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206. 죽음의 무게(2)
죽음.
처음으로 느낀 죽음의 무게에 니알라토텝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죽음에서 비롯된 공포와 절망.
이 모든 것들은 신에게 낯선 감정이었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 또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철컹!
차가운 금속이 움직이며 니알라토텝을 향해 사출됐다.
니알라토텝이 손을 쓸 틈도 없이 파일벙커는 니알라토텝의 외피를 꿰뚫으며 거대한 육신에 박혔다.
‘큭!’
세한은 이를 악물었다.
예상을 하긴 했지만 파일벙커로 어마어마한 신력과 마력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세한이라는 존재를 모조리 포식하려는 듯이.
대가 없는 힘이란 없다.
파일벙커를 사용하는 것에는 그만큼 커다란 힘이 필요했다.
현재 남아 있는 모든 마력과 신력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만약 이것으로 놈을 죽이지 못하면 당하는 건 세한 본인이다.
파일벙커를 착용한 순간부터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것을 사용한 건,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 니알라토텝을 이길 수도 없을뿐더러 이드라를 믿었기 때문이다.
억겁의 세월을 견디고 자신을 만나러온 그의 신을
쩌적.
파일벙커가 박힌 니알라토텝의 몸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쩌저저적!
작은 균열은 점차 커졌고, 거미줄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김──세한──!!」
비명과 같은 니알라토텝의 절규가 들렸다.
아마 그가 처음으로 내지르는 비명이며 절규일 것이다.
“네 말처럼 너에 비하면 인간은 먼지가 맞아.”
그의 말은 틀리지 않다.
니알라토텝의 관점에서 보는 인간이란 자신이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를 지켜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언제든 밟아죽일 수 있고, 심심풀이로 쓸어버릴 수 있는 그런 벌레들.
“하지만 작고 하찮다고 반드시 약한 것은 아니지.”
벌레보다, 먼지보다도 작은 것에도 인간은 아주 간단하게 죽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세균.
세한은 니알라토텝에게 있어 그런 세균이었다.
작고 하찮지만 치명적인 질병을 지닌 세균.
죽음이라는 이름을 지닌 질병이 니알라토텝의 전신에 퍼졌다.
콰아아앙!!
「크아아아악!!」
부서진다.
거대한 육신이, 그리고 존재를 이루던 모든 것들이.
몸을 지탱하던 신격과 마력이 흩어지고 그를 떠받들던 모든 기적이 사라진다.
“으, 으아가가가각!”
신의 비명은 인간이 되어 떨어진다.
거대한 육신은 산산이 부서졌고 그 속에서 작은 인간의 모습이 된 니알라토텝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한다.
이제 그는 신이 아니다.
불멸을 잃고 죽음의 질병을 앓는 나약한 인간.
인간 니알라토텝이다.
쿠웅!!
“하───.”
지면에 떨어지자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며 니알라토텝의 숨을 막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었던 인간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죽음을 알아버린 그는 더 이상 외신이 될 수 없었다.
“이, 이드라아아아!”
하찮다고 생각했다.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루었던 모든 격을 버리며, 인간 이드라가 되기를 소망한 멍청이를 비웃었다.
그러고도 네가 외신의 이름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꿈의 마녀라 지칭하며 위대한 불멸자들과 나란히 설 수 있는가?
“이, 새끼가……!”
그의 입에서 난생처음으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고고한 여유가 사라진 공간에 저열한 분노가 들어찼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절대로, 사라질 수 없단 말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며 처박힌 구덩이 속에서 니알라토텝은 바르작거렸다.
파일벙커에 맞은 충격인지 신격도 마력도 모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만든 인간의 육신의 힘으로 구덩이 속에서 기어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신의 육체로서 만든 몸이었기에 기본적으로 현재 플레이어가 이룰 수 있는 한계치의 육신을 지녔다는 점이다.
물론 니알라토텝의 입장에선 ‘한낱’ 플레이어에 불과하지만 충분히 강한 육체였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니알라토텝은 하늘에서 떨어진 충격만으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 거지같은 환상 속에서만 빠져나간다면.’
