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218. 자각(自覺)(1)
“바룬다르크 제국 전역에는 병사들이 가득 깔려 있다.”
제국으로 떠나려는 우리에게 사자왕은 그런 말을 해왔다.
현재 반고는 가일인 척 연기를 하며 제국의 병력을 이용해 우리를 찾는 모양이다.
아마 사자왕의 도시를 떠나는 순간 바로 우리를 쫓아오도록 하겠지.
솔직히 말해서 거슬리는 일이다.
페트로이아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최상급 플레이어들이니까.
신격을 얻지는 못했지만 딱 그 직전에 머물러 있는 이들.
‘페트로이아는 신들이 후하니 전승 스킬을 가진 놈들도 많을 거야.’
보통의 게임과 달리 ‘종교’라는 형태로 힘을 뿌린다.
그렇게 해서 숭배를 얻게 되면 신들도 힘을 얻게 되니 윈윈.
어디까지나 페트로이아니까 받을 수 있는 특혜다.
덕분에 일개 병사라도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따라 전승 스킬을 다양한 전승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신전에 속한 팔라딘 계열의 플레이어가 아님에도.
“저는 병사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요.”
린은 우울한 얼굴로 그런 말을 꺼냈다.
나도 동감이다. 마음 놓고 싸워도 되는 반고나 네 명의 영웅…… 아니, 이제는 두 명인가.
아무튼 걔네는 죽든 말든 신경 쓸 필요 없이 전력을 내도 되지만 병사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페트로이아의 병사들이 아무리 강해도 린이나 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니, 자칫해서 죽일 수도 있었다. 녀석들은 우리의 입장에선 애매하게 강하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라.”
사자왕이 대범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의 별을 되찾는데 가만히 우리가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잖나. 그쪽은 어떻게든 할 테니 자네들은 제국을 향해 쭉 가거라. 대신 하늘이 아닌 육로를 이용하도록.”
“너무 받기만 하는 거 같은데.”
“신경 쓸 필요 없다. 나머지 두 놈은 몰라도 반고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다. 그와 싸우려는 맹자들을 돕는 건 우리로서도 영광이지.”
사자왕은 정말 아무래도 좋은 눈치였다.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아쉬운 눈치였다.
‘이렇게 도와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만.’
하늘로 날아가는 쪽이 빠르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선을 끌어 제국 전역의 병력이 우리에게 모여들 테지. 그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최대한 들키지 않고 제국의 국경을 넘고 황도까지 갈 필요가 있었다.
“성도 테이온에서 황도로 향하는 상단을 알아뒀다. 그들의 마차를 타고 이동한다면 특별한 검문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거다.”
“빚을 많이 지는군.”
“후후, 오히려 빚을 지는 건 이쪽이지. 부디 너무 무리하지는 말도록. 어차피 자네들의 별도 아니잖나. 설령 자네들이 도망치더라도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황도에 도착하면 그대들을 도와줄 자들이 있을 것이다.”
호쾌하게 웃는 사자왕의 모습은 그야말로 남자다웠다.
거기다 딱 봐도 영웅 그 자체라, 루크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
그건 린도 마찬가지였는지 묘한 눈으로 사자왕을 올려보았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보아 린도 루크를 떠올린 모양이다.
“음?”
사자왕은 그런 린을 보더니 툭, 린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린 테일러, 그대는 아직 어린아이다. 하지만 참 어려운 길을 걷는구나. 정의의 여신이라…….”
사자왕은 그렇게 말하며 말을 흐렸다.
정의의 여신.
하지만 린의 ‘정의’란 여태까지 신들이 지켜왔던 정의와 다르다.
“그럼 좋은 소식을 기다리마.”
그것이 사자왕과의 마지막이었다.
다시 성도 테이온으로 향하며 린은 점점 작아지는 사자왕의 성을 조용히 응시했다.
분명 마지막에 사자왕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아저씨, 저는 이제 정의의 여신에 조금은 가까워졌을까요?”
이제 다시 아저씨로 돌아왔나.
보통 때는 그래도 신경 써서 오빠라고 부르더니만.
‘이러면 내가 꼭 오빠라는 말에 집착하는 거 같잖아.’
하지만 아직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도 아닌데…….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아스트라이아 님은 뭐라고 하는데?”
