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10화 (210/332)

# 210

210. 검성(劍聖)(2)

대체 누구지?

민아는 린을 안고 크게 뒤로 물러서며 상대를 살폈다.

역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이쪽을 바라봤지만 민아는 그런 반응을 신경 쓸 수 없었다.

‘린을 순식간에 쓰러트렸어.’

품에 안겨있는 린의 목 양쪽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민아는 사내의 검이 휘둘러지는 걸 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린이 쓰러지고 있었을 뿐이다.

「망했네. 저 남자, 페트로이아의 검성이야.」

“페트로이아의 검성이요?”

그런 민아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듯 어릿광대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가일 바룬다르크. 페트로이아의 검성이자 현재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정점이지.」

모든 플레이어들의 정점.

다른 누구도 아닌 어릿광대가 이렇게 단언할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강자인 건 확실했다.

“어떤 신의 아바타인데요?”

「아바타가 아니야. 세한이나 지수처럼 어떤 신도 그를 아바타로 두지 못했지. 애초에 그는 최상급의 신격을 지닌 인간이니까.」

최상급의 신격이라는 말에 민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직 세한도, 그리고 린도 최상급 신격의 벽을 넘지 못했다.

물론, 니알라토텝과 같이 최상급 신격을 지닌 신과 싸운 적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이지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민아는 막연하게 플레이어 중에 세한이나 린을 넘어서는 신격을 지닌 인간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봐, 아가씨. 순순히 본거지로 안내해준다면 아저씨도 더 이상 위해를 가하지 않아. 그러니 얌전히 항복하는 게 어때?”

능글능글한 어조로 말하는 사내, 가일의 말에 민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말해 린을 단번에 쓰러트린 상대를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으…….”

정신을 잃은 린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민아는 그런 린을 꽉 안으며 백설이에게 눈짓했다.

‘그렇다고 얌전히 본거지로 안내해줄 수는 없어.’

그의 목적이 뭔지는 알 수 없다.

세한과 싸우기 위해 왔을 수도 있지만 이드라를 노리는 걸 수도 있고, 퍼블리셔에서 게임을 다시 탈취하기 위해 보냈을 수도 있다.

뭣보다 본거지에는 일반인들이 있었다.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도 보관되어 있었고 운영실도 있기에 순순히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조금만 버티면…….’

세한이 올 것이다.

서울 전역에 퍼져있는 까마귀의 눈을 통해 이미 상황을 봤을 테니 길어야 10분 내에 도착할 테지.

그러니 자신은 딱 10분만 버티면 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이군. 그런 생각 좋아.”

“……그럼 기다려주시면 어때요?”

“그거 미안하네. 평소라면 귀여운 아가씨의 말이었으니 그렇게 했겠지만 지금은 안 돼.”

검이 천천히 움직인다.

조금의 승산을 찾자면, 상대는 지금 자신을 얕보고 있다는 점이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상당히 급해서 말이야.”

민아는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검이 움직이는 걸 본 것은 아니다. 반사적으로 본인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쉬익!!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가 방금 민아가 서있던 장소를 스쳐지나갔다.

‘검을 휘두른 거야?’

가일의 자세는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뽑았던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는 여유까지 보였다.

「저건 너를 얕봐서 저렇게 하는 게 아니야. 발검하기 위한 준비자세일 뿐이지.」

동시에 검이 어디로 휘둘러질지 짐작하게 어렵기 만들기 위함이라고 어릿광대는 말했다.

“이거 놀랐는데. 설마 아가씨도 이렇게 감이 좋을 줄은 몰랐어.”

가일은 진심으로 놀랍다는 얼굴이었다.

그야 민아는 린처럼 어떤 신격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 중에서는 제법 우수한 능력치를 지닌 건 분명했지만 가일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낮았다.

그런데도 피했다는 건 민아의 감이 놀랄 정도로 날카롭다는 증명이었다.

‘저 금발의 여자아이만 조심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가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민아를 응시했다.

견제용으로 가볍게 날린 검격이었지만 설마 피할 줄은 몰랐다.

‘정말로 이 별은 수준이 높구만.’

그 이미르가 그렇게 나서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것저것 가르쳐주려 했을지도 몰랐다.

‘음?’

민아를 응시하던 가일은 문득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긴장된 얼굴로 바라보는 민아의 품에 있어야할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카아앙!!

“읏!”

허공에서 붉은 빛이 튀기며 린의 신형이 크게 밀려났다.

