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07화 (207/332)

# 207

207. 나아가는 세계(1)

1회차의 이드라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플레이어들이 도착했다.

한국의 플레이어들뿐 아닌 타국의 플레이어들까지 우르르 몰려왔다.

그야 그렇겠지.

하늘이 부서지고 거대한 눈동자가 나타났는데.

겉모습만 보자면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한 모습이었다.

아마 그것을 목격한 세계 여러 곳에서도 지금 한창 난리일 것이다.

“정말 세한 씨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저는 솔직히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눈이 안 보이기에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창우는 누구보다 더 큰 공포를 느꼈다.

세한을 믿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도라는 게 있었으니까.

“수린 언니는 기분 좋아 보이네.”

“대단한 마도서를 두 권이나 얻었거든.”

민아의 말처럼 이수린은 현재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마 이번 원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건 바로 이수린일 테니까.

르뤼에 이본은 물론, 네크로노미콘까지 그녀의 품에 들려 있었다.

보통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모리안과 이드라가 네크로노미콘에 담긴 광기를 억제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을 사용하는 게 아닌 단순한 연구라면 얼마든지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솔직히 네크로노미콘은 좀 불안한데…….’

마음 같아서는 모르간에게 맡겨두고 싶었다.

지구에 존재하는 마법사 중에서는 모르간만 한 이가 없으니.

하지만 그녀의 성격상 네크로노미콘 같은 흉흉한 물건을 그녀의 창고에 둘 리도 없으며, 귀찮은 일에 말려들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차선책으로 모르간을 제외하면 가장 대단한 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이수린에게 맡겨두는 편이 나았다.

‘혹시 모리안이 도와준다면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르뤼에 이본이나 네크로노미콘이나 세상에 다시 없을 마도서다.

그것을 다룰 수만 있다면 앞으로 있을 일에 큰 도움이 되리라.

반면 그다지 얻은 게 없는 민아는 볼이 퉁퉁 불어 있었다.

“근데 솔직히 르뤼에는 우리가 가져야 하는 거 아냐? 왜 굳이 나눠?”

“아서라. 욕심을 부려서 좋을 것 없다. 저 큰 땅덩어리를 우리가 관리할 수 있겠냐? 그리고 미스틸테인 줬잖아.”

“그건 내 거가 아니라 어릿광대 거잖아!”

이젠 아주 자기 신에 ‘님’자 조차 붙이지 않는다.

어릿광대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만.

“나도 창우 오빠처럼 무기라도 얻었으면 몰라. 씨잉, 고생만 하고.”

“하, 하하.”

창우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의 손에는 바르자이의 언월도가 들려있었다.

“저에겐 좀 과분한 무기인 것 같지만 말입니다.”

검을 쓰는 창우에게 바르자이의 언월도는 낯선 무기였지만 그보다 저것을 더 잘 다룰 사람은 없었다. 바르자이의 언월도의 힘에 미치지도 않으며, 심안을 통해 경계를 보는 것도 능숙했다.

만약 창우가 저것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지수나 린 정도가 아니면 감히 상대할 수조차 없으리라.

바르자이의 언월도는 린이 지닌 ‘리브라’를 제외하면 단연 최고의 무기니까.

그런 대화를 설렁설렁 나누며 우리는 현균이 최종 점검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대략 이틀이 지났을 무렵, 돌아갈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짜잔!”

한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르기 직전 이드라가 기이한 포즈를 취하며 우리의 앞을 막았다.

디어사이드의 길드원들은 다들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그런 이드라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유일하게 대답한 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민아였다.

“또 왜 그래요? 돌아갈 때가 되니 고향에 남고 싶어요?”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달라진 점이 없냐고 말하는 것이다!”

“달라진 점?”

그렇게 말해도 특별히 달라진 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좀 더 신격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정도?

‘잠깐, 신격이 늘었다고?’

그럴 리가 있나.

지금 이드라는 어디까지나 조금 특이한 플레이어일 뿐이었고, 신격을 얻을 일은 없었다.

나처럼 다른 신의 신격을 흡수하지 않는 이상에야…….

잠깐만, 신격을 흡수했다고?

“너 설마!”

“이제야 눈치챘구나! 그렇다, 나는 한 단계 진화했도다. 신과 하나가 된 피콜로처럼 녀석을 흡수했다.”

신과 피콜로라니. 이 녀석 만화는 또 언제 본 거지.

“먼지가 되어 본래 세계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

“음, 그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동일한 존재가 같은 시공에 존재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내가 흡수한 것이지. 애초에 ‘나’니까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럼 저쪽 우주에는 네가 없는 거냐?”

