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16화 (216/332)

# 216

216. 영웅포식(2)

뭉개진 암살자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건 당사자들만이 아니었다.

정작 기술을 사용한 린도 충격에 쉽사리 후속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소, 소름끼쳐.’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싸우는 건 처음이다.

상대의 뼈가 부러지는 생생한 감촉에 린은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중국에서 싸웠던 투기장과는 전혀 달랐다.

그건 실전이었어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싸움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룰이 존재하는 시합.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압박감이 린의 목을 죄었다.

‘이래선 안 돼.’

앞으로 싸워야할 상대가 산처럼 많은데 겨우 이런 걸로 흔들려서는 안 됐다.

지켜지기만 하는 건 이제 싫다.

아버지와,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싸우고 싶었다.

자신보다 어린 백설이도 이미 몇 번이나 세한과 함께 싸우지 않았던가.

“젠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계집을 죽여야 한다! 슈레드 님과 만나게 해서는 안 돼!”

암살자들 역시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들도 페트로이아에서 손꼽히는 강자들이다. 본능적으로 린을 다른 영웅들과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것을 막지 못한다면, 자신들이 모시는 영웅들이 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쉬이익!!

검은 질풍이 숲의 나무 사이에서 불어오며 기척이 사라졌다.

코끝에 닿는 미풍을 느끼는 순간, 린을 향해 날카로운 비수가 날아왔다.

열 개의 비수가 린의 사방을 점하며 상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비수의 틈 속에서 다섯 명의 암살자들이 나타나며 린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열 명이 비수를 던지고, 다섯이 직접 공격을 가할 생각이야!’

상반신을 날아오는 열 자루의 비수와 하반신을 노리는 다섯 자루의 검.

동시에 두 가지를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그들은 경험이 많고 능숙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린에게 훤히 보였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오는 비수였지만 린의 눈에는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카카캉!!

린이 노린 건 열 자루의 비수였다.

다섯 자루의 비수는 상체를 흔들어 피하고, 나머지 다섯 자루는 검으로 쳐냈다.

“이런 미친!”

린의 검에 튕겨진 다섯 자루의 비수는 도리어 아래에서 덤벼들던 암살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도 어깨나 몸을 노린 게 아닌, 정확히 머리를 향해.

비수를 맞으며 덤벼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앞으로 달려가는 다리를 멈추지 않는다면 머리를 움직여 피할 수도 없는 속도였다.

“젠장!”

결국 다섯 명의 암살자들은 린을 공격하던 걸 멈추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치명적인 빈틈으로 돌아왔다.

‘숫자는 열다섯.’

사자왕의 기술로 쓰러진 네 명까지 합치면 딱 열아홉이다.

열아홉이라는 숫자는 린에게서 한 기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금우 파성권.’

린의 금색 눈동자에 빛이 어린다.

머리 위에는 둥근 띠와 같은 무언가가 형성되며 막대한 신격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신격을 전신에 퍼트리며 하나의 형태로 움직인다.

그것은 열아홉 개의 별.

쿠웅!

황소와도 같은 진각을 내딛으며 린의 검이 움직인다.

“창성(昌星).”

한 개의 검의 열아홉 개로 갈라지며 별무리로 화한다.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물러서던 암살자들을 향해 쏟아진다.

창성은 린이 가진 기술 중 가장 뛰어난 기술이다.

열아홉 개의 검기를 한 명에게 집중시킬 수도 있고, 지금처럼 동시에 다수에게 쏘아 보내는 것도 가능했다.

“크아아악!!”

가장 가까이에 있던 다섯의 암살자는 유성과도 같은 검기를 피할 수 없었다.

검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검과 함께 베어졌다.

신격과 마력을 담은 검이었음에도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떨어져있던 열 명의 암살자들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반으로 갈라지며 죽는 다섯 명의 모습에 막으려던 걸 멈추고 피하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별무리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그들의 가슴팍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크으윽!!”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열 명 모두 상당한 치명상을 입어야만 했다. 허리나 어깻죽지에서 피가 뿜어지며 암살자들은 몸을 최대한 뒤로 날렸다.

‘잠깐만. 그년은 어디지?’

검격을 피하느라 순간적으로 린의 모습을 놓쳤다.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이미 린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진 이후였다.

“젠장! 이 계집이 도망쳤……!”

서걱!

욕설을 내뱉던 암살자의 머리가 사라졌다.

“뭐, 뭐야? 이건!”

갑자기 머리가 잘려나가는 동료의 모습은 어째서인지 익숙했다.

그야 당연했다. 그들이 상대를 죽일 때 보던 광경이었으니까.

어떠한 기척도 없이, 검은 질풍이 지나가며 머리가 떨어진다.

질풍왕 슈레드의 직속부대인 그들의 소문이 딱 그러했다.

‘설마, 이년!’

린의 기척은 완전히 사라졌다.

고요한 숲속에서 바람만이 불어올 뿐이다.

‘우리의 기술을──!’

