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26화 (226/332)

# 226

226. 마계(2)

‘7대 악마를 굴복시키라니.’

굴복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상대를 죽이거나, 혹은 패배를 인정하게 만들거나.

말은 참 간단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7대 악마 중 싸웠던 상대는 아바돈 정도.

하지만 아바돈은 7대 악마 중에서도 말단이었고 나랑은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아바돈은 이미 쓰러트렸고…… 내가 동의한다면 남은 건 두 명이잖아? 의외로 쉬울 지도 모르겠는 걸?”

“도와줄 생각이냐?”

“못 도와줄 것도 없지.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다만 꼰대 같은 녀석이 잔소리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꼰대 같은 놈이라니. 아자젤에게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건가?

어쨌든 긍정적인 아자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두 명이라.’

나는 7대 악마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질투의 악마 아바돈.

탐욕의 악마 마몬

색욕의 악마 마라 파피야스.

분노의 악마 아스모데우스

나태의 악마 아자젤

폭식의 악마 벨제부브

오만의 악마 루시퍼

일반적으로 지구에 알려진 칠죄종과는 다르다.

지구에서 알려진 바로 치면 아스모데우스가 색욕의 위치에 있어야 할 테지.

조금 헷갈리기는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순위로 치자면 아자젤은 7대 악마 중 서열이 3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건 녀석이 순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지, 본신의 능력은 루시퍼와 동급으로 알고 있다.

아바돈을 제외하면 이중 내가 싸워본 상대는 벨제부브뿐인가.

마몬과도 만나긴 했지만 제대로 싸운 건 아니었고…….

“분노의 악마는 내가 쓰러트린 걸로 칠 수 없는 건가?”

“네가 쓰러트린 건 아흐리만이니 안 돼. 현재 분노의 악마의 자리는 비어 있는 상태야.”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마몬과 마라 파피야스다.

상대적으로 순위도 7대 악마 중 순위도 낮으니 적어도 벨제부브나 루시퍼와 싸우는 것보단 낫겠지.

대충 결정하고 아자젤을 보자, 녀석은 대충 내가 어떻게 판단했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참고로 네가 싸우자고 해도 상대가 거절할 수도 있어.”

“……뭐?”

“당연하잖아. 갑자기 냅다 싸우자고 해서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마왕의 자리를 건 자격을 증명하는 거라는 걸 잊지 마.”

정론을 이야기하는 아자젤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마땅한 반박이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

아자젤의 답을 들은 세한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돌아갔다.

세한은 돌아가기 전에 지수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지만 지수는 거절했다.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런 지수를 세한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지수가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 세한의 생각을 아는 지수는 조금 가슴이 무거워졌다.

과연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을 세한이 받아 들여줄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언니.”

조용히 앉아 있는 지수에게 수아가 조용히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예요?”

“왜요.”

“악마가 되셨잖아요.”

수아의 말에 지수는 입을 굳게 닫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세한이 린과 함께 페트로이아에 가있는 동안 린은 아자젤의 피를 받아들였다.

몸이 몇 번이나 망가졌지만 초월적인 재생능력이 있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신적인 고통조차 착한아이 특성이 있기에 가볍게 이겨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수는 악마가 될 수 있었다.

아주 강한 악마가.

‘아니야, 아직 부족해.’

아자젤로부터 페트로이아에 있었던 일은 이미 전달받았다.

퍼블리셔의 부사장인 반고를 린이 홀로 토벌했다.

최상급 신격을 얻은 건 당연했고, 그 이상의 경지를 밟은 것이다.

지금의 지수라면 그에 준하는 신격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것만으로는 반고를 이길 수 없었다.

그 이야기는 아직도 세한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린에게 여전히 뒤쳐져 있을 뿐이다.

“언니가…… 세한 님을 마왕으로 만드는 걸지도 몰라요.”

“네?”

“엔딩 광기의 마왕이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지금 언니의 모습을 보면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민수아는 미래를 볼 수 있지만 지수나 세한과 관련된 일에서는 완벽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건 현재 ‘광기의 마왕’이라는 엔딩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한은 마왕이 되었고, 그의 곁에는 지수가 서 있었다.

즉, 지수가 악마가 된 것은 변수가 아니다. 이 상태로 상황이 쭉 흘러가면 세한은 마왕이 되어버린다.

분명 세한도 그것을 알고 있을 터.