우선 외우주로 돌아간 후, 우둔한 아버지…… 아자토스의 힘을 빌리면 된다.
내키지는 않지만 잃어버린 자신의 힘을 되찾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위대한 아자토스라면 분명 그를 고칠 방법을 알 것이다.
투툭.
“어딜 가려고?”
구덩이 속에서 간신히 기어나온 니알라토텝의 앞에 세한이 서있었다.
그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한쪽 팔은 사라졌고, 허리의 상처도 아직 다 낫지 않았다.
그나마 재생력으로 인해 두 다리가 회복된 것이 위안이다.
상처만 따지면 오히려 지금의 니알라토텝보다 세한의 상처가 훨씬 컸다.
신력과 마력도 파일벙커를 사용하며 모두 소모한 상태였다.
지금의 세한은 자신이 지닌 스킬도, 전승스킬도 사용할 수 없었다.
“너……!!”
퍼억!!
니알라토텝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턱에서 격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가 몸을 일으키기 직전에 달려든 세한이 냅다 턱을 걷어찬 탓이다.
“커억!”
시야가 흔들리며 균형을 잡지 못한 니알라토텝은 다시 구덩이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는 구덩이 속에서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무릎이 계속 굽혀졌다.
‘어째서 균형을 잡기 힘든 거지?’
고작 턱을 얻어맞았을 뿐인데.
“인간의 몸은 원래 그래, 새끼야.”
퍼억!!
균형을 잡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의 얼굴에 무릎이 박혔다.
구덩이 아래에 있는 니알라토텝을 향해 뛰어내려 무릎으로 찍은 것이다.
“크아악!!”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며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끔찍한 통증에 니알라토텝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파, 아프다고!’
고통 따위는 설정해 두지 않았다.
그저 인간의 모습을 취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니알라토텝은 지금 보통의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저놈은 어떻게 저런 몸으로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거냐!’
구멍이 난 허리와, 뜯겨진 팔에서 핏방울이 흩날렸다.
고통이라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지금 깨달았다.
놈은 그걸 견디며 자신을 공격하는 건가?
“신들은 아무것도 몰라.”
파일벙커를 벗은 오른팔을 휘두르며 니알라토텝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때렸다.
“인간들은 그런 고통을 참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고통을 견디면 희망이 있을 거라 믿으며 살아가지.”
하지만 신들은 그런 인간들을 하찮다 욕한다.
“고작, 이런 고통도 참지 못하면서 말이야.”
콰지직!!
“크가가각!!”
옆구리에 틀어박힌 주먹에 니알라토텝의 갈비뼈가 부러진다.
폐에 뼈가 찔렸는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으, 으아아아!!”
고통 속에서 니알라토텝은 필사적으로 세한을 향해 두 주먹을 휘둘렀다.
오직 살기 위해서.
평소라면 그런 단순한 공격에 세한이 맞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다쳤다고 한들, 지금 니알라토텝의 공격은 유치원생 어린이가 막무가내로 휘두른 주먹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세한은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니알라토텝의 주먹이 세한의 얼굴에 틀어박히고 살가죽이 찢겨졌지만 그는 도리어 마주 주먹을 휘둘렀다.
“무지한 신의 주먹이란 이토록 가볍지.”
신의 육신으로 만들어진 니알라토텝의 몸은 튼튼했고 강했다.
막무가내로 휘두른 주먹이라도 세한의 육신에 상처를 낼 만큼.
그래도.
“약해.”
그 간단한 말이 니알라토텝에게 절망을 주었다.
죽음을 깨달았을 때보다 더 큰 절망.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니알라토텝은 자신의 모든 걸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공격했다. 상대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았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신은 강한 게 아니야.”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강한 힘을 지녔을 뿐이다.
불멸을 지녔기에, 죽음을 몰랐기에 어떤 두려움도 가지지 않았다.
그래, 신은 단지.
“약할 수 없었을 뿐이다.”
퍼억!!
세한의 주먹에 니알라토텝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완전히 균형을 잃고 꼬꾸라지는 그의 얼굴을 향해 계속해서 주먹이 내리쳐졌다.
쓰러진 그를 향해 세한은 기계처럼 주먹을 내리쳤다.
