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47화 (247/332)

# 247

247. 개발자 메시지(3)

길드에 들어가는 것도 간만이다.

이드라와 마주치기 뻘쭘해진 상태인지라 한동안 길드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영실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자,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김경수 팀장이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일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지금 지속적으로 고난이도 던전을 출몰시켜 유저들의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센티넬 사냥도 거의 끝나서 이제 지구에 남아 있는 센티넬은 극소수입니다.”

만족스런 말에 절로 머리가 끄덕여졌다.

센티넬은 이제 세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유저들에게 위험을 주기 위해선 최소 별자리급 존재들이 와야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황도 12궁이 몇 명 남았지?’

알데바란은 사라졌고, 처녀궁과 천칭궁은 린이 차지했으니 아홉 개인가.

적어도 이제 황도 12궁은 유저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어야 할 텐데.

‘우선 그건 천천히 생각하고.’

그건 내가 어떻게 한다고 이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지금은 내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개발자 메시지와 도끼를 이드라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이드라는 어디 있죠?”

“잠시 쉬러 나가셨습니다. 아마 휴게실에 계실겁니다.”

휴게실이라.

이드라는 피로를 느끼지 않다보니 휴게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 생각할 것이 있거나, 의욕이 떨어지면 휴게실에서 한숨 자고는 했었지.

끼익.

“저희는 한동안 또 일이 있을 것 같으니, 기타 운영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또 콜라보 퀘스트 같은 걸 하려는 건가요? 그건 시간이 좀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데…….”

“콜라보 퀘스트는 아닙니다만, 저도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가 딱딱한 어조로 말하자 김경수 팀장의 얼굴도 덩달아 굳었다.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모양입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나보다 연장자임에도 그는 불편한 기색 없이 깊이 머리를 숙였다.

김경수 팀장은 이미 이드라를 대신해서 몇 번이나 운영을 맡아보았으니 믿을 만했다.

물론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일부 권한은 팀장급 인물들에게도 허락되어 있었으니까.

끼익.

김경수 팀장과 헤어진 후, 나는 바로 휴게실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안을 살피자 넓은 소파에 누워 있는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20대 초반에서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여성.

눈을 감고 있음에도 어두운 안색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드라.”

움찔.

내 목소리를 듣자 이드라의 몸이 약간 떨렸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그다지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다.

이미 그런 이드라의 행동은 익숙했기에, 나는 조용히 녀석이 누워 있는 소파의 빈자리에 걸터앉았다.

“네가 봐줬으면 하는 게 있어.”

곤히 자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귀가 쫑긋 움직였다.

“DLC 상점에서 새로운 상품이 업데이트됐거든. 개발자 메시지인데 구매했더니 이상한 도끼랑 같이 오더라고.”

슬쩍 시선을 돌리자 이드라의 눈이 동그랗게 떠져 있었다.

이미 자는 척은 그만둔 모양이다.

녀석도 분명 내 말에 뭔가를 느낀 거겠지.

“‘누군가의 손도끼’야.”

나는 인벤토리에서 느릿하게 손도끼를 꺼냈다.

이 손도끼의 주인이 아마 내가 잊었고, 이드라는 기억하는 인물일 게 분명했다.

“그, 그건 그 아이의…….”

이드라는 조심스럽게 손도끼를 받아들었다.

그리곤 유심히 살피더니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너한테 소중한 녀석이었냐?”

“아니.”

“뭐?”

“그런 건 아니다.”

사라진 누군가를 말할 때면 매번 슬픈 표정을 짓기에 소중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드라는 내가 말하기 무섭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아이를 제법 좋아했다만, 상대는 전혀 아니었지. 이 도끼로 내 머리를 몇 번 정도는 쪼갠 적이 있었다.”

“…….”

머리를 쪼갰어도 불사신이니 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 사실상 적이나 웬수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이드라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아이는 무척 헌신적이었어. 인간다움을 가지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인간이었던 아이다. 그래서 나는 네가 그 아이를 잊었을 때 차마 그 빈자리를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런 건 비겁하지 않느냐.”