주저가 없는 건 퍼블리셔를 물리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마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멸망하는 것보단 다른 결과를 바라며 마왕이 되는 걸 선택하려는 걸 테지.

열쇠의 힘. 그리고 마계의 악마들.

두 가지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면 퍼블리셔조차 함부로 나설 수 없으리라.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하는 위치가 된다.

7대 악마들은 외신급의 존재.

단순히 신격을 넘어 이 우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다.

신들은 하나의 별에 귀속되지만 마계는 모든 별에 영향을 미치는 장소이니까.

수아는 세한이 마왕이 된 것에 지수가 관련이 있으리라 추측했다.

“세한 오빠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면요.”

“언니의 의견은요?”

“그런 건 상관없잖아요.”

지수가 바라는 건 세한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생각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왜 상관이 없어요? 언니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저는 세한 오빠가 싫어하는 걸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따지듯 묻는 수아의 말에 지수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아자젤과는 제법 친해지긴 했지만 다른 이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수아와 간혹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고작 그 정도.

지수의 입장에서는 조금 눈에 띄는 돌멩이에 불과했다.

굳이 말하자면 운세를 볼 수 있는 수정구 같은 느낌이 아닐까.

“……뭔가 이상해요.”

이상한가?

지수는 수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이상할지도.’

그래도 이전보다는 나아진 것이다.

이전이었다면 이렇게 스스로 나서서 아자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우선적으로 세한을 생각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지만, 조금씩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건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

세한은 지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고 했다.

안다. 알고 있지만 쉽게 변하지 않았다.

“수아 씨.”

“네?”

“혹시 특정 행동에 일어날 미래의 변화도 예측 가능한가요?”

“그것이 명백히 미래를 바꾸는 선택이라면……. 근데 지수 언니나 세한님과 관련된 일은 그저 어둡게만 보이기도 해요. 물론 그것 자체가 미래가 변했다는 뜻이지만.”

“……그럼.”

지수는 그녀답지 않게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였다.

그런 지수의 행동에 당황한 건 도리어 수아였다. 그녀는 지수가 자신에게 이토록 조심스러워 하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제가, 이것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있나요?”

“네?”

얌전히 지수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던 수아는 그녀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며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번 본적이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이건?’

이것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알데바란이 지상에 강림했을 때 린 테일러의 손에 있던 모래시계가 아닌가.

아자젤이 말해주길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라는 이름을 지닌 아이템으로, 미래의 시간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한다.

“제가 이것을 사용했을 때.”

그것이 어째서인지 지수의 손에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려주세요.”

***

마계에 가서 어떻게 할지도 고민이었지만, 그밖에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우선 연이 닿아있는 길드들에게 연락해 앞으로의 일을 전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3대 길드를 비롯해, 블루에일에게 연락을 넣어둔 상태였고.

아가트람을 통해 전 세계에 있는 길드들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창천 길드와 펜드래건 길드와는 따로 면담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그렇게 말해도 실감이 나지 않네요. 거인왕이라니…….”

명실공히 중국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는 길드, 창천의 길드장 유엔은 조금 멍한 얼굴이었다.

앞으로 지구가 위험해질 거라고 전해도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진 모양이다.

“지구는 어차피 계속 위험한 상태 아니었나요? 요즘 조금 잠잠해지긴 했지만.”

“그건 우리가 퍼블리셔로부터 게임의 운영권을 빼앗아왔으니까 그런 거야.”

“하긴 그렇다고 했었죠.”

“지금까지는 놈도 계속 우리에게 간만 보는 상태였지만, 반고를 죽였으니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반고라…….”

반고라는 이름이 나오자 유엔은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왜?”

“아뇨, 반고라고 하면 저희 신화에서 나오는 신이니까요.”

아, 그렇지. 반고는 중국신화에서 언급된 적이 있었다.

중국 신화의 창세신이나 마찬가지인 반고가 죽었으니 유엔의 반응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우리는 이제 그런 신들도 이젠 쓰러트릴 수 있는 거군요.”

“평범한 플레이어들로는 무리이긴 하지.”

“그렇겠죠.”

유엔도 상당히 강한 플레이어이긴 하지만 신급의 존재를 상대론 무리였다.

그래도 신격을 지니지 않았거나 최하급 신격을 지닌 존재들 정도라면 현재 지구에서 최상급에 위치한 플레이어들이라면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숫자로 몰아붙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진짜 문제는 중급 신격 이상의 괴물들이다.

