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48화 (248/332)

# 248

248. 패러렐 월드(1)

2057년 서울.

30년 후의 미래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언제나 눈앞의 상황을 해결하기 급급했고, 우선 이 게임이 되어버린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게임이 된 세계가 30년이나 지속되고 있었을 줄이야.

[연예인 플레이어 OOO씨의 스캔들 파문.]

[최근 인기 던전 탑 10]

대부분 무너졌던 서울의 빌딩들은 다시 세워져 있었다.

전보다 더욱 높게 치솟은 건물들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광판들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끊임없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광판만이 아니다.

하늘에는 마석이 달린 장치들이 부유하며 홀로그램과도 같은 영상을 뿌리고 있었다.

“……완전히 SF가 되어버렸는데.”

“마법과 과학이 합쳐진 세계가 되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가.

근데 아까 이드라가 보여준 영상을 보면 이 세계는 여전히 하나의 게임으로 독립해 있는 것 같았다. 내 예상과 다르지만 세계는 하나의 형태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미래면 나쁘지 않지 않나?’

이게 트루엔딩이라.

잘 쳐주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좋기만 한 세계는 아닌 모양이다.”

이드라는 어디서 났는지 작은 캡슐과도 같은 물건을 내게 내밀었다.

그것에 마력을 불어넣자, 푸른색으로 깜박이더니, 네모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마치 알림창과 같은 모습이다.

[퍼블리셔의 계속되는 침략. 세계는 이대로 괜찮은가?]

[의심스러운 마계의 동향. 10년째 침묵한 마왕의 모습이 최근 타 행성에서 목격]

“겉으로 보면 나름 평화를 찾은 것 같다만, 실상은 다른 게다. 이 세계의 평화는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달라질 수 있지.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하긴 퍼블리셔도 건재하고, 마계도 위협이 되어버린 상황이니. 그렇다고 지구가 다른 별과 딱히 우호를 맺고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나마 페트로이아와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구나.”

홀로그램을 손가락으로 슥슥 넘겨보자, 심각한 뉴스가 상당히 많았다.

퍼블리셔에서 손을 새롭게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내용도 있었고, 다른 별에서 지구를 침략하는 퀘스트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몇 개나 떠 있었다.

지난 30년간 지구는 백 회에 가까운 침략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구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뉴스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는 한 명의 존재 덕이다.

[정의의 여신, 린 테일러.]

기사에는 현재 린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30년이나 흘렀음에도 린의 외모는 20대 초중반의 모습이었고, 머리가 허벅지에 닿을 만큼 길어진 걸 빼면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알데바란과 싸우던 당시 보았던 ‘미래의 린’의 모습과 똑같았다.

“린은 거의 그대로네.”

“그야 신이니 나이를 먹을 리 없잖느냐.”

“그렇군.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음, 디어사이드 길드는 현 게임을 유지하고 있는 ‘운영진’ 취급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만. 길드원에 대한 정보는 린을 제외하고 알 수 없구나.”

30년이 흘렀으니 디어사이드 길드원 중에서 사망자가 나왔을 수도 있다.

나와 이드라는 서울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정보를 모았지만, 역시 디어사이드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신자운이나 아자젤도 전혀 찾을 수 없네.”

“아자젤이 아직까지 이곳에 있을 리가 없잖느냐. 아무래도 지금쯤이면 마계에 있을 것 같군,”

“으음.”

확실히 그렇다.

광기의 마왕 엔딩은 지구의 적에 마계가 추가되는 것이니, 악마인 아자젤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 더불어 악마의 계악자나 하수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단체로 마계로 넘어갔을 확률이 높다.

달그락.

현재 우리는 한 서울의 카페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우선 한숨 돌리기 위함이었다.

“……근데 좀 이상한 기분이 드는구나.”

“왜?”

“얼굴을 환상으로 덮어두니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어차피 넌 맨 얼굴로 보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대는 나의 신이기도 하여 내 능력으로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없도다.”

그런가.

나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당연히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전과 같았다.

하지만 외모는 이전보다 좀 더 밝은 인상의 청년이 되어있었다.

내가 본 가장 상큼한 얼굴인 윤현균을 베이스로 만든 얼굴이었다.

