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41화 (241/332)

# 241

241. 분기점(3)

‘나는 언제나 착한 아이.’

지수가 가진 특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특성이었다.

그 올바른 선택의 기준은 세한에게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로 구분되었으며 여태까지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달랐다.

‘정말로 괜찮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떠다녔다.

이건 세한이 바라는 일이 아니다.

이미르와 대적하기 위해선 마계의 열쇠가 반드시 필요했다.

설령 올바른 엔딩이 되지 못할지언정 세한은 마왕이 되어야만 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오빠라면 광기의 마왕 엔딩에 도달하지 않을지도 몰라.’

세한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우선 마계의 열쇠를 손에 넣으려는 것이다.

그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미래를 바꾸지 못한다면 세한은 광기의 마왕이 되어버리겠지.

미래의 린이 찾아와 직접 자신에게 말했던 것처럼.

‘솔직히 별로 상관없지 않잖아.’

망설이는 지수에게 ‘착한아이’가 속삭였다.

언제나 지수가 엇나가려고 할 때면 막아주는 목소리였다.

‘어차피 다른 돌멩이들은 상관없잖아. 아니, 오히려 얼마나 좋아. 네가 바라던 거잖니?’

민수아를 통해 들었던 미래가 떠올랐다.

광기의 마왕이 된 세한의 곁에는 지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함께했던 다른 동료들의 모습은 없었다. 그의 곁에 있는 건 지수뿐이었다.

‘네가 바라던 이드라가 없는 세상이야.’

콰직!

지수의 동공이 커졌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가며 대지를 움켜쥐었다.

‘1회차부터 그를 따라온 건 그녀뿐이야. 세한 오빠에게도 특별한 존재지. 그녀가 있으면 너는 영원히 세한 오빠의 첫 번째가 되지 못할 거야.’

숨이 거칠어졌다.

언제나 생각하던 것이었다.

세한이 직접 이드라가 첫째라거나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지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고작 1회차의 기억을 얻었을 뿐이지만, 이드라는 1회차에서 직접 찾아왔다.

수억 년의 시간을 기다려 자신의 모든 걸 세한에게 전해줬다.

2회차의 이드라도 스스로 기억을 되찾아 세한의 앞에 나타났다.

그런 그녀가 어찌 특별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수는 언제나 이드라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광기의 마왕이 되면 이드라가 사라져. 알잖아, 세한 오빠 혼자선 열쇠의 힘을 완벽히 컨트롤할 수 없다는 거.’

미래의 세한은 왕관을 차지하고 지구로 돌아간다.

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마왕은 되지 못했지만 루시퍼가 허락하여 지구로 가져갈 수 있었다.

그것을 당장 사용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드라와 다른 신들의 도움으로 열쇠의 해석을 시작했다.

해석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금만 시간이 있었다면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이용해 마계의 열쇠를 다룰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세한은 마왕이 되고, 이미르와 정면에서 싸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을 테지.

하지만 그보다 이미르가 빨랐다.

해석이 완료되지 않은 열쇠를 세한이 사용해야 했을 만큼.

그리고 그 결과, 이드라가 사라졌다.

‘바보 같은 여자. 그래도 덕분에 오빠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어.’

세한은 이드라의 신이다.

하지만 동시에 세한은 이드라와 한 몸에 가까웠다.

1회차 이드라의 힘을 받아들여 그녀의 모든 걸 공유했으니까.

그 점을 이용해 이드라는 자신을 세한으로 인식하게 하여, 열쇠가 가하는 시험의 패널티를 자신에게 향하게 한 것이다.

‘열쇠의 시험을 통과하는 조건은 망각되지 않는 것.’

덕분에 시험의 당사자인 세한은 모두에게서 잊히지 않았다.

사라진 건 이드라였으니까.

편법을 사용한 거였지만 결과적으로 시험을 통과한 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편법이었기에 세한에게 영향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세한에게서도 이드라의 기억이 사라졌다.

‘사소한 문제는 그 여자의 영향이 오빠에게 생각보다 컸던 거야.’

사라진 기억에 집착하여 미쳐 버릴 만큼.

이미르의 군세를 막는 것에 성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한은 망가졌고, 결국 지수를 제외한 누구도 남지 못했다.

거기다 이드라를 떠올리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적대적이 되었다.

지구를 멸망시키려 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세한은 지구의 편이 아니었다.