방금 전까지 정신을 잃고 있던 린이 어느새 가일의 후방으로 접근하여 검을 휘두른 것이다.

“제법이야. 아가씨들.”

가일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민아가 가일의 검격을 피하며 안고 있던 린을 백설이에게 던졌고, 백설이는 그 틈에 기절한 린을 회복시켰다. 민아가 자신의 검격을 피했다는 점과, 기절한 린이 이토록 빠르게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탓에 틈을 내어준 것이다.

‘저 뿔 달린 여자아이가 회복 마법을 사용하는군?’

그것도 그가 미처 감지하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마력을 운용하여 린을 처리했다.

그것만으로 저 소녀의 마법실력이 보통이 아님임을 알 수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구만.”

어린 여자아이들이라 너무 얕봤던 모양이다.

철컥, 소리를 내며 뽑혔던 가일의 검이 납검됐다.

‘빈틈이 없어요.’

린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주변을 맴돌았다.

이미 서울역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이곳을 빠져나간지 오래였다.

여유공간이 생긴 덕에 린은 한결 여유롭게 가일의 주위를 돌려 틈을 엿봤다. 정면에서 덤벼들었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처음의 격돌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린!”

백설이의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뿔이 번쩍였다.

마법과 다르게 기린이 뿔에서 쏘아진 빛줄기는 직선으로 뻗어나가며 가일의 가슴팍을 노렸다.

폭이 좁은 머리보단 가슴을 노려 가일을 당황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카가가각!!

동시에 금색의 빛이 둥근 궤적을 그리며 서울역의 지면을 긁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움직인 탓에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에 산산이 부서져나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아압!!”

기합과 함께 린의 검이 가일의 몸을 노렸다.

그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던 바로 급소를 맞추기 위해서.

콰창!!

“……!”

하지만 검이 그의 몸에 닿기 직전 무언가에 부딪친 것처럼 단번에 부서져나갔다.

아무리 현재 린의 손에 쥐어진 검이 리브라가 아니었다지만 시우가 공을 들여 만든 무기였고 린의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 수수깡처럼 부서지는 검의 모습에 린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그뿐이 아니다.

가일의 두 발은 지면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윽!!”

거기다 린의 바로 앞에는 백설이가 쏜 빛줄기가 날아들고 있었다.

분명 그의 가슴팍을 노렸어야 할 빛이 그의 몸에 닿기 무섭게 궤도가 수정되며 린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콰아앙!!

린은 그것을 자루만 남은 검을 휘둘러 허공에서 파괴시켰다.

산신이 부서지는 마력의 잔류와 함께 가일의 검이 나타났다.

캉캉캉!!!

가일의 검 린의 검자루가 연속해서 교차했고, 린은 가일의 턱 아래로 발차기를 날려 그의 몸을 떨어트린 뒤, 크게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은 당하지 않아요.”

“듣기는 했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능력이군. 바로 막아낼 줄이야.”

“실험해본 건가요?”

“궁금하잖아. 조금은 과장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었네. 아이고, 놀라라.”

어깨를 으쓱하는 그의 모습에 린은 입술이 바싹 마르는 걸 느꼈다.

방금 전 목을 노리며 휘둘러진 검격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제가 오만했어요.’

세한도, 올림포스의 신들도 다들 대단하다고 말해준 탓에 린은 상당히 자신감에 차있었다.

하지만 가일의 검은 그런 린을 비웃는 것처럼 가볍게 린의 방어를 꿰뚫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단순한 검술…… 만은 아니에요.’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

가일은 이곳에 있는 모두의 움직임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

가공할 수준의 검술은 둘째였다.

“이제 슬슬 본거지를 알려줬으면 좋겠어. 이정도면 됐잖아? 아가씨는 아직 무리야.”

그렇게 말하던 가일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작은 벌레가 잡혀있었다.

“아무리 재주가 많아도 안 된다니까.”

가일은 그 벌레를 가볍게 던졌다.

그러자 던져진 벌레가 커지며 단숨에 민아의 모습으로 변했다.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하하하!”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벌레의 모습으로 몰래 접근했건만 가일은 그것도 놓치지 않았다.

가볍게 웃는 가일은 세 여성의 의욕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선 전부 쓰러트리고 생각을 해봐야겠어.”

그의 손이 검 자루를 천천히 쥐었다.

린은 그가 검을 뽑는 모습을 놓치지 않도록 눈을 부릅떴다.

칭.

