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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플레이어-236화 (236/332)

# 236

236. 칠죄종(1)

기본적으로 악마라는 존재는 하급 신격을 지녔다고 해도 동등한 수준의 신격을 지닌 존재보다 강하다. 신격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한계를 넘게 해주는 힘에 불과하다.

기적에 닿을 수 있는 만능의 에너지.

당연히 보통은 신격이 높은 쪽이 유리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애초에 지닌 능력이 월등하다면 신격이 낮더라도 강력한 힘을 지녔다.

대표적으로 외우주에 속하는 그레이트 올드원들.

녀석들은 지닌바 신격이 하급에서 중상급 정도지만 지닌 힘은 웬만한 상급 이상의 신에 필적한다.

그리고 그건 악마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악마들은 스스로의 힘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한 편이었다.

“크, 크크크. 그래, 네가 바로 그 까마귀로군.”

쓰러진 악마가 낮게 웃었다.

주변의 마족들은 새파래진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악마가 인간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을 봤으니 당연한 일이다.

“신격만 풍선처럼 키운 샌님은 아닌 모양이야. 벨제부브 님을 뵈러 온 건가?”

“그래.”

“흥, 오만한 녀석.”

방금 전까지 피가 철철 흐르고 있던 얼굴이었지만, 순식간에 상처가 낫고 있었다.

전투의 여파로 주변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과연 폭식의 영역을 지키는 수문장다운 모습이었다.

“이정도면 인간치고 오만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하긴 그건 그렇군. 좀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그는 굉장히 시원시원한 태도였다.

보통 인간에게 당하면 ‘감히 인간 따위가!’라고 외치는 녀석이 대부분인지라 신기할 정도였다.

녀석도 그걸 눈치챘는지 피식 웃었다.

“마계는 강자지존의 세계다. 겉으로는 그렇게 떠들지 몰라도 대부분 한번 인정하고 나면 그런 것으로 왈가왈부하지는 않을 거다. 악마들이 인간을 얕잡아보듯 말하는 건 자기 최면 같은 거야.”

상대보다 내가 강하다는 인식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따라와라. 벨제부브 님께 안내해 주지.”

녀석은 몸을 일으키며 성의 안쪽을 가리켰다.

덕분에 노심초사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마족들은 단번에 사색이 되었다.

“다, 다니엘 님!”

“설마 저놈을 데려간다고 벨제부브 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하는 것이냐?”

“그, 그건 아닙니다.”

입구를 지키는 악마의 이름은 다니엘인 모양이다.

악마치곤 지나치게 평범한 이름이구만.

“가자.”

마족들은 우리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다니엘의 사나운 시선에 입을 굳게 닫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날아갈 수 있나?”

“물론.”

“하긴 까마귀자리를 차지한 녀석이 날지 못하는 것도 우습군.”

내가 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궁기의 날개 스킬을 지녔을 뿐이지, 까마귀자리이기 때문이 아니다. 뭐, 굳이 그런 걸 말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힉!”

나는 민수아를 대충 들쳐 업은 후, 하늘로 날아오른 다니엘을 쫓아 날아갔다.

마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녔다는 건 과연 허명이 아니다.

다니엘이 지키던 성문은 사실상 국경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문을 통과하고 날아가자 몇 개나 되는 도시를 지나쳤음에도 벨제부브가 머무는 중앙성이 보이지 않았다.

‘이정도면 사실상 오만의 영역과는 완전 반대편이겠는데.’

거리와 위치를 대략 따져보면 마계의 끝과 끝이다.

‘벨제부브는 루시퍼를 두려워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가.’

욕심이 많은 벨제부브에게 루시퍼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며,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대상이었다. 지닌바 힘만 따지자면 아자젤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아자젤은 애초에 욕심이 없는데다 ‘나태’를 상징하는 존재이기에 벨제부브는 아자젤은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마계를 ‘관리’하는 존재인 루시퍼를 극도로 싫어했고 기회만 온다면 처치하고자 했다.

1회차에 열렸던 마계의 연회에 참가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녀석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7대 악마, ‘폭식’의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마계의 연회에 참가했다.

7대 악마는 열쇠의 시험에 도전할 수 없으니 그런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폭식의 악마로서 지니고 있던 권력을 포기하고, 7대 악마만이 아는 ‘열쇠’에 대한 정보를 기억에서 지우면서까지 참가했다.

그때는 단순히 열쇠라는 힘을 차지하고자 하는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마왕의 자리를 노렸던 게 아닌가 싶다.

루시퍼는 ‘마왕’이 될 이를 선별하는 존재였고, 시험에 통과하게 되면 누구보다 충성스런 심복이 되어줄 테니까.