“어차피 이쪽은 니알라토텝이 죽었지 않느냐. 신이 죽는다고 해도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는다. 더군다나 외우주는 딱히 관리해 줄 생명체도 없다.”

과연 그런가.

나는 이드라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무거웠던 가슴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냥 보내기는 미안했는데, 다행이네.”

“그럴 거라 생각했다. 계속 어두운 얼굴이었으니 말이야.”

아마 이드라가 여태 조용히 있었던 건 흡수한 힘을 갈무리할 필요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쇳덩이를 만든 기억도 있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테지. 신격은 뭐…… 엄청나게 늘지는 않았다만 그런 류의 기적은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으로 해결이 가능하니.”

수억 년 동안 쌓인 이드라의 기억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어쩌면 이드라와 스킬을 공유하고 있는 내게도 새로운 전승스킬이 생길 수도 있었다.

‘뭣보다 이제 이미르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하나 사라졌어.’

외신처럼 불멸의 존재인 이미르도 죽음을 부여한다면 니알라토텝처럼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녀석은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겠지만…….

“참, 그렇지. 나의 신이여. 그래도 조금 귀찮아질 수는 있겠구나.”

“뭐가?”

“니알라토텝은 이미르와 제법 교류가 있던 사이다. 아마 녀석의 귀에 니알라토텝이 죽었다는 사실도 알려졌을 것이다.”

“그건 별로 반갑지 않은 소리네.”

알려진다면 좀 더 후에 알려지길 바랐다.

만약 녀석이 니알라토텝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이미 눈치챘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미르,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놈이 이쪽에 간섭할 수 있는 수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콜라보 퀘스트 정도.

하지만 콜라보 할 수 있는 세계 중에서 지금의 우리와 맞설 수 있는 세계는 지극히 적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페트로이아인가.’

그곳에는 초월자가 있었다.

검성(劍聖) 바룬다르크가.

***

영겁과도 같이 긴 시간을 살아온 이미르는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는 일이 없었다.

웬만한 일은 대부분 겪어본데다 무덤덤한 성격 때문이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지?”

하지만 이미르는 지금 놀라고 있었다.

그 자신도 놀랄 만큼 격하게.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니알라토텝은 르뤼에에서 까마귀자리, 김세한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요그 소토스의 소환은 성공했으나…….”

“요그 소토스를 소환했는데 지구가 무사할 리가 없잖나!”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요그 소토스가 아닌 다른 뭔가가 소환된 것 같습니다. 어째서인지 꿈의 마녀와 흡사해 보였습니다만…….”

“꿈의 마녀는 까마귀의 곁에 있는데 또 소환됐을 리가 없지. 분명 뭔가 다른 게 얽혀 있는 모양이군.”

이미르의 앞에 부복한 채 보고하던 거인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까마귀에게 도움을 줬으며 그 힘으로 니알라토텝을 죽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죽은 게 확실한가? 외신에게는 죽음이란 개념이 없다는 걸 너도 알 텐데?”

“단순히 힘을 소모하여 사라진 게 아닙니다. 완벽히 죽었습니다.”

“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니알라토텝이 죽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신인 놈이 죽었다면…….’

결코 자신도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었다.

불멸성이란 결국 그게 그거니까.

문제는 그런 게 가능하다는 소리를 여태 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자토스라도 불가능한 일은 한낱 까마귀자리의 플레리어가 성공했다? 하, 웃긴 일이로군.”

“까마귀자리라지만 놈의 신격은 사실상 상급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번일로 잘만 하면 최상급을 넘볼지도 모릅니다.”

“아주 돌겠어. 지구의 게임이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좀 넘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상급 신격을 넘었다라…….”

너무 어이없는 수치라 현실감이 없었다.

문제는 그런 존재가 세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림포스에 있다는 계집은 어떻게 됐지?”

“그쪽도 상급을 넘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두어 달이 지나면 최상급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열쇠의 반쪽을 지닌 것이 그렇게 되면 곤란한데…….”

“그렇다고 해도 이 우주의 ‘관리자’인 왕에게는 위협이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모를 일이지. 니알라토텝이 죽었는데 관리자의 자리가 영원할 리도 없잖나.”

부정하고자 했지만 이미르의 말은 사실이었다.

거인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회피했다.

“반고.”

“예. 이미르 님.”

“너무 딱딱하게 말하지 마라. 옛날 생각하면 소름 돋으니까.”

