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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플레이어-233화 (233/332)

# 233

233. 쟁탈전(3)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마몬이 죽은 시점에서 내 계획은 사실상 틀어졌다고 봐도 좋다.

이곳에서 죽은 건 아닌 것 같지만, 마몬을 곁에서 보필하던 악마가 ‘죽었다’라고 단정할 정도라면 죽은 게 분명했다.

거짓말이라면 내가 알아차렸을 테니까.

“대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자젤이다.

마몬이 싸워볼 생각도 못하고 도망칠 만한 상대는 녀석 정도.

‘문제는 아자젤에겐 동기가 없다는 거야.’

그냥 심심해서 죽였다, 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같은 7대 악마를 그런 이유로 죽였다가는 아무리 아자젤이라도 지탄을 피할 수 없다.

거기다 아자젤의 상징이 뭔가.

‘나태’다.

그녀는 정말 웬만한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설마 신자운 때문인가?’

이전에 아스모데우스와 마몬이 신자운을 죽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앙심을 품고 죽였다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이상한 가요?”

마치 나를 떠보는 것처럼 민수아가 물었다.

나는 수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내가 무서운지 살짝 몸을 떨었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만약 녀석을 죽이려한 게 아자젤이라면 시체는 여기에 있어야 할 거야.”

“아.”

“그런데 녀석은 도망쳤지. 그게 뭘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해?”

“……도망치게 놔준 거라는 건가요?”

“맞아. 혹은 마몬을 도망치게 만든 게 아자젤이 아니거나.”

그렇지 않다면 마몬이 여기서 빠져나간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놈이 아무리 대단한 기술을 지녔어도 상대가 아자젤이었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죽는다.

‘감히 아자젤의 손에서 벗어난다고? 말도 안 되지.’

아자젤에게서 피해 없이 무사히 도망치는 건 나도 힘들다.

솔직히 이미르도 가능할지 의문.

‘그렇다면 아자젤이 아닐 확률이 높아지는데.’

나는 슬쩍 벌벌 떠는 악마를 보았다.

악마라는 이름답지 않게 새파란 안색으로 눈을 피하는 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고위 악마를 이렇게 덜덜 떨게 만들고, 입막음을 한 자라면 역시 아자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끙. 그래도 확정할 수는 없지.’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니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아자젤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추측.

“이러다 아자젤이 아니면 웃기겠는데.”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7대 악마를 죽일 수 있는 건 녀석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거기다 여기서 마몬을 놔줬다는 건 굳이 쫓지 않아도 죽일 수 있었다는 거다.

마몬이 도망칠 장소가 어디인지 알았고, 그곳에 놈을 죽일 수 있는 자를 대기시켰다.

‘마몬을 죽일 수 있는 녀석이 하나 더 있다라…….’

마몬을 도망치게 만든 녀석도 문제지만 죽인 상대도 문제다.

정말 골치가 아프군.

“민수아, 하나만 묻자.”

“네.”

“네가 나에게 제대로 말하지 않는 건, 정말 미래가 변할지 모르는 위험성 때문이냐?”

“…….”

“정말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할 수 있어?”

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라고 답하든 나는 하나의 답을 얻는다.

분명 녀석도 그걸 알고 있을 테지.

녀석은 나의 능력을 피할 수 있는 스킬이 없다.

설령 ‘거짓’을 숨길 수 있는 기술이 있어도 내 능력은 외신인 이드라에게서 파생된 것.

웬만한 신의 전승스킬 쯤은 가볍게 간파한다.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진실이다.

“하지만 제가 말하지 않는 건 결코 나쁜 의도가 아니에요. 올바른 엔딩……으로 가기 위한 조건을 찾는 거죠.”

역시 진실이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올바른 엔딩을 위한 조건?”

“알다시피 현재 엔딩은 광기의 마왕이에요. 배드엔딩은 아니지만 결코 해피엔딩도 아니죠.”

“너의 예언대로라면 광기의 마왕은 나야. 어떻게 내가 광기의 마왕이 되는지 말해주면 그걸 회피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죄송하지만 ‘어떻게 세한 님이 마왕이 되는가’에 대해선 저도 알 수 없어요. 미래를 볼 수 있지만 알다시피 세한님에게 관계된 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볼 수 있는 건 확정된 미래뿐이다.

현재 어떤 변수를 거쳐도 결국 도달하는 건 광기의 마왕이라는 뜻이다.

과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확정된 미래라니 정말 미칠 노릇이군.

“지금 마몬이 죽은 건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한 조건 중 하나라는 건가?”

“실험에 가까워요. 세한님이 마왕의 시험에 도전할 자격을 얻으려면 7대 악마 중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죠. 그 동의를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는 제외하면 바로 마몬이구요.”

“그 마몬이 사라진다면 내가 마왕에 도전할 수 없을 수도 있지.”