이 세계의 ‘나’는 마왕이니 함부로 얼굴을 까고 다니다간 큰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으니까.

탁.

“흠.”

이드라는 마시던 자몽주스를 내려놓으며 팔짱을 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생각인 게냐.”

“우선 목표는 마계야.”

“마왕을 만날 생각이로구나.”

“맞아. 너도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잖아?”

“음음, 그렇고말고.”

애초에 개발자 메시지에도 그렇게 적혀 있지 않았던가.

나머지는 직접 말해준다고.

분명 우리가 이 세계로 오리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편지를 보낼 수 있는데 광기의 마왕이라니.’

민수아의 말도 광기의 마왕이 된 나는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하긴 그건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모든 건 마계로 가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해.”

“동감이다. 다만 그렇다면 문제로구나.”

“문제?”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은 이곳에서 제대로 사용하기 힘들다.”

“아까 잘만 사용했잖아?”

“그건 몽상의 신전에서 남은 힘을 사용했을 뿐이다. 밖으로 나오니 먹통이 되어버렸다.”

이드라의 손에 검은 사각형의 물체가 나타났다.

확실히 이전과 달리 힘이나 광채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추측이다만 그건 이 세계에 이미 다른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이것에 문제가 발생했을 확률이 높다.”

“이미 하나가 사용되고 있으니, 다른 건 사용할 수 없다는 건가?”

“그래, 애초에 이건 우리 세계의 물건. 다른 세계에선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난감하다는 듯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도 이 일이 보통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마계로 갈 수 없다는 것만이 아니다.

당장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왕이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아니, 만약 그걸 할 수 있으면 본인이 우리 세계로 왔겠지.’

평범한 열쇠로는 불가능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않느냐.”

이드라는 탁자에 팔을 괴며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그리곤 마치 재밌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속삭였다.

“이 세계의 디어사이드. 그곳에 보관 중인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훔쳐야 한다는 게지.”

***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훔친다.

간단한 말이지만 당연히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우선 위치부터가 불명이다. 당연히 디어사이드 길드에서 보관 중이겠지만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은 이드라가 아니면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물건.

유일하게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건 린이지만, 린의 경우에는 다른 열쇠의 반쪽을 지니고 있기에 불가능하다.

‘아마 지금 지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린 덕분이겠지.’

기존에 이드라가 하던 일을 린이 하고 있을 것이다.

열쇠의 반쪽을 지니고 있으니 시스템에 간섭할 수 있을 테니까.

외신과 관련된 존재가 아니면 인벤토리에도 넣을 수 없는 물건이기에 디어사이드 어딘가에 보관중인 건 분명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냅다 들어가서 뒤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금의 내가 린을 이길 수 있나?”

“무리다.”

빠르게 단언하는 이드라의 모습에 조금 슬퍼졌다.

“알데바란과 싸우던 린 테일러의 모습을 생각하면 적어도 루시퍼와 동급일 터.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그대가 상대하기에는 힘들 게다.”

“난감하네.”

우리는 주변을 살피며 디어사이드 길드가 있던 장소로 이동했다.

풍경은 많이 달라져있었지만 찾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전히 플레이어의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군.’

30년이 흘러 인구도 늘었지만 플레이어의 비율은 그대로였다.

정기적으로 인류의 일정비율을 플레이어로 각성시키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일반인의 숫자가 압도적이었다.

“우선은 디어사이드 건물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니 그것부터 확인을…….”

거기까지 말한 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내가 잘못 왔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도로의 형태를 보면 제대로 온 건 분명하다.

“길드 건물이 아닌데?”

나는 멍하니 눈앞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외형은 그대로였지만, 못 보던 간판들이 붙어 있었다.

‘위장인가?’

혹시 몰라 창문을 살폈지만 훤히 보이는 내부로 볼 때 결코 길드건물이 아니었다.

내가 돈을 퍼부어 세팅해 둔 길드 건물은 이리 쉽게 내부를 볼 수 없었다.

“이사 갔나 보군.”

“그 포인트를 투자하고 다른 건물로 이사했다고? 운영실도 여기 있잖아?”

“아마 내가 만든 것이니 사용할 수 없었을 거다.”

