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
243. 왕관의 주인(1)
루시퍼는 본디 천사라 불리는 이들 중, 최상위에 위치한 존재였다.
천사란 지금은 사라진 ‘천계’에 속한 사도들로 악마와 동등한 힘과 권위를 지닌, 신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멸망하게 되었다.
바로 검은 날개를 지니고 태어난 루시퍼라는 한 명의 천사에 의해서.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이야기지만 말이야.’
아자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줄기를 양산을 펼쳐 막아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투는 재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곳이 마계가 아니라 지구였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줄기 하나에 그대로 별에 구멍이 뚫렸을지도 모른다.
‘돌연변이로 태어나 천사들에게 배척받고, 끝내 천사를 홀로 멸망시켜 버린 천사. 남아 있는 천사들이 몇 있지만 모두가 당신을 두려워하지.’
천계를 멸망시킨 루시퍼는 그대로 마계로 투신해 오만의 악마를 죽이고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했다.
그에게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아자젤의 생각하기에 그는 그저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굴복시킬 수 있는 존재를.
너무나 강한 힘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그는 위를 볼 수 없었다.
루시퍼가 볼 수 있는 세계는 늘 아래에 있었고, 끝없이 자신을 시험한 끝에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거인왕 이미르에게 도전하지 않은 건, 그가 열쇠의 힘을 이용해 그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미르가 마계에 직접 오지 못하는 것도 루시퍼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 크다.
‘그리고 나를 특별 취급하는 것도.’
대부분의 것에 관심이 없는 루시퍼였지만 강자에게는 극히 너그러워졌다.
만약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지녔다면 그는 결코 목숨을 빼앗지 않았다.
아자젤이 강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것도 루시퍼였다.
물론 ‘나태’가 되어버린 아자젤은 굳이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상당히 실망한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자젤은 ‘목적’없는 투쟁은 바라지 않았다.
그녀가 싸우는 경우는 그 게으른 몸을 움직일 정도로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니까.
“근데…….”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빛줄기에 아자젤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정말로 다 죽일 셈이야? 내가 막지 않으면 다 죽을 거라고!”
떨어져 내리는 위협적인 빛줄기를 걷어내며 아자젤은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막지 못했다면 이미 바로 옆에 있는 분노의 영역은 일찌감치 지워졌을 것이다.
곧 신자운의 영역이 될 분노의 영역을 지워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에휴, 나 요즘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니까.’
그나마 이 전투를 1등석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마계의 역사상 가장 강한 오만의 악마와, 최초의 인간출신 악마의 싸움.
‘한지수.’
검고 붉은 야수와도 같은 여성.
루시퍼를 향해 짓쳐 들어가는 지수를 보며 아자젤은 응원했다.
“힘내렴.”
인간의 집착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아자젤은 그것을 보고 싶었다.
콰아아아!!
루시퍼의 새까만 날개가 주르륵 펼쳐진다.
그 숫자는 열두 장.
여섯 쌍의 날개가 좌주로 펼쳐지며 검은 깃털이 휘날린다.
‘놈이 지닌 힘은 단순히 재생능력이 다가 아니다.’
루시퍼는 정면을 향해 날아오는 지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척력을 사용해 밀어보려고 했지만 지수의 몸은 이제 조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녀가 쥐고 있는 무기를 밀어내는 게 전부였다.
“하아아──!!”
정면에서 다가온 지수의 주먹이 루시퍼의 얼굴에 격돌한다.
그 충격에 바람이 크게 밀려나며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진다.
“큭!”
머리가 약간 뒤로 밀린다.
전보다 몇 배의 방벽을 둘렀음에도 충격을 완전히 죽이지 못했다.
콱!
그리곤 하늘에서 떨어지며 루시퍼의 다리를 잡아채며 그대로 지상을 향해 집어던졌다.
콰콰쾅!!
루시퍼의 몸이 지상에 떨어지며 거대한 균열을 만들었고, 그 위로 지수가 떨어져 검은 구두로 루시퍼의 머리를 짓밟았다.
갈라진 균열이 더 커지며 마계의 대지가 뒤집힌다.
거대한 바위와 흙이 헤일처럼 치솟으며 루시퍼의 몸이 땅 깊은 곳까지 처박힌다.
기이이이잉!!