갈색 피부에 딱딱한 얼굴을 한 거인, 반고는 이미르의 농담에도 웃지 않았다.

이미르가 태초의 거인이라 불리지만 실상 먼저 태어난 건 반고였다.

이미르가 세력을 모을 시절 반고는 이미 거인들의 우두머리로서 격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이미르가 이기고 거인왕의 자리에 오르며 반고가 이루었던 모든 걸 차지했지만 반고는 이미르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거인이었다.

그를 쓰러트리며 ‘태초의 거인’이라는 이명조차 이미르가 가져갔다.

그 사실은 아는 건 이미르와 반고 둘뿐이었다.

당시 살았던 거인들은 지금 모두 죽었으니까.

퍼블리셔의 부사장이자 진정한 태초의 거인 반고.

관리자가 되며 완벽한 불멸을 손에 넣은 이미르와 달리 그는 다른 거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순히, 엄청나게 강할 뿐.

“만약 네가 니알라토텝과 싸웠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나.”

“죽이지는 못합니다. 저와 니알라토텝은 거의 동급의 존재니까요.”

“하지만 지지는 않았을 테지?”

“승부로는 이겼을 겁니다. 놈은 전령이니 싸움 실력은 형편없기 때문이죠.”

딱딱하게 말하는 반고의 말에 이미르는 큭큭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외신을 감히 ‘싸움을 못한다’라고 표현하는 존재가 있을 줄이야.

“그럼 그냥 쳐들어가 버릴까? 시스템 한번 개무시하고. 관리자 권한도 날아갈지 모른다만.”

“안 됩니다.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뭣보다 그곳에는 그녀가 있으니 이긴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녀?”

“아자젤은 저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태의 악마 아자젤.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이미르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아자젤이 진심으로 나오면 아무리 반고라도 승리를 점칠 수 없었다.

마계의 악마 중 7대 악마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사실상 이쪽 우주의 ‘외신’에 속한 존재이니.

“그럼 그년이 없는 틈을 노려야겠군.”

“그렇겠지요.”

“후우, 그냥 지켜보는 건 좀 그런데…….”

턱을 괴고 잠시 고민하던 이미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씩 웃었다.

“페트로이아에 다녀와야겠다.”

“예?”

“그냥 지켜보는 건 재미없잖나.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해봐야지.”

그곳에 있는 ‘검성’이라면 무슨 수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현재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들.

그들의 정점에 이른 인물이었으니까.

***

르뤼에 탐사가 이후 넉 달이 흘렀다.

당장 새로운 콜라보 퀘스트가 발현되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이미르의 반응은 잠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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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애초에 게임 ‘지구’는 지금처럼 개나소나 하는 게임이 아니었단다.

지금은 개나소나 접속해서 플레이하니까 좋지?

원래는 미켈, 중원 같이 숨겨진 명작. 즉, ‘상급 유저’들이나 하던 게 지구야.

상급 유저들이 즐기던 게임에 온갖 날파리(하급 유저)들이 몰려오니

물이 흐려지네

댓글

익명278 : 와! 게임 ‘지구’ 아시는구나! 정.말.갓.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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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의 반응도 대단치 않았다.

그냥 다른 퍼블리셔 게임들과 운영이 다른 탓에 흔히 지구를 갓겜이라 부르짖으며 난장을 피는 놈들이 늘었을 뿐이다.

“……이런 걸 보면 신이나 인간이나 다를 것도 없다니까.”

간만에 온 평화라 마음도 몸도 늘어졌다.

당장은 할 일도 없고 린이 강해지기를 기다려야 했기에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위이잉──

침대에 누워 커뮤니티나 들여다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핸드폰으로 연락한 거면 유엔이나 루크인가?

“여보세요.”

「아, 저. 저기 디어사이드의 길드장 맞죠?」

익숙하지만 낯선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이름을 확인했다.

‘번호 저장도 안 되어 있는 사람인데.’

근데 목소리가 익숙한 걸보면 나도 아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

아, 잠깐만. 기억났다.

“혹시 홍가은 씨 입니까?”

「맞습니다. 오늘은 존댓말로 해주시는군요.」

“……아무 때나 반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동안은 기세를 잡아야했기에 강하게 나간 거지. 아무에게나 반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다.

이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기에 나름 예의를 지키는 중이었다.

이수린이 매번 분위기 잡는다고 뭐라 해서는 아니다. 절대로.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홍가은은 그녀답지 않게 뜸을 들였다.

그리곤 연약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여, 연애 상담 좀……….」

이건 또 뭔 개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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