“여신님은 언제나 제가 잘하고 있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그런 것에는 제대로 답변해 주시지 않으시고요.”
애초에 아스트라이아는 린과 하나가 된 이후로 제대로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괜히 말을 걸어 혼란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스트라이아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자신의 모든 걸 린에게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녀는 참 대단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젠 많이 강해졌잖아?”
“전…… 잘 모르겠어요. 확실히 강해진 건 알겠지만 그건 뭔가 좀 다른 거 같아서…….”
“정의의 여신이라는 거?”
“네.”
린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제우스 할아버지나 다른 신님들은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했어요. 신의 정의란 그런 거라고. 세계의 섭리에 따라 천칭을 이용해 심판하면 된다고. 하지만 아스트라이아 님이 말한 건 그런 게 아닌 거 같아서…….”
린은 아직 열네 살이다.
이제 막 사춘기가 온 어린아이일 뿐이다.
나도 이런 아이를 싸움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열쇠를 다룰 수 있는 인간이 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간은 열쇠를 다룰 수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신격을 얻고 한없이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어도 안 된다.
억지로 사용한다면 아주 조금은 가능할지도 몰라도 완벽히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일반적인 신들도 열쇠를 다루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단순히 보관하는 것만 가능할 뿐.
올림포스가 여태 열쇠를 보관했음에도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올림포스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신의 왕 제우스조차 열쇠를 다룰 수 없다.
열쇠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건 ‘관리자’의 자격이 있는 이뿐.
대표적으로 퍼블리셔의 이미르.
또 하나는 이제는 사라진 마계의 마왕.
‘그래서 마계에도 열쇠가 있었나.’
미래의 린이 알려주기 전에는 몰랐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마계에 하나, 그리고 이미르랑 린이 각각 열쇠의 반쪽을 가졌지.’
그 외에 가능한 건 외신들.
외신의 경우엔 본인의 힘으로 열쇠를 억지로 사용하는 것에 가깝다.
이드라는 거기에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힘을 이용한 거고.
인간 중에 열쇠를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린뿐이다.
‘메리수.’
린만이 가진 특성.
그것이 있기에 린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어떤 불합리한 일도, 불가능도 극복한다.
그게 메리수적인 존재니까.
하지만 어린 린에게는 분명 큰 짐일 테지.
‘문제는 린이 아직 메리수를 완전히 자각한 게 아니라는 것.’
힘은 점점 완성되어 가지만 어째서인지 메리수는 완벽히 각성하지 않았다.
미래의 린은 루크가 죽은 후에 곧바로 자각했는데.
그건 린이 자신의 ‘정의’를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분명 힘은 그때보다 강한데 특성이 제대로 각성하지 않는 건 무슨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정의라는 건 뭘까요? 악을 심판하는 게 정의인 걸까요? 애초에 악이라는 건 뭘까요…….”
린은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린의 질문에 답해줄 수 없었다.
***
우리는 사자왕이 말해준 것처럼 테이온에서 상단과 합류하여 제국의 국경을 넘었다.
그의 말처럼 국경의 경계는 살벌했지만 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별다른 수색 없이 우리는 제국의 수도인 황도 다르크까지 무사히 입성할 수 있었다.
황도 다르크.
판타지 세계라기에는 지나치게 발전된 도시의 모습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1회차에는 소문으로만 듣던 장소였다.
페트로이아의 심장이자, 최강의 플레이어 검성 가일의 거처.
“서, 성벽이 장난 아니네요. 거기에 하늘을 보세요! 저, 저거 비행선 아니에요?”
“……그러네.”
왜 사자왕이 무리하게 하늘로 날아가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황도의 하늘에는 린의 말처럼 비행선이 있었다.
아니, 비행선이라기보다는 공중전함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게 실제로 하늘에 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한 걸 테지만…….’
내심 문명은 지구가 앞서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최초의 별을 우습게 본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사자왕의 도시만 해도 현대의 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형태만 중세의 그것이었을 뿐.
황도 상공에 있는 공중전함들을 보고 있자면 어째서 신들이 페트로이아를 괜히 최강의 별로 꼽는지 알 것 같았다.
“다시 보는군, 아가씨.”