검은 날개가 빛나며 열두 개의 빛줄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하나하나가 태양빛에 버금가는 막대한 열량을 머금은 열선이 대지를 불사르며 바위와 땅을 용해시키며 새빨갛게 녹여버린다.
지수는 황급히 몸을 날려 그것을 피해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미 몇 번이나 보았던 공격이었기에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
하지만 빛줄기는 지수의 반신을 불태웠다.
분명 피했건만, 어째선지 빛은 이미 지수의 몸에 명중해 있었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육신의 반절에 지수의 몸이 꺾였다.
“인력과 척력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건 어떤가.”
인과의 조작.
맞지 않을 걸 맞았다는 결과로 변화시킨다.
루시퍼에게 있어서는 특별히 대단한 능력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가지는 패시브일 뿐이었다.
그의 모든 공격은 명중하며 상대의 공격은 모두 빗나간다, 그런 인과가 그의 몸에 상시 적용되고 있었다.
이것을 돌파할 수 있는 존재는 애초에 인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외신들.
혹은 그것을 틀어버릴 수 있는 열쇠의 사용자들이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뿐이었다.
콰아아아아!!
쏟아지는 열선의 불길을 뚫으며 하얀 지수의 손이 튀어나왔다.
방금 전에 불태워졌던 육신은 더 이상 열선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불길을 뚫으며 루시퍼의 목을 잡아챘다.
‘인과를 비트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새빨간 눈동자가 루시퍼의 눈에 스치는 순간 그의 육신을 땅에 매쳤다.
그리곤 쓰러진 루시퍼를 향해 발을 높이 치켜들고는 마구 잡이로 짓밟았다.
쾅쾅쾅쾅!!
그의 몸을 둘러싼 방벽이 부서질 때까지 짓밟고 소용이 없자 흉성의 학살자를 불러들여 양손으로 내리찍었다.
콰콰쾅!!
루시퍼의 육신과 함께 땅이 크게 커졌다.
평평하던 대지가 마치 협곡처럼 변하며 갈라진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부서지는 땅 위로 용암이 치솟아 오른다.
부서진 땅이 훅 꺼지자 지수의 몸이 순간 비틀거렸고, 그 틈을 노려 루시퍼의 손에 막대한 마력이 응집된다.
콰아앙!!
루시퍼의 손이 마력을 꽉 움켜쥐자 지수의 상체가 산산이 폭발하며 비산한다.
주위의 마력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지수에게 자신의 마력을 심어 내부에서부터 폭발시킨 것이다.
비틀거리며 지수의 하반신이 기울어지는 순간, 상체에 새하얀 골격이 만들어진다.
장기가, 근육이, 피부가,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돋아난다.
산산이 조각났던 육신이 회복되는 데 걸린 시간은 루시퍼의 기준에서도 찰나에 가까웠다.
감겨져 있던 눈이 떠지며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자신을 내려다보자 루시퍼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불사신을 상대하는 건 처음…….”
콰아아앙!!
지수의 다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땅이 융단처럼 말려 올라가며 뒤집힌 땅에서 용암이 파도처럼 쏟아진다.
이미 루시퍼가 지키던 유적은 원형을 찾기 힘들어졌다.
오직 마계의 열쇠만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고고하게 떠있었다.
‘이 아이라면…….’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생소했다.
수많은 적과 싸워왔지만 자신과 동등하다고 생각한 존재와 싸우는 건 처음이다.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을 굴복시킬 수 있는 존재.
어쩌면, 정말 어쩌면 눈앞의 여성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기대감이 생겼다.
설령 한참 먼 미래에 온 이라도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투둑, 투두둑.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날개와 몸을 뒤덮었던 흙먼지와 용암이 쏟아져 내린다.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면 땅을 울리며 달려오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코뿔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는 단순한 모습이었지만, 돌려 말하면 낭비가 없는 움직임이었다.
공격 경로는 언제나 최단거리.
가장 빠른 직선.
‘거기에 기본적으로 저지불가란 말이지.’
인과의 역전도, 인력과 척력을 이용한 방향의 조작도 먹히지 않았다.
오직 심플하게 질량 대 질량의 공격만 허용하는 것이다.
강하고 빠르며, 불사신에 이른 재생능력까지.
거기에 한번 공격을 당하면 내성까지 생기는지 제대로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순수한 힘 싸움이라는 건가.”
쿠웅!!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흉성의 학살자를 왼팔을 들어 막는다.
