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234. 열쇠의 시험(1)
7대 악마의 인정.
그것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마왕의 자리를 건 열쇠의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서.
“하지만 7대 악마인 아자젤은 열쇠의 시험을 볼 수 없지.”
그렇다면 누가 시험을 볼 것인가.
애초에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지수였구나.”
어째서 지수가 계속 아자젤의 곁에 있는 건지 궁금했다.
이제야 겨우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지수는 지금 마왕이 되려는 거다.
아자젤은 그런 지수를 돕고 있는 게 분명했다.
‘대체 왜?’
게으름의 화신인 아자젤이 타인을 위해 나서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하물며 신자운을 한번 때려죽일 뻔한 지수를 녀석이 돕는 건 여러모로 이상했다.
“역시 그런가요…….”
민수아는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지금 사건에 아자젤과 한지수가 관련되어 있다는 걸 짐작은 했겠지만 확신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세한 님을 따라가라고 한 시점에서 그렇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도 그럴 게 지수 언니는 미래를 바꾸고 싶어 했으니까요.”
“지수가? 이유가 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의 엔딩이라면 세한 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게 되는 사람은 바로 지수 언니니까요.”
세계의 미래 같은 건 지수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지수가 바라는 건 내 곁에 있는 것뿐.
나는 그런 지수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더더욱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착한아이 특성이 있음에도 따로 행동하고 있다는 건, 이 행동이 전적으로 나를 위해서라는 거다.
‘내가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만약 눈앞에 있다면 내가 말리면 그만이다.
그럼 지수의 특성이 강제력이 되어 지수의 행동을 막을 것이다.
“근데 지수가 어떻게 마몬을 죽일 수 있는 거지?”
아자젤에게서 도망친 마몬은 도망친 장소에서 지수에게 죽임을 당했다.
현재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그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수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7대 악마인 마몬을 죽이는 건 무리였다.
“지수 언니는 악마가 됐으니까요.”
“……잠깐만, 뭐라고?”
“악마가 됐어요. 세한 님에게 비밀로 하고 아자젤님의 피를 받았거든요.”
“미친.”
아자젤의 피는 아무나 소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웬만한 재능을 지니고, 신적인 존재라고 해도 아자젤의 피를 받는 순간 몸이 터져버린다.
그도 그럴 게 아자젤의 태생은 결코 평범하지 않으니까.
‘신과 악마의 혼혈.’
그것도 우주에서 손에 꼽히던 강자 두 명의 딸이다.
그 둘이 하나로 합쳐져 세력을 꾸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미르는 정의의 심판이라는 이름하에 둘을 죽였다.
그리고 어린 아자젤만이 마계로 도망쳐 슬럼 지역에서 숨을 죽이고 살았다.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힘을 얻을 때까지.
그리고 힘을 얻자마자 전대 나태의 악마인 벨페고르를 죽이고 나태의 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런 아자젤인만큼 그녀의 피는 특별했고, 무수한 가능성을 지녔다.
그녀의 피를 받은 아폴론의 그림자에 불과한 아바돈이 7대 악마에 가까운 힘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지수가 그걸 견뎌냈다고?”
“네. 애초에 지수 언니는 불사신에 가까우니까요.”
그래도 죽지 않는 건 아니다.
아무리 지수라도 전신이 터졌다면 죽었을 것이다.
‘만약 아자젤의 피를 받아들이고 완전히 악마의 힘을 각성했다면…….’
지수의 포텐을 생각할 때 마몬을 죽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일났네. 아직 엔딩은 바뀌지 않았지?”
“네.”
아직 엔딩은 광기의 마왕이다.
나는 지수의 행동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믿고 기다리면 광기의 마왕이 아닌 다른 엔딩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지수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
“분명 너에게 먼저 이야기했을 거야.”
“…….”
민수아는 입을 꾹 닫았다.
그 모습은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지수가 지금 이런 짓을 저질렀을 때 도달할 수 엔딩. 그것을 말해줘.”
“그걸 말하면 분명 막으려고 할 거에요.”
“다를지도 모르지.”
민수아는 조금 슬픈 얼굴이 되었다.
결코 좋은 결과는 아니라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며 말할지 말지 망설이던 민수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해줘.”
나는 그런 민수아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민수아의 몸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배드엔딩이에요.”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배드엔딩이라고?
“지수는 그걸 알아?”
“네. 배드엔딩, 흩어진 세계에요.”
흩어진 세계.
내가 도달한 배드엔딩과는 달랐다. 하지만 배드엔딩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어떤, 엔딩이지?”
