거에 들어갔다.

“수아는 그가 도착했다고 말했습니다. 마왕님이라면 그렇게 전하면 이해하실 거라더군요.”

세한과도, 그리고 수아와도 인연이 깊은 신자운조차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모든 걸 꿰뚫어보는 것 같은 아자젤조차도 마왕과 관련된 일은 전혀 알지 못했다.

“드디어…… 왔나.”

신자운의 말에 세한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웃는 듯, 우는 듯 기괴하게 일그러진 입술은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열렸다.

“준비해라.”

“준비, 말입니까?”

갑작스런 말에 신자운은 알쏭달쏭한 눈으로 세한을 보았다.

그는 왕좌에서 일어나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격정이 이는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는 것처럼.

“전쟁준비.”

전쟁? 이제 와서 다시 지구를 다시 침략하겠다는 건가?

“더 이상 지구를 침략해 봐야 얻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안다. 내가 지구를 침략한 건 광기에 휩싸여 벌인 단순한 화풀이니까.”

“예?”

“이제 우리가 전쟁을 벌일 곳은 지구가 아니야.”

마왕의 자리에 앉았어도 감히 싸울 마음을 먹지 못한 장소다.

세한의 힘에는 큰 결함이 생겼기에 놈을 쓰러트릴 수 없었다.

모든 걸 가졌음에도 하나의 조각이 부족했기에.

“퍼블리셔.”

이제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갈 때였다.

***

‘우측에 세 명.’

까마귀의 눈을 통해 플레이어나 사원들이 움직이는 경로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세한은 한 층한 층 차근차근 올라갔다.

다행히 그간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그런지 경계는 심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잠입해 보는 게 대체 얼마만인지.’

1회차에는 자주 했었지만 2회차에는 몇 번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조금 그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번 잠입은 실수로 들키기라도 하면 바로 끝장이었기에 신중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누군가를 공격하면 보안 장치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보안장치 발동 후, 린이 나를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분.’

15층에 있는 민아만 돌파하면 특별히 방해가 되는 것도 없으니 정상까지 5분 안에 주파할 수 있었다.

민아가 나를 발견한 시점에서 인증절차가 시작되고 5분의 유예를 준다.

그 5분 안에 스스로가 불법 침입자가 아니라는 걸 인증하지 못할 시, 보안장치가 발동하여 길드 건물 내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이 전달될 것이다.

물론, 린에게도.

그렇게 되면 린은 바로 세한을 추적하게 되고, 따라잡아 교전하게 되기까지 10분이 걸린다고 말했다.

현재의 세한으로선 린을 상대로 방어전을 펼칠 수는 있었지만 쓰러트리고 빠져나갈 수가 없으니, 무조건 5분 안에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회수해야만 했다.

‘곧 15층.’

14층을 목전에 두자 입술이 바싹 말랐다.

민아는 비교적 전투능력이 약한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한의 기준이지 충분히 강한 편이다. 30년이 흐른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한 층이 통째로 결계라니…….”

혹시 빈틈이 있을까 싶어 14층의 천장, 말하자면 15층의 바닥부분을 살펴보았지만 약간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 전체가 결계가 둘러져있는 건 물론, 외벽까지 감싸고 있었다.

심지어 공간좌표자체를 왜곡하고 있어, 허수공간을 이용해 침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볼까?’

그런 생각도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사원증과 같은 인식표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

결국 방법은 결계에 구멍을 뚫고 침입하는 방법뿐.

‘어쩔 수 없지.’

세한은 손바닥을 뻗어 천장에 손바닥을 대고 신격을 움직였다.

대략 성인 남성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결계에 만들기 위해서다.

‘좋아.’

제대로 구멍이 뚫린 것을 확인한 세한은 다리에 힘을 주고 위로 뛰어 올랐다.

이제 한 번 더 같은 행동을 하면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 게 가능했다.

쉬이이익!!

하지만 역시 일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결계를 뚫고 위로 올라가기 무섭게 무언가가 세한을 향해 날아왔다.

‘반응 한번 빠르네.’

수아에게 들은 그대로, 결계를 파괴하기 무섭게 공격이 날아왔다.

어디를 파괴하더라도 똑같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경험하니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설마 디어사이드에 침입하는 간 큰 놈이 있는 줄은 몰랐어.”

날아온 단검을 붙잡자, 언제 왔는지 단발머리의 여성이 서 있었다.

‘뭐야, 얘는 또 왜 나이를 안 먹었어?’

민아는 분명 린이나 수아처럼 합신한 상태는 아니었다.

근데 몸에 신격을 지니고 있었다.

아바타는 자신과 계약한 신과 하나가 되지 않는 한 신격을 얻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신격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양은 결코 많지는 않았지만 대략 중위 신급 정도.

간단히 설명해서 아스트라이아보다 조금 낮은 편이었다.

이 정도면 작은 지역의 신 정도는 될 수준이었다.

‘로키 녀석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거지?’

세한은 대체 로키가 민아에게 무슨 조치를 취한 건지 궁금해졌다.

물론, 궁금한 건 궁금한 거고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어라, 얼굴도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그거 본래 모습은 아니지?”