저릿저릿 울리는 팔이 어쩐지 흥겨워졌다.
“나도, 그런 거 아주 좋아하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무기에서 손을 놓으며 지수의 양손이 루시퍼의 몸을 잡아 찢으려는 것처럼 뻗어진다.
“세피라여, 깃들어라.”
루시퍼의 작은 중얼거림이 들리는 동시에 활짝 펼쳐진 열두 장의 날개에 빛이 깃든다.
둥근 원형의 형태로 방어벽이 만들어지자 달려들던 지수의 양팔이 절단됐다.
“첫째는 케테르(KETHER).”
금색의 빛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며, 루시퍼의 금안이 번쩍이며 동공이 십자의 형태로 변한다. 그의 미간에 빛줄기들이 모여들며 왕관의 형태를 취한다.
마치 열쇠와도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열쇠는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루시퍼가 가진 힘.
첫째 케테르는, 왕의 힘이 깃들어 무엇보다 강한 언령을 발할 수 있게 된다.
“「대지여, 눈앞의 여자를 속박하라.」”
쿠쿠쿠쿵!!
땅이 치솟아 오르며 지수의 몸을 옭아맨다.
이미 잘린 팔이 회복된 지수가 그것을 부수려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이이이익!!”
“왕의 힘이 깃든 건 본질을 한참 뛰어넘게 되지.”
옴짝달싹 못하는 지수를 보며 루시퍼는 그녀가 더 힘을 끌어올리기 전에 오른손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검지와 중지만을 앞으로 뻗어 하늘을 향해 위로 꺾자 지수의 몸이 하늘로 치솟았다.
“「바람이여, 대기의 사슬이 되어라.」”
공중에 떠오른 지수는 마치 거미줄에 속박된 벌레처럼 허공에 매달렸다.
조금씩 그녀를 속박한 바위들이 부서지기 시작했지만, 그보다 루시퍼의 행동이 빨랐다.
“다섯 번째, 게브라(GEBURAH).”
“아아아──!!”
드득! 드드득!!
속박된 대지를 부수고 지수의 양팔이 비어져 나왔다.
그리고 루시퍼를 보았을 때, 태양이 있었다.
“──아.”
백열하는 태양이 다가왔다.
루시퍼가 날개에서 발산하던 열선의 힘은 눈앞의 태양에서 발현됐음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불태우는 막대한 열량.
‘불 태운다’ 혹은 ‘징벌’을 형상화한 힘의 구현이 지수를 집어삼켰다.
“재가 되어도 살아나는지 보마.”
쿠아아아!!
태양이 팽창하며 그 영역 내에 존재하던 모든 것을 불태웠다.
대지를 녹이고 바람을 태웠고, 그 여파로 수십 킬로미터에 있던 모든 수분이 증발했다.
“…….”
태양이 사라진 장소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반구의 형태로 녹아내린 대지를 둘러봐도 지수의 흔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였나.’
아무리 불사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한들 완전히 재가 되어버렸는데 살아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루시퍼의 본능은 아직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
방금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사람이라기엔 너무나 작은 기척. 루시퍼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주변을 탐색하자 멀지 않은 곳에 ‘그것’이 있었다.
여성의 팔.
아무렇게나 잡아 뜯겨진 오른팔이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설마.”
게브라가 닿기 직전 팔을 뜯어 집어던진 것인가?
고오오오!!
잘린 팔에 마력이 모여든다.
마치 태픙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잘린 팔에 막대한 힘이 응집되며 인간의 골격이 만들어진다.
두근. 두근.
흉곽 안의 붉은 심장이 뛰기 시작하며, 눈동자마저 존재하지 않는 해골이 끼긱, 끼긱 목을 움직여 루시퍼를 응시한다.
잘린 팔이 땅을 짚으며 한쪽 무릎을 굽힌 인간의 육신이 만들어진다.
뼈에 신경과 혈관이 어지럽게 퍼지며 근육이 덮어지고 그 위로 피부가 감싼다.
콰지직!
네발 달린 짐승처럼 양손을 대지에 내딛자 완벽히 만들어진 여성의 하얀 나신 위로 새까만 드레스가 전신이 둘러져 바람에 휘날린다.
“아아아아!!!”
콰아아아아!!
완벽히 회복된 육신에 힘이 돌아오며 지수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깃들었다.
붉은 흉성이 루시퍼를 향해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