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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플레이어-220화 (220/332)

# 220

220. 자각(自覺)(3)

반고는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린을 조용히 응시했다.

콜라보 퀘스트를 통해 대략적인 정보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올림포스에서 아끼는 것도 납득이 간다.

이미르와 마찬가지로 열쇠의 반쪽을 지닌 보관자이며 불과 2년만에 상급 신격을 넘어선 괴물.

아스트라이아의 자리를 계승한 차기 정의의 여신.

이 어린아이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수없이 많다.

“사실 나는 이번에 딱히 결판을 낼 생각은 없었다.”

콜라보 퀘스트로 묶이고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어차피 퀘스트의 내용은 ‘가일의 가족’을 구출하는 것이다. 즉, 가족만 내어준다면 반고는 얼마든지 몸을 뺄 수 있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자존심도 상했고, 린 테일러와 김세한의 정보를 얻어갈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힘을 일부를 궁왕과 빙설왕이라 불리는 두 명의 영웅에게 나눠줬다.

그 힘을 이용해 김세한과 린 테일러를 죽이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적다고 생각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얻기를 바랐을 뿐.

“하지만…….”

반고의 발이 움직였다 싶은 순간, 모습이 사라졌다.

린은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반사적으로 우측을 향해 휘둘렀다.

카아앙!!

반고의 손이 린의 검격에 튕겨졌다.

“……상사가 이런 기회를 줬는데 얌전히 놔줄 수는 없지.”

언제 나타난 거지?

반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린의 우측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면, 손에 목을 붙잡혔으리라.

‘신격으로 범위를 통제하는 기술을 익혀서 다행이야.’

식은땀이 이마에 맺혔다.

기척을 느낀 것도, 눈으로 본 것도 아니다.

주위로 퍼트려둔 신격의 그물에 반고가 걸렸을 뿐이다.

가일과 싸우기 전의 린이었다면 첫수에 이미 끝났을 것이다.

‘상대의 공격이 들어오길 기다려서는 안 돼.’

반고의 첫 공격으로 린은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아득히 위에 있는 실력자라는 걸.

“오.”

반고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급속도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린의 신격 때문이다.

푸르던 눈동자가 금색으로 물들며, 머리 위로 둥근 황금색 띠가 만들어지며 빛나기 시작했다.

‘대체 이 계집의 능력은 뭐기에 이렇게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거냐.’

아스트라이아의 능력은 아니다.

중상급 신인 아스트라이아의 능력만으론 한낱 플레이어를 고작 2년만에 상위 신급 존재로 만들 수 없었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강함은 소녀의 힘이다.

단순히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어떠한 특별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열쇠를 몸에 담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평범한 인간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카가가각!!

린의 몸이 사라졌다.

한발을 내딛자 황성의 바닥이 거미줄처럼 쩍 갈라졌다.

바룬다르크 제국의 황성은 특수한 소재와 마법적인 조치를 취해뒀기에 막강한 내구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발을 내딛는 순간, 건물이 무너졌으리라.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해!’

두려웠다. 처음으로 마주한 절대적인 강적이 앞에 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여태 올림포스에서 자신이 무엇을 배웠던가.

다 이런 때를 위해서 배운 것이다.

페트로이아에서 수많은 강자들과 싸우며 그들의 기술을 익혔다.

경험을 배웠다. 그렇기에 린은 반고의 앞에서도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백색의 섬광으로 화한다.

사자왕의 오의인 돌격기.

백색의 섬광은 금빛으로 화했고, 공중에서 반고를 향해 떨어졌다.

콰아아앙!!

반고는 그것을 한손으로 쳐냈다.

그의 왼손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린의 허리춤을 노리며 찔렀다.

그것이 닿기 직전 린의 몸이 바람으로 화하며 순식간에 멀어졌다.

질풍왕이 자랑하던 초고속의 보법이 펼쳐지며 반고의 손을 피하며 홀의 외벽을 타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지금까지 배운 모든 걸 사용해서!’

린의 금안이 한층 빛나며 긴 빛의 꼬리를 만들었다.

빠르게, 더 빠르게.

강하게, 더 강하게.

가만히 서 있는 반고를 향해 린의 공격이 무자비하게 가해졌다.

머리, 목, 허리. 팔, 어깨. 다리.

노리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반고는 모든 공격을 어렵지 않게 양손만으로 튕겨냈다.

단순한 공격으로는 반고의 몸에 흠집도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큰 반원을 그리며 반고의 주위를 회전했다.

머리를 향해 휘둘러진 손을 가볍게 숙여 피한 뒤, 손에 쥔 검을 꽉 움켜쥔다.

