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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플레이어-240화 (240/332)

# 240

240. 분기점(2)

1회차의 이드라는 지금의 이드라와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오직 요그소토스를 죽이기 위해 기나긴 시간을 버티며 강해졌다.

세한에게 내어 준 불멸자를 죽이는 말뚝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요그소토스를 쓰러트렸으니까.

대부분의 힘을 소모했다지만 녀석이 가졌던 정수를 뭉쳐 만든 것이 바로 이 핵이었다.

‘완전하게는 다룰 수 없지만……!’

세한이 다룰 수 있는 건 그 일부.

이것만으로도 벨제부브를 상대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크흐흐하하하하!!!”

하늘에서 떨어지는 벨제부브의 광소가 울려퍼졌다.

정말 오산이었다.

까마귀, 까마귀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재밌는 녀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강함을 추구하는 악마였다.

루시퍼에게 비록 패배한 후 한풀 꺾이긴 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자신만의 패도를 추구했다.

강자와의 싸움을 즐겼고, 그 싸움을 극복하며 나아왔다.

‘인간이, 아니. 이제 인간이란 말은 우습구나.’

지금까지는 사로잡아 아자젤을 유인할 미끼라 생각했지만 벨제부브는 생각을 고쳤다.

‘저건’ 적이다.

인간이라는 건, 플레이어라는 건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의 태생이 벨제부브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나약한 인간이 여기까지 기어 올라오다니.

그렇다면 정체된 자신의 힘도 분명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반드시.’

저것을 먹는다. 아자젤은 이제 뒷전이었다.

신들의 도달할 수 있는 종착지. 신격이 도달할 수 있는 기적의 끝.

전능의 편린이라 불리는 과실을 먹기 위해서.

꽉!

공중에서 자세를 잡고 벨제부브의 몸이 반 바퀴 회전하며 지상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세한을 보았다. 허공에서 무릎을 굽히며 천천히 호흡을 내쉰다.

투콰아앙!!

벨제부브의 발이 허공을 박차자 마치 허공에서 발판을 밟은 것처럼 쏘아진다.

벼락처럼 떨어져내린 벨제부브의 주먹이 대지를 강타한다.

콰콰콰쾅!!

지면을 내리친 주먹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대지가 뭉개진다.

벨제부브의 마력이 대지의 내부를 헤집으며 둥근 원형의 형태로 땅을 증발시켰다.

‘피했나.’

부서진 대지에서 붉은 용암이 솟구친다. 뜨거운 열기가 벨제부브의 피부에 닿지만 세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허공에 열려 있는 새까만 공간만이 보일 뿐이었다.

허수공간.

꿈의 마녀 이드라의 대표적인 권능.

“먹어치워 주마!!”

벨제부브가 허수 공간을 향해 달려들며 입을 벌린다.

그의 입은 ‘개념’자체를 물어뜯는다.

물질이 아니어도 전혀 상관없다. 자신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지.”

“……!!”

허공에서 날카로운 창이 만들어지며 벨제부브의 허리를 노리며 양쪽에서 날아온다.

드드득!!

피부를 긁으며 지나가자 붉은 선혈이 흩날리며 벨제부브의 발걸음이 늦춰진다.

그리고 그 위로 공간이 열리며 세한이 튀어나와 발로 벨제부브의 머리를 내리찍는다.

용암에 솟아 나오는 대지에 머리를 처박자 마치 파도처럼 용암이 출렁인다.

인간이라면 단숨에 재가 되었겠지만 벨제부브에게는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

육신의 강도가 차원이 다른 것이다.

‘허수 공간을 넘나들 수 있어서 다행이야.’

세한은 그런 벨제부브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적어도 자신은 용암 속에서 저렇게 태연히 웃지는 못했을 것이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던 벨제부브의 몸이 점차 붉게 달아오른다.

용암을 집어삼키며 육신에 그 힘을 깃들게 만든 것이다.

‘만물의 모든 게 녀석의 음식이라 이건가!’

벨제부브는 용암에서 머리만을 치켜든 자세로 양팔을 용암에 담갔다.

그러자 용암이 꿈틀거리며 세한을 향해 뱀처럼 달려들었다.

아무리 강해졌어도 육신의 기본 베이스가 인간인 세한으로선 용암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용암으로 만들어진 뱀들을 허수공간을 열어 통과시킨 후 닫아버리자 반토막이 나면서 끊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재생된 뱀들은 수십 마리 분할되며 세한을 에워쌌다.

‘물량으로 해보자 이거냐.’

아니면 세한이 환상으로 만들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 건지 실험해보려는 건지도 모른다.

세한은 손바닥을 넓게 펼치며 아래에서 위로 치켜 올렸다.

콰아아앙!!

그러자 땅이 양탄자처럼 뒤집히며 용암에 빠져있던 벨제부브의 몸을 튕겨올렸다.