“그걸 내가 말할 것 같나?”

“목소리도 들어보니 변조한 거네.”

로키에게 많은 걸 배운 모양인지 세한이 얼굴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도 눈치챘다.

“미안하지만 대화를 나누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길드 타워 15층에 등록되지 않은 침입자가 발견되었습니다.]

[당사자는 5분 안에 신분을 인증해 주세요.]

[인증되지 않을 시, 적대자로 간주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림이 들려왔다.

이전까지는 어디까지나 민수아의 손님이었지만, 민아가 세한을 적대한 순간을 기점으로 침입자로 바뀌었다.

아직까지는 세한의 귀에 들리는 정도로 그쳤지만, 인증을 못하면 린에게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이 전달되리라.

‘인증이 끝나기 전에 민아를 쓰러트려야 해.’

이미 들킨 이상 힘을 아낄 필요는 없었다.

세한은 양손을 옆으로 벌린 후, 손바닥을 짝! 하고 마주쳤다.

“지금 무슨 짓…….”

드드드!

갑작스런 세한의 행동에 의아하던 민아는 양쪽에서 덮쳐오는 벽의 모습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마법이야?”

콰콰쾅!

샌드위치 빵 사이에 낀 햄처럼 벽 사이에 눌린 민아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힘은 내가 마계에서 얻은 힘이니 민아가 알 리가 없지.’

광기의 마왕 엔딩에 도달한 세한은 이드라를 잊었다.

그렇기에 환상을 현실화 시키는 힘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니 민아는 세한이 얻은 새로운 힘에 대해 알지 못했고, 이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걱정 마라, 나도 해치지는 않을 테니까.”

“칫, 그래. 숨겨둔 수가 있다 이거지?”

쿠쿠쿵!!

민아의 양팔이 빛나는 금색으로 덮이며 자신을 누르던 벽을 부쉈다.

불가사리를 통해 얻었던 능력으로 양팔을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것이다.

“그럼 나도 봐주지 않겠어.”

벽을 부수는 민아의 모습에 세한은 오른손을 뒤에서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바닥이 융단처럼 쭉 밀려나며 민아의 균형을 흐트러트렸다.

“흥!”

쿵!

그러나 민아도 이전처럼 쉽게 당하지 않았다.

균형을 잡으며 바닥을 강하게 내딛자, 마법진이 생겨나며 바닥과 벽을 얇은 신격의 막으로 감싸 세한의 신격이 닿는 걸 차단했다.

“후우우우!”

그뿐이 아니었다.

그녀는 입을 쩍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입속에 막대한 마력이 뭉치기 시작했다.

‘잠깐만, 설마 저 녀석?!’

호흡과 함께 빨려 들어간 마력은 심장에서 뭉친 뒤, 몇 배로 증폭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세한이 알기로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드래곤 브레스.

민아는 자신의 심장과 목, 그리고 입을 드래곤의 그것과 동일하게 변화시킨 것이다.

이건 이미 ‘변신’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

민아가 숨을 내쉬는 순간, 입 근처에 둥근 마법진이 만들어지며 푸른빛줄기가 쏘아졌다.

복도의 벽과 바닥을 모조리 분쇄시키며 거대한 빛의 격류가 되어 세한을 휩쓸고 지나갔다.

콰콰콰쾅!!

푸른빛줄기는 길드타워의 외벽마저 관통하며 하늘을 가르며 사라졌다.

세한은 허수공간을 이용해 민아의 등 뒤로 피할 수 있었지만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부디 린이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는 수밖에.’

수아의 말에 따르면 린과 만날 회의실은 웬만한 소리나 충격에는 영향이 닿지 않는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코앞에서 드래곤 브레스가 쏘아지는 걸보니 걱정이 치밀어 올랐다.

‘뭐야, 언제 뒤로 이동한 거지?’

반면 민아는 민아대로 경악했다.

드래곤 브레스는 나름 비장의 수였고, 이걸 정통으로 맞춘다면 어지간한 상대는 골라갔다.

그런데 상처 하나 없이 자신의 뒤로 이동했을 줄은 몰랐다.

‘분명 방금 결계를 다시 치면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구역으로 만들었을 텐데?’

민아는 세한이 가진 변화무쌍한 능력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법이 아니라면 전승스킬일 확률이 높았다.

‘혹시 신이나 악마인가?’

자신과 정면에서 싸울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로키도 그렇게 단언했으니까.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그런 민아를 상대로 그다지 긴장한 기색이 아니었다.

초조해 보이긴 했지만 그건 민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좋아, 언제까지 여유가 있나 봐줄게.’

자존심이 상했다.

비록 민아의 능력은 전투보다 다양한 서포팅에 특화되어 있다지만 결코 약한 건 아니었다.

어지간한 신들도 이제 그녀에게 한 수 접어주지 않던가?

로키도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 될 거라고 말하곤 했다.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민아의 눈동자색이 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가 생각하는 최적의 상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종의 우수한 점을 따와 자신의 신체에 접목시키는 것.

순식간에 이루어진 그 변화는 세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대했다.

‘……시간 내에 못 끝낼 것 같은데.’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3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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