생각이 미처 끝나기 전에 시야가 회전했다.

그의 눈에는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자신의 육신이 보였다.

***

내가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피바다였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앉아있던 린이 나를 올려보았다.

“저, 전부 쓰러트렸어요. 네 명은 살아 있……지만요.”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린은 애써 그런 내색을 감췄다.

참 대견한 모습이었지만 씁쓸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만든 거지만.’

어린 린에게는 가혹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린이 꼭 필요했다.

“이놈들의 기술도 모두 익혔어?”

“네. 아마도요.”

녀석들과 싸우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린은 암살자들의 기술을 완벽히 ‘먹는 데’ 성공했다.

‘이제 암살도 잘하겠네.’

딱 보니 이놈들은 보통 암살자들이 아니었다.

중하급 신격을 지닌 플레이어가 어디 흔한가. 아무리 페트로이아라도 최상위 플레이어일게 분명했다. 그런 놈들이 암살자다. 내 생각엔 이놈들보다 뛰어난 암살자는 아무리 페트로이아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설마 또 습격하지는 않겠죠…….”

“아마 더 이상은 없을 거다. 만약 있어도 그때는 내가 싸울 테니 쉬어.”

“저, 정말요? 하아,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린은 길드에 있을 적에 늘 안고 있던 토끼 인형처럼 검을 꽉 껴안았다.

“편히 쉬고 있어. 나는 마무리하고 올 테니.”

“네…….”

린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텐트를 만들어 준 후, 나는 암살자들의 시체를 치웠다.

그리고 살아남은 네 명에게 다가갔다.

나를 감시하던 암살자는 린이 네 명을 살려둔 것을 확인한 후에 깔끔하게 처리해 버린 터라 살아남은 암살자는 이 네 명이 전부였다.

“크윽! 어서 죽여라!”

전신의 뼈가 부러져 시체처럼 누워 있는 놈들을 바라보자 녀석들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보통 암살자들은 그런 말을 내뱉기 전에 스스로 자결하지 않냐? 하기야 이런 상황을 상정했을 리가 없지.”

“……젠장!”

중하급 신격을 지닌 암살자집단이 암살 실패를 염두에 뒀을 리가 없다.

분명 웬만한 일에는 움직이는 일조차 없었을 고급인력.

쓰고 버리는 일반 암살자처럼 자결에 필요한 장치를 마련해 뒀을 리가 없다.

“너희들은 얌전히 너희 주인이 있는 곳을 안내해 줘야겠어.”

“크, 크흐흐흐. 그런 짓을 할 바에는 차라리 혀를 깨물고…… 크헉!!”

녀석이 혀를 길게 빼물고 깨물기 전에 주먹으로 후려쳤다.

갑작스런 주먹질에 녀석의 머리가 연신 돌아갔다.

“아흐허흐허하.”

깔끔하게 이빨을 죄다 부러뜨리자 놈의 입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만 흘러나왔다.

“뭐라는지 모르겠네.”

“하으흐흐하어하!”

“어차피 정보는 입으로 들을 게 아니었으니 상관없거든?”

“!!”

녀석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리고 애벌레처럼 몸을 꿈틀 거리는 놈의 이마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한숨 푹 잠이나 자. 좋은 꿈꾸고.”

내 손가락을 타고 신격이 흐르며 녀석이 이마에 흘러들어갔다.

부릅뜨고 있던 눈이 스르르 감기며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무, 무슨 짓을……!”

“자, 너희들도 똑같이 하자.”

경악한 얼굴로 바라보는 나머지 세 명도 방금 전의 녀석처럼 잠재웠다. 혀를 빼물고 자살하려고 하면 이빨을 부러트려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 그럼 정보를 읽어보실까.”

이래뵈도 나는 명색의 외신을 아바타로 둔 몸이다.

그리고 그 외신의 이명은 ‘꿈의 마녀’였다.

당연히 꿈 속으로 들어가 상대의 기억을 읽는 것 정도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

성도 테이온.

질풍왕 슈레드가 지배하는 도시.

새하얀 건물들이 늘어선 테이온은 페트로이아에 있는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런 테이온의 가장 높은 탑에서 질풍왕 슈레드는 근심어린 얼굴로 앉아 있었다.

“……소식이 없군.”

까마귀와 접촉을 했어도 한참 전에 접촉했을 텐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설마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하고 모두 죽은 건가?

만약 그렇다면 아무리 질풍왕이라 불리는 자신이라도 승산이 없었다.

까마귀를 죽이기 위해 보낸 암살대는 슈레드가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최강의 집단이었으니까.

‘암살대만 먼저 보내길 잘했어.’

만약 섣불리 자신도 동행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놈은 암살대를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은 실력자일 확률이 높으니까.

‘우선 기다려 보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차분히 고민하던 슈레드는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깐, 설마!”

아니, 단순히 기분으로 치부할 게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현재 슈레드가 있는 장소는 성도 테이온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바로 탑을 빠져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곧장 하늘로 날아올 줄이야!’