검이 뽑히는 날카로운 소리.

그와 동시에 린과 백설이, 그리고 민아를 향해 검기가 비처럼 쏟아졌다.

“엄마야!!”

린과 백설이는 그것을 각자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막아냈지만 상대적으로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민아는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린이나 백설이가 도와주기에는 검기가 워낙 매서운 터라 나설 수도 없었다.

쿠우웅!!

“오.”

그런 민아의 앞에 거대한 금속덩어리가 떨어지며 날아들던 검기를 막아냈다.

오리하르콘 덩어리로 만들어진 덩어리가 사과처럼 깎여나가며 금색 가루가 모래처럼 흩날렸다.

“뭐, 뭐지. 아, 설마?”

갑자기 떨어진 오리하르콘 덩어리에 당황했던 민아였지만 이내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그녀가 아는 한 한 명뿐이었으니까.

“애들한테 묻기 전에 먼저 목적을 말하는 게 어떻습니까?”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검은 깃털이 흩어지며 민아의 몸을 감쌌다.

검은 깃털들은 민아를 지키는 것처럼 빙빙 회전하며 뒤늦게 떨어지는 검기들을 튕겨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싸울 일도 없었을 텐데요.”

“내가 말주변이 좀 없어서.”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거겠죠.”

검은 날개를 펼친 세한이 천천히 지면에 내려섰다.

급하게 날아온 터라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마치 나를 잘 아는 눈치인데. 내가 그렇게 유명했나?”

“당신보다 유명한 플레이어가 어디 있습니까.”

“적어도 지구에서 아는 사람은 없을 걸?”

“아는 신은 많죠.”

갑자기 나타난 세한의 모습에도 가일은 조금의 당황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늘게 뜬 눈으로 세한을 관찰할 뿐이었다.

‘정말로 이 남자가 외신을 죽인 건가?’

겉으로만 보면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냉철한 시선도, 단련된 몸도 확실히 실력자의 그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외신을 죽일 수 없다.

가일이라도 외신급 존재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최상급도 아닌 상급 신격을 지닌 플레이어가 외신을 죽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들었습니다.”

“그래, 콜라보 퀘스트 때문이야.”

“그것만으로 당신이 직접 이곳에 올 리가 없죠.”

“그럼?”

싱긋 웃고 있는 가일의 모습은 마치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얼굴이었다.

‘참 방심시키기 좋은 얼굴이야.’

성격도 얼굴처럼 가벼운 사람이었지만, 그는 명색이 최강의 플레이어다.

그를 움직이는 건 이미르도 쉬운 일이 아니다.

힘으로 억누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며, 물욕에도 욕심이 없는 자니까.

그렇다면 그를 어떻게 움직였는가.

세한은 이곳에 오며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1회차의 가일 바룬다르크와 제대로 대화해본 적은 없었지만 정보는 자세히 알고 있었다.

막강한 실력을 지닌 그가 지닌 약점이라고 한다면 하나뿐이다.

“가족.”

웃고 있던 가일의 얼굴이 굳었다.

“가족이 볼모로 붙잡힌 거겠죠.”

“……놀라라. 정말 나를 아나? 듣기는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예리한 놈이네.”

그의 오른손이 천천히 검으로 향했다.

방금 전과 달리 그의 손에는 가벼움이 사라져있었다.

“페트로이아는 퍼블리셔의 관할이니 틈을 노려 가족을 제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다만 그런 일을 벌이려면 가일의 이목을 피해 가족들에게 접근했을 테고, 그런 게 가능한 존재는 퍼블리셔에서 단 두 명뿐이다.

“거기다 가족을 사로잡은 상대가 반고라면 당신이라도 섣불리 덤빌 수 없었을 겁니다.”

“…….”

그의 입가에 머물러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살기는 없었지만 그의 눈에는 세한을 향한 경계심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과연, 과연. 과연. 정확해. 그 거지 같은 거인 놈들이 내 가족을 잡았지. 그리고 너를 죽이고 인간이 된 외신을 납치하라 명했다. 될 수 있다면 린 테일러라는 아이도 말이야.”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격한 분노가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가족을 사로잡은 이들을 찢어 죽여 버리고 싶다는 듯이.

“그러니 미안하다.”

꽃의 분말이 흩어지듯 잿빛의 신격이 넘실거리며 사방으로 퍼졌다.

“죽어줘.”

칭.

검이 겁집에서 뽑히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서울역이 반으로 잘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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