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245. 개발자 메시지(1)
“…….”
나는 하염없이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르가 이 세계에 침략하기까지 긴 시간이 남지 않았음에도 어째선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지금 한창 바쁘게 돌아다니며 최종 점검을 하고 있어도 모자란데 뭘 하고 있는 건지.
‘이드라와 대화하지 못한 지도 2주가 흘렀나.’
내가 마계에서 귀환한 날부터 이드라는 나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못했다는 게 맞다.
이드라는 죄책감이 어린 얼굴을 한 채, 나를 피하고 있었으니까.
2주전, 민수아와 내가 마계에서 귀환했던 날부터.
그때, 이드라는 누구보다 먼저 나를 마중했었다.
차원을 연결하는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녀석은 나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그 아이는! ○○은 어떻게 된 게냐!”
당시 나는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드라의 질문에는 어떤 대답도 못했다.
어째서인지 숨이 막힌 것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이드라는 계속해서 다그쳤다.
물기 섞인 목소리로.
“설마, 설마. 그대도 잊은 것이냐……?”
“잊었다니, 누구를?”
“○○, 그 아이를 말이다!”
○○? 무슨 말인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마치 들려서는 안 되는 언어처럼 뇌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분명 중요한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일뿐이다.
나는 곧바로 ○○이 누구인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그런 나를 보며 이드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곤 양손으로 내 옷깃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뚝뚝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이 눈물이라는 걸 깨닫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적어도, 그대는! 너는……! 잊지 말았어야지! 잊으면, 안 되잖아!”
외신이, 인간과는 다른 감정을 가진 외신이 울다니.
이 눈물은 이드라가 보다 인간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왜, 네가, 너까지…….”
이드라는 나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울었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녀석을 차마 안아주지도 못하고 어색하게 양손을 든 채 있었을 뿐이다.
무척 소중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안, 하다. 내가 억지를 부렸구나.”
잠시 후, 한참을 울던 이드라는 내 품에서 떨어지며 조용히 등을 돌렸다.
“마계에서 고생했다. 나는…… 생각할 게 많아서 조금 쉬도록 하마.”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조용히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이드라를 나는 붙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이드라와 전혀 대화를 하지 못했다.
2주가 흐른 지금까지도.
‘뭔가 의욕이 안 나네.’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중국에 가서 진행 중인 ‘검’의 제작상황도 살펴야 했으며, 퍼블리셔로 간 민아의 동향에 대해 아키넨에게 들을 필요가 있었다.
또한 이미르의 행동을 예측해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미래가 배드엔딩으로 가게 됐기 때문일까.
‘어째서 갑자기 미래가 바뀐 거지?’
분명 내가 마계에 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엔딩은 광기의 마왕으로 수속되고 있었다.
그래, 벨제부브에게 인정받았을 때도 미래는 바뀌지 않았다.
‘그다음에…….’
지끈.
“윽!”
갑자기 두통이 느껴졌다.
이후 분명 어떤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이상했다.
‘뭔가가 있는데 내가 상관없다고 생각할 리가 없잖아.’
이드라가 그렇게 울었을 정도다.
죄책감을 지니며 나를 피했을 정도로 중요한 ‘누군가’가 있다.
그게 누구인지. 나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있어.”
나는 무언가를 잊었다.
그건 아마 사람이다.
몇 가지 증거로 나는 그걸 확신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이드라의 반응이나 머리의 두통 때문이 아니다.
“공백이 있어.”
내가 구매한 DLC 상품 중에는 ‘멀티 플레이어 패키지’가 있다.
신에게 속하지 않은 플레이어에 한정해서 파티원으로 등록하고 스킬과 습득 포인트를 공유할 수 있는 패키지다.
최대 다섯 명까지 등록하여 플레이어를 강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패키지.
거기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은 단 하나, 아서뿐이었다.
문제는 ‘두 번째’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비어 있었다.
눌러보면 아무것도 나와있지 않았지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첫 번째 자리를 비워뒀을 리가 없다.
“거기다 스킬도 이상해.”
내가 익힌 스킬 중에는 혈천수라공이 있었다.
