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25화 (225/332)

# 225

225. 마계(1)

페트로이아에서 복귀한 지 이틀이 흘렀다.

그동안 린은 눈을 뜨지 않았다. 분명 상처는 다 회복되었는데도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과식을 했잖느냐.”

잠들어 있는 린을 바라보는 내게 이드라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마치 왜 그리 당연한 걸 모르느냐는 눈치다.

“확실히 이 아이는 대단한 재능을 지녔고, 사기적인 특성을 지녔지. 하지만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반고다. 녀석의 기술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으니 반동이 안 올 리가 없잖느냐.”

“그건…… 그렇군.”

잠든 린의 얼굴은 무척 평화로웠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 잠들어 있는 린은 그때 반고로부터 얻은 것들을 소화시키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다.

“언제쯤 깨어날 것 같아?”

“음, 나도 대략적인 것밖에 모른다만. 길면 한두 달쯤?”

“애매하네.”

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미르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현재로선 불안요소였다.

린은 이번 싸움으로 최상급 신격을 손에 넣었으며 특성인 메리수를 완전히 개화시켰다.

거기다 열쇠의 힘까지 다룰 수 있는 린이 계속 잠들어 있다면 여러모로 위험했다.

‘만약 린이 깨어나기 전에 이미르가 쳐들어온다면…….’

내가 이미르를 상대로 싸운다고 하더라도 녀석이 혼자 올 리는 없었다.

특히 반고가 당한 마당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지는 않을 테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건 외신이다.

외신이라면 반고와 비견하는 존재들도 있었고,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정말 위험해진다.

‘녀석들을 이미르가 어떻게 설득할지는 둘째 치고 말이야.’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자면 끝이 없었다.

속이 답답해지니 절로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걱정할 것 없다. 녀석은 관리자이니 시스템에게 권한 요청을 신청했을 것이다. 그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닌데다, 이것저것 준비하다보면 대략 한두 달은 시간이 있을 게다.”

“린이 깨어날지도 모르는 시간이랑 비슷하네.”

“그건 그렇군. 하지만 고민해 봐야 어쩌겠느냐.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잠든 린을 깨울 방법은 지금으로선 없었다.

이드라의 전승스킬을 사용해 꿈속에도 들어가 봤고, 엘릭서를 사용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린은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린을 루크는 그저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뿐이다.

정말 루크에게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보다.”

우울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이드라가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것 같았다.

“그건 보았느냐?”

“뭘?”

“커뮤니티 말이다. 못 봤다면 지금 한번 보거라.”

커뮤니티?

나는 이드라의 말에 커뮤니티를 켰다.

오랜만에 커뮤니티를 켠 탓인지 떠오르는 알림창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켰는데 이게 왜…….”

별생각 없이 커뮤니티를 켰던 나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커뮤니티가 뒤집어져 있었다.

커뮤니티에는 지구의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각종 포털을 비롯해 게임과 관련된 커뮤니티들이 존재한다. 또한 이드라가 영상을 올리던 갓튜브도 있었다.

그 수많은 커뮤니들은 지금 하나의 화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퍼블리셔, 반고의 사망.

그건 커뮤니티의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글이었다.

마치 뉴스와도 같이 최근 페트로이아에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발단이 된 검성과의 싸움.

나와 린이 페트로이아로 향했던 일.

그리고 영웅포식자로 불리며 수많은 영웅들과 싸웠던 일들.

마지막에는 린이 일대일로 싸워 반고를 꺾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거기다 뉴스들만이 아니라 갓튜브에서 올라오는 핫한 영상들도 죄다 나와 린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개중에 1위는 페트로이아의 하늘을 꿰뚫듯이 치솟는 백색의 기둥이었다.

반고의 몸을 반으로 가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후의 일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 기둥이 수직으로 휘둘러진 이후, 반고의 신격이 완벽하게 소멸했으니까.

페트로이아에 존재하던 수많은 신들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다만 문제는.’

내용이 너무 자세하다는 점이다.

빛의 기둥은 둘째치고 우리의 행적이 굉장히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나아가 지구는 퍼블리셔의 미움을 샀으며 거인왕 이미르가 침략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커뮤니티에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구와 관련된 채팅창들은 계속 유입되는 신들로 인해 접속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이 정보를 퍼트린 거지?”