황도에서 도착한 우리를 반긴 건 다름 아닌 두 명의 사내였다.
바로 패왕 지너프와 광왕 알데온.
그들은 상단이 도착하기를 계속 기다렸던 모양인지, 우리가 도착하기 무섭게 곧바로 우리를 데리고 으슥한 골목으로 안내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경비병들은 피해서 움직일만한 루트를 미리 알아뒀다는 모양이다.
“도시에서 나오셔도 괜찮은가요?”
“그쪽은 딜런이 어떻게든 해주기로 했지. 어린 아가씨와 청년이 우리 별을 위해서 싸워주는데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나.”
패왕은 푸른 머리칼에 훤칠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패왕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직접 부탁도 받았거든. 되도록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이야.”
“세한…… 오빠가 그런 말을 했나요? 분명 저 혼자 싸우라고 했는데…….”
린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덕분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패왕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되도록 비밀로 해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럴 수는 없지. 두 쪼다는 그렇다 쳐도 반고는 우리가 은밀하게 도와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녀석이 아니야.”
“그렇다.”
묵묵히 있던 광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까마귀, 그대가 강한 건 우리도 안다. 하지만 반고는 그대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
광왕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을 받은 패왕이 말을 이었다.
“외신을 쓰렸다고 했으니 자네도 나름 한 수는 있겠지만, 반고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나는 그들의 말을 납득했다.
확실히 내가 만만하게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바로 하나 있었다.
바로 린이다.
그들은 단지 린이 엄청난 재능을 지닌 인간이자 정의의 여신으로만 알았다.
‘뭐, 린이 특성을 완전히 자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말이 맞는 말이지.’
린은 고민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나는 린이 그 답을 얻을 때 특성을 완벽히 각성하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했다.
하지만 모든 게 내 생각처럼 되는 건 아니다.
만약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면 나는 린을 데리고 곧바로 지구로 피해야만 했다.
그런 가능성도 염두에 뒀기에 이드라에게도 미리 말해둔 상태였다.
‘보험도 하나 들어뒀고.’
아무리 나라도 반고와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도 두 영웅이 도와준다면 죽이는 건 무리더라도 페트로이아에서 쫓아내는 정도는 가능하리라.
놈도 불멸을 죽이는 힘을 지닌 나와 무리해서 싸우고 싶지는 않을 테니.
“아무튼 황성까지 가는 길은 미리 알아뒀지만 정말 문제는 황성에 침입하는 거야.”
패왕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황도에 쫙 깔린 경비병들을 피해 별다른 소란 없이 황성의 근처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군데군데 쓰러진 경비병들의 모습으로 보아 미리 처리해 둔 모양이다.
“보다시피 황성은 이런 상태거든.”
황성 근처에 도착하자 왜 패왕이 침입하는 게 문제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경비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도에서 돌아다니던 경비병들의 수는 말 그대로 장난이라고 할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에 린은 질린 눈치였다.
“예, 예상은 했지만 전부 하급 신격을 지녔네요…….”
그냥 싸운다면 간단히 쓰러트릴 수 있지만 이 정도 숫자라면 얕볼게 아니다.
분명 힘을 소모할 수밖에 없을 테지.
앞으로 싸워야 할 이들이 두 영웅과 반고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거기다 황성에는 결계도 있어서 하늘로 침입할 수도 없지. 참 이렇게 정석적인 방법이 가장 까다롭단 말이지.”
패왕은 짜증이 치민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말처럼 발에 치일 정도로 넘쳐나는 경비병들을 뚫고 가는 건 꽤나 난감한 일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이었다면 말이다.
“특별히 생각해 둔 게 없다면, 여긴 내가 처리해도 되나?”
“뭐?”
“아니, 생각해 둔 게 없으면 그냥 내가 하는 게 빠를 것 같아서.”
패왕과 광왕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어떻게?”
“내가 누구를 아바타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드라의 특기는 꿈과 환상을 다루는 것이다.
그 외에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만질 수 있는 것도 이드라의 특기.
여기서 필요한 건 전자다.
질풍왕에게 사용했던 것처럼 나보다 신격이 낮은 존재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힘.
숫자가 백이든 천이든 똑같다.
신격이 낮은 존재에 한해서 나는 거의 깡패나 마찬가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