혈마의 무공인 혈천수라공은 천살성을 지니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마공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스킬 중에서는 천살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근데 혈천수라공은 존재하는 것이다. 애초에 익힐 수 없는 스킬이 익혀져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어떻게 익혔는지 모를 혈천수라공이 현재 비활성화됐다는 점이야.’
아마 나는 어떤 방법으로 혈천수라공을 익혔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이드라가 언급한 잊혀진 어떤 기억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마땅한 방법도 없었다.
어째서 기억이 잊혀졌는지도 모르니 다시 기억나게 할 수도 없고, 어떤 단서도 없었다.
추측이지만 글이나 사념을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해도 마찬가지이리라.
만약 그렇게 간단히 해결가능하다면 이드라가 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분명 이 일은 이드라의 손을 벗어났다.
“……응?”
혹시 다른 단서가 있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상태창을 뒤져보던 나는 문득 특성란에 남아있는 이질적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픈 소녀의 사랑」?”
내가 지닌 특성은 ‘싱글 플레이어’만이 아니었나?
이 특성은 대체 언제 얻었던 거야?
“큭?!”
그걸 떠올리려고 하자 머리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파졌다.
마치 내가 기억하려는 걸 방해하는 것처럼.
[정보를 차단합니다.]
[정보를 차단합니다.]
그런 알림창이 눈앞에서 나타났다.
여태까지는 없었던 일이다.
‘아픈 소녀의 사랑’이라는 특성에 뭔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내가 기억하려는 것보다 한층 강한 프로텍트를 걸 수밖에 없을 만큼.
‘시스템에 관련된 거란 말이지…….’
이미르의 짓인가?
그게 아니라면 열쇠와 관련된 건가?
나는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기 보단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해당 기억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알림창도 나타나지 않았고 머리도 아프지 않았다.
잊은 기억이 무엇인가 떠올리기보단 잊은 무언가로 발생한 공백에 집중했다.
-나와 이드라와 중요인물.
-천살성과 관련된 자.
-특성 아픈 소녀의 사랑.
이것이 사라진 누군가를 나타내는 증거였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전혀 떠올릴 수 없지만.
“…….”
생각하자.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있을 거다.
분명 나에게 중요한 인물.
아마 지금 배드엔딩 ‘흩어진 세계’가 되어버린 건 그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기억을 뒤져보면 결코 내가 이기지 못할 상대들이 있었다.
진천백, 니알라 토텝, 그리고 벨제부브.
나는 녀석들을 상대로 접근전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방어전을 펼칠 수 있었다.
어째서, 라고 떠올리면 또 다시 기억이 부였게 흐려지지만 아마 내가 ‘혈천수라공’에 일정한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인물은 반드시 기억해야만 했다.
지금의 나로는 결코 이미르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젠장!”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상태창을 뒤져도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시스템에 관련된 일이 결코 허술할 리가 없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건 시스템의 아래에 속해 있으니까.
만약 시스템에 속해 있지 않은 물건이라면 모르겠지만…….
띠링!
“응?”
그때 익숙한 알림이 울렸다.
또 시스템이 내 기억을 차단한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 외에 이런 알림을 울릴 수 있는 거라면 단 하나.
“아!”
나는 황급히 DLC 상점을 열었다.
한동안은 그다지 열 일이 없었던 DLC 상점.
그도 그럴 게 DLC 상점은 대부분 편의성과 성장에 관련된 것들이 많지 전투에 도움이 되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은 더 이상 DLC 상점의 힘을 빌릴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방금 들린 알림.
그건 분명 DLC 상점에서 들린 알림이었다.
“아냐, 아냐. 이것도 아니고…… 채집? 아 이런 것도 있었지.”
DLC 상점에 있는 패키지나 물건들을 쭉쭉 확인하며 아래로 내렸다.
오랜만에 보는 물건들이 제법 반가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분명 방금 새로 입고된 상품이 있을 터다.
“……있다.”
정말로 있었다.
DLC 상점의 맨 아래. 정말 오랜만에 ‘NEW’가 떠 있는 신상품이.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신상품은 ‘1회차 계승 패키지’였다.