마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열쇠의 힘과 루시퍼를 지배하고자 했다……라는 이야기다.

“도착했다.”

한참을 날아간 끝에 도착한 장소는 새하얀 색깔의 돌로 지어진 거대한 성이었다.

무척 깔끔해서 겉모습만 보자면 도저히 악마가 머무는 성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들어가면 되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럼 벨제부브 님이 호위 같은 걸 세워뒀으리라 생각하나?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라.”

“너는?”

“난 이만 돌아가겠다. 명을 재촉하고 싶지는 않거든.”

녀석은 그렇게 말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 함정은 아니겠죠?”

악마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민수아가 떨린 목소리로 말했다.

“묻지 말고 미래를 봐.”

“아, 그 그러네요.”

원래부터 겁이 많은 녀석이긴 했지만 벨제부브가 머무는 성에 도착한 후론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어마어마한 마력이군.’

나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민수아가 숨을 헐떡이며 덜덜 떠는 것도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마력에 신격이 더해진다면 말 그대로 재해에 가까울 것이다.

‘아흐리만의 몇 배는 되겠는데.’

여태 내가 만났던 상대 중 가장 막대한 마력을 지녔던 건 아스모데우스를 삼킨 아흐리만이다.

그 어마어마한 마력이 거대한 호수라면, 벨제부브의 마력은 바다였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1회차에서는 대략적인 느낌만 받았지만 이렇게 신격까지 얻고 난 후에 느끼니 벨제부브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명확히 다가왔다.

끼익──.

거대한 문을 열자, 빛이 들어오지 않는 성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마치 폐허처럼 느껴졌다.

‘딱 중앙에 있군.’

분명 나와 수아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렸을 텐데, 벨제부브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이 있는 것이 분명한 중앙의 홀로 향하자, 마력과 신격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파파파팟!!

그리곤 성의 불이 일제히 켜지며 어두운 성이 단번에 밝아졌다.

‘아씨, 깜짝아.’

불을 킬 거면 진작 킬 것이지 왜 갑자기 이러는 건데.

덜컹.

거대한 중앙 홀이 문을 열자, 거대한 옥좌에 앉아 있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간단히 말해서, 그건 인간이라기보단 고깃덩어리에 가까운 형태를 취한 무언가였다.

“후욱, 후욱.”

짙은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거대한 살덩이가 요동쳤다.

족히 3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신장과, 그런 거대한 몸을 감싼 두툼한 고깃덩어리는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평범한 인간이 이정도로 살이 쪘다면 오래전에 사망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저 자가…… 폭식의 악마인가요?”

민수아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눈동자가 새파랗게 변했다. 아마 미래를 통해 눈앞에 있는 존재가 벨제부브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저, 정말이네요. 저런 괴물이…….”

민수아는 질린 얼굴로 출렁이는 벨제부브의 육신을 바라보았다.

대악마라는 위명과 달리 벨제부브의 육신은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폭식’을 상징하는 육체라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크흐흐흐, 까마귀자리, 외신을 속박한 자. 그런 호칭으로 불리는 유명인사가 이런 외딴 곳에 오다니 놀랍구나.”

두툼한 살집과, 비계로 뒤덮인 얼굴이 움직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관자놀이에 달린 거대한 뿔이 아니라면 그것이 얼굴이라는 걸 짐작하기 힘들 정도였다.

‘예전에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목소리는 참 적응 안 되네.’

끔찍한 외형과 달리 목소리는 위엄이 넘쳤다.

거친 숨소리가 중간중간 섞여 있음에도 상대를 복종하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래서 이곳엔 어떤 볼일이신가?”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짐작한 것과 직접 듣는 건 다를지도 모르지 않나.”

제법 은밀하게 돌아다녔지만 벨제부브라면 우리의 정보를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뭣보다 지금 지구의 사정은 커뮤니티에서도 화제인지라 벨제부브가 모를 리가 없었다.

“7대 악마의 인정을 받으러 왔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오직 벨제부브뿐이다.

분명 놈도 그걸 알고 내게 물은 것이리라.

“흐, 흐흐흐흐.”

푸짐한 고깃덩어리가 부르르 떨리며, 천천히 움직였다.

옥좌에 앉아 있던 벨제부브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쿵, 쿠웅.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울리는 지면이 벨제부브가 얼마나 무거운지 말해주고 있었다.

“나도 얕보인 모양이야.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내게 오다니. 나라면 차라리 도망친 마라 파피야스를 쫓았을 거다.”

“상황이 조금 급해져서 말이야.”

“그 조금 때문에 목숨을 버릴 생각인가?”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나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

“하하하하!!”