‘생각해 봐, 언제나 네가 바라던 거야. 쓸데없는 동료는 아무도 없어. 모두가 세한 오빠를 멀리서 바라만 봐. 곁에 있는 건 너뿐이야. 우리뿐이라고. 오빠가 특별히 생각하던 그 여자도 완전히 사라진 세계, 정말 천국이잖아!’

안다.

알고 있다.

전부 민수아에게서 들었다. 라플라스의 시계를 사용했을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 일어날 일에 대해서 모두 들었으니까.

그래서 민수아에게 부탁했다.

만약 세한이 오만의 영역에 먼저 가려고 하면 막아달라고.

‘이대로 포기해. 이게 오빠와 너를 위한 길이야. 우리가 열쇠를 차지하면 지구가 멸망해. 지금 네가 하는 건 오빠를 배신하는 행위야. 세계를 위협하는 거란 말이야.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러면 모든 게 끝나.’

귓가에 속삭이는 착한 아이의 목소리에 지수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말이 맞았다.

지금 상태로도 세한의 곁에 있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다.

도리어 자신이 열쇠를 차지하면 곁에 있을 수 없게 된다.

‘포기해.’

‘포기해.’

지수는 단 한 번도 이 목소리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이 세계가 게임이 되기 전.

부모님으로부터 학대를 받을 때부터 들려오던 내면의 목소리.

이제는 ‘특성’이 되어버린 후에도 그것은 지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맞아.’

지수는 납득했다.

‘이건 나쁜 짓이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위.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투둑, 투두둑.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었기에 지수는 천천히 일어났다.

재생능력이 떨어진 덕에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얼굴이 개운해졌구나.”

루시퍼는 그런 지수의 얼굴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방금 전과 같은 광기와 공격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포기하려는 모양이군.’

루시퍼는 가만히 서있는 지수를 보며 천천히 등을 돌렸다.

포기하기로 한 어린 악마를 죽이는 취미는 없었다.

달그락.

“……?”

그때, 뒤에서 신경 쓰이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무슨 소리지?’

평소라면 무시하고 갔을 테지만 어째서인지 신경 쓰였다.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작은 모래시계가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모래시계는 느릿하게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지수는 그 모래시계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뭔가…….’

그 광경을 바라보는 루시퍼의 가슴이 술렁였다.

‘잘못됐다.’

황금색 모래가 들어찬 모래시계가 지수의 머리 위로 떠오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점차 빠르게 회전하며 이윽고 황금색 링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막아야 한다.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요하던 그의 감정이 이토록 흔들린 적이 있었던가.

빠르게 심장이 뛰며 저것을 막아야 한다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고 싶다.’

루시퍼의 입가가 삐뚜름하게 기울어졌다.

지수의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모래시계의 모습이 빠르면 빨라질수록 루시퍼의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그건 바로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자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것을 보고자 했다.

‘인간은 두려움을 알기에 누구보다 비열해질 수 있고, 죽음의 곁에 있기에 무엇보다 잔혹해질 수 있다.’

선대 나태의 악마가 했던 말이었다.

약하디 약한 존재이기에 무엇보다 풍부한 감정을 지녔다고.

만약 그 감정을 오롯이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 나타난다면.

무엇보다 강한 악마가 될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아자젤, 신과 악마의 혼혈인 너는 누구보다 인간에 가깝다.’

하지만 그건 인간에 가까운 것이지 인간이 아니다.

아자젤은 태생부터 강했다.

두려움을 몰랐다. 공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무료했다.

나태하고 게을러질 수밖에 없었다.

악마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점차 밝게 빛나는 모래시계를 보며 아자젤은 웃었다.

‘공포로구나.’

초월을 멸하는 근원.

아자젤이 지수를 도왔던 건,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파아아아!!

이윽고 모래시계는 멈췄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그것은 지수의 머리 위에서 빛나며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지수는 그것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이건 나쁜 짓이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란 말이야!!’

‘착한 아이’가 속삭였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다급한 목소리였다.

“알아.”

그 목소리에 지수는 처음으로 답했다.

“나쁜 짓이라서 하는 거니까.”

‘뭐?’

경악하는 목소리를 외면하며, 지수는 모래시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미래의 린은 말했다.

자신의 의지로 판단하라고.

나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그건 당연한 말이다.

세상에 착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인 척을 하는 무언가일 뿐이다.

지금껏 자신은 그런 ‘사람인 척’을 하던 어떤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는 인간이 될 것이다.

***

고오오오!