핏방울이 튀며 시야가 점차 암전한다.
‘이드라여.’
다른 신들과 달리 필멸자의 안위만을 신경 쓰던 어리석은 신.
결국 그들의 곁에서 살아가길 선택한 ‘인간’.
‘내가, 졌다.’
콰직.
니알라토텝이 느낀 마지막 감정은 공포도 절망도 아니었다.
그저 지독한 패배감이었다.
***
“…….”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니알라토텝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해냈다.
정말로 외신을 죽였다.
그것도 외신 중에서도 이름 높은 기어오는 혼돈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니다.
이것을 해내기에는 너무나 큰 희생이 있었다.
“……이드라.”
1회차의 이드라가 만들었던 환상은 사라졌다.
피투성이가 된 니알라토텝의 시체도, 나도 르뤼에의 땅으로 되돌아왔다.
이젠 정말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정말, 정말로 고생했다.”
무릎을 꿇고 멍하니 있는 내게 따뜻한 무언가가 와락 안겼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옷을 적시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이드라는 나를 안고 등을 두드렸다.
정말로 장하다는 듯이.
나는 그것을 마주 안아주지 못했다.
그저, 하늘을 올려보았다.
「───」
그곳에는 커다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1회차의 이드라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좋게 말해도 1회차의 이드라와 내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거절했기 때문이다.
신의 아바타인 나는 신에게 속박된 존재였기에 그녀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외신들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에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왜 그랬어?”
아까는 묻지 못했던 질문을 조용히 물었다.
“대체 왜, 네가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잖아!”
1년 2년도 아니고, 10년 100년도 아니다.
수억 년이다. 아무리 신에게 시간이란 부질없는 것이라도 그 정도가 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걱정됐던 거다.”
“뭐?”
“그냥 걱정됐을 뿐인 게지.”
내 질문에 대답한 건 1회차의 이드라가 아닌, 나를 품에 안은 2회차의 이드라였다.
그녀는 천천히 내게서 몸을 떼며 말간 얼굴로 웃었다.
“1회차의 그대는 나의 아바타였지 않느냐. 내 유일한 아바타고 소중한 아이다. 그대가 얻은 새로운 기회에서는 행복해지길 바랐을 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너도 알다시피 신은 무지하니까.”
무지하기에 순수하다.
순수하기에 잔혹해질 수 있지만, 무한하게 사랑할 수도 있다.
“불멸이 없기에 잊을 수도 없다. 우리에게 퇴색되는 감정이란 없다는 거다. 수억 년이라는 긴 시간이라도, 우리는 방금 전처럼 그대를 좋아할 수 있는 거란다.”
감정을 깨달은 신이란, 너무나 불쌍한 존재다.
그럼에도 이드라는 그것을 선택했다.
“……나는, 어떡하면 돼?”
1회차의 이드라는 사실상 거의 모든 힘을 잃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를 잠에 빠지게 될 테지. 어찌 보면 죽음과 같다.
니알라토텝과 싸울 때 힘까지 보태줬으니 정말로 남은 건 없을 것이다.
그런 희생을 한 이드라에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치 뭐든 할 것 같은 말이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그럼…….”
이드라는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가는 촉수가 내 볼을 간질였다.
균열에서 흘러나온 이드라의 촉수였다.
“쓰다듬어 주거라.”
“……뭐?”
“아이를 칭찬하는 것처럼 쓰다듬거라. 잘했다고, 여태 힘냈다고. 이제 쉬어도 괜찮다고 말이야. 그거면 충분하다.”
“겨우, 그걸로?”
내가 멍하니 바라보자 이드라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저건 나니까 확실하다. 걱정 말거라 그거면 충분해.”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내 볼을 간질이는 촉수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1회차의 이드라와는 첫 접촉이었다.
설마 그것이 본체가 될 줄은 몰랐지만, 묘하게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드라의 촉수를 쓰다듬는 것뿐이었다.
여태 하지 못했던, 사죄의 말을 보태서.
“미안해. 널 믿지 못해서.”
그렇게 나는 계속, 계속해서 조용히 이드라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몸이 천천히 부스러지며 작은 먼지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