그런데 미래는 변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는 이 상황에서도 마왕의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미르가 쳐들어오기 전에.

‘내가 다음 타겟으로 정한 건 색욕이니 놈을 죽여서 자격을 얻었다고 봐야 되나?’

더불어 분노의 악마는 신자운이 되는 게 확실해졌다.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야. 혹시 이미 움직이고 있는 거냐?”

“네.”

“……미치겠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었다.

“꺄악!”

바로 민수아의 손을 잡아끌어 대충 품에 안고 날아올랐다.

목표는 당연히, 마라 파피야스가 있는 색욕의 궁이다.

***

현재 서열 11위의 악마, 아칸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분명 신격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어디로 봐도 인간이다.

얼굴이 반쪽을 가리고 있는 가면은 이질적이었지만, 대단한 물건은 아니다.

플레이어다.

콰아아앙!!

그가 휘두른 검과 사내의 주먹이 충돌한다.

신격이 대량으로 깃든 악마의 검은 사내의 주먹을 가르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육체냐.”

상대는 주먹. 자신은 검이다.

인간과 악마를 떠나 서로 부딪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방적으로 상처를 입는 게 정상이어야 한다.

쾅쾅쾅쾅!!

상대의 머리를, 가슴을, 허리를. 인간의 급소란 급소를 노리며 총 열두 번의 검격이 몰아쳤다.

하지만 그것은 사내, 신자운의 몸에 닿지 못했다.

정면에서 주먹으로 모조리 쳐냈으니까.

“이제야 알았다만…….”

신자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칸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 여자의 공격은 보통 매운 게 아니었군.”

죽일 기세로 거대한 둔기를 휘두르던 붉은 눈의 여성이 떠올랐다.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아낼 때는 몰랐지만, 자신은 덕분에 꽤 강해진 것 같았다.

“웃어? 하, 하하. 나도 정말 얕보였군.”

아칸은 신자운의 여유로운 태도에 속이 부글부글 끌었다.

강하다, 강하다는 건 알겠다.

머리는 그렇게 생각해도 가슴은 아니었다.

인간은 악마의 먹이다.

심심풀이로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래봐야 신격도 없는 놈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한계까지 몰아쳐 주마.”

신격이 없는 인간의 한계란 명확하다.

어떤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그렇다 해도 신격을 넘을 수 없었다.

기적을 일이키는 힘이 바로 신격이다.

몸 안에 흐르는 신격을 마력으로 변환해 검으로 뿜어내자 수 미터에 이르는 검이 만들어졌다.

‘이걸로 단번에 두 동강을 내주마.’

아칸도 서열 11의 악마다.

방금 전까지 신자운의 주먹과 검을 맞대며 상대의 한계를 정확히 가늠했다.

‘그게 분명 놈의 한계다.’

그 위는 없다고 느꼈다.

설령 목숨을 쥐어짜낸다면 조금 더 육체를 강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뿐.

이 검을 몇 번만 휘두른다면 견디지 못하고 죽으리라.

콰아아앙!!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검이 휘둘러지자 주변에 광풍이 몰아쳤다.

근처에서 하이에나처럼 틈을 노리던 악마들은 아칸의 공격에 휘말려 가로로 잘려나갔다.

“멍청한 것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흑영궁은 그런 악마들을 비웃었다.

그리곤 천천히 앞으로 손을 뻗었다.

‘아칸이 인간을 두 동강내는 때를 노려야겠어.’

처음부터 흑영궁은 아칸을 노리고 있었다.

아칸은 그보다 순위가 하나 낮았지만, 성가신 적이었다.

그래서 적당한 때를 노려 계속 지켜보던 차에 아까 마주쳤던 인간과 싸우기 시작했다.

‘적당히 틈만 만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했거늘.’

예상보다 인간은 선전했다.

아칸이 전력을 다하게 만들 정도로.

‘덕분에 손쉽게 처리하겠군.’

마침 인간도 제법 강한 거 같았으니 일석이조다.

흑영궁은 아칸이 인간을 죽이고 방심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뭐지?’

이상했다. 아칸의 검이 계속 튕겨나가고 있었다.

인간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그것을 정면에서 맞섰다.

‘한계는 이미 도달했을 텐데?’

흑영궁은 그 이름처럼 눈이 좋았다.

인간의 몸에 흐르는 마력과, 육신의 한계는 이미 파악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인간은 쓰러지지 않았다.

‘왜 한층 강해진 거냐.’

당혹스러운 건 아칸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놈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한 순간, 검이 튕겨졌다.

더욱 출력을 올려 휘두르면 그것도 주먹으로 쳐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속도를 올리고, 더욱 강하게 휘두르고.

마력의 양을 늘리며, 신격을 퍼붓는다.