“나다.”

너였냐.

“다 필요한 일이었으니 노려보지 말 거라.”

“무슨 뜻이야?”

“앞으로 우리는 퍼블리셔와 싸워야만 한다. 알고 있을 테지?”

“그래.”

이미 이미르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녀석의 오른팔인 반고를 죽인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분명 지구는 급격히 강해졌다. 그렇다고 퍼블리셔와 싸움에서 맞설 수 있느냐…… 라고 한다면 모른다.”

옳은 말이다. 아무리 반고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퍼블리셔는 동네 구멍가게 아니다.

반고를 제외하더라도 강자는 무수히 많다. 뭣보다 이미르는 열쇠의 반쪽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관리자’다. 관리자의 힘은 내게 있어서도 미지수.

1회차에도 관리자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듣지 못했다.

지구에서 발생한 퀘스트를 모두 클리어했음에도 초월자가 되지 못한 내게는 허락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커뮤니티에 이 정보를 대대적으로 퍼트릴 생각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있고말고. 퍼블리셔에 앙심을 품은 건 우리만이 아니니.”

그제야 나는 이드라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다른 별들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거냐?”

“숨을 죽이고 있는 잠재적 아군들은 무수히 많으니 말이다.”

이드라는 싱긋 웃었다.

하지만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다고 움직이는 녀석들은 없을걸?”

“움직이도록 만들어야지.”

자신만만하게 웃은 녀석은 더 이상 자세한 계획을 말해주지 않았다.

미심쩍기는 하지만 이드라이니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테지.

‘정말 많이 달라졌군.’

이미르와의 싸움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1회차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2회차를 막 시작했을 때도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일이 이제 코앞에 있었다.

거기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1회차의 내가 이드라를 이토록 믿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드라만이 아니라 멸망했을 별에는 수많은 생명이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반드시 이번에는…….’

1회차와는 다른 결말을 만들고 말리라.

***

“이번에도 일을 거하게 벌였네, 까마귀.”

이드라와 헤어진 나는 곧바로 아자젤을 찾았다.

아자젤의 곁에는 늘 그렇듯, 민아의 친구와 민수호, 민수아 남매.

그리고 신자운이 있었다.

다만 의외였던 건 지수도 이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돌아오셨네요, 오빠.”

“어, 뭐.”

얘는 왜 여깄어?

최근 아자젤과 접촉이 잦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거기다 묘하게 분위기도 달라진 것 같은데.’

몸에 미약하게 흐르는 신격 때문인가?

지수는 이제 혈천수라공 극성에 도달했기에 신격을 얻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묘한 느낌이 들었다.

지수가 얻은 신격은 린이나 나와는 달랐다.

마치 악마와 같은…….

“그래서 무슨 일이니?”

그런 내 생각을 끊으며 아자젤이 말했다.

화려한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나른한 표정으로 하품을 했다.

“마계 무투제를 빠르게 열 수는 없나?”

“왜? 아하. 대연회?”

“그런 이름으로도 부르더군.”

마계무투제라는 말에 아자젤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둘째 치고…… 퍼블리셔와 싸우기 위한 대책이니?”

“그래.”

“그건 좀 힘들겠는데.”

역시 그런가.

나는 아자젤의 대답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계에 있는 열쇠 때문이야?”

“그곳에 있는 건 린과 이미르의 열쇠처럼 하나가 반으로 나뉜 게 아닌 온전한 것이니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할 수 있는 열쇠.

그것은 세상에 단 두 개만이 존재했다.

이미르와 린이 각각 반쪽을 지니고 있었고, 합쳐서 하나.

그리고 멀쩡한 하나의 열쇠가 마계에 있었다.

“마계의 열쇠를 얻는다면 퍼블리셔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게 될 거야.”

“그건 그러네. 퍼블리셔 자체를 무너트릴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고 할 수 있지.”

“내가 알기로 마계무투제의 승리자는 열쇠를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고 들었다.”

똑바로 아자젤의 얼굴을 직시하자 녀석은 아리송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마치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냐는 눈치다.

“이드라에게 들었어?”

“비슷해.”

“흐음…….”

아자젤은 묘한 신음을 흘리며 가지런한 턱선을 검지로 슬슬 문질렀다.

“거의 맞는 말이지만 좀 달라.”

“다르다고?”