슈레드는 옆에 놓아두었던 두 자루의 검을 뽑아들며 일어섰다.

콰창!!

그와 동시에 창문이 깨지며 검은 깃털이 흩날렸다.

까마귀의 깃털과 같이.

슈레드는 눈을 찡그리며 깃털 속에서 내려서는 두 명의 인영을 응시했다.

이명처럼 까마귀 같은 남자와, 황금처럼 빛나는 소녀.

사자왕의 도시에서 목격되었다는 두 명이 확실했다.

“무례한 놈들이군. 남의 침실에 멋대로 발을 내딛다니.”

“암살자들을 보낸 놈에게 듣고 싶지는 않은 말이네.”

“……역시 알고 온 건가?”

“아니면 다짜고짜 이렇게 쳐들어올 리가 없잖아.”

이죽거리며 말하는 세한의 모습에 슈레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놈들이 함부로 나에 대해 발설할 리가 없을 텐데?’

분명 모종의 방법을 통해 정보를 얻은 게 분명했다.

자신이 키운 암살대는 단순히 고통을 받는다고 정보를 부는 이들이 아니었다.

“왜 반고와 협력한 거지? 너희들은 이미 부귀를 누리고 있을 터. 엔딩으로 향하는 페트로이아에 분란을 만들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흥, 네놈은 알 필요 없다.”

슈레드는 오만한 태도로 말했지만 속은 초조해지고 있었다.

기회만 보인다면 바로 몸을 뺄 생각이었다.

상대의 실력을 모르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싸울 생각 따위는 없었다.

‘나보다 빠른 자는 존재하지 않아. 설령 신이라고 해도 나를 쫓아올 수는 없다.’

그렇기에 질풍왕.

순수한 전투능력은 다른 영웅들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단순한 ‘빠르기’만 치자면 그 어떤 이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었다.

신중에서 가장 빠르다는 지구의 신, 헤르메스 정도가 아닌 이상 절대로.

“생각이 많아 보이네. 너 바로 튈 생각이지?”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칠 영웅 중 하나, 질풍왕 슈레드다. 그런 짓을 할 것 같나?”

“할 거 같은데. 사자왕이 너는 무척 신중한 성격이라 혼자서는 절대 싸우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고. 바로 튈 테니 조심스럽게 덤비라나?”

사자왕 자식, 쓸데없는 말을 하다니.

슈레드는 입술을 실룩이며 천천히 호흡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만드는 편이 나았다.

“그럼…… 그 말을 들었어야지.”

쿠웅!!

슈레드는 서 있던 자세 그대로 발을 굴렀다.

쩌저적!!

그들이 지금 서있는 장소는 대지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건물의 안.

그것도 높디높은 탑의 위.

준초월자에 영역에 있는 슈레드가 발을 구르자,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무너져내렸다.

순식간에 땅으로 꺼지듯 슈레드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 틈에 바로 밖으로 빠져나간다!’

아무리 놈이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해도 아래로 떨어진 자신의 위치를 바로 파악하지는 못했을 테지. 아래층의 바닥에 발이 닿기도 전에 슈레드는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파앙!!

허공을 박차며 그의 신형이 쏘아졌다.

부서지는 잔해를 관통하며 탑 밖을 향해 달려가는 슈레드의 모습은 그 이명처럼 가히 질풍과도 같았다.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던 그의 두 다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탑을 빠져나와 동료들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려던 슈레드의 앞에 세한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분명 방금 자신은 탑의 창문을 깨며 나왔을 텐데, 다시 탑 안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방금 자신의 발로 부서트린 방의 안이었다.

“사자왕이 경고까지 했는데 내가 그냥 왔을 리가 없잖아.”

“까마귀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창문 깨고 들어오기 전에 네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미리 장치를 마련해 뒀거든. 내가 창문을 깨기 전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

“……!”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탑을 향해 날아오는 까마귀이 기척을 느꼈다.

“내가 말이야 환상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만들 수 있어. 나보다 신격이 높은 상대는 함부로 넣을 수 없는데, 다행스럽게도 내가 지금 신격이 꽤 높아.”

“꿈의 마녀……의 전승 스킬인 건가?”

“정답이다. 알고 있는데 왜 아무런 대비를 안 했냐?”

대비를 안 한 게 아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정의의 여신과 까마귀의 힘만을 생각하느라 녀석이 아바타로 삼은 신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고로 지금 네가 있는 곳은 탑처럼 보이지만 내가 만든 환상으로 덧씌운 공간이다. 네가 아무리 발을 빠르게 놀려봐야 도망칠 수 없다는 거지.”

“……내게 뭘 원하는 거냐.”

“뭘 원 하냐고? 특별히 그런 건 없어.”

세한은 피식 웃으며 곁에 서있는 린의 등을 두드렸다.

마치 앞으로 가라는 것처럼.

“나는 먹이를 잡아뒀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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