막상 배드엔딩이라는 말을 들으니 입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구에 있던 이들을 이드라님이 게이트를 열어 모두 도망치게 해요. 지구는 멸망하고, 플레이어와 신들은 모조리 뿔뿔이 흩어지게 되죠.”
“……그렇군. 디어사이드나 나와 관련된 이들은 어떻게 되지?”
“세한 오빠는 살아요. 그리고 많이 죽지만 다 죽는 건 아니에요. 이드라 님도 살고…….”
많이 죽는다는 말에 섬뜩해졌다.
누가 살아남는지 차마 묻고 싶지 않았다.
이드라야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살아남는 건 당연하겠지.
“지수도 그때 죽는 거냐?”
“아뇨…….”
민수아의 눈동자가 푸르게 변했다.
이전에 보았던 미래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지수 언니는 애초에 없었어요. 이미르가 지구에 왔을 때.”
이미 없었다?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지수 언니가 죽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사라져요. 문제는…….”
그제야 나는 민수아가 왜 이토록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지수는 죽은 게 아니다.
죽는 것 이상의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지수 언니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마치 지수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처럼.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설마 열쇠의 시험이라는 게…….’
민아의 말을 들으니 어쩐지 열쇠의 시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째서 7대 악마들만이 알고 있는지.
누구도 마왕이 되지 못했는지.
“민수아, 하나만 더 부탁할게.”
“네.”
“지금 엔딩은 아직 광기의 마왕이지?”
“맞아요.”
이전에 엔딩 광기의 마왕에 대해선 들었다.
이미르에게서 세계를 지켰지만, 도리어 내가 세상의 위협이 되는 엔딩.
“그 엔딩에서…….”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단순히 뭔가 문제가 생겨서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문제는 무엇인가.
그때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는 지수가 있다고 했다.
그 녀석은 내가 어떤 짓을 저지르더라도 따라올 거라 생각해서 넘어갔지만……. 그렇다면 내 곁에는 한 명이 더 있어야만 했다.
이상하게 언급되지 않은 한 명이.
“이드라는 어디에 있지?”
***
“…….”
잿빛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지수는 하염없이 마계의 황야를 걸었다.
거친 모래바람이 몸을 할퀴었지만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
이미 지수의 육신은 인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인해졌으니까.
“정말 괜찮니?”
그런 지수를 아자젤이 싱긋 웃으며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특별한 슬픔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동정과 같은 감정도 없었다. 순수한 호기심이 있을 뿐이다.
만약 자신이 신자운이었다면 아자젤의 반응은 달랐겠지.
“언제나 생각하지만 당신은 저와 비슷하네요.”
“그래? 어떤 점이?”
“관심 있는 것 외에는 아무래도 좋다는 점이요.”
“그건 오해야. 난 너에게도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단다.”
관심이라.
분명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악마로 만들고 마치 자식처럼 대해주고 있었으니까.
소중히 생각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 기반이 ‘호기심’이라는 거였다.
“신자운도 분명 호기심이었을 텐데, 바뀌게 된 이유가 뭘까…….”
“가, 갑자기 걔 이야기는 왜 나와?”
“그냥요.”
어쨌든 아자젤이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아니었다면 마계에 올 수도 없었을 테고, 순조롭게 7대 악마 두 명에게서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하나…….”
“나, 마몬, 그리고 마라 파피야스. 남은 건 하나지. 누구로 할 거니? 역시 폭식?”
“…….”
가진 힘의 차이를 생각하면 폭식이다.
하지만 슬슬 지금쯤이면 세한도 자신의 의도를 파악했을 것이다.
“오만.”
“…….”
아자젤은 지수의 말에 웃음기를 지웠다.
“루시퍼를 네가 죽인다고?”
“동의만 얻으면 되지 않나요.”
“그 꼰대는 결코 동의를 해줄 리 없어. 죽이면 죽였지.”
오만의 위(位)에 있는 루시퍼는 아자젤도 익히 아는 자다.
유일하게 마계에서 건들고 싶지 않은자.
마왕이 없는 마계를 긴 시간 동안 가장 높은 위치에서 통치해온 악마.
설령 이미르라고 해도 루시퍼를 건드릴 생각은 없을 것이다.
녀석과 비슷한 수준의 강함을 가진 건 외신 중에서도 최상위 존재뿐.
아자젤이라도 솔직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질 확률이 더 높으면 모를까.
그런데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지수가 루시퍼를 상대하다니.
“나는 별로 추천하지 않아.”