“마계의 대연회는 열쇠의 자격을 얻기 위한 싸움인 건 맞지만. 그건 곁다리야.”

곁다리라니. 열쇠가 곁다리가 될 수 있나?

“마계무투제는 바로 마왕의 자리를 논하는 싸움이지.”

마왕.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마계에는 마왕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은 지 길디긴 시간이 흘러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7대 악마가 마왕의 역할을 대신하며 마계의 통치를 하고 있었고 어떤 악마도 마왕이라는 만인지상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다.

“마계무투제에서 우승하게 되면 마왕의 자리에 앉게 된다는 건가?”

“정확히는 마왕의 자리에 도전할 권리를 얻게 되지.”

마왕의 자리에 도전할 권리?

이드라에게 들은 바로 마계무투제는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왕의 자리는 내가 알기로 수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어 있었다.

“왜 마왕이 존재하지 않는지 궁금한 얼굴이네?”

“그럴 수밖에.”

“간단해.”

아자젤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직시했다.

“아무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 같아.”

뭔가 애매한 말이었다.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다’가 아니라 ‘못한 것 같다’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야.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네. 극비거든.”

마치 놀리는 것 같은 어조다.

하지만 가벼운 말투와는 달리 아자젤은 결코 내 궁금증에 답해주지 않으리라.

“낙심한 얼굴이네.”

“마계의 열쇠를 얻는다면 상황이 반전되니 당연하지.”

“후후.”

작게 웃은 아자젤은 살며시 자신의 곁에 있는 지수를 돌아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뭐가요.”

“내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아자젤은 지수의 코앞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지수는 그런 아자젤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뭐.”

“그럼 좋아.”

아자젤은 지수의 머리를 손으로 벅벅 쓰다듬었다.

그 모습이 퍽이나 친근해 보여서 도리어 내가 당황스러웠다.

“대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라는 생각을 했지?”

마치 내 속을 읽은 것처럼 아자젤이 말했다.

“그야 이제 내 딸 같은 아이거든.”

뭔 개소리야.

“무슨 뜻이지?”

“아무튼 지금 너에게 중요한 건 마계에 있는 열쇠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겠지?”

“……맞아.”

지수와 아자젤의 관계가 신경 쓰였지만 지금 중요한 건 열쇠였으므로 넘어갔다.

설령 둘의 관계에 물어본다 해도 대답해 줄 분위기도 아니었고.

“마계의 열쇠를 얻는다는 건, 마왕이 된다는 걸 의미해.”

“그건 이미 들어서 알겠어. 그것을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 마계무투제라는 거지?”

“아니야. 그건 정말 아무도 마왕을 하려고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여는 행사니까.”

행사라니. 그래서 대연회라고 부르기도 하는 건가.

확실히 1회차의 기억을 떠올리면 마계 무투제에는 정작 제대로 된 악마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신격도 없는 내가 제법 활약했을 정도였으니까.

‘비록 폭식의 악마와 싸우고 떨어졌지만.’

하지만 마계의 강자라고 칭할 만한 참가자는 폭식의 악마뿐이었다.

마계무투제라는 이름과 달리 참여한 악마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정말 단순한 연회로 취급되는 건지도 모른다.

“근데 마왕이라는 건 악마만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열쇠의 시험만 통과한다면 누구나 가능해. 악마들은 강함을 숭상하기에 시험만 통과한다면 마왕에게 절대적인 충성할 거야. 뭐, 악마가 아니라면 확실히 아쉽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열쇠를 얻어도 보통은 다룰 수 없잖아?”

“말했잖니, 열쇠의 시험이라고.”

시험을 통과하면 굳이 린처럼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열쇠를 다룰 수 있는 건가.

‘대충 알겠군.’

마왕이 열쇠를 다루는 게 아닌, 열쇠를 다루는 자가 마왕이 된다는 뜻이다.

“그 이야기는 마계무투제가 아니라도 마왕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다는 방법이 있다는 거지?”

“정답.”

아자젤은 장하다는 듯 생긋 웃었다.

“7대 악마의 과반수의 동의가 있다면 시험에 도전할 수 있어.”

그들의 동의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아자젤이 말했으니까.

악마들은 강함을 숭상한다.

한마디로 아자젤은 7대 악마 중 네 명을 굴복시키라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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