“분명 네놈은 이미 한계일 텐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한계라.”

신자운은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검을 보며 살짝 몸을 비틀어 피했다.

텅 비어 있는 아칸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왜 내 한계를 네가 정하지?”

──한계돌파.

아자젤의 전승스킬. 자신의 의지가 감당하는 한, 무한한 힘을 부여해 주는 전승스킬.

비탄의 가면에서 생성되는 마력으로 전신을 강화한 뒤, 그것을 한계돌파로 증폭시키면 단순한 강화보다 몇 배로 증가하게 된다.

‘한계가 없는 건 아니야.’

자신의 의지가 버틸 수 있는 한계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다.

아자젤과 달리 자신은 진정한 한계돌파를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결코 자신의 한계가 아니다.

쿠우웅!!

“커어억!”

아칸의 복부에 신자운의 보디블로가 작렬했다.

기억자로 꺾이는 놈의 턱을 향해 오른 주먹을 위로 올려쳤다.

“……!!”

우수수 이빨이 허공을 날아간다.

머리가 흔들린 충격에 놈의 손에서 검이 떨어진다.

한 대, 두 대, 세대.

신자운의 양 주먹이 빠르게 교차하며 아칸의 머리를 연속해서 강타한다.

인간의 머리였다면 단번에 폭죽처럼 터졌겠지만, 아칸의 머리는 조금씩 뭉개지며 형태를 잃었다.

완전히 곤죽이 되었을 때 거대한 아칸의 육체가 뒤로 쓰러졌다.

“대체…….”

흑영궁은 공격해야 된다는 사실도 잊고 쓰러지는 아칸을 보았다.

아칸은 고위 악마다. 인간 따위에게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을 수준이 결코 아니었다.

‘위험해.’

흑영궁은 재빠르게 신자운을 향해 화살을 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신자운의 눈은 이쪽을 향해 있었다.

분명 자신이 이곳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젠장!!”

이렇게 되면 공격을 하는 것보다 몸을 빼는 게 먼저다.

방금 아칸의 모습을 본다면 자신도 비슷한 꼴이 될 게 분명했다.

아칸과 흑영궁의 실력은 큰 차이가 없었으니까.

‘……위험했군.’

반면 신자운은 도망치는 흑영궁을 보며 내심 안도할 수 있었다.

한계돌파는 무적이 아니다.

사용하고 나면 반드시 반동이 온다. 싸운다면 어떻게든 이기긴 했겠지만, 거기서 자신의 싸움은 끝났을지도 모른다.

“회복한 뒤에 움직여야겠어.”

쓰러져 있는 거대한 아칸의 몸 위에 적당히 걸터앉으며 신자운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역시 정신력을 회복하는 것에는 이거만 한 게 없었다.

***

“늦었다.”

색욕의 영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아름다웠을 마라 파피야스의 궁전은 반쯤 부서져 있었고, 이곳저곳에 혈흔이 튀어 있었다.

“마라 파피야스마저 죽인 건가?”

“그건…… 모르겠어요.”

민수아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아자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미래를 바꾸는 조건을 찾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지금 일을 벌이고 있는 건 아자젤이 확실해졌다.

‘대체 왜?’

나는 혹시나 단서가 있을까봐 부서진 궁의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존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생존자라기보단, 궁을 관리하던 마족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그, 그분들은 애초에 저희들에게 손을 댈 생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덜덜 떨면서 이야기하는 마족의 안색은 허옇게 질려있었다.

두려운 무언가를 본 얼굴이다.

누구냐고 물으려고 해도 집사와 마찬가지로 답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생각해 보면 마몬 때도 다른 이들에 손대지는 않았지.’

집사가 살아 있던 걸 생각하면 아자젤은 자신이 정한 타겟만 노리는 게 분명했다.

“마라 파피야스는 죽었나?”

이들이 색욕의 궁에 머무는 마족이라면 마라 파피야스와 계약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마라 파피야스가 죽었다면 계약이 끊어졌을 터이니 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집사가 마몬의 죽음을 알아차린 그런 이유였으니까.

“아, 아닙니다.”

“뭐? 살았다고?”

“예, 예. 하지만 무언가 거래를 한 것 같았습니다.”

거래라니.

마라 파피야스를 상대로 거래를 했다는 건가.

그렇다면 궁이 부서진 건 무슨 이유인 거지?

“거래의 내용은 또 뭐지?”

“그, 그게. 당분간 숨어 지내라는 것 같았습니다. 한 일주일 정도…….”

뭐야 그게.

애매한 계약 내용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게 다야? 그런데 궁은 왜 무너졌어?”

“그건 7대 악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고…….”

더듬더듬 말하는 마족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잠깐만. 7대 악마의 인정?

“……이거 설마.”

그제야 깨달았다.

아자젤이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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