심장이 크게 뛰며 마력과 신격이 팔을 타고 흐른다.

강력한 힘의 결정은 검에서 아롱아롱 맺히며, 별빛이 되어 빛난다.

그 숫자는 열아홉.

콰아앙!!

황소의 발걸음처럼 린의 발이 지면을 박찬다.

질풍왕의 보법으로 반고의 등 뒤를 점한 린의 검이 반고의 전신을 노리며 휘둘러진다.

동시에 열아홉 곳.

수천 년간 알데바란이 쌓아온 무의 결정체.

──창성(昌星).

열아홉 개의 검은 수많은 변화를 가졌고, 빛처럼 빠르며 유성처럼 강하다.

여태까지 돌파할 수 없었던 반고의 방어를 뚫고 린의 검이 반고의 목에 닿았다.

“과연.”

분명히 닿았다.

“대략 이 정도로군.”

콰아아아!!

반고의 목에 검이 닿으며 금색이 빛이 목을 가르는 순간, 반고의 몸이 움직였다.

그의 몸만이 아니다. 린의 몸까지 갑자기 뒤로 당겨졌다.

‘아냐, 당겨지는 게 아니야!’

되감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되감아지고 있었다.

반고의 양팔이 움직였고, 린의 팔이 뒤로 젖혀지며, 린의 몸과 다리가 반고에게서 멀어졌다.

창성이 반고를 향해 휘둘러지기 직전으로.

‘움직여야 해.’

린의 눈동자가 떨리며 창성을 휘두르려던 팔을 멈추려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되감아진 시간은 다시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려 했고, 린은 자신이 했어야 할 행동을 반복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정면에서 린의 검을 방어했어야 할 반고의 모습은 이미 없었다.

“알데바란이 제법 쓸 만한 기술을 만들었구나.”

린의 눈동자가 우측으로 움직였다.

고정된 시간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건 오직 눈동자뿐이었다.

허공을 가르는 창성을 바라보며, 린의 우측으로 이동해 있는 반고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조금의 위기감도 없었다.

보이는 건 미약한 감탄뿐.

‘말도, 안 돼.’

그건 언제나 린을 상대하던 상대가 하던 말이었다.

올림포스에서, 그리고 페트로이아에서.

여태까지 린은 강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과 싸웠다.

개중에는 신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신도 린의 앞에서 저런 얼굴을 한 적은 없었다.

린과 마주한 신들은 백이면 백, 그녀의 재능에 경악했고 싸우는 걸 주저했다.

카앙!

경쾌한 소리가 들리며 빛이 반짝였다.

휘둘러진 린의 검이 부러져나가며 은빛의 칼날이 허공으로 빙글빙글 날아갔다.

콰아아앙!!

부러진 검이 린의 망막에 새겨지는 동시에 복부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린의 몸을 보호하던 방벽을 단번에 꿰뚫렸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시간에 얽매여 움직이지 못하는 린의 배에 반고의 무릎이 박혀 있었다.

어린 린의 몸은 포탄처럼 뒤로 튕겨져 나가며, 벽을 몇 개나 부수며 날아가 처박혔다.

“으, 아, 아으윽.”

입가에서 피와 침이 섞여 점액처럼 뚝뚝 떨어졌다.

인간의 손에 얻어맞은 벌레처럼 바르작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검이 부러졌다.

시우가 만들어준 검이 수수깡처럼 부러졌고, 착용하고 있던 방어구도 단 한 방에 대부분 부서졌다.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단 한 방에.

“확실히 어린 신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해.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열쇠의 보관자에 어울리는 신이 될 테지.”

반고는 쓰러진 린을 굳이 쫓지 않았다.

그럴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허나 지금은 아니다.”

저벅, 저벅.

반고는 천천히 걸었다.

쓰러진 린이 있는 방향으로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느긋하게 걸었다.

방해꾼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패왕과 광왕은 애초에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으며 세한은 자신의 상사가 붙잡고 있었다.

“무섭나 보군.”

반고는 부들부들 떨며 일어선 린을 바라보았다.

부러진 검은 바닥에 버렸는지 맨손이었다.

그럼에도 번쩍이는 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떨리는 눈동자는 분명 공포가 담겨 있었고,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충격을 받았음에도.

저런 어린아이가 자신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한 거죠? 시간, 을…… 되감다니.”

“호오. 그걸 느낀 건가?”

린을 향해 다가가던 반고의 발이 멈췄다.

“보통은 시간이 움직이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거늘. 그래서 눈동자가 움직였던 거군.”