1회차의 나를 넘어선 시점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졌지만 상당히 유용하게 썼던 패키지인 건 분명했다. 당시 나는 그것을 이용해 결코 이길 수 없던 적을 이길 수 있었지.
‘뭐가 들어 있는지는 보이지 않네.’
일반적인 패키지가 아닌 건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가락을 뻗어 NEW를 두드렸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여 마지막 DLC 상품이 해금됩니다!]
“모든 조건을 만족했다고?”
지금 이 상황들이 DLC 상점이 말하는 조건에 해당하는 건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나쁠 건 없었다.
나는 잠시 알림창을 바라보다가 상품을 확인했다.
‘개발자 메시지?’
애초에 상품도 아니잖아. 개발자 메시지를 DLC 상점에서 파는 게 말이 되나?
‘뭣보다 개발자가 누군데.’
이 DLC 상점이 시스템과 개별적인 거라는 건 알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저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지만 뭔가 다른 게 있었다는 건가.
“가격이…… 아니 미쳤나? 천만 포인트?”
어처구니없는 포인트 양에 할 말을 잃었다.
비록 내가 더 이상 포인트 쓸 일이 없어져 포인트가 무진장 싸이고 있다지만 천만 포인트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당장 나를 회귀시켰던 패키지가 백만 포인트였다.
이건 무려 그 열 배다.
‘……내가 지금 얼마나 가지고 있지?’
여태 포인트 걱정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조금 불안해졌다.
이미 이걸 구매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사고 보면 정말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어차피 포인트를 따로 쓸 일도 없으니 질러서 나쁠 건 없지.
적어도 DLC 상점은 여태 나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보유 포인트 : 10,040,200 포인트]
“아, 아슬아슬하군.”
진짜 여태 모은 포인트를 다 써야 겨우겨우 살 수 있는 양이었다.
“크윽!”
정말 이젠 쓸 일이 없는 포인트였지만, 한 번에 천만 포인트나 나가니 뭔가 가슴이 아팠다.
딸칵!
[개발자 메시지를 구매하셨습니다!]
[개발자 메시지에 동봉된 상품 2가지를 습득하셨습니다.]
[개발자 메시지와 누군가의 손도끼를 습득했습니다.]
“다행히 뭔가 주기는 하는군.”
혹시나 정말 딸랑 메시지만 들어있지는 않을까 했더니 다행히 아니었다.
상품을 습득하자 내 쪽지함에 어떤 메시지가 전달됐고, 인벤토리에는 손도끼가 들어왔다.
“뭔가 익숙한 느낌인데…….”
나는 우선 인벤토리에서 손도끼를 확인했다.
새까만 자루에 은색으로 빛나는 날이 번쩍이는 도끼는 평범한 아이템이 아닌 게 분명했다.
혹시 이미르의 머리를 쪼개버릴 수 있는 도끼인가?
‘설마 그건 아니겠지.’
분명 튼튼하고 누군가가 사용하던 무기로 보이지만 그런 용도는 아닌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접근이 거부되었습니다.]
[아이템으로 지정되지 않은 물건입니다.]
성능이 어떤가 싶어 확인하자 바로 경고창이 떠올랐다.
“아이템이 아니라고?”
확실히 뭔가 있는 건 분명했다.
이 우주에 속한 물건이라면 모든 건 시스템의 관리하에 들어갈 터.
혹은 DLC 상점에 속해있어도 정보는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말하자면 이건 그런 모든 것에서 동떨어진 물건이라는 것이다.
분명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특별한 물건일 테지.
‘개발자 메시지에 쓰여 있나?’
나는 개발자 메시지라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껏해야 이 도끼의 사용법이 적힌 설명서 정도라 생각했다.
게임 공지로 올라오는 개발자 메시지란 으레 그렇듯 별거 없는 법이다.
“……뭐야.”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쪽지함을 열어 확인한 순간, 발신자로 뜬 상대의 이름에 나는 넋을 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발신자 : 광기의 마왕]
바로 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