허공에 떠오른 녀석을 보며 세한은 양손을 좌우로 넓게 벌렸다.

그러자 벨제부브의 양쪽에 금속으로 이루어진 정육면체가 만들어지며 빙그르르 회전한다.

짝!

손바닥을 양손으로 마주치자 벨제부브 양쪽의 정육면체가 샌드위치처럼 겹쳐진다.

사이에 낀 벨제부브를 당장에 뭉개버리려는 것처럼.

“큭!!”

당장에 자신을 짓뭉개려는 정육면체에 벨제부브가 양손을 좌우로 뻗어 막는다.

보통 튼튼한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지 부수려고 힘을 넣어도 손가락이 파고드는 정도에서 그쳤다.

‘하지만 오리하르콘 정도의 강도는 아니다.’

벨제부브는 자신을 뭉개려고 점점 압박해오는 정육면체의 힘에 씩 웃었다.

‘강한 물질을 만들려고 하면 그만큼 힘의 소모가 크다는 거겠지. 혹은 현재 만들 수 있는 게 이 정도가 끝이라거나.’

대충 세한의 능력을 파악한 벨제부브는 양팔에 힘을 넣는 그대로 마력을 집중시켰다.

단단하기는 하지만 부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쩌저적!

벨제부브의 손을 중심으로 정육면체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시퍼런 빛이 새어 나왔다.

콰콰쾅!!

“하.”

정육면체가 부순 벨제부브의 눈앞에는 원뿔형의 쇠기둥이 날아들었다.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가슴팍으로 날아오는 쇠기둥의 끝을 붙잡았다.

그리곤 그것을 입을 벌리고 끝을 깨물어 먹었다.

세한이 지닌 힘을 삼키기 위해서.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

벨제부브는 얼굴을 찡그렸다.

예상하긴 했지만 세한이 만들어낸 것들은 먹을 수 없었다.

아니, 먹을 수는 있지만 다른 것들처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세한이 만든 건 어디까지나 환상.

그것을 실체화시켜 공격을 할 뿐이다.

자신이 먹는다고 해도 허공을 베어먹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근본적인 원리나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감을 잡은 모양이군.’

세한은 그런 벨제부브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일부로 벨제부브는 자신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며 현재 세한이 할 수있는 힘의 한도를 측정했다.

출력에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 벨제부브의 판단은 정확했다.

분명 이드라의 힘을 일부 흡수했지만 아직 완전하지 못했다.

낼 있는 힘의 한계는 명확했다.

‘그래도.’

결코 질 이유는 안 되지.

탐색전은 끝났다.

“정말 네 말이 맞다.”

드드득.

벨제부브는 지상에 발을 디디며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그의 양손이 용암에 떠다니는 대지의 파편에 파고든다.

“너와 같이 기대되는 요리는 처음이야.”

공중에 떠 있는 세한을 향해 벨제부브가 발을 박찬다.

용암의 위를 밟으며 달려드는 벨제부브의 바닥이 꿈틀거리며 치솟았다.

콰아아앙!

그것을 벨제부브는 주먹으로 땅을 후려쳐 분쇄 시킨다.

환상이 부서져 나가며 사금과도 같은 빛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리곤 불어오는 바람을 입에 삼키고 내뱉자,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용암이 타고 오른다.

하지만 그 회오리는 세한이 손을 한바퀴 돌리자 분해되며 사라진다.

세한이 만들어낸 가짜 격류가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분해시켜버린 것이다.

“크흐흐흐하하하!!”

회오리가 사라지자 코앞에 벨제부브가 나타난다.

양손바닥을 뻗어 당장 세한을 움켜쥐려는 그의 모습에 세한은 자신의 바로 등 뒤에 허수공간을 열고 몸을 던진다.

그러자 수십 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허수공간이 열리며 세한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곳을 향해 벨제부브가 주먹을 휘두르자 막다한 마력이 방출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환상!’

산산이 부서지는 가짜 세한의 모습에 벨제부브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뒤다.”

“!!”

황급히 등을 돌리던 벨제부브의 얼굴에 세한의 주먹이 적중한다.

‘수라’의 묘를 살려 내지른 주먹에 벨제부브의 머리가 흔들리며 날아간다.

‘얼마 만이냐.’

아찔한 충격이 벨제부브는 조금 기뻤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이런 싸움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마계의 서열에 집착하고 루시퍼를 이기기 위해, 아자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집착했다.

이런 전투의 즐거움은 오래 토록 잊고 살았다.

“정말, 정말로.”

허공으로 날아가던 벨제부브의 몸은 한참 떨어진 대지에 처박혔다.

그런 그의 위에는 세한이 만들어낸 날카로운 날붙이가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단단한 벨제부브의 몸이 날붙이에 찢긴다.

그래도 벨제부브는 웃으며 세한을 쫓는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환상들을 주먹을 휘둘러 부순다.