기껏 강하게 만들어준 아이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건보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니까.
“폭식은 안 돼요. 분명 오빠가 거기로 올 테니까요.”
“그럼 네가 싸워서 이기면 되는 거 아니니?”
“못 이길 거예요.”
세한의 실력은 지수가 누구보다 잘 안다.
정말 죽일 각오로 덤빈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아이템을 쓴다면 이길 방법이 하나 있었지만 그걸 세한에게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사용할 상대는 처음부터 정했다.
“엔딩도 보고 왔으니 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 흐음, 뭐 어떻게 오만을 쓰러트릴지 궁금하기도 하네.”
아자젤은 조금 즐거워진 것 같았다.
그런 새하얀 소녀를 흘깃 보며 지수가 중얼거렸다.
“열쇠를 지키고 있는 자도 그라고 했지요.”
“맞아.”
“그럼 그를 이기자마자 바로 시험을 칠 수 있겠네요.”
지수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이미 민수아로부터 엔딩을 들었음에도 그녀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 지수가 아자젤은 참 신기했다.
“너는 까마귀에게 집착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조금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긴 하죠.”
그걸 조금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자젤의 말은 확실히 옳았다.
“수아에게 엔딩을 들어 알겠지만, 네가 시험을 받게 되면 결코 까마귀의 곁에 있을 수 없을걸. 그래도 할 거야?”
“…….”
확실히 엔딩은 그랬다.
결과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꼭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거기다 광기의 마왕에는 ‘그녀’가 없었다.
설령 배드엔딩이라고 해도, 지수는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세한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으니까.
“거기다 그 여자라면 오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죠. 제가 없는 만큼 더더욱.”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이다.
세한이 이드라에게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 그리고 이드라가 얼마나 세한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안다.
집착하고 성가시게 할 뿐인 자신보다는 이드라가 곁에 있는 미래가 날 것이다.
“물론, 포기할 생각 따위는 없지만.”
수아가 말했다.
세한과 자신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둘 만이 아니라 1회차와는 전혀 다른 운명을 걷는 이들은 그런 개변성을 지녔다.
그러나 가장 강한 개변성을 가진 건 세한이었고 그 다음이 바로 지수, 자신이었다.
‘그러니…….’
언제나 처럼 세한의 말에 얌전히 따른다면 광기의 마왕에 도달하게 되겠지.
미래의 린이 말했던 그 미래에.
당연히 그렇게 둘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마계에 온 것이다.
“조금 두근거리네요.”
자신의 의지로 세한에게 하는 첫 나쁜 짓.
불안하게 뛰는 심장을 무시하며 지수는 오만의 영역을 향해 걸었다.
***
세한이 마계에 있을 무렵.
이드라는 이미르와의 싸움에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이 준비지. 솔직히 승산이 없는 싸움이로구나.’
커뮤니티의 정보를 긁어모은 결과, 이미 이미르는 퍼블리셔가 관리하는 별에 퀘스트를 부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퀘스트 내용은 ‘세계를 위험으로 이끄는 행성의 토벌.’
간단히 말해서 지구의 멸망이 퀘스트 클리어 조건이다.
이정도 대규모 퀘스트는 긴 시간을 살아온 이드라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이미르가 열쇠의 반쪽을 지녔다고 해도 상당한 무리를 했을 게 분명했다.
당연히 이미르도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수많은 별에서 온 플레이어들의 침공을 오직 지구의 플레이어만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다.
“Tekeli-li.”
“음, 고맙구나.”
따끈한 차를 내미는 촉수 덩어리에게 칭찬하며 이드라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외우주에서 이미르의 요청을 받은 이는 몇 명이나 되지?”
“Tekeli-li. Tekeli-li.”
“으음, 꽤나 많구나.”
쇼고스는 아우터갓의 시종들이나 마찬가지.
이드라가 소환한 쇼고스는 그런 아우터갓을 모시는 쇼고스들과 정보를 공유하기에 어떤 일이 발생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미르가 외신에게 접촉했다는 정보다 이미 알던 바였다.
“아버지까지 나설 줄은.”
니알라토텝이 죽었던 게 원인일까.
아무튼 그다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이미르의 입장에서는 지구에 애정을 가진 신들을 견제하기 위함이겠지.
외신이 나서면 지구에 호감을 품은 신들도 쉽사리 돕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신들이 강하다고 해도 외신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
설령 외신들을 세한이나 린이 상대해도 한계가 있었고, 그렇게 되면 이미르를 막을 자가 없다.
사실상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