“남은 센티넬들은 다 처리했어?”

“네. 이제 중국에 남은 센티넬은 없어요.”

이젠 거의 무시하고 있었지만 센티넬은 본래 신격이 없는 몬스터들 중에는 최강으로 분류된 이들이다. 거기다 시스템의 구속을 받는 놈들이니 이미르가 열쇠를 사용한다면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그때 잠자코 있던 아서가 말했다.

중국의 창천 길드와 함께 현 세계 양대 길드라 불리는 펜드래건의 길드장이 된 그였다.

예전에 보았을 때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관록이 엿보이고 있었다.

“단 한 마리를 제외하면 전부 토벌한 상태야.”

“한 마리라면?”

“드라이그 고흐.”

“아군으로 끌어들여보려고?”

“그래.”

적룡을 말하는 건가.

베히모스와 싸운 이후, 자신의 둥지에서 나오지 않는 센티넬.

분명 현 지구에 있는 센티넬 중 최강의 존재일 것이 분명했다.

신화시대부터 살아온 용이니 아군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확실히 아군이 된다면 좋겠지만, 설득에 응하리라 보나?”

“안 하면 자기 손해인데, 뭘. 그때보다 나도 성장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아서는 피식 웃으며 허리춤을 가리켰다.

그의 허리에는 엑스칼리버가 매달려있었다.

리브라를 제외한다면 최강의 무기. 거기에 영국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무기이다.

브리튼의 수호룡인 드라이그 고흐라면 성장한 아서의 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그쪽은 부탁하지. 유엔도 계속 대비하고 있어줘.”

“알겠어요. 근데 굉장히 바빠 보이시네요?”

“말했다시피 마계에 가야해서 말이야.”

7대 악마 중 누구와 싸워야 할지는 아직 제대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고민한다고 나오는 답도 아니었다. 우선 할 수 있는 일은 다 처리해 둔 뒤, 마계로 갈 생각이었다.

“마계에 갔다가 언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니 돌아와서 말하기엔 너무 늦거든.”

“그럼 다음은 어디로 가실 건가요? 아가트람?”

“아니. 길드는 이제 됐어. 남은 건 이미르가 예상하지 못할 비장의 수를 준비할 뿐이야.”

“비장의 수?”

“그런 게 있어.”

유엔은 아리송한 얼굴이 되었지만 난 굳이 답해주지 않았다.

말한다고 해도 어차피 모를 테니까.

***

“정말 이걸 써먹을 생각인 게냐?”

“불안하긴 하지만, 이거만한 게 없잖아.”

적당히 대답하는 내게 이드라는 눈을 찌푸렸다.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만.”

“어차피 영원히 가둬둘 수도 없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새하얀 문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내가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던 신전 안에 있는 거대한 문이다.

몽상의 신전.

이드라의 힘으로 변모한 장소이자, 한 사람을 가둬둔 감옥이었다.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녀를 인간이라 부르고 싶었다.

결국 그녀도 시스템으로 발생한 게임의 피해자였으니까.

“시간이 상당히 흘렀으니 엘리제도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별을 멸망시킬 수 있을지 모를 녀석을 풀어주려 하다니.”

이드라는 쯧쯧 혀를 찼다.

확실히 조금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린도 있고 나도 강해졌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하긴. 엘리제가 린의 유전자를 촉매로 사용했다고 해도 원본만 하지는 않을 테지.”

엘리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최상위 변신 능력을 지녔고, 린의 초월적인 습득력도 일부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당시엔 신격도 계속 증가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강해졌을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몽상의 신전도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몰라. 그럴 바엔 먼저 우리가 직접 꺼내서 회유하는 게 좋잖아.”

“그래서 지금 꺼낼 생각인 게냐? 설득할 말은 생각해 뒀고?”

“아니. 지금 꺼낼 것도 아니고 설득할 생각도 없는데.”

“그럼?”

당시 엘리제의 상태를 보면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가능성도 있고, 설령 대화를 청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계속 잠재워둔 꼴이니까.

그녀에게 우리는 증오스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증오스런 존재가 나타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

이미르가 지구에 침공하게 된다면 엘리제의 시선은 우리에게 결코 향하지 않을 것이다.

놈이야 말로 엘리제의 삶은 완전히 망쳐버린 주범이었으니까.

말하자면 공공의 적.

그것만으로 엘리제는 우리를 도울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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