몸에 박힌 날붙이들을 손으로 뽑아내며 움켜쥐고 부순다.

허공에서 만들어지는 바람을.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불꽃을.

자신을 거부하는 대지를.

역전하는 중력을.

온몸을 휘감는 억센 넝쿨조차 벨제부브의 전진을 막지 못한다.

온 몸을 얼리는 얼음의 파도를 돌파하자 이상한 쇳덩이가 날아왔다.

“음?”

본능적으로 벨제부브는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러자 철덩이가 백열하며 막대한 열기를 내뿜으며 폭발했다.

콰아아앙!!

인류가 만들어낸 최대의 병기.

핵폭탄.

대지가 깎이고 용암이 밀려나며 거대한 버섯구름이 만들어진다.

그 버섯구름을 뚫으며 벨제부브가 세한의 멱살을 잡았다.

“크윽?!”

“이번 건 조금 아팠다.”

피부는 약간 그을렸을 뿐 치명적인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날붙이에 찢겼던 피부는 이미 전부 나았다.

사납게 웃으며 자시을 응시하는 벨제부브의 모습에 세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뭔 놈이 이렇게 터프해?’

벨제부브는 멱살을 잡은 당겨 세한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세한의 몸이 허수공간에 삼켜지며 사라진다.

황급히 손을 빼려던 벨제부브의 오른손은 허수공간에 끼어 붙들린다.

중간에 생명체가 있다면 허수공간의 문을 닫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공간의 틈에 끼우는 정도는 가능했다.

“잡았다.”

“크흐흐.”

하늘에서 나타나는 세한의 모습에 벨제부브가 낮게 웃었다.

“아니, 실수한 건 너다. 적어도 이건 환상이 아니거든.”

벨제부브는 오른손을 붙잡고 있는 허수공간을 향해 입을 벌렸다.

자신의 오른손과 함께 공간자체를 먹어버릴 속셈이다.

손을 잃는 건 치명상이지만 어차피 시일이 지나면 회복될 테고, 허수공간을 얻는 이점이 더 컸다.

물론 세한이 그것을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큭!”

그의 등 뒤에서 넝쿨이 자라나며 벨제부브의 목을 엮고 뒤로 팽팽히 당겼다.

앞으로 고개를 숙이려던 벨제부브의 몸이 젖혀졌다.

“고작 이 정도로!”

“당연히 고작 그 정도가 아니지.”

세한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한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하늘이 갈라지며 거대한 허수공간이 나타난다.

세한은 지상의 벨제부브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마계는 보통 별보다 튼튼하다고 하더라고.”

벨제부브는 크게 열린 허수공간의 내부를 응시했다.

어쩐지 작은 빛이 보인 것 같았다.

‘저건, 마계에 허수공간을 연 게 아니야.’

하늘보다 더 위.

마계라는 별의 밖에 열려 있었다.

고오오오!

허수공간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며 붉고 하얗게 타오르는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오.”

그것은 유성.

묘사가 아닌, 거대한 유성이 허수 공간에서 튀어나오며 마계를 향해 떨어졌다.

마계의 하늘을 관통하며, 구름을 가르고 벨제부브를 향해서.

그것이 벨제부브와 격돌하는 순간.

별이 흔들렸다.

***

“너는 충분히 노력했다.”

루시퍼는 고요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앞은 붉은 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피웅덩이의 중심에 한 여성이 누워 있었다.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양다리는 기형적으로 꺾여 있었고, 왼팔은 없었다.

그나마 무사한 건 오른팔뿐이었다.

“확실히 불사신에 가깝다만, 그런 재주만으로는 나에게 인정받는 건 무리야.”

마치 달래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붉은 피로 뒤덮인 여성, 지수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몸을 아무리 재생하며 싸워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가공할 재생능력조차 루시퍼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나는.’

재생은 느릿하게 되고 있었지만, 전처럼 고속으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력과 신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수의 눈동자는 연한 금색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뭘 하고 싶은 걸까.’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지친 건 오랜만이었다. 그냥 이대로 패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했지만 결국 할 수 없었다는 건 흔한 결말이다.

한 가지 방법이 남아 있긴 했다.

‘왜 나는 그걸 꺼내지 않는 거지?’

근데 끝끝내 꺼내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것을 꺼냈다면 상황은 달랐을 텐데.

‘나는 왜.’

어째서인가. 그 답은 간단했다.

자신은 세한에게 착한아이이고 싶었으니까.

또한 그의 곁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이 세계의 미래가 어떻든 전혀 상관 없었다.

자신은 세한이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아냐.’

지수의 동공이 커졌다.

‘아냐, 아냐 아냐!’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생각을 멈췄다.

몽롱하던 정신이 퍼뜩 깨어났다.

뜨겁게 흐르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세한과 자신을 두고, 무엇이 더 소중한지 저울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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