벨제부브와 싸우던 장소는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그 충격파로 폭식의 영역 전체가 날아가 버릴 뻔했지만 악마들이 나서서 막은 탓에 재해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웬만한 신보다 상위에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하지만 그런 악마들조차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마계를 직격하고 자칫했으면 폭식의 영역 전체가 날아가 버릴 뻔했다.

대륙의 지축마저 틀어버릴 정도니 당연한 일이다.

“후우, 후우…….”

그런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세한은 가쁜 숨을 내쉬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주변을 뜨겁게 달구던 열기와 먼지, 연기들이 걷혀서 사라졌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대지에는 크나큰 상흔이 남겨져 있었다.

수천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져 용암이 치솟았고, 갑작스런 자연재해에 플라즈마가 튀기며 지옥과도 같은 대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크, 크흐흐흐.”

그리고 그 중심에서 만신창이가 된 벨제부브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운석을 직격했음에도 그는 세한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이쯤 되자 아무리 세한이라고 해도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한계인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벨제부브의 몸도 만신창이라는 점이다.

한쪽 팔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른 팔도 기괴하게 뒤틀려있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도 한쪽 다리가 못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상을 입은 건 정말 오랜만이다.”

“더 해볼 생각이냐?”

세한은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육체의 상처는 그다지 없었지만, 세한의 경우엔 정신이 말이 아니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반면 벨제부브는 상처는 입었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다.

긴장하며 녀석의 답을 기다리니, 벨제부브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해보고 싶다만, 더 했다간 내 영역이 지워질 것 같군.”

벨제부브는 황폐화된 주변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확실히 여기가 마계가 아니라 지구였다면 그대로 멸망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악마들이 운석의 충돌로 발생한 피해를 저지했기에 이 정도로 그칠 수 있었다.

“너의 승리다. 이 폭식의 악마 벨제부브가 너를 인정하마.”

그가 그렇게 말하자 흑색의 기운이 흘러나오며 세한을 향해 스르르 날아왔다.

그리곤 가슴팍으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졌다.

다른 악마들의 인정을 받을 때와는 조금 다른 터라 세한은 내심 당황했다.

[폭식의 악마, 벨제부브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대악마 벨제부브를 쓰러트려 신격이 상승합니다!]

[마왕의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까지 한 명 남았습니다.]

‘됐다!’

연속해서 떠오르는 알림을 보며 세한은 쾌재를 불렀다.

이제 한 명 남았기 때문인지 알림으로 마왕의 시험이 언급되었다.

‘그런데 지수는 결국 안 왔나.’

혹시 싸우는 도중에 지수가 찾아오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결국 지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긴, 아무리 지수가 단 시간 내에 강해졌다고 벨제부브와 싸우는 건 무리겠지.’

막강한 재생능력을 지닌 지수지만, 마찬가지로 피지컬로 몰아붙이는 벨제부브를 이기는 건 무리였다. 운석에도 견디는 녀석의 몸을 과연 지수가 파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시험에 도전할 생각인가?”

“그래, 남은 하나는 새로운 분노의 악마에게 받을 생각이야.”

“과연.”

지금쯤이면 분노의 악마를 정하는 쟁탈전도 끝났을 것이다.

신자운과 합류한 뒤, 바로 오만의 영역으로 가기만 하면 됐다.

“오랜만에 나타난 도전자에 루시퍼 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마왕의 자격에 도전할 때 녀석과 싸울 일은 없겠지?”

“물론이다. 그보단 싸울 일 자체가 없을 거다.”

“그럼 다행이군.”

벨제부브와 싸우며 힘을 너무 소모했다.

1회차 이드라의 힘은 아직 전부 흡수하지 못해서 심장에 똬리를 틀고 남아 있었다.

“그럼 나도 한동안은 푹 쉬어…….”

가벼운 얼굴로 그렇게 말하던 벨제부브의 안색이 굳었다.

“잠깐 기다려라. 이게 대체 뭐지?”

녀석은 다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부러진 다리를 마력으로 고정시키고 잘린 팔을 힘을 쥐어짜 재생시켰다.

당장 어딘가로 가야 할 것처럼.

“왜 그래?”

“뭔가 있다. 오만의 영역에 뭔가가……!”

오만의 영역?

세한은 벨제부브의 말에 이곳과는 정반대에 있는 오만의 영역 쪽을 바라보았다.

“……!!”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마계의 대지를 타고 흐르는 불길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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