대충 상황을 알겠다는 듯, 이드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만든 거니 나의 힘이 서려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을 거다. 그러니 자신에게 맞는 운영실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선 장소를 옮겨야 했을 테지. 열쇠의 힘을 사용한다면 가능했을 거다.”

그런 것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길드 기능까지 통째로 들고 이전한 걸보면 열쇠의 힘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그럼 이제부터 찾아 봐야겠군.”

“그렇다.”

“그럼…….”

나는 대충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드라에게 손짓했다.

“우선 이동하자.”

“어딘지 알겠느냐?”

“워낙 유명하니 대충 인터넷에서 뒤져보면 나오겠지.”

길드원들은 나오지 않지만, 건물의 위치는 잘 나오고 있었다.

일반 사원들도 드나드는 회사 같은 개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근처 피시방에서 위치를 검색하자 디어사이드 길드 위치가 바로 떴다.

‘홍대 근처네.’

한번 쑥대밭이 되었던 장소지만 한창 복구 중인 지역이었었지.

30년이 흘렀으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어도 이상하지 않다.

“허, 이게 뭐야?”

인터넷에 뜬 사진을 보니 기존의 디어사이드 건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디어사이드 길드타워]

그런 이름으로 뉴스가 떠 있을 정도다.

거의 하늘을 찌를 듯 세워져 있는 건물의 모습에 절로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한때는 비밀주의였던 길드인데…….’

이제는 세계를 대표하는 길드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현 길드장인 린은 사실상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니까.

“보안이 상당해 보이는군.”

아무리 봐도 막대한 포인트를 투자해 개조한 건물 같았다.

허락 없이 외부에서 들어가려고 했다간 바로 걸리리라.

‘내부에만 들어갈 수 있으면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정보를 찾아보면 디어사이드 길드 건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함부로 개방하는 경우가 없는 것 같았다. 디어사이드 길드원들의 추천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지만, 현 길드원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았다.

“신들의 커뮤니티를 뒤져도 근 30년간 디어사이드의 길드에 들어간 아바타는 단 하나뿐이라는구나.”

“단 하나?”

“음, 너도 아는 녀석이다.”

딱!

이드라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누군가의 사진이 나타났다.

상당히 달라지긴 했지만, 이드라의 말처럼 나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민수아, 맞냐?”

“그런 모양이다. 외모를 보면 이 녀석도 신과 하나가 된 모양이야.”

대예언자, 민수아.

인터넷에는 그렇게 나와 있었다. 디어사이드 길드원이라는 말은 나와 있지 않았지만, 아마 비밀일 확률이 높다.

사진의 민수아는 머리칼은 연보라색으로 변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눈은 감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 정도. 현재 나이가 마흔이 넘었을 걸 생각하면 이드라의 말처럼 신과 하나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민수아는 이 세계가 게임이 되기 전부터 각성해있던 특이한 녀석이니까.’

게임이 되기 전부터 스쿨드와 접촉했으며, 스쿨드도 보지 못했던 엔딩을 볼 수 있었다.

재능으로만 따지면 린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사기적인 녀석이다.

스쿨드가 보통 애지중지한 게 아니니 아스트라이아처럼 모든 걸 수아에게 내줬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신자운과 함께 있지 않다면 디어사이드에 투신했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런데 이 녀석 신자운 좋아하지 않았나?

그 점이 조금 걸렸지만, 민수아의 동향은 알기 쉬웠다.

워낙 유명인인 탓에 어디를 가면 크게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TV 버라이어티 프로에도 자주 나와 얼굴 비추는 단골손님이었다.

심지어 현재 거주 중인 저택도 공개되어 있었다.

‘자기가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인지 굉장히 허술하네.’

저택을 지키는 플레이어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았지만 단지 그뿐이다.

대부분은 민수아를 보러오는 사람들 내쫓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정말 위험해진다면 민수아는 길드로 피신하리라.

미래를 볼 수 있는 민수아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민수아에게 갈 생각인게냐?”

“그래. 민수아라면 도와줄 테니까.”

“어째서?”

이드라는 의아한 듯 물었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이곳에 온 걸 민수아가 모를 리 없다.

스쿨드가 하나가 되어 한층 강력해진 예언 능력을 지닌 민수아 아닌가?

“만약 아니면?”

“튀어야지.”

되도록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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