벨제부브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웃긴 말을 들은 것처럼 전신을 경련하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래, 그래! 네놈이 오만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오만해질 만한 업적도 세웠으니 그럴 만해. 하지만 직접 들으니 역시 웃음을 참을 수 없구나.”

벨제부는 쿵, 쿵 거리며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겉모습만 보자면 우스운 광경이었지만 녀석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 사실 나도 네게 볼 일이 있었다. 너는 아자젤과 꽤 친분이 있는 모양이더군.”

“그게 무슨 상관이라도 있나?”

“있고말고. 지금 아자젤이 마계에서 뭔가 일을 벌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녀석을 쫓을 수 없어. 그 건방진 년은 내 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아무래도 벨제부브는 내가 마계에 온 시점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자젤이 마계에 있다는 사실도 나보다 빠르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녀석은 마왕의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움직이는 걸보면 수상하단 말이지. 거기다 옆에 악마 하나를 끼고 돌아다니더군. 처음 보는 악마를 말이야.”

벨제부브가 말하는 악마는 지수가 분명했다.

녀석은 살집에 묻혀 있는 붉은 눈동자를 내게 향하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그 악마가 너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걸 커뮤니티를 뒤져서 알았다.”

“나를 잡는다고 해도 둘은 오지 않을 텐데?”

“그건 모를 일이잖나. 그리고 너라면 지금 아자젤이 하는 일이 뭘 노리는 건지 알고 있을 테지.”

놈은 천천히 몸을 구부렸다.

두터운 양팔과 양다리를 지면에 댔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준비하는 선수와도 같은 자세다.

“나머지 대화는…….”

어차피 나는 녀석과 싸워야만 했다.

녀석을 죽이든, 혹은 인정을 받아야만 했으니까.

“싸움을 끝낸 후에 이어서 하도록 하마.”

콰과광!!

통나무와도 같은 다리다 대지를 박차자, 굉음이 울리며 거대한 육신이 하늘을 날았다.

살집과 비계로 뒤덮인 탓에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정면에서 받아치면 안 돼.’

정면에서 덤벼드는 벨제부브는 머리를 내게 향하며 입을 쩍 벌렸다.

얼핏보면 허점투성이의 모습이었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허접에 공격하기보다는 민수아를 안고 몸을 옆으로 날렸다.

저것에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잡아먹혀’ 버릴 테니까.

***

오만의 영역, 그 바로 곁에는 오래된 유적이 하나 있었다.

아주 오래전 마왕이 살았던 성.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지만 루시퍼는 늘 이곳을 지켰다.

“…….”

루시퍼의 눈앞에는 폐허의 중앙에 있는 높은 단상을 올려다보았다.

그 위에는 검은색으로 빛나는 왕관이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결계의 안에서 지켜지는 흑색의 왕관.

바로 저것이 마계에서 보관중인 열쇠였다.

마왕의 안식처라 불리는 이곳에 긴 시간 동안 보관되어 있던 마왕의 상징이었다.

검은 왕관은 이미르나 린이 지닌 열쇠보다 컸다.

하나가 반으로 나뉜 둘과 달리, 마계의 열쇠는 온전한 하나였으니까.

긴 세월 동안 루시퍼는 이것을 지켰다.

자격을 얻고 도전한 이는 이미 몇 명이나 있었지만 아직 왕관을 손에 넣은 자는 없었다.

“……멈춰라.”

루시퍼는 왕관에서 시선을 떼며 안식처의 입구로 걸어 들어오는 두 여성을 바라보았다.

“너희에게는 자격이 없다.”

검은 머리칼, 금색의 눈동자.

루시퍼 역시 아자젤과 마찬가지로 신의 힘이 섞여 있는 존재다.

다만 아자젤과 다른 점은 루시퍼는 애초에 ‘신’이었다는 것.

스스로 타락하여 악마가 된 존재라는 것이 달랐다.

오직 열쇠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걸 포기한 오만의 악마.

“아자젤. 7대 악마가 시험에 도전하지 못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알아. 알고말고.”

그런 루시퍼에게 아자젤은 싱긋 웃었다.

“도전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이 아이지.”

“그 계집도 자격이 없다. 7대 악마 중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알아. 지금 세 명의 동의를 얻었고 딱 하나가 남았어.”

아자젤의 말에 루시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묵묵히 서있는 검은 머리칼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이제 악마가 된지 얼마 안 된 것 같음에도 상당한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 왜 이곳에 온 거지?”

“지금 7대 악마 꼴이 말이 아니라서 말이야. 남은 게 폭식하고 당신뿐이더라.”

“……그런데?”

“당신의 동의를 얻으면 딱 네 명이라는 말이야.”

아자젤의 말에 루시퍼는 헛웃음을 지었다.

길디 긴 세월을 살아왔지만 이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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