반고는 몇 초의 시간을 루프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진 수많은 힘 중에서도 강력한 능력이다.

보통이라면 최상위 신격을 지닌 강력한 신이라도 시간이 반복되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확실히 특별해. 생각이 바뀌었다.”

반고는 엄지로 자신의 아랫입술을 쓸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우리들에게 붙는 것이 어떤가. 섭섭지 않은 대우를 해주지. 다만 열쇠는 우리에게 넘겨야 할 거다.”

“……싫어요.”

“음, 조건이 마음에 안 들었나? 하지만 어차피 너희들에게 승산은 없다. 지금 지구가 퍼블리셔로부터 독립했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다. 그때가 되면 너는 목숨조차 부지할 수 없을 테지. 아니, 애초에 지금 목숨을 잃게 될 거다.”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요!”

“나는 네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

반고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정의의 여신인 너라면 응당 우리의 편이 되어야하는데 말이야.”

“……네?”

“너는 차기 정의의 여신이지. 그런 네가 왜 지구의 편에 서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궁금한 일이야. 정의의 여신이면서 정의를 저버리겠다는 건가?”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린의 머리는 혼란스러워졌다.

반고의 말은 마치 자신들이 정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멋대로 평화로운 별들은 게임으로 만드는 게 당신들이잖아요!”

“그게 뭐가 잘못 됐나? 그리고 별이 게임판으로 변하는 건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다. 시스템의 정하는 거지.”

“시스, 템이요?”

“그래.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우리는 운영을 할 뿐이다. 그렇기에 퍼블리셔. 별을 게임판으로 만드는 건 시스템의 일이다. 주로, 일정 문명 이상을 이룬 별에서 시작하게 된다.”

담담하게 설명하는 반고의 얼굴을 린은 빤히 응시했다.

린은 정의의 여신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선과 악을 판별하며, 거짓과 진실을 알 수 있다.

지금 반고의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심지어, ‘악의’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걸 알게 되자 린은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나쁜 거잖아요! 게임이 시작되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요! 우리도, 우리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시스템이 별을 게임으로 만드는 원인은 위험도다. 문명이 발전하고 그 별이 다른 별에 영향을 끼칠 만한 가능성이 생기게 되면 게임이 시작된다. 혹은 해당 별에서 소모되는 엔트로피가 적어졌을 때도 변하게 되지. 너희 별은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왜, 꼭 게임이 되어야하는 거죠? 그럴 필요는…….”

“있고말고. 그렇지 않으면 발전된 문명을 지닌 별이 다른 별을 침략할 수도 있다. 또는 별의 균형이 무너져 멸망하게 될 수도 있다. 지구도 문명이 조금만 더 발전한다면 자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시스템이 그렇게 판단을 내렸으니까. 또한 게임이 되면 세상에 간섭할 권한이 사라진 신들에게서 포인트를 얻어낼 수도 있지. 신이 사라진 별은 엔트로피가 줄어드니까.”

역시 진실이다.

그렇다면 지구가 게임이 되는 게 옳았다는 건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넌 정의의 여신이지. 정의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의 정의란 세계, 나아가 우주의 섭리를 기준으로 잡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에게 악이 될 수 없지.”

그렇게 말한 반고는 고요한 눈으로 린을 응시했다.

“정 믿을 수 없다면 천칭을 불러라. 그것이 판별해 줄 것이다. 어차피 무기도 없는 정의의 여신이 우리를 심판할 수도 없잖나.”

“그, 그런…….”

“기다려 주마. 특별히.”

이미 고통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머릿속은 훨씬 혼란스러워졌다.

당당한 반고의 음성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자신들이 정의라는 확신이.

“……리브라.”

그렇기에 린은 부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지켜봐주고 보호해 준 여신의 천칭을.

정의의 여신을 상징하는 무기를.

콰아아앙!!

황성의 천장을 꿰뚫으며 유성이 떨어졌다.

분명 보이지 않는 하늘에는 천칭좌가 지상을 가리키고 있을 테지.

린은 손을 앞으로 뻗어, 떨어지는 유성을 손에 쥐었다.

황도 12궁 중 제 7궁. 천칭좌의 리브라.

악을 심판하는 심판의 천칭.

천칭이 ‘악’으로 기울어지게 되면 무엇이든 심판하는 검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럴 리 없어.’

천칭을 쥔 손이 떨렸다.

분명 천칭은 자신과 다르게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다.

반고는 자신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린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천칭을 들고, 반고를 향해 가리켰다.

하지만 천칭은 기울어지지 않았다.

아주 조금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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