뭐가 비겁한지 모르겠지만 이드라의 얼굴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곤 턱을 높게 치켜들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개발자 메시지가 있다고 했었지, 내게 보여다오.”

의욕을 되찾은 이드라에게 나는 냉큼 메시지를 내밀었다.

솔직히 저 메시지만 가지고 이드라가 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과연.”

메시지의 내용은 길지 않았지만, 이드라가 입을 뗀 것은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녀석은 쪽지와 손에 쥔 손도끼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왜 그래?”

“갈 곳이 있다.”

운영실이 여기에 있는데 갈 곳이 있다고?

메시지에서 이드라에게 가라고 했을 때 나는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이용하는 일인가 싶었다.

만약 이드라가 사라지게 되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건 그것이니까.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이드라는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곳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오직 현재뿐이니까.”

“설마……?”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한 가지 장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몽상의 신전으로 가자꾸나.”

***

몽상의 신전.

본래 몽상의 던전이었으나 이드라의 힘으로 인해 변질된 장소였다.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건 아마 엘리제를 봉인했을 때였지.

솔직히 몽상의 신전을 사용할 일은 그다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청소 좀 해두지 그랬느냐.”

“올 일이 얼마나 된다고 청소를 해.”

“그것도 그렇군.”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이드라는 몽상의 신전의 정중앙으로 향했다.

새하얀 문이 훤히 보이는 바로 앞.

그리고 구석에 있는 작동 장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몽상의 신전으로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음.”

확실히 몽상의 신전은 대단한 물건이지만,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 과거에 도달할 수 있는 물건이긴 하다만, 그걸로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기에는…….

“혹시 내 기억을 뒤져 사라진 누군가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건가?”

“안 된다. 그대는 시스템의 아래에 있기에 시스템의 영향을 벗어난 일은 할 수 없다. 만약 바로 눈앞에 진짜 그 아이가 나타난다고 해도 너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바로 눈앞에 있어도?”

이드라의 머리가 끄덕여졌다.

“그래, 눈이 인식하지 못한다. 분명 그대는 강해졌다만 아직 시스템의 손 안에 있다. ‘나’의 힘을 흡수하여 외신에 가깝지만 아직은 아니지. 그대 스스로가 시스템을 극복하고 그 아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소용없는 일이다.”

“하지만 악마들도 잊었잖아? 악마들도 외신 아니었어?”

“악마도 분명 외신은 맞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마계의 열쇠는 마왕의 힘을 뜻하기도 해. 그들이 악마인 이상 마왕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말하자면 나는 열쇠의 힘으로 조작된 시스템의 힘에 영향을 받고, 악마들은 열쇠 그 자체에 영향을 받는다는 거군.”

“역시 이해가 빠르구나.”

근데 그럼 여기서 뭘 할 수 있지?

기억을 뒤져 과거로 가서 사라진 누군가를 보거나 데려와도 소용이 없다면 몽상의 신전에 올 필요가 없잖아.

“평행우주라는 말이 있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이드라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하나의 우주에서 분기점에서 갈라진 수많은 가능성으로 생긴 세계들이다. 시스템은 이 평행우주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쉽게 말하자면 ‘엔딩’이란 평행우주로 발생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평행우주는 나도 몇 번 들어본 적 있는 말이다.

흔히 패러렐 월드라고 지칭하기도 하며, 공상과학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쓰인다.

“광기의 마왕도 그런 다중우주의 엔딩이라는 거냐? 근데 그건 사라졌잖아.”

“그건 이 세계의 이야기다. 다른 세계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 증거는 이미 너도 보았을 게다.”

“증거를 내가 봤다고?”

“1회차의 나 말이다.”

“……!”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내가 회귀한 시점에서 1회차의 엔딩에 도달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하지만 1회의 이드라는 엔딩 이후에도 계속 살아남아 결국 나를 찾아왔다.

“지금 이건 1회차의 나와 비슷한 경우다. 다른 엔딩에 도달한 그대가 보낸 이정표다.”

“그 도끼가 보내진 장소를 추적한다는 건가.”

“그래, 지금부터 나는 이걸 촉매로 몽상의 신전을 가동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무기의 주인이 있는 장소를 쫓아 일시적으로 세계를 연결시키는 문을 연다.”

“그런 게 가능해? 지금까지는 환상에 그쳤잖아.”

“그건 해보면 알 일이다.”

이드라는 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놓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던 도끼는 마치 그물에 걸린 것처럼 금빛 실 같은 마력에 얽혀 공중에 떠올랐다.

“어떤 불가능한 일이라도, 꿈이라면 닿는 법이니.”

우우우웅!!

금빛 실은 계속해서 도끼를 휘감았고, 황금색 고치가 되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큭?!”

동시에 내 안에 있던 신격이 꿈틀거리며 바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백색의 문과, 홀의 중앙에 둥근 문양을 그리며 이드라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알다시피 나는 지금 신격이 없는 아바타니, 그대의 힘을 빌릴 것이다. ‘1회차의 나’의 힘을 가진 그대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게야.”

그런 건 미리 말하라고.

전신에 투명한 관이 연결되어 피가 뽑혀나가는 기분이다.

“자.”

이드라는 오른손을 빙빙 돌리며 고치를 안정화시켰고, 왼손바닥을 펴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손바닥 위에서 새까맣고 네모난 무언가가 나타나 뒤틀리기 시작했다.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이 고치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흡수하여 문을 향해 사출했다.

콰아아아!

금색의 광체가 신전 안을 가득 채우면 채울수록 내 신격과 마력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드라의 힘을 흡수한 이후, 부족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이렇게 빠르게 소모될 줄이야.

‘운석을 떨어트리는 것보다 배는 많이 들어가잖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소모되는 신격에 비명을 지르고 있자, 번쩍이던 광채가 잦아들었다.

“끝, 났냐?”

“음, 대충 된 것 같도다.”

이드라는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문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황금색 실이 스르륵 풀리며 도끼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럼 서둘러 들어가자꾸나!”

“뭐? 지금 바로?”

“말했잖느냐. 문이 유지되는 시간은 짧다.”

이드라는 재빨리 손도끼를 챙긴 후,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회수했다.

녀석의 손바닥에 빨려 들어가며 사라지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달렸다.

방금 열렸던 문이, 벌써 닫히고 있었다.

“나, 나도 데려가거라!”

능력치가 올랐다지만, 랜덤으로 올라가는 외신의 특성상 이드라의 움직임은 둔하기 그지없었다.

“흐갹!”

허우적거리며 달리는 녀석을 허리춤에 껴안자, 녀석이 괴상한 비명을 질렀지만 반응해 줄 틈이 없었다.

이미 문은 사람 한 명이 빠듯하게 빠져나갈 정도밖에 열려 있지 않았으니까.

“하압!”

나는 한달음에 문이 있는 곳까지 달려, 금색으로 빛나는 광채 속으로 몸을 던졌다.

***

“끙.”

감았던 눈을 뜨자, 새까만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지금 내가 바닥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을 잃었었나?’

광채 속에 몸을 던지는 순간 의식이 멀어졌던 모양이다.

그 탓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여긴…….”

“일어났느냐.”

내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드라가 말을 걸어왔다.

녀석은 내 옆에 앉아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걱정마라, 제대로 도착했으니. 이곳은 몽상의 신전이다. 단지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 폐허가 된 것 같다만.”

그 말에 주변을 살피자 확실히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저곳 부서진 걸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확실히 몽상의 신전이었다.

“그럼 언젠데.”

“음?”

“장소는 맞아도 시기가 예상한 것과 다를 수도 있잖아.”

“그것도 방금 확인했다.”

이드라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의 위에는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이 둥둥 떠서 홀로그램과 같은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년도는 2057년.”

홀로그램에 비친 건, 기괴한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서울의 플레이어들이었다.

하나 같이 S급에 이르는 최상급 괴수들을 상대로 플레이어들이 방어전을 펼치고 있었고, 그 사이로 황금색의 무언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광기의 마왕 엔딩 후, 30년이 흐른 시점이다.”

금빛 왕관을 쓰고, 